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 5. 곁님과 옆지기



  곁에 있는 사람이기에 ‘곁사람’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기에 ‘옆사람’입니다. 어디로 가려고 자동차라든지 버스라든지 기차라든지 배를 탄다고 하면,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서서 가면 다리가 아플 테니 자리에 앉아요. 이때에 내 옆에 누군가 앉습니다. 아는 사람이 앉을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이 앉을 수 있어요. 아는 사람이 앉으면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모르는 사람이 앉으면 가만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옆에 앉는 사람이나 옆에 있는 사람이나 옆에 서는 사람은 그저 ‘옆사람’입니다. 더 반갑다거나 더 놀랍다거나 더 새롭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옆사람’이에요. 옆사람은 나한테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고, 나도 옆사람한테 아무것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둘은 그예 같은 자리에 나란히 있을 뿐입니다.


  문득 내 마음이 허전하거나 쓸쓸하거나 아픕니다. 문득 내 마음이 기쁘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느 마음이든 내가 이 마음을 나누고 싶기에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내 곁에서 따사로우면서 포근하고 넉넉하다가 너그러운 누군가를 그립니다. 이제, 내 곁에 ‘곁사람’을 맞아들입니다. 곁사람은 나한테 따사롭거나 포근하거나 넉넉하거나 너그러운 숨결입니다. 이런 사람을 한자말로 가리키자면 ‘친구’입니다. 오래된 한국말로 이런 사람을 가리키자면 ‘동무’입니다. 동무는 언제나 우리한테 ‘곁사람’입니다. 그래서, 동무 가운데에는 어깨동무·씨동무·놀이동무·글동무·노래동무·밥동무·술동무·책동무·꿈동무·배움동무 같은 사람이 있어요. 게다가 동무는 ‘길동무’가 되기도 합니다. 길동무는 어느 때에는 나한테 길잡이가 되는데, 나도 내 길동무한테 길잡이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 기대고 감싸고 아끼기에, 어깨를 겯는 어깨동무인 이 사람은 바로 곁사람입니다.


  수많은 곁사람 가운데 내 마음속에 있는 숨결, 그러니까 내 ‘님’과 같이 오래오래 두고두고 한결같이 아끼면서 섬기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사내와 가시내라는 굴레를 내려놓고서 함께 삶을 짓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 그리운 사람은 ‘곁님’입니다. 곁님과 나는 한마음이자 한몸입니다.


  ‘옆지기’는 누군가 하면, 내 옆을 둘러싸고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삶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먼발치에서 내 삶을 거드는 이웃이 있어요. 그래요, 이웃이 바로 옆지기입니다. 옆지기는 바로 이웃입니다. 오래된 한국말로 하자면 ‘이웃’이 언제나 옆지기입니다.


 곁님 = 짝꿍 = 동반자

 곁사람 = 동무 = 친구

 옆사람 = 인류 = 지구사람

 옆지기 = 이웃 = 마을사람


  내가 나를 볼 적에 내 둘레를 볼 수 있습니다. 내 둘레를 내가 보면서 나는 언제나 새롭습니다.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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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6] 술그릇



  어른 가운데 술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즐겁게 술을 마십니다. 왜냐하면, 즐기니까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억지로 몸에 술을 퍼넣습니다. 즐기지 못하면서 퍼넣는 사람은 몸을 망가뜨립니다. 아무래도 힘들거나 아프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일이 쌓여서 이 모든 앙금을 풀거나 털려고 몸을 들볶는 퍼넣기를 하지 싶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기에 밥그릇을 쓰고, 사람마다 먹을 수 있는 부피가 달라서, 제 밥그릇에 따라서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술을 즐기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술그릇을 써서 술을 마시거나 퍼넣습니다. 처음부터 틀을 세워서 어느 만큼만 마시려는 사람이 있고, 딱히 틀을 세우지 않고 때에 따라 적게 마시거나 많이 마시거나 알맞게 마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그릇과 술그릇처럼, 우리한테는 누구나 마음그릇이 있어, 생각을 지어서 펼치는 마음그릇을 다르게 키우거나 가꿉니다. 마음그릇 곁에는 사랑그릇이 있으니, 삶을 어떠한 사랑으로 꽃피우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사랑그릇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말그릇도 있을 테고, 꿈그릇도 있을 테지요. 노래그릇과 춤그릇도 있을 테지요. 4348.1.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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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5] 석 장



  종이 석 장을 받습니다. 나누어 주는 종이를 석 장 받습니다. 나는 “네, 석 장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내 옆에서는 “네, 세 장이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도 나는 “여기 석 장이요.” 하고 또 말합니다. 한 장을 보태면 “넉 장”이라고 말합니다. ‘석’과 ‘넉’으로 쓰지 못하는 사람한테 따로 ‘석’과 ‘넉’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궁금해서 물을 때까지 가만히 있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가끔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왜 ‘세’라고도 하고 ‘석’이라고도 해?” “응, 책은 세 권 있다 하고, 종이는 석 장 있다고 해. 사람은 네 사람 있다 하고, 능금은 넉 알 있다고 해. ‘세’를 쓰는 자리가 있고, ‘석’을 쓰는 자리가 있어.” 그러면 왜 ‘세’와 ‘석’을 쓰는 자리가 다를까요?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말을 달리 쓸까요? 아마, 말 한 마디마다 다 다른 숨결을 담아서 썼을 테지요. 4348.1.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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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801) 매일같이(매일처럼) 1


“어떤 경우에도 비굴하면 안 된다” 그 말을 매일같이 들을 무렵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규항-비급 좌파》(야간비행,2001) 67쪽


 그 말을 매일같이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날마다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늘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으레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수없이 들을 무렵엔

→ 그 말을 듣고 또 들을 무렵엔

 …



  한자말 ‘매일(每日)’은 한국말로 ‘날마다’나 ‘하루마다’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날마다’나 ‘하루마다’로 적으면 됩니다. ‘매일같이’라든지 ‘매일처럼’처럼 쓸 일이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됩니다. ‘날마다처럼’이나 ‘하루마다같이’와 같은 꼴로 말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백 년을 하루같이”라든지 “즈믄 해를 하루처럼”과 같은 꼴로 말을 할 뿐입니다.


  날마다 듣기에 ‘날마다’로 적습니다.날마다 듣지는 않고 자주 듣는다면 ‘자주’로 적습니다. 자주 듣되 거의 날마다 듣는다면 ‘거의 날마다’로 적습니다. 어떤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6.29.불/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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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에도 굽히면 안 된다” 그 말을 날마다 들을 무렵엔 그 말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었다


‘경우(境遇)’는 ‘때’나 ‘자리’로 손질하고, ‘비굴(卑屈)하면’은 ‘굽히면’이나 ‘굽실거리면’으로 손질합니다. ‘온전(穩全)히’는 ‘제대로’나 ‘오롯이’로 손보고, ‘이해(理解)할’은 ‘알아들을’이나 ‘알’이나 ‘알아차릴’이나 ‘헤아릴’로 손봅니다.



매일(每日)

1. 각각의 개별적인 나날

   - 황진이에 대한 집념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2. 하루하루마다

   - 그는 매일 밤잠을 설쳤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56) 매일같이(매일처럼) 2


새들이 먹이를 찾으면서 내는 소리와 밤새 안녕한지를 묻는 소리가 매일처럼 나를 맞이한다

《남효창-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청림출판,2004) 머리말


 매일처럼 나를 맞이한다

→ 날마다 나를 맞이한다

→ 언제나 나를 맞이한다

→ 늘 나를 맞이한다

 …



  ‘매일’이라는 낱말을 쓰고 싶다면 쓸 노릇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을 쓰면서 한국말은 힘을 잃습니다. 왜 힘을 잃느냐 하면, 때와 곳과 흐름에 따라 다 다르게 쓰던 수많은 말마디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입니다.


  ‘늘·노상·언제나’는 뜻과 느낌이 조금씩 다릅니다. ‘날마다·나날이’는 같은 뜻이지만 느낌을 살짝 달리하면서 쓸 수 있습니다. ‘한결같이·꾸준히·자꾸’ 같은 낱말을 얼마든지 쓸 만하지만, 이런 낱말도 쓰임새를 잃습니다.


  이 보기글을 실은 책에 붙은 이름은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입니다. 이처럼 글을 쓸 수도 있지만, 숲으로 일하러 가는 분이라면 으레 아침에 갈 테지요. 그러니, “나는 아침마다 숲으로 간다”라든지 “나는 아침에 숲으로 간다”처럼 쓸 만해요. 말넋을 한 번 더 헤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38.11.9.물/434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새들이 먹이를 찾으면서 내는 소리와 밤새 잘 잤는지를 묻는 소리가 날마다 나를 맞이한다


‘안녕(安寧)한지를’은 ‘잘 잤는지를’이나 ‘잘 있었는지를’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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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9) 분粉 1


항아리에 / 쌀이 담겨 있으면 / 쌀분이 배어 나오고 / 소금이 담겨 있으면 / 소금분이 배어 나와요 / 내 마음 항아리엔 / 어떤 분이 배어 나올까요

《최명란-수박씨》(창비,2008) 77쪽


 쌀분 → 쌀가루

 소금분 → 소금가루

 어떤 분이 → 어떤 가루가



  화장품을 가리키는 ‘분’이라면 그대로 써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굴에 바른다고 하는 화장품을 ‘분’이라 가리킨 까닭은 ‘가루’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한테는 그저 ‘가루’일 뿐인데, 화장품을 만든 사람과 이를 퍼뜨린 사람은 한국말 ‘가루’가 아닌 한자 ‘粉’을 빌어서 쓴 셈입니다.


 분을 바르다

→ 가루를 바르다

→ 화장가루를 바르다

→ 얼굴가루를 바르다


  화장품을 가리키는 가루라 한다면 ‘화장가루’처럼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화장가루는 얼굴에 바르니 ‘얼굴가루’처럼 적을 만합니다. 그냥 ‘가루’로 써도 됩니다. 얼굴에 무엇을 바를 적에 가루를 ‘가루’라 말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粉’이라는 외마디 한자말은 곳곳에 또아리를 틀리라 느낍니다.


  이 보기글은 동시입니다. 동시를 쓴 이가 ‘쌀분’이나 ‘소금분’처럼 글을 쓰는데, 이런 말마디를 어린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어른은 ‘고추분’이라는 말마디를 쓰기도 합니다. ‘쌀분·소금분’뿐 아니라 ‘고추분’도 아주 뜬금없는 낱말입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쌀가루·소금가루·고춧가루’이니까요.


  밀을 빻으면 ‘밀가루’이고, 콩을 빻으면 ‘콩가루’입니다. 누구나 알아듣도록 쓰지 않는다면 한국말이 아닌데, ‘밀분·콩분’처럼 쓰면, 이런 말을 알아들을 사람도 매우 드물 테지요. 4348.1.13.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항아리에 / 쌀이 담기면 / 쌀가루가 배어 나오고 / 소금이 담기면 / 소금가루가 배어 나와요 / 내 마음 항아리엔 / 어떤 가루가 배어 나올까요


“담겨 있으면”은 “담기면”으로 바로잡습니다. 이처럼 쓰는 현재진행형 꼴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분(粉)

1.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의 하나

   - 분을 바르다 /엷은 분 냄새가 풍겼다

2. = 가루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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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3 16:49   좋아요 0 | URL
들어 알지만 저는 번역체의 오류인 일본어체..랄까요..현재진행형을 옮겨놓은 그 행태가 썩 밉게 여겨지진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 가 닿으려는 ..몸부림이..우리말은 익고 설고 차이일수있지만 그 들에겐 도˝의 깨달음에 같았을 ..순간이잖아요..느끼고 스스로 알라..가 아닌 주먹으로 옆구릴 주지름에 다가오는 선!...마저도 옮기려 애쓰니까요.어여삐 여길 건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주제넘지만..^^

숲노래 2015-01-13 19:17   좋아요 0 | URL
그 말투를 쓰든 말든
쓰는 사람 자유이지만,
잘못된 말투는 잘못된 말투일 뿐입니다.

작가가 잘못된 말투를 쓰든
공무원이 잘못된 정책을 펼치든
모두 그 사람들 자유이기 때문에 무어라 할 수 없으나,
다만 한 가지,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장소] 2015-01-13 19:28   좋아요 0 | URL
틀리다.한것이 아니라는건 아시죠? 무조건 좋다..받아들이자..그러는 것도 아니고요.
오해는 마십시오.저도..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칠건 고쳐야한다는걸 압니다.
음..불쾌하게 하려 고 한 의도는 아니었는데..생각해보니..열심히 잘 해놓은 글에 제가 뭘..그런걸..하는걸로 보였을 수도 있었겠어요.아닙니다...
얼른 잘못했다고 말하고 길게 변명 말라는
..신호가..저..마음 바닥에서 올라옵니다.
예..^^ 한번만 너그럽게 넘어가주세요.
다음부턴 쓸데없는 말 안도록하겠습니다...
(정색하고 계실듯해..진땀흘리고 있는 중입니다) 화가 나신게 아니면 좋겠습니다. 부디..요!..

숲노래 2015-01-13 20:21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는 그저 수수하게 적은 댓글입니다 ^^

`잘못을 잘못이라 말한 뒤, 손질해서 쓰고 싶으면 손질하고, 손질하고 싶지 않으면 손질하지 마시되, 잘못이 잘못인 줄은 알기 바란다`고 늘 말하는데,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쓰겠노라 하면서 무엇이 `잘못`인 줄 헤아리지 않는 분이 아주 많아요.

빗대어 한 가지 이야기를 붙였습니다만, 말을 말답게 쓰지 못하면서, 정책을 정책답게 펴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늘 궁금하게 여겨요.

사람은 말만 깨끗하게 할 수 없고, 일만 옳게 할 수 없으며, 밥만 정갈하게 먹을 수 없습니다. 모두 똑같이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말투는 `익숙하게 굳은 버릇`이라면서 안 고치는 한국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논리가 된다면, 악법도 그냥 법이니까, 독재자가 나와서 잘못된 정책을 마구 펼쳐도 `악법도 법`이니 그대로 따라야 하는 셈이 되지요.

말 한 마디는 내 생각과 마음을 짓는 바탕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할 수 없기 마련이에요. 밥 한 그릇은 내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내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니, 아무 밥이나 마구 먹을 수 없기 마련입니다.

다 똑같은 흐름이고 얼거리인데, 한국에서는 `말` 이야기를 놓고는, 생각이 갇히거나 닫힌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뿐이지요 ^^;;;

생각을 열어, 말을 곱게 다스릴 사람은 곱게 다스리고, 생각을 안 열려고 하면, 그냥 생각을 안 열고 살아야지, 다른 수가 없는 노릇이에요.

2015-01-13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4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1-13 21:33   좋아요 0 | URL
웹으로 글을 써야겠다..싶어.잠시..비웁니다.!

[그장소] 2015-01-14 15:19   좋아요 0 | URL
중간에 오타를 지워야하나..이러고 있습니다.
어제는 저것이 안보였는데..말입니다.
뭐에 홀린것 같이 정신이 빠져있었지..그럽니다.
넋과 삶.살아있어야..넋이라도 있고 없고..할텐데..숨쉬고 있는데
이리 얼빠져있으니..큰일이구나..싶어지네요.
넋두리입니다.^^

숲노래 2015-01-14 19:31   좋아요 0 | URL
저도 곧잘 오탈자가 나오는데,
고칠 수 있으면 고쳐 놓으려 하지만,
오탈자란... 귀여운 티끌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저는 글을 읽을 적에 오탈자나 `잘못 쓴 말`은
그냥 다 지나쳐요.

글에 담은 이야기만 보려고 해요.
다만, 책을 읽다가 `너무 안 되겠구나 싶은 대목`은
꼭 눈에 들어와서 이런 대목만 손질하려고 하지요~

2015-01-14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