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하루하루 더욱 깊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기에 날마다 조금씩 깊어지는 삶을 누립니다.

 사람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더욱 따스해집니다. 사람을 읽으면서 더욱 따스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읽기에 언제나 차근차근 따스해지는 삶을 맞이합니다.

 사랑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아름다와집니다. 사랑을 읽으면서 한결같이 아름다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읽기에 노상 아름다운 삶을 즐깁니다.

 책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을 차곡차곡 싣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똑같은 삶을 마주합니다. 사랑은 내 가까이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습니다. 수많은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내 가슴으로 스며들지만, 숱한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나를 거쳐 지나갑니다. 나로서는 내가 받아들이는 책과 사람과 사랑만큼 좋은 나날을 누리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책과 사람과 사랑이 없대서 나쁜 나날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아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언제까지나 기쁠 수 있고, 조금씩 새로 찾아서 살피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한결같은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새로 읽는 책이라서 더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때에 좋지, 새로운 책을 읽기에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이기에 거듭 읽을 수 있으며, 좋은 책을 거듭 읽기에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운과 느낌과 꿈을 선물받습니다.

 내가 차근차근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새로운 좋은 책을 맞아들이거나 새로운 좋은 사람을 사귀거나 새로운 좋은 사랑을 빛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늘 품에 안는 오래된 책을 다시 읽는달지라도, 오래도록 사귄 동무나 살붙이하고만 지낸달지라도, 한 사람을 지며리 사랑한달지라도, 나는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새삼스러이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며 살아갑니다.

 좋은 책이기에 좋은 책입니다.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랑이기에 좋은 사랑입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더 많은 토박이말을 새롭게 배워서 글에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옳고 바르게 깨달아 알맞고 착하게 가눌 줄 알면 비로소 문학입니다. 문학은 고작 오백 낱말이나 삼백 낱말로도 태어납니다. 오천이나 삼만쯤 되는 낱말을 마음껏 부려 쓸 수 있다 해서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쓰는 낱말로 빚을 수 없는 문학이라면 문학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4344.3.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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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말리기


 서울로 볼일을 보러 오다. 여관에서 하룻밤 묵다. 아침에 여관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땅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온다. 나로서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땅을 내려다볼 일이 없을 테니까, 이러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그림으로 보는 일이 놀랍다. 아, 이렇게 보이는구나.

 중국땅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옥수수를 거두어 말려야 할 때에 널따란 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도록 펼쳐서 말리기도 한단다. 이리하여 옥수수 거둠철에는 고속도로를 막아 차가 못 다니도록 한단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시골에서도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 한켠에 죽 펼치곤 한다. 도시에서도 골목길 한켠은 고추를 말리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골목은 한 사람이 지나갈 틈만 남기고 돌계단까지 빼곡하게 고추를 널곤 한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죽고 만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며 ­‘미군부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 삶’을 담은 사진책 《어머니의 손수건》(이용남 사진,민중의소리 펴냄)이 떠오른다.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노라면 미군부대가 군사훈련을 하는 시골마을 사람들은 거둠철에 곡식을 찻길 한켠에 널어서 말리는데, 미군부대 장갑차나 탱크는 일부러 곡식을 깡그리 밟으며 지나간단다. 한국으로 온 미국 군인 가운데에는 미국땅에서 농사꾼도 있을 테고, 미국땅에서 농사짓는 어버이를 모시는 이도 있을 텐데, 왜 미국 군인은 한국에 와서 이런 몹쓸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까.

 아니, 이 나라 정부는 왜 나라밖 군대를 제 나라에 고이 모시는가. 아니, 이 나라 정부는 가을날 거둠철에 농사꾼이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에 죽 펼쳐놓아야 할 때에, 기쁘게 ‘자, 가을날 거둠철이니까 여기 고속도로는 막겠습니다.’ 하고 외칠 수 있는가. 시골길도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깔리는데, 가만히 헤아리면 이 시골길이란 지난날 농사꾼들이 곡식을 말리던 흙길이었다. 이 흙길에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덮이며 자동차가 오가고, 시골사람 또한 자가용을 마련해서 타고 다닌다. 이제 곡식은 길바닥에 펼쳐서 말리기보다 기계를 써서 말린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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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멀미


 옆지기는 차멀미를 한다. 나도 어릴 때에 차멀미를 했는데, 어느결에 차멀미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차를 탈 때에 속이 좋지는 않다. 그저 꾸욱 참을 뿐이지.

 이제 나도 옆지기만큼은 아니지만 차멀미를 한다. 시골집에서 지내다가 때때로 볼일 보러 도시로 나갈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괴롭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내리’니까.

 볼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미식거림을 참아야 한다. 오늘은 그나마 빈속으로 나왔기에 서울 닿을 무렵에 눈알이 핑핑 돌지만 그럭저럭 버틴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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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환경연대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 


 발굽병이든 구제역이든 다 괜찮아요
 ― 제삶을 제대로 제값 치르며 살아가요



 도시에는 도시가스가 있습니다. 밥을 하거나 따순물을 쓸 때에 그닥 근심하지 않습니다. 꼭지만 돌리면 따순물 졸졸 흐릅니다.

 도시가스는 시골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골가스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도시라 해서 모든 도시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빈민촌’이라 하거나 ‘철거민촌’이라고도 하며 ‘가난한 골목집’이라고도 하는, 제가 느끼기로는 그예 달동네랑 꽃동네인 집에는 도시가스가 잘 안들어갑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도 달을 보기 어렵지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면 밤하늘 달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에는 지킴이가 ‘지키는’ 꽃밭만 있으나, 골목동네 곳곳에는 골목사람 스스로 일구는 텃밭과 꽃밭이 예쁘장합니다.

 인천 창영동에서 첫째를 낳아 살던 때, 우리 집에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왔습니다. 머잖아 통째로 허물어 아파트로 확 바꾸려는 도시 정책 때문에 이러한 집은 도시에 깃들어도 도시 살림집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식구는 지난여름에 인천 골목집을 떠나 음성 멧골자락 시골집으로 옮겼습니다. 시골 멧자락에 붙은 집인 만큼 도시가스 구경은 꿈도 꾸지 않고, 전화줄에 딸린 인터넷은 되게 느리기도 하며, 면내나 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드뭅니다. 자가용이 없을 뿐더러 자가용 몰 생각을 안 하고 자가용 장만하거나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바깥마실을 할 때면 시골버스 지나는 때를 맞추어 큰길로 걸어 나갑니다. 으레 이십 분은 걷고, 다시 이십 분쯤 기다려 시골버스를 탑니다.

 누군가는 ‘느리게 살기’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냥 시골살이입니다. 하루에 여섯 대 오가는 시골버스에 맞추어 읍내를 다녀옵니다. ‘천천히’라기보다 시골살이에 맞추는 나날입니다.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더위를 느낍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느끼고, 봄에는 봄빛을 마주합니다.

 지난겨울 하룻밤 잘못한 탓에 물이 얼어붙어 삼월이 되어도 녹지 않으니 벌써 넉 달째 접어들도록 물을 길어다가 씁니다. 밥하고 설거지할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는 빨랫감을 들고 가서 하며, 몸을 씻기 참 힘듭니다. 어찌저찌 한겨울 지났고 곧 얼음이 사르르 녹아 물 한 그릇 고맙게 쓸 날을 맞이하겠지요. 힘들지만 힘든 대로 요모조모 더 알뜰히 살아내면 됩니다.

 우리 살림은 꽤나 가난해서 흔한 말로 ‘최저생계비조차 안 되는 살림돈’으로 어영부영 꾸립니다. 돈이 없으니 어디 나라밖으로 다녀온다든지 무슨 맛난 밥집을 찾아다닌다든지 예쁘장한 옷을 사입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여러 생협 물건을 장만해서 씁니다. 으레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여기지만, 생협 물건은 안 비쌉니다. 알맞게 붙인 값이요 알뜰살뜰 쓸 물건으로 매긴 값이에요. 몸소 논밭일을 하는 사람은 알 테지요. 똥거름 내고 손수 김매어 흙을 일군 먹을거리하고 풀약이랑 비료를 먹인 먹을거리랑 같은 값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내가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 옳게 벼농사 지은 일꾼 땀방울에 값하도록 돈을 제대로 써야 올바릅니다. 생협 고기는 마트 고기보다 비싸다 하지만 마땅히 옳은 고기이고, 더 맛있으며, 더 알맞게 즐기기 마련인데다가, 고맙게 얻습니다. 항생제와 사료 안 먹인 고기란 매우 드뭅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집에 살면서 발굽병이고 뭐고를 안 느낍니다. 우리는 고기를 사먹는 일이 없고, 집에서 집짐승을 안 기릅니다. 발굽병이란, 거의 날마다 아주 많이 값싸게 고기를 먹으려 하는 도시사람들, 더욱이 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라도 고기를 냠냠짭짭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도시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제값을 치를 줄 알며, 제삶을 꾸릴 줄 알아야, 발굽병이건 4대강사업이건 이 나라에 함부로 깃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발굽병이란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긴 병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사람만 받습니다. 도시사람이야 발굽병이 터져도 고기를 예전하고 똑같이 먹으나, 시골사람은 온 마을을 소독한다느니 출입통제라느니 하면서 꽤나 시끌벅적합니다. 그래도 지난 설날부터 장마당이 다시 열렸으니, 장마당마실을 못할 일은 이제 없겠지요.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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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학부모·어버이, 제도권학교·대안학교


 아이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지내자면 힘듭니다. 아이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기란 참 힘듭니다. 그러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학교에 보내는 일도 그리 좋은 일은 못 됩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한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 하는 모습이나 이야기는 어버이 스스로 보여주거나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은 삶이지 지식이 아닙니다. 배움은 삶이지 정보가 아닙니다.

 오늘날 학교나 학원은 지식과 정보만 다룹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는 삶을 보여주거나 마주하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수많은 대안학교가 제도권학교에 맞서서 태어납니다만, 대안학교는 학교 살림돈을 얻자며 시험공부 하는 교과서를 받아들입니다. 대안학교 스스로 대안교과서를 만든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들 스스로 앞으로 어디에서 누구하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까’를 놓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도시에 깃든 대안학교라면 제도권학교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라 할 때에는 ‘대안’이라는 한자말이 ‘다른 길’을 뜻하는 만큼, 참말 제도권학교하고 다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제도권학교는 시골마을에 자리해도 도시에 있는 학교와 똑같이 가르칩니다. 제도권학교는 가난한 동네에 깃들어도 부자가 모인 동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르칩니다.

 대안학교라 한다면, 도시 아닌 시골에 뿌리내려야 올바릅니다. 시골에 뿌리내려서 시골사람을 키울 수 있어야 대안학교답다 할 수 있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어 도시에 자리잡는 대안학교일 때에는, 도시에서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가는 길을 아이들 스스로 깨달아 맞아들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는 아이가 되지 않도록, 돈이 아닌 삶을 깨달으며 나와 내 동무와 살붙이와 이웃을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일깨우도록 돕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어버이 혼자 집살림 꾸리고 바깥살림 돌보며 아이하고 살아가기 벅찰 수 있습니다. 벅차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아이하고 복닥이면서 벅찬 나날을 보내는 만큼, 아이하고 더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다고 느끼며, 아이 앞에서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한 길을 씩씩하며 즐겁게 살아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는 어른을 가르칩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고, 어른은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서로서로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이 나라 학교 가운데에는 아이와 어른이 서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데가 없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어른과 아이가 서로를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으로 여겨 섬기거나 높이거나 따숩게 끌어안는 얼거리를 짜지 않습니다.

 어버이는 어버이라서, 참 힘들지만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나날을 잇습니다. 아이는 아이라서, 참 신나게 뛰어놀며 씩씩하게 배우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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