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34) 안의 1


“초밥은 초밥요리사에게 맡기라고?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테라사와 다이수케/서현아 옮김-미스터 초밥왕 10》(학산문화사,2003) 212쪽


 우물 안의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 갇힌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 빠진 개구리 주제에

→ 우물에서 노는 개구리 주제에

→ 우물 개구리 주제에

 …



  아이도 알 만한 옛말은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우리는 예부터 “우물 안 개구리”를 말했지, 토씨 ‘-의’를 붙인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이하여 토씨 ‘-의’를 이런 데에다가도 붙일까요. 이처럼 토씨를 잘못 붙이는 말투를 어이하여 자꾸 퍼질 뿐, 바로잡히지 못할까요. 잘 된 말보다 잘 안 된 말을 자꾸 듣다가 버릇이 될까요. 올바르게 쓰는 말보다 올바르지 않게 쓰는 말을 신문이나 책이나 방송에서 흔히 읽거나 듣다가 이렇게 굳어 버릴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동네 개구리”나 “웅덩이 개구리”처럼 말합니다. “동네 안 개구리”나 “웅덩이 안 개구리”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우물’을 떠올리면, 깊이 안쪽으로 파고든 곳이기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쓸 수 있겠구나 싶은데, 다른 자리에서는 ‘안’을 따로 안 넣습니다. “동네 축구”나 “동네 야구”나 “동네 선생님”처럼 쓸 뿐, “동네 안 축구”나 “동네 안 야구”나 “동네 안 선생님”처럼 쓰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썼다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쓰기는 쓰되, 이 말투도 “우물 개구리”로 다듬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니면 “우물에 갇힌 개구리”나 “우물에서 노는 개구리”처럼 뜻이나 느낌을 더욱 똑똑히 밝혀서 적어야지 싶습니다. 4339.9.13.물/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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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초밥요리사한테 맡기라고? 우물 개구리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야


한국말사전을 보면, ‘-한테’는 입말로 쓰는 토씨요, ‘-에게’는 글말로 쓰는 토씨라고 밝힙니다. 이 보기글은 서로 입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그러면, 입말일 테지요? 입말이라면, 토씨를 ‘-에게’가 아닌 ‘-한테’로 붙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더 헤아리면,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은 모두 입말입니다. 글말이 아닙니다. 예부터 한국말은 모두 입말일 뿐, 글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게’라는 토씨를 붙일 일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18) 안의 2


아파트 안의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히로세 다카시/육후연 옮김-체르노빌의 아이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1쪽


 아파트 안의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 아파트는 더 시끄러워졌다

→ 아파트는 자꾸자꾸 시끄러워졌다

→ 아파트는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 아파트는 더더욱 뒤죽박죽이 되었다

 …



  이 자리에서는 ‘소란’이 아닌 ‘어수선하다’나 ‘시끄럽다’를 넣었다면 토씨 ‘-의’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몰라요. “아파트 안의 시끄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처럼 쓸는지 모르니까요. 이처럼 써야 문학이 되는 줄 잘못 알 수 있으니까요.


  시끄러워지거나 어수선해지는 곳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안”이 시끄러워지지 않습니다. 다른 보기를 들자면, “숲이 시끄럽다”고 말할 뿐, “숲 안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놀이터가 시끄럽다”고 말할 뿐, “놀이터 안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실이 시끄럽다”나 “객실이 시끄럽다”처럼 말할 뿐, “교실 안”이나 “객실 안”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4339.11.25.흙/433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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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시끄럽고 어수선함”을 뜻한다는 한자말 ‘소란(騷亂)’입니다. 한국말로 ‘시끄럽다’나 ‘어수선하다’라고만 쓰면 되는 셈입니다. ‘어지럽다’도 어울립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조금씩’이나 ‘자꾸’로 고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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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14) 안의 3


나는 엄마 품 안의 / 초승달이다 / 품 안에서 점점 / 보름달로 자란다

《최명란-수박씨》(창비,2008) 39쪽


 엄마 품 안의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 안긴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 싸인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노는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에서 초승달이다

→ 어머니 품 초승달이다

 …



  토씨 ‘-의’를 붙여서 얄궂은 말투이기도 하지만, ‘안’이라는 낱말을 얄궂게 쓴 말투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은 아이한테 읽히는 동시입니다. 동시를 쓰면서 토씨 ‘-의’를 붙이는 일도 얄궂고, ‘안’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대목도 얄굽습니다.


  잘 헤아려야 합니다. 태양계에 해와 달과 지구가 있습니다. “태양계 안”에 있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어항에서 헤엄칩니다. “어항 속”이나 “어항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깁니다. 아이를 안을 적에 “품 안”에 안지도 않고, 어머니한테 안길 적에 “품 안”에 안기지도 않습니다.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 뿐, “부처님 손바닥 안”이나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지 않습니다. 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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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 품에 안긴 / 초승달이다 / 품에서 차츰 / 보름달로 자란다


“품에 안깁”니다. “품 안에 안기”지 않습니다. “손에 물건을 쥘” 뿐, “손 안에” 물건을 쥐지 않습니다. ‘안’은 아무 자리에나 쓰지 않습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찬찬히’나 ‘천천히’로 다듬습니다. ‘엄마’는 아기한테 쓰는 낱말이니, ‘어머니’로 바로잡습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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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83) 득得 1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득도 없는 실랑이만 계속했다

《이란주-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2003) 116쪽


 득도 없는 실랑이만 계속했다

→ 얻는 것도 없는 실랑이만 거듭했다

→ 얻는 것 없이 실랑이만 자꾸 했다

→ 아무것도 못 얻고 실랑이만 이어졌다

→ 마냥 실랑이만 되풀이했다

→ 그저 실랑이만 할 뿐이었다

→ 덧없이 실랑이만 할 뿐이었다

 …



  외마디 한자말 ‘得’은 ‘소득’이나 ‘이득’을 뜻하는 말이라는군요. ‘소득’이나 ‘이득’은 무엇인가 하면 “도움이 되거나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득을 보다”는 ‘얻다’나 ‘가지다’나 ‘내 차지’ 같은 말마디로 다듬으면 됩니다.


 득을 보다

→ 얻다

→ 가지다

 배운 만큼 득이 된다

→ 배운 만큼 도움이 된다

→ 배운 만큼 좋다

 득보다 손실이 많다

→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 얻기보다는 잃었다


  외마디 한자말 ‘得’을 쓰면 무엇을 얻을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이 외마디 한자말을 안 쓰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 ‘얻다’와 ‘가지다’와 ‘차지하다’를 쓰면 넉넉하고, 글흐름에 따라 ‘좋다’나 ‘넉넉하다’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얻는 것 없이” 실랑이만 했다고 하니, 이때에는 ‘마냥’이나 ‘그냥’이나 ‘그저’나 ‘덧없이’나 ‘부질없이’ 같은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4338.6.30.나무/4348.1.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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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마냥 실랑이만 거듭했다


‘계속(繼續)했다’는 ‘되풀이했다’나 ‘거듭했다’로 다듬습니다.



득(得) : 소득이나 이득

   - 득을 보다 / 배운 만큼 득이 된다 / 득보다 손실이 많다

소득(所得)

1. 일한 결과로 얻은 정신적, 물질적 이익

2. 일정 기간 동안의 근로 사업이나 자산의 운영 따위에서 얻는 수입

이득(利得) : 이익을 얻음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850) 득得 2


아무리 너한테 득이 되는 일이라도 스스로 납득하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잖아

《기선-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3》(서울문화사,2006) 47쪽


 득이 되는 일이라도

→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 얻을 것이 많은 일이라도

→ 좋은 일이라도

→ 괜찮은 일이라도

 …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사람한테는 ‘좋은’ 일입니다. 그 사람한테 좋은 일이라면 ‘괜찮은’ 일이나 ‘반가운’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괜찮거나 반가운 일이라면 ‘즐거운’ 일이나 ‘기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차근차근 가지를 치면서 조금씩 느낌을 달리할 말을 찾을 수 있어요. 저마다 제 말씨를 살릴 만한 반가운 말을 헤아릴 수 있고, 그때그때 가장 알맞다고 느낄 말을 새롭게 곱씹을 수 있습니다. 4340.3.7.물/4348.1.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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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너한테 좋은 일이라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잖아


‘납득(納得)하지’는 ‘받아들이지’로 손보면 됩니다. ‘절대(絶對)’는 ‘무슨 일이 있어도’나 ‘죽어도’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8) 득得 3


나는 득을 본 셈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렇지. 하지만 글쎄, 과연 네가 득을 본 걸까?”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하늘이 나눠 준 선물》(양철북,2005) 9쪽


 나는 득을 본 셈이다

→ 나는 뭔가 얻은 셈이다

→ 나한테는 좋은 셈이다

 네가 득을 본 걸까

→ 네가 뭔가 얻었을까

→ 너한테 좋을까

 …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자리에서 으레 ‘得’이라는 외마디 한자말이 나타납니다. 한국사람도 이런 낱말을 으레 씁니다. 한 번 쓰고 자꾸 쓰면서 입과 손에 익습니다. 쓰다 보니 또 쓰기 마련이고, 거듭 쓰고 다시 쓰면서 어느새 말버릇이나 말투가 됩니다. 짤막한 한 마디입니다만, 차분히 돌아보면서 슬기롭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1.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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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좋은 셈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엄마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야 그렇지. 그런데 글쎄, 참말 너한테 좋을까?”


‘표정(表情)’은 ‘얼굴’이나 ‘낯빛’으로 손보고,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런데’로 손보며, ‘과연(果然)’은 ‘참말’로 손봅니다. “본 걸까”는 “보았을까”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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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48) 십팔번


그거 있잖아, 그거. 바다는 어쩌구 하는 노래. 당신 십팔번 말이야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하늘이 나눠 준 선물》(양철북,2005) 115쪽


 당신 십팔번 말이야

→ 자네 단골 노래 말이야

→ 이녁이 잘 부르는 노래 말이야

→ 이녁이 좋아하는 노래 말이야

→ 늘 부르는 노래 말이야

 …



  ‘십팔번(十八番)’은 일본말입니다. 일본말인데 사람들이 워낙 잘못 쓰니, 이 낱말은 한국말사전에도 나옵니다. 다만, 말풀이를 보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일본의 유명한 가부키 집안에 전하여 오던 18번의 인기 연주 목록에서 온 말이다. ‘단골 노래’, ‘단골 장기’로 순화”처럼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단골노래’나 ‘즐겨 부르는 노래’로 고쳐서 써야 올바릅니다.


 단골노래 . 사랑노래 . 즐김노래

 애창곡(愛唱曲)


  일본에서 들어온 ‘십팔번’에 앞서 ‘애창곡’이라는 한자말도 여러모로 쓰입니다. ‘애창곡’도 “즐겨 부르는 노래”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때에도 한국말로 ‘단골 노래’를 쓰면 됩니다. 그런데, 아직 ‘단골노래’처럼 한 낱말로 한국말사전에 실리지는 않습니다. 여러모로 안타깝다고 할 만한 노릇인데, 한자로 ‘애창 + 곡’은 쉬 한 낱말로 삼지만, 한국말로 ‘단골 + 노래’는 언제쯤 한 낱말이 될 수 있을까요.


  더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와 “사랑해서 즐겨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낱말로 ‘사랑노래’를 쓸 수 있습니다. “즐기는 노래”라는 뜻으로 수수하게 ‘즐김노래’처럼 쓸 수 있어요. 노래를 즐겨서 부르는 모습을 가리키도록 ‘즐겨부르다’를 한 낱말로 삼아도 잘 어울립니다. ‘즐겨찾기’라는 낱말이 있으니 ‘즐겨부르다·즐겨먹다·즐겨쓰다·즐겨읽다’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만해요. 4348.1.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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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있잖아, 그거. 바다는 어쩌구 하는 노래. 자네 단골 노래 말이야

그 노래 있잖아, 그, 바다는 어쩌구 하는 노래. 늘 부르는 노래 말이야


‘그거’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그 노래’로 손볼 수 있습니다. ‘당신(當身)’은 ‘자네’나 ‘이녁’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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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4] 어린이노래



  우리 집 아이들과 노래를 부를 적에는 늘 ‘노래’라는 낱말만 씁니다. 따로 ‘동요(童謠)’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적에는 늘 ‘글’이라는 낱말만 씁니다. 따로 ‘동시(童詩)’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어린이노래’나 ‘어린이시’ 같은 말을 쓸 수도 있지만, 아이만 부를 노래가 아니기에 ‘노래’라 말하며, 아이만 즐길 시가 아니기에 ‘글’이라 말합니다.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로 가르자면 이런저런 말을 새로 지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나 문화나 예술은 책이나 전시관에 갇히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리고 즐길 때에 비로소 문학이고 문화요 예술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한테는 ‘문학·문화·예술’ 같은 말을 안 써도 됩니다. 모두 다 놀이요, 삶이며, 하루입니다. 놀면서 노래하고, 웃으면서 살고, 춤추면서 하루가 흐릅니다. “자, 우리 그림 그리면서 놀까?” 하고 말할 뿐, “자, 우리 회화예술이나 행위예술을 할까?”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새롭게 갈래를 나누어야 하기에 새롭게 이름을 붙여야 하면 ‘어린이노래’라 하면 되고, 여느 삶자리에서는 수수하면서 투박하고 단출하게 말합니다. 4348.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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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00) 정하다定 10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고, 정해진 순서에 맞춰 차근차근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2005) 178쪽


 정해진 순서에 맞춰 차근차근

→ 주어진 때에 맞춰 차근차근

→ 때와 곳에 맞춰 차근차근

→ 자리에 맞춰 차근차근

→ 차근차근

 …



  한국말사전을 보면 ‘순서(順序)’를 ‘차례’로 풀이하고, ‘차례(次例)’는 다시 ‘순서’로 풀이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두 낱말은 다르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두 낱말은 똑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낱말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이러한 한자말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지난날에는 ‘앞뒤·위아래·줄·흐름·하나씩·차근차근’ 같은 낱말을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썼으리라 느낍니다.


  이 보기글을 살피면 “정해진 순서에 맞춰”와 “차근차근”을 나란히 적는데, 두 말마디는 뜻이 같습니다. 앞말을 덜든 뒷말을 덜든 글흐름은 같습니다. 4340.11.9.쇠/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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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자면,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爲)해서는”은 “이렇게 하자면”으로 다듬습니다. “마음을 급(急)하게 먹지 말고”는 “서두르다 말고”나 “마음을 바삐 먹지 말고”로 손질하고, “나아가는 태도(態度)가 필요(必要)하다”는 “나아가야 한다”나 “나아가야 좋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82) 정하다定 11


“이 약초는 아주 깊은 산에서 캔 것이니 딴 데 것보다 갑절은 받아야 하오.” 할머니는 아주 당당하게 값을 정했습니다

《권정생-밥데기 죽데기》(바오로딸,1999) 9쪽


 값을 정했습니다

→ 값을 매겼습니다

→ 값을 붙였습니다

→ 값을 불렀습니다

→ 값을 말했습니다

 …



  예부터 한국사람은 값을 ‘매기’거나 ‘붙이’거나 ‘부르’거나 ‘말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때부터 이 모든 말을 잊고 ‘定한다’처럼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합니다. 4341.4.9.물/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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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풀은 아주 깊은 멧골서 캤으니 딴 데 것보다 갑절은 받아야 하오.” 할머니는 아주 다부지게 값을 불렀습니다


‘약초(藥草)’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약풀’이나 ‘풀’로 손볼 수 있습니다. ‘심심(深深)’이라 하지 않고 “아주 깊은”이라 적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도라지 노래에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처럼 노랫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한국말은 ‘심심’이 아닌 ‘깊은’입니다. “캔 것이니”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캤으니”로 손볼 만합니다. ‘당당(堂堂)하게’는 ‘다부지게’나 ‘야무지게’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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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89) 정하다定 12


이처럼 지켜야 할 몇 가지 약속이 있지만, 그밖에 하고 싶은 것들은 아이들 스스로 정합니다 … 마음에 드는 재료를 모으고 뭘 만들지 정하렴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53, 83쪽


 아이들 스스로 정합니다

→ 아이들 스스로 생각합니다

→ 아이들 스스로 다짐합니다

→ 아이들 스스로 세웁니다

→ 아이들 스스로 찾습니다

→ 아이들 스스로 고릅니다

 뭘 만들지 정하렴

→ 뭘 만들지 생각하렴

→ 뭘 만들지 헤아리렴

 …



  아이는 누구나 놀거리를 제 힘과 머리와 손과 몸으로 찾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손수 찾습니다. 놀이뿐 아니라 일과 공부도 아이가 얼마든지 스스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른은 곁에서 아이를 따사로이 이끌면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힘을 북돋아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듯이, 모든 놀이와 일과 공부를 아이가 스스로 찾도록 이끌어야, 이 아이는 나중에 씩씩하게 설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찾습니다. 스스로 헤아리고, 스스로 고릅니다. 알맞게 쓸 말을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나눌 말을 스스로 찾습니다. 사랑스레 주고받을 말을 스스로 헤아립니다. 4341.4.17.나무/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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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켜야 할 몇 가지가 있지만, 그밖에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 스스로 생각합니다 … 마음에 드는 것을 모으고 뭘 만들지 생각하렴


“몇 가지의 약속”이 아니라 “몇 가지 약속”으로 적으니 반갑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면, ‘약속(約束)’도 ‘다짐’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재료(材料)’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것’으로 손볼 만합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107) 정하다定 13


부모가 정해 준 여자와 마지못해 사는 처지에서 볼 때,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엔도오 슈우사쿠/윤현 옮김-예수 지하철을 타다》(세광공사,1981) 6쪽


 부모가 정해 준 여자

→ 어버이가 고른 여자

→ 어버이가 알아본 여자

→ 어버이가 맞선을 보게 한 여자

→ 어버이가 선을 보인 여자

 …



  함께 살아갈 짝을 스스로 고를 수 있고, 누군가 골라서 맺어 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만나고 어울리면서 함께 걸어갈 테지요. 첫눈에 반하든, 마음에 깊이 닿든, 제 꿈에 걸맞다 싶은 사람이라고 느끼든, 고이 여기며 살아갈 때에 즐거우리라 봅니다. 4341.5.13.불/4348.1.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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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가 고른 여자와 마지못해 사는 내 삶을 볼 때,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부모(父母)’라는 낱말은 딱히 한자말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 낱말은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밝힐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우리가 5월 8일을 ‘부모날’이 아닌 ‘어버이날’이라고 하듯이, ‘어버이’라는 말 쓰임새를 더 넓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못해 사는 처지(處地)”는 “마지못해 사는 내 삶”이나 “마지못해 사는 내 모습”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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