사람들과 함께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이 나라 지식인들은 러시아사람이 했던 일을 따라 “민중 속으로”를 외치며 일하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외침은 되풀이됩니다. “민중한테 다가서야 한다”라느니 “현장 속으로 가야 한다”라느니.

 그러나, 나는 생각합니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이런 외침말은 너무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중이라 하는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다가 어느 날부터 반짝 하면서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다가 머리로만 지식조각을 움직여 여느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품는대서야 여느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과 내가 딴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 스스로 여느 사람이어야 하고, 여느 사람이 나여야 합니다.

 “민중한테 내려가야 한다”느니 “민생을 읽어야 한다”느니 “민중과 함께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부질없습니다. 왜 ‘내려와야’ 하고 왜 ‘읽어야’ 하며 왜 ‘함께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내 삶이 바로 여느 사람 삶이라면 내려가든 올라가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이 곧 여느 사람 삶이라면 내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곧 여느 사람 삶을 읽는 일입니다. 내 삶이 언제나 여느 사람 삶일 때에는 하루하루 내 삶을 일구는 나날이 곧바로 여느 사람과 함께하는 나날입니다.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돌아갈밖에 없습니다.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로서는 ‘여기(여느 사람들 살림터)’가 저희 보금자리나 마을이나 삶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중을 외치고 싶다면, 진보를 외치고 싶다면, 무슨무슨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뭔가를 외치고 싶다면, 그냥 여느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가면서 내 하루를 알뜰살뜰 착하며 착다이 일구면 됩니다. 가난하거나 후미진 동네 골목 담벼락에 벽그림을 그린대서 동네가 나아질 까닭이 없습니다. 동네사람들 이야기를 녹음기에 담거나 사진 몇 장 찍는다고 다큐멘터리라든지 지역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지내며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면 넉넉히 이루어지는 우리 마을 예쁜 삶입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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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하고 영화 보기


 어머니나 아버지가 셈틀 앞에 앉으면 아이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일이 바쁘면 아이가 영화 노래를 부르더라도 안 된다고 끊을 수밖에 없지만, 아이한테 영화 보자면서 셈틀 화면 한쪽 창에 영화를 띄우면 나 또한 이 영화를 함께 보고야 만다. 아이가 볼 영화를 켤 때에는 내 일이란 조금도 할 수 없다. 아니,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일이라든지 마음을 움직여 글을 쓰는 일은 하지 못한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본 영화이더라도 다시금 영화에 빨려든다.

 아이 스스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빨려드는 영화일 때에만 아이 스스로 좋아한다. 한 번 보면서 재미없다고 여기는 영화는 보다가 자꾸 딴짓을 하거나 아버지 무릎을 떠나 방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논다. 볼 때마다 새롭게 좋은 영화는 자꾸자꾸 다시 보고 싶어 한다.

 아이는 그림책을 볼 때에도 스무 번 마흔 번 예순 번을 거듭 보면서 재미있는 그림책을 다시 본다. 백 번 이백 번 다시 넘길 만한 그림책이 아니라면 아이는 처음부터 따분하다고 느끼는구나 싶다. 그런데 아이만 따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버지인 나 또한 아이가 따분하다고 느끼는 그림책을 재미있다고 느낄 수 없다. 아이가 따분하다고 느끼는 그림책은 참말 따분하다고 느낄밖에 없는 아쉬운 구석이 곳곳에 드러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참 마땅한 소리이다. 어린이 눈높이란 ‘어린이한테 발맞추어 유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어린이부터 즐겁거나 재미나거나 신나게 읽으며 언제라도 다시 보도록 이끄는’ 일이다. 그러나 푹 절거나 꽁꽁 사로잡히도록 해서는 안 되지. 꿈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고, 내 자리에서 꿈으로 나아가며, 다시 꿈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다가는, 거듭 내 자리에서 꿈으로 걸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느낀다. 꿈에서 삶을 보고 삶에서 꿈을 본다.

 쉰두 가지 이야기로 이어지는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아이하고 함께 본다. 누군가 고맙게 옛 만화영화 동영상을 올려놓기에 볼 수 있다. 열넷째 이야기하고 열다섯째 이야기를 보면, ‘네로’가 그림그리기에 푹 빠져 지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네로한테는 ‘종이 = 사치스러운 물건’이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싶으나 종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흙바닥이든 나무판자이든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림을 그린다. 네로 스스로 발을 디디며 살아가는 터전과 네로 스스로 마주하며 사귀는 사람을 사랑스레 느끼기에, 이 사랑스레 느끼는 결 그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네로가 그리는 사랑스러운 그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느끼는 사람은, 네로와 마찬가지로 착하며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네로처럼 착하며 사랑스럽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네로가 그린 놀랍도록 착하며 사랑스러운 그림을 들여다보면 가슴 한켠이 쿡 찔리는 듯 놀라워 하기는 한다.

 착한 마음을 이길 마음이란 없다. 왜냐하면 착한 마음이란 누구하고 싸울 마음이 아니요 누구하고 싸움박질을 해서 우악스레 밟거나 이기려는 마음이 아닐 뿐더러 누구를 아프게 하려는 마음이 아니니까. 착한 마음은 언제나 착하기만 할 뿐이다. 칼도 총도 무기도 없으며, 거친 말도 욕지꺼리도 없다. 사랑스러운 마음 또한 오로지 따스한 사랑일 뿐, 차가운 미움이라든지 매몰찬 등돌림이라든지 무시무시한 등처먹기 따위란 깃들지 않는 마음이다.

 나는 착한 영화가 좋다. 나는 사랑스러운 책이 좋다. 나는 착하지 않은 영화는 싫다. 나는 사랑스럽지 않은 책은 따분하다. (4344.3.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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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소식지에 싣는 글. 원고지 8장으로 글을 줄여야 한대서 아예 새로운 글로 쓰다) 



 함께 읽는 책 1 - ‘환경책’은 어떻게 읽어야 좋을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는지는 누가 따로 가르치거나 알릴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에 따라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달라집니다.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일구느냐에 따라 내 손에 쥘 책이 바뀝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지구별 사랑’이 담긴 책에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돈을 조금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돈 잘 버는 이야기’가 담긴 책에 저절로 손이 갑니다. 지구자원과 전기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모든 발전소 문제를 다룬’ 책이라든지 ‘다른 길로 전기 얻기’를 보여주는 책에 마음이 갑니다.

 널리 손꼽히는 《침묵의 숲》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다지 손꼽히지 않으나 《수달 타카의 일생》을 읽을 수 있겠지요.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같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 예방접종과 얽힌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 같은 책을 읽더라도 똑같이 예방접종을 놓는 분이 많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고도 예방접종을 안 놓는 분이 많습니다. 책 하나를 일구려고 숱한 사람이 숱한 땀을 쏟아서 열매를 맺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나 스스로 읽었어도 내 삶하고 걸맞지 않기 때문에 안 받아들이거나 못 받아들이곤 합니다. 따로 책을 읽지 않았으나, 내 몸이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한결 옳으면서 더욱 바르며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사람이 있어요.

 실러 키칭거라는 서양사람이 쓴 《아기가 온다》는 아이를 낳으려는 분이라면 곁에 놓고 곰곰이 읽고 살피면 좋은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어느새 판이 끊어져 헌책방 아니고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무슨무슨 소설책이 몹시 잘 팔리고, 어떠한 책은 해마다 만 권이니 십만 권이니 팔리는데, 내 몸을 헤아리거나 우리 아이들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은 책은 사랑받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스물세 권에 이르는 만화책 《우주소년 아톰》이 있습니다. 아톰 만화영화를 본 사람은 많을 테지만, 막상 아톰 만화책을 곰곰이 읽은 사람은 매우 적으리라 봅니다. 아톰 만화가 무슨 이야기를 다루며 어떤 줄거리인지 아는 분도 참 적으리라 봅니다. 《우주소년 아톰》을 그린 데즈카 오사무 님이 내놓은 《블랙잭》이라는 만화책에 깃든 넋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며 곰삭일 분은 훨씬 적으리라 봅니다.

 흔히들 ‘환경책’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환경책이겠거니 여기지만, 참으로 환경책이라 할 환경책은 굳이 ‘환경책’ 이름표를 붙이지 않습니다. 내 삶과 내 터전과 내 사랑과 내 사람을 알뜰히 보살피거나 껴안으려는 넋이 깃들 때에 비로소 환경책입니다. 내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아름다이 돌보도록 돕는 길동무와 같은 책이 곧 환경책입니다. 4대강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아도 환경책은 되겠지요. 권정생 님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도 훌륭한 책이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었으면서 자가용하고 헤어지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어서 어디에 쓸 사람이 될까 궁금합니다.

 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내 삶을 읽으면서 내 삶이 차츰차츰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길을 걷도록 힘쓰겠다는 뜻이어야 합니다. 어느 책보다 환경책은 지식책일 수 없고, 삶책일 뿐입니다. (4344.3.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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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 이야기] 8. 부산 우리글방 2009.9.27. (2)


 책을 사는 손길이기에 누구나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을 애써 사들이지만 잘 읽지 못한다면 그다지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책을 사서 읽는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짝꿍이나 아이 손을 잡고 함께 책방마실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책을 잘 읽고 못 읽고를 떠나 참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나중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제 어머니나 아버지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된 제 어머니나 아버지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책방마실을 할 수 있을까요. 제 어버이가 내 어린 나날 손을 잡고 책방마실을 해 주었듯이, 이제는 내 아이가 왼편에 서고 내가 오른편에 서면서 둘이 같이 내 할머니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책방마실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헌책방 일꾼은 스무 해 마흔 해를 기다리면서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마실하는 나날을 맞이합니다. (4344.3.24.나무.ㅎㄲㅅㄱ)


- 2009.9.27. 부산 보수동 우리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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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 이야기] 7. 부산 우리글방 2009.9.26. (1)


 새책방 가운데 책방 한켠에서 차를 마시면서 다리쉼을 하도록 마련한 곳은 퍽 드뭅니다. 새책방 가운데 책시렁 한쪽에 걸상을 마련한 곳조차 몹시 드뭅니다. 헌책방이라면 어디에서나 차를 마시면서 책을 살필 수 있고, 바닥이든 작은 걸상에든 앉아서 다리쉼을 하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새책방 마실을 하던 때에 나한테 자리에 앉아 다리쉼을 하라’고 하는 책방을 딱 두 군데 보았습니다. 하나는 서울 명륜동에 자리한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 혜화동에 자리한 인문책방 〈이음책방〉입니다. 이 두 곳을 뺀 어떠한 새책방에서고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책을 살피거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헌책방에서고 걸상에 앉든 계단에 앉든 바닥에 앉든 하면서 다리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자리한 〈우리글방〉은 아예 ‘북카페’까지 열어 책손을 맞이합니다. (4344.3.24.나무.ㅎㄲㅅㄱ)


- 2009.9.26. 부산 보수동 우리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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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24 12:20   좋아요 0 | URL
어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 이처럼 지하로 내려가던 헌책방이 있었네요.제가 몇년전에 부산에 가서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돌았을적에는 못 보았던것 같습니당^^

숲노래 2011-03-24 12:57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제 머리가 바보가 되어 년도는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데, 보수동 <우리글방>이 북카페를 열고 지하와 1층이 이어지는 통로를 만든 때는 2008년이 아니었나 싶어요. 잘 찾아서 들어가지 않으면 이곳을 찾을 수 없답니다 ^^

카스피 2011-03-25 08:27   좋아요 0 | URL
그럼 못본게 당연하네요.제가 간 것이 2008년 이전이었으니까요^^

숲노래 2011-03-25 20:31   좋아요 0 | URL
이곳에 있는 책을 보는 데에만도 여러 날이 걸린답니다. 아니, 여러 날 걸리더라도 못 훑어요. 모두 세 층으로 이루어진 <우리글방>인데 하루에 한 층씩 본다 하더라도 조금밖에 못 훑고 말아요. 다른 곳은 다른 곳대로 오래도록 살펴야 하기도 하지만, <우리글방> 한 군데를 여러 날 돌아볼 마음을 품고서 찾아가도 참으로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식구는 이곳에 가면 나흘쯤은 책을 돌아보면서 장만하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