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046) 속 43


코끼리와 기린과 하마가 냄비 속에서 / “누구냐!” / 영식이 할머니 깜짝 놀라 냄비 속에 숨었네. / 쭈그렁 냄비 속에 숨었네

《위기철-신발 속에 사는 악어》(사계절,1999) 23쪽


 냄비 속에서 → 냄비에서

 냄비 속에 숨었네 → 냄비에 숨었네



  국을 끓이면서 서로 이야기합니다. “냄비에 파 넣었니?” “아직 안 넣었어요.” “그러면 냄비에 파를 넣으렴.” 파를 넣을 적에 “냄비에” 넣지, “냄비 속에” 넣지 않습니다. 달걀을 냄비에 넣고 삶습니다. 달걀을 잘 삶은 뒤에 불을 끕니다. 이러고 나서 서로 이야기합니다. “냄비에 달걀 있으니 꺼내 먹으렴.” “네, 냄비에서 꺼내 먹을게요.”


  냄비에 물을 넣습니다. 냄비에 쌀을 붓습니다. 냄비에 고구마와 감자를 넣고 찝니다. 냄비에 넣고, 냄비에서 꺼냅니다.


  보기글은 동시입니다. 동시에서 생각날개를 펼쳐서, 조그마한 냄비에 코끼리도 기린도 하마도 할머니도 숨는다고 읊습니다. 그럼요, 작은 냄비에 우리 모두 숨을 수 있어요. 그런데, “냄비에” 숨을 뿐입니다. “냄비 속에” 숨지는 않습니다. 어린이부터 읽는 동시인 만큼, 이러한 동시에 쓰는 말은 더 살피고 옳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쓰는 말마디가 잘못되거나 그릇되면, 아이들은 그만 말을 잘못 배웁니다. 4348.1.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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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기린과 하마가 냄비에서 / “누구냐!” / 영식이 할머니 깜짝 놀라 냄비에 숨었네. / 쭈그렁 냄비에 숨었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47) 속 44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 깊은 산 속 오두막집에 / 우는 아이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

《위기철-신발 속에 사는 악어》(사계절,1999) 83쪽


 깊은 산 속 오두막집에

→ 깊은 산 오두막집에

→ 깊은 멧골 오두막집에

 …



  사람들은 “산에 갑”니다. 그저 산을 오르려고 산에 가고, 나물을 캐려고 산에 갑니다. 봉우리에 오르고 싶기도 하지만, 그저 멧길을 타고 싶어서 산에 갑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산에 갈” 뿐, “산 속에 가”지는 않습니다.


  절집은 으레 “산에 있”습니다. 요즈음은 “산 속에 있”는 절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산 속”이 아닌 “산에” 있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어린이노래를 보면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처럼 흐릅니다. 아주 잘못 부르는 노래입니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이 아니라 “깊은 산 옹달샘”입니다. 노랫가락을 맞추려 한다면 “깊은 산에 옹달샘”이나 “깊은 멧골 옹달샘”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깊은 산 속”도 “깊은 산”이나 “깊은 멧골”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4348.1.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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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 깊은 멧골 오두막집에 / 우는 아이 달래는 어머니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머니 목소리”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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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84) 전의 5


그는 뛰어난 어학 실력을 보였기 때문에 교수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고, 좀전의 실례를 용서했다

《구위드 다메오/이우석 옮김-무솔리니》(학원출판공사,1989) 167쪽


 좀 전의 실례를

→ 좀 전에 있던 실례를

→ 조금 앞서 저지른 잘못을

→ 바로 앞서 했던 부끄러운 짓을

 …



 ‘좀전’처럼 붙여서 쓰는 분도 있으나 ‘조금 전’을 뜻하는 말마디이니 ‘좀 전’으로 띄어서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서 말쓰임을 살핀다면, ‘前’을 ‘앞서’로 다듬어 “조금 앞서”처럼 적으면 아무 걱정이나 말썽이 없습니다. “바로 앞서”로 적어 보아도 어울리고, ‘앞서’만 넣어도 괜찮습니다. 4341.7.24.나무/43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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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교수들은 입을 모아 추켜세웠고, 앞서 저지른 잘못을 봐주었다


“뛰어난 어학(語學) 실력(實力)을 보였기”는 “뛰어난 말솜씨를 보였기”나 “여러 나라 말을 훌륭히 할 줄 알았기”로 손질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일 테지요. ‘칭찬(稱讚)했고’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추켜세웠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실례(失禮)를 용서(容恕)했다”는 “잘못을 덮어주었다”나 “잘못을 너그러이 봐주었다”로 손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45) 전의 6


덕수는 그저 놀란 마음에 눈이 동그래집니다. 좀 전의 웃음은 간곳이 없습니다

《강무지-다슬기 한 봉지》(낮은산,2008) 141쪽


 좀 전의 웃음은

→ 조금 앞서 지었던 웃음은

→ 조금 앞서 보여준 웃음은

→ 조금 앞서 같은 웃음은

 …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인다면 어떤 웃음이었는가를 찬찬히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넘치게도 아닙니다. 아주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고, 눈길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니,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펼치지 못합니다. 조금이나마 눈길을 보내지 못하니, 우리 글을 우리 글답게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이면서 우리 누리를 한결 아름답고 밝게 북돋우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조금씩 마음을 바치면서 이웃과 더욱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조금씩 마음을 나누면서 숲과 마을과 보금자리를 고이 가꿀 수 있습니다만, 말도 삶도 이웃도 마을도 나라도 살갑게 껴안지 못합니다. 4342.1.6.불/43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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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는 그저 놀란 마음에 눈이 동그래집니다. 조금 앞서 같은 웃음은 간곳이 없습니다


‘미소(微笑)’가 아닌 ‘웃음’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 붙은 토씨 ‘-의’를 넣은 말투는 아쉽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76) 전의 7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일이다. 열 명 남짓 한 학생들이 강의실 벽에 자신의 작업을 걸었다

《박태희 옮김-필립 퍼키스와의 대화》(안목,2009) 7쪽


 14년 전의 일이다

→ 열네 해가 지난 일이다

→ 열네 해가 된 일이다

→ 열네 해 앞서 있던 일이다

 …



  ‘14년(十四年)’은 한자로 이루어진 말마디입니다. 저는 이 같은 말마디를 쓰지 않습니다만, 오늘날 우리 둘레 어디에서나 이런 말마디를 손쉽게 듣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이 말마디로 생각을 나눕니다. 저로서는 이 같은 말마디를 굳이 써야 할 까닭을 못 느낍니다. 그러나 제가 이 말마디를 안 쓴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모두 이 말마디를 버리거나 털어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십사 년’이 아닌 ‘열네 해’라 말하면서도 내 생각을 넉넉히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14년 전 일이다

 14년이 지난 일이다

 14년 전에 있던 일이다


  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14년’을 그대로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토씨 ‘-의’ 하나만 털면 됩니다. 우리는 예부터 이러한 말투로 이야기를 펼쳤고, ‘전(前)’이라는 한자말 없이도 알뜰살뜰 마음을 나타내거나 나누었습니다.


  굳이 딱딱한 말투에 매이지 않아도 되며, 괜히 어줍잖은 말씨에 길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편지를 쓰든, 논문을 쓰든, 신문글을 쓰든, 일기를 쓰든 반드시 ‘십사 년’이나 ‘전 + 의’ 같은 말마디를 넣어야 하지는 않을 테지요. 그렇지만 워낙 오래 익숙하게 지냈기에 이 말버릇을 가다듬지 못하겠다면 하는 수 없습니다. 적어도 “14년 전 일이다”쯤으로는 적바림하도록 말씨를 아주 살짝이나마 보듬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2.12.10.쇠/43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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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느덧 열네 해가 지난 일이다. 열 사람 남짓 한 학생들이 강의실 벽에 제 사진을 걸었다


‘지금(只今)으로부터’는 ‘올해로 치면’이나 ‘어느덧’으로 다듬습니다. “열 명(名)”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열 사람”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자신(自身)의 작품(作品)을”은 “제 작품을”이나 “손수 찍은 사진을”이나 “저마다 찍은 사진을”이나 “제 사진을”로 손질해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89) 전의 8


어머니가 우리 집에 있었던 건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사노 요코/윤성원 옮김-나의 엄마 시즈코상》(이레,2010) 9쪽


 10년도 전의 일이다

→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 열 해나 지난 일이다

→ 열 해도 더 지난 일이다

→ 열 해도 더 지났다

 …



  어머니가 열 몇 해 앞서 우리 집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뜻 그대로 말을 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계셨던 때가 벌써 열 몇 해가 되었다”처럼 적을 만합니다. “10년도 전의 일”이라고 적으면 알 듯 말 듯 아리송합니다. 아무래도 ‘더’라는 꾸밈말을 빠뜨렸구나 싶고, 열 해가 더 지났다고 하면 “열 몇 해”가 된 셈입니다. “열서너 해”라든지 “열대여섯 해”라고 적을 수 있을 테지요. “열 해 남짓”이라 적어도 됩니다. 43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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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우리 집에 있은 때는 벌써 열 해도 더 지났다


“있었던 건”은 “있었던 때는”이나 “있은 때는”이나 “계신 때는”이나 “계셨던 때는”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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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3] 몸띠



  ‘폴리’라고 하는 만화영화를 본 우리 집 두 아이가 ‘안전벨트’라는 낱말을 넣어 노래를 부릅니다. ‘폴리’라고 하는 만화영화에서는 늘 ‘안전벨트’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옆에서 ‘안전띠’라고 말했지만, 만화영화는 하루아침에 두 아이 말투를 ‘띠’에서 ‘벨트’로 바꿉니다. 가만히 보면, 만화영화뿐 아니라 둘레 다른 어른들도 으레 ‘벨트’라고만 말할 뿐, ‘띠’라는 한국말은 잘 안 씁니다. 그러면 여덟 살 아이와 다섯 살 아이는 ‘안전벨트’가 어떠한 뜻인지 알까요? 자동차를 탈 적에 몸에 채우라고 하는 띠인 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릴 테지만, ‘안전’이나 ‘벨트’가 따로따로 무엇인지는 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띠’라는 낱말을 두 아이한테 새로 들려줍니다. 자동차를 탈 적에 너희 몸에 띠를 두르니, 이 띠는 ‘몸띠’라고 알려줍니다. 다섯 살 아이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대로 그냥 ‘안전벨트’로 노래하지만, 여덟 살 아이는 “몸에 하는 띠로구나?” 하면서 ‘몸띠’라는 낱말을 곧바로 받아들여서 씁니다. 큰아이가 보여주는 모습을 살피면서 한 가지를 새로 깨닫습니다. 한국말로 곱고 바르게 가다듬어서 쓰는 끼닭이라면, 외국말을 털거나 고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삶을 또렷이 헤아리면서 즐겁게 나눌 만한 한국말을 찾을 때에 서로 웃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4348.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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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2] 눈썰미



  어릴 적에 둘레 어른들은 으레 ‘눈썰미’라는 낱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옆에서 어깨너머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서도 잘 따라하거나 배우면 “눈썰미가 좋다”고 했습니다. 흘깃 한 번 보고 나서도 잘 떠올리거나 알아챈다든지, 어떤 것에 깃든 이야기나 숨결을 슬기롭게 읽어낼 적에도 “눈썰미가 훌륭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눈썰미’라는 낱말은 좀처럼 못 듣습니다. 요새는 어른이나 아이나 ‘안목(眼目)’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이른바 “보는 눈”을 가리키는 한자말인데, 예전에는 어른들이 ‘눈썰미’라는 낱말과 ‘보는 눈’이라는 말마디를 함께 썼어요. “‘보는 눈’이 있구나”라든지 “‘보는 눈’이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집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눈썰미’뿐 아니라 ‘눈길·눈매·눈초리·눈높이·눈빛’이라는 낱말에다가 ‘눈결’ 같은 낱말도 씁니다. 일부러 쓰는 셈인데, 우리가 눈으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헤아리고 마음에 담느냐 하고 함께 돌아보고 싶습니다. 4348.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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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775) 경제적 7


그녀에게 아들 한 명이 있고, 그녀의 꿈은 먹고살 만한 경제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이효인-영화여 침을 뱉어라》(영화언어,1995) 24쪽


 먹고살 만한 경제적 환경

→ 먹고살 만한 터전

→ 먹고살 만한 일자리

→ 먹고살 만한 살림살이

→ 먹고살 만한 벌이

 …



  ‘경제적’이란 무엇을 가리킬까 생각해 봅니다. 숱하게 듣는 이 낱말을 새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경제가 될 만한”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러면, ‘경제’란 또 무엇이며, “먹고살 만한 경제 환경”이란 다시금 무엇을 이야기하는 셈일까요.


  어디에서나 듣고 어느 사람이나 쓰는 ‘경제’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들마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라든지 “경제적인 지원이 있어야지” 같은 말씀을 꺼내거나, “경제적으로 아쉬운 것이 없어요”라든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살아요” 같은 말씀을 들려주곤 합니다.


 그한테는 아들 하나가 있고, 꿈이라면 먹고살 만한 보금자리요 일터이다

 그 여자한테는 아들 하나가 있고, 둘이서 먹고살 만한 살림살이를 꿈꾼다

 그 사람한테 아들이 하나 있고, 그이 꿈은 먹고살 만한 터전이라고 한다


  온누리가 모두 숨가쁘게 바뀌는 흐름이기에, 우리가 쓰는 말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누구도 ‘경제’나 ‘경제적’ 같은 말을 모르기도 했고 안 쓰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누구나 ‘경제’와 ‘경제적’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는 ‘벌이·밥벌이·돈벌이·돈·살림·살림살이’ 같은 낱말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는 이와 같은 한국말은 외려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 그 사람은, 그저 먹고살 만한 벌이 하나만 있으면 했다

 아들 하나 있는 그이는, 무엇보다 먹고살 만할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했다


  “진지 자셨어요?”라 하던 말이 “식사하셨어요?”로 바뀌었고, “고맙습니다”라 하던 말이 “감사합니다”나 “땡큐”로 바뀌었으며 “생각 좀 해 봐”라 하던 말이 “아이디어 좀 내 봐”나 “창의적으로 사고해 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먹고살 만한 살림살이”라 주고받던 이야기를 “먹고살 만한 경제적 환경”처럼 바꾸어서 이야기해야 할 만한 오늘날일 수 있습니다. 다 바뀌니까요. 4340.1.3.물/4342.7.5.해/43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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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한테 아들이 하나 있고, 그이 꿈은 먹고살 만한 터전이다

그 사람은 아들이 하나 있고, 먹고살 만한 터전을 갖추고 싶은 꿈이 있다


여자를 가리킬 때 ‘그녀’를 곧잘 쓰는데, ‘그’라고만 해도 되고, 사람이름을 밝혀서 적어도 됩니다. ‘그 사람’이라 적어 보아도 괜찮아요. “아들 한 명(名)이 있고”는 “아들이 하나 있고”로 다듬고, “갖추는 것이다”는 “갖추는 데에 있다”로 다듬어 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915) 경제적 8


실제로는 유행을 조작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자본가들과 ‘유행’이라는 마술로 무제한의 소비주의적 낭비를 조장하는 상품선전 산업의 요술

《리영희-스핑크스의 코》(까치,1998) 88쪽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 돈을 챙기는

→ 돈벌이를 일삼는

→ 돈벌이를 꾀하는

→ 돈을 쓸어모으는

→ 돈을 쓸어담는

→ 돈방석에 앉는

→ 앉아서 돈을 버는

 …



  학자나 교수나 기자는 으레 “경제적 이득을 취하다”처럼 말을 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는 하나같이 이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 말로는 “돈을 벌다”일 뿐입니다.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이고, 1950년대에나 1970년대에나 1990년대에나 2010년대에나 늘 매한가지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말마디와 적게 배운 사람들 말마디는 서로 어긋나고 자꾸 나란한 금으로 엇나가는데, 이제는 살가우며 쉽고 고운 말씨를 되찾아야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적 이득’도 ‘머니’도 ‘재테크’도 ‘펀드’도 ‘사업 수익­’도 아닌 ‘돈’과 ‘돈벌이/돈벌기’를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4340.6.24.해/4342.3.24.불/43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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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유행을 부추기면서 돈을 챙기는 자본가들과 ‘유행’이라는 마술로 끝없이 쓰고 버리게 하며 상품을 알리고 팔아먹는 요술


‘실제(實際)로는’은 ‘알고 보면’이나 ‘가만히 보면’으로 손보고, ‘조작(造作)함으로써’는 ‘꾸미면서’나 ‘부추기면서’나 ‘만들어 내면서’로 손봅니다. “무제한(無制限)의 소비주의적(消費主義) 낭비(浪費)를 조장(助長)하는”에서는 ‘무제한적인’으로 안 쓰니 반갑지만 뒷말이 얄궂어요. “끝없는 소비와 낭비를 부추기는(북돋우는)”이나 “끝없이 쓰고 버리게 하는”으로 더 손질합니다. “상품선전(-宣傳) 산업의 요술”은 “상품을 알리고 팔아먹는 요술”로 다듬을 만합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964) 경제적 9


종류나 양, 수확물의 값으로 따져 보아도 뭍의 어떤 생태계보다 생산력이 높아 경제적이다

《박병상-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알마,2007) 118쪽


 생산력이 높아 경제적이다

→ 생산력이 높아 돈이 된다

→ 많이 거둘 수 있어 돈이 된다

→ 많이 거두니 쏠쏠하다

 …



  “돈이 된다”는 뜻으로 쓰인 ‘경제적’입니다. 돈이 된다면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돈벌이에 좋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많이 만지니 ‘쏠쏠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갯벌 값어치를 돈으로 재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만, 돈으로 따지지 않으면 얕잡거나 깔보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런 말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갯벌을 갯벌 그대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가꾸면 좋을 테지만, 오로지 돈벌이로 생각하면서 마구잡이 삽날을 밀어붙이는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피고야 맙니다.


 어떤 곡식보다 많이 거두어 더욱 좋다

 어떤 곡식보다 나아 쏠쏠하다

 어떤 곡식보다 나으니 훨씬 훌륭하다


  스스로 삶을 아름다이 가꾸지 못하니, 갯벌 또한 갯벌대로 아름다이 가꾸지 못합니다. 그리고, 말과 글과 넋과 얼도 아름다이 가꾸지 못하고 맙니다. 4340.9.14.쇠/4342.3.24.불/4348.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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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어들이는 가짓수나 부피로 따져 보아도 뭍에서 얻는 어떤 곡식보다 나으니 쏠쏠하다


‘종류(種類)’는 ‘갈래’나 ‘가짓수’로 다듬습니다. “양(量)과 수확물(收穫物)의 값으로”는 “부피와 거둠새”로 손볼 수 있지만, 썩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앞말과 함께 묶어 “거두어들이는 가짓수나 부피로 따져 보아도”쯤으로 고쳐쓰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뭍의 어떤 생태계”는 “뭍에서 자라는 어떤 곡식”이나 “뭍에서 얻는 어떤 곡식”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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