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7) 통하다通 83


해마다 바다에서 직접 잡는 해산물은 9500만 톤이나 되고, 양식을 통해 얻는 해산물도 4500만 톤이나 됩니다

《얀 리고/이충호 옮김-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 13쪽


 양식을 통해

→ 양식을 해서

→ 양식으로

→ 길러서

 …



  낚아서 물고기를 얻는다면 ‘낚아’서 얻습니다. “낚시를 통하”거나 “고기잡이를 통하”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길러서 얻는다면 ‘길러’서 얻습니다. “기르기를 통하”거나 “양식을 통하”지 않습니다. 한자말 ‘양식’을 그대로 쓰려 한다면 “양식을 해서”나 “양식으로”로 고쳐쓰고, 이 한자말을 굳이 안 써도 된다면 “길러서”로 고쳐씁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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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바다에서 낚거나 캐서 9500만 톤이나 얻고, 길러서 4500만 톤이나 얻습니다

고기와 조개와 바닷말을 해마다 바다에서 9500만 톤이나 낚거나 캐서 얻고, 4500만 톤이나 길러서 얻습니다


“직접(直接) 잡는”은 “바로 잡는”으로 손질해야 할 텐데, 고기를 낚는 일은 ‘잡다’가 아닌 ‘낚다’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해산물(海産物)’은 ‘바닷고기’나 ‘고기’나 ‘고기와 조개’나 ‘고기와 조개와 바닷말’로 손봅니다. ‘양식(養殖)’은 ‘기르는’ 일을 가리키니 “양식을 통해”는 “길러서”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0) 통하다通 84


할머닌 실수가 없는 분이야. 그런데도 모르셔. 우리끼리는 통하는데, 할머니는 아냐. 우리만큼은 아닌 것 같아

《황선미-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 204쪽


 우리끼리는 통하는데

→ 우리끼리는 되는데

→ 우리끼리는 이어지는데

→ 우리끼리는 아는데

 …



  끼리끼리 이어지는 사이가 있습니다. 끼리끼리 이어진다면, 서로 잘 안다고 할 만합니다. 이때에는 서로 어떤 일이나 말을 하든 잘 된다고도 할 만합니다. “마음이 맞다”나 “죽이 맞다”라고도 합니다. “한마음이 된다”거나 “같은 마음”이라고도 할 테지요. 이 보기글에서는 바로 앞에 ‘모르셔’라는 낱말을 썼으니, “우리끼리는 ‘아는데’”로 손보면 앞뒤가 잘 맞으리라 느낍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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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닌 빈틈이 없는 분이야. 그런데도 모르셔. 우리끼리는 아는데, 할머니는 아냐. 우리만큼은 아닌 듯해


‘실수(失手)’는 ‘잘못’으로 바로잡을 낱말인데, 이 자리에서는 “빈틈이 없는”이나 “허술하지 않은”으로 손봅니다. “아닌 것 같아”는 “아닌 듯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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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33 ‘바보’와 ‘멍청이’



  바보와 멍청이는 다릅니다. 둘이 같은 뜻이라면, 굳이 두 가지 낱말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둘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낱말로 씁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바보’를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바보’라는 낱말을 풀이하면서 ‘멍청하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리고, ‘멍청이’라는 낱말을 풀이하면서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해요. ‘바보’는 ‘어리석’으면서 ‘멍청하다’고 하는데, ‘멍청이’는 ‘어리석’으면서 ‘아둔하다’고 합니다. ‘아둔하다’는 “슬기롭지 못하고 머리가 둔하다”고 합니다. ‘둔(鈍)하다’는 다시 “깨우침이 늦고 재주가 무디다”나 “작이 느리고 굼뜨다”를 뜻한다고 해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익히거나 살피려고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어쩐지 바보스러워지거나 멍청해지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풀이는 돌림풀이에다가 서로 뒤죽박죽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부터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썼는지 마음으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로 한국말사전이 없던 때에, 국어학자도 없던 때에, 교육이나 학교나 학문도 없던 때에, 어떻게 ‘말’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물려주면서 오늘 이때까지 이을 수 있었는가를 돌아보고 헤아리며 생각해야 합니다.


  ‘바보’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멍청이’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생각이 흐르거나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보’는 생각이 흐린 사람이 아닙니다. ‘바보’는 조금 어리석거나 못날 수는 있어도 생각이 흐린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에 푹 빠져서 다른 일은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을 놓고도 ‘바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딸 바보”라고 하지요. “책만 보는 바보”라든지 “야구만 좋아하는 바보”라든지 “학문은 잘 하지만 집안일은 못 하는 바보”처럼 씁니다. 이런 자리에 ‘멍청이’라는 낱말을 넣어 보셔요. 도무지 안 어울립니다. “딸 바보”는 있어도 “딸 멍청이”는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바보’는 아직 제대로 모르는 사람일 뿐이기에, 앞으로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직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던 탓에 제대로 모를 뿐인 사람이 ‘바보’입니다. 이와 달리, ‘멍청이’는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못 알아채는 사람을 가리켜요. 둘레에서 아무리 가르치거나 알려주어도 못 알아듣고 못 알아내는 사람이 바로 ‘멍청이’입니다.


  ‘바보’는 스스로 애써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멍청이’는 생각과 머리가 흐리기 때문에 스스로 애써야 하는 줄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멍청이’는 넋이나 얼이 빠진 채 있기 마련입니다. 넋이 빠진 채 있으니, 옆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채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해요.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바보’는 “배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멍청이’는 “배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바보’한테는 아직 가르칠 만한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바보인 사람 스스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한데, 바보가 바보인 까닭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애쓰면 저도 바보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는 줄 모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바보입니다. 그래서, 바보 곁에는 바보를 일깨울 동무나 이웃이 있어야 해요. ‘멍청이’인 사람은 이웃이나 동무가 아무리 많아도 “스스로 마음을 닫아걸어서 제대로 못 보는 눈이 흐린 사람”인 탓에 배울 길도 가르칠 길도 막힙니다.


  내가 스스로 깨어난 사람이라면, 나는 슬기로우면서 철든 ‘어른’입니다. 내가 스스로 깨어나지 못했으면 바보이거나 멍청이일 텐데, 내가 바보라면, 나도 슬기를 깨치고 셈이 트며 철이 들어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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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21] 까만조개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수세미로 껍데기를 박박 문지릅니다. 뻘물이 거의 빠졌다 싶어 커다란 냄비에 넣어 펄펄 끓입니다.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끓이니 국물이 파르스름합니다. 어쩜 이런 국물 빛깔이 나올까 늘 놀라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밥상에 국물과 조개를 올리니 아이들이 묻습니다. “까만 조개야?” “응, 까만 조개야. ‘홍합’이라고도 해.” 아이들은 ‘홍합’이라는 말은 못 알아듣습니다. 낱낱으로 뜯어 ‘홍·합’이라 말하니 비로소 알아듣지만, 아이들 눈으로 볼 적에 껍데기가 까만 빛깔이니 ‘까만조개(또는 깜조개)’라는 이름을 써야 제대로 알아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조개를 두고 ‘조개’라 하기보다 ‘蛤’이라는 한자를 자꾸 쓰려 합니다. 커다란 조개라면 ‘큰조개’라 하면 될 텐데 굳이 ‘대합’이라 하고, 하얀 조개라면 ‘흰조개’라 하면 될 텐데 애써 ‘백합’이라 해요. 꽃과 같이 고운 무늬라 하면 ‘꽃조개’라 할 때에 쉬 알아들을 텐데 왜 ‘화합’이라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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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579) -ㅁ으로서/-ㅁ으로써 3


사람의 눈이 눈동자를 열고 닫음으로써 빛의 감도를 조절하는 것과 같이, 뱀의 피트기관도 감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백남극,심재한-뱀》(지성사,1999) 35쪽


 눈동자를 열고 닫음으로써

→ 눈동자를 열고 닫으면서

→ 눈동자를 여닫으며

 …



  ‘-ㅁ으로서’나 ‘-ㅁ으로써’를 잘못 쓰는 사람이 부쩍 늘어납니다. “사람으로서 하는 말”처럼 쓰고, “이 연장으로써 나무를 깎는다”처럼 쓸 뿐, 이 보기글처럼 움직씨를 넣으면서 앞말을 받거나 잇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 같은 말투는 번역 말투입니다. 외국말을 한국말로 잘못 옮기면서 나타나는 말투예요. 오늘날에는 번역 말투가 워넉 널리 퍼진 탓에, 이러한 말투가 마치 한국 말투라도 되는듯이 쓰이지만, 알맞게 살피고 바르게 가다듬어서 슬기롭게 한국말을 쓸 수 있기를 빕니다. 4339.7.6.나무/4348.3.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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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눈이 눈동자를 열고 닫으면서 빛을 맞추듯이, 뱀도 피트기관으로 빛을 맞출 수 있다


“사람의 눈”은 “사람 눈”으로 손보고, “빛의 감도(感度)를 조절(調節)하는 것과 같이”는 “빛을 맞추듯이”로 손봅니다. “뱀의 피트기관도”는 “뱀도 피트기관이”나 “뱀도 피트기관에서”로 손질하고, “감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可能)을 갖추고 있다”는 “빛을 맞출 수 있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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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18) -ㅁ으로서/-ㅁ으로써 4


부드러운 잎 속에 단단한 실 줄기를 함께 갖고 있음으로써 별꽃은 사람의 발에 밟히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이나가키 히데히로/최성현 옮김-풀들의 전략》(도솔오두막,2006) 23쪽


 줄기를 함께 갖고 있음으로써

→ 줄기를 함께 품기에

→ 줄기가 함께 있기에

→ 줄기가 함께 있어서

 …



  이 보기글 같은 번역 말투가 자꾸 퍼지는 까닭은, 한국사람이 영어를 아주 널리 배우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영어를 배우면서 영어 말투(서양 말투, 번역 말투)를 한국말에 끼워맞추다가 그만 이런 말투가 퍼져요. 왜냐하면, 영어 글월을 하나 놓고, 이 글월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저절로 ‘번역 말투’가 나타나고, 이를 제대로 손질하거나 다듬지 않으니, ‘번역한 말을 제대로 손질한 한국말’을 배우지 못하고 맙니다. 영어에서 쓰는 말투대로 한국말을 잘못 쓴다고 할까요. 4339.9.15.쇠/4348.3.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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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잎에 단단한 실 줄기가 함께 있기에 별꽃은 사람한테 밟히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다


“잎 속에”는 “잎에”로 다듬고, “사람의 발에 밟히면서도”는 “사람 발에 밟히면서도”나 “사람한테 밟히면서도”로 다듬으며,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는 “살아날 수 있다”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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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6) -ㅁ으로서/-ㅁ으로써 5


이러한 사상운동에 대항하여 체제의 지배자 측도 교육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국민대중의 의식과 태도를 자기의 체제에 붙들어 놓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야나기 히사오/임상희 옮김-교육사상사》(백산서당,1985) 19쪽


 교육통제를 강화함으로써

→ 교육통제를 단단히 하면서

→ 교육을 더 단단히 통제하면서

 …



  보기글에서는 “교육통제를 강화하면서”로 다듬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쓸 수 있다면 ‘강화(强化)’라는 한자말도 다듬어서 “교육통제를 단단히 하면서”로 쓸 수 있어요. 4340.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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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상운동에 맞서서 체제 지배자 쪽도 교육을 더 단단히 통제하면서 사람들 생각과 몸짓을 저희 틀에 붙들어 놓으려고 온힘을 다한다


‘대항(對抗)하여’는 ‘맞서’로 다듬고, “체제의 지배자 측(側)”은 “체제 지배자 쪽은”으로 다듬으며, “교육통제를 강화(强化)함으로써”는 “교육을 더 단단히 통제하면서”로 다듬습니다. “국민(國民)대중(大衆)의 의식(意識)과 태도(態度)를”은 “사람들 생각과 몸짓을”로 손보고, “자기(自己)의 체제(體制)”는 “저희 틀”로 손보며, “전력(全力)을 다한다”는 “온힘을 다한다”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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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32 ‘배우다’와 ‘가르치다’



  받아들여서 몸에 붙도록 할 때에 ‘배운다’고 합니다. 내가 아닌 남이 알도록 이끌 때에 ‘가르친다’고 합니다. ‘알도록 하’는 일만 놓고 ‘배우다’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면서 “몸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삭여서 내 것으로 삼는다”고 할 적에 비로소 ‘배우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가르치다’라는 낱말도 이와 같아요. 사회나 학교에서는, 남이 무엇을 알도록 이끌 때에 으레 ‘가르치다’라 하지만, 내 둘레에 있는 남들이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마음으로 삭여 이녁 것으로 삼”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가르치다’입니다. 내가 너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네가 이 이야기를 찬찬히 받아들여서 마음으로 삭여 네 것으로 삼으면, 나는 너를 가르쳤다고 할 만하지만, 네가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삭이지도 않아서 네 것으로 안 삼거나 못 삼으면, 이때에는 가르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때에는 그저 ‘말했다’고만 합니다.


  학교에서는 어른이 ‘가르치’고 아이가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가르치다·배우다’라는 낱말을 섣불리 쓸 수 없습니다. 교사 자리에 서는 어른은 그저 ‘말하’기만 합니다. 교사로서는 언제나 ‘말’을 들려줄 뿐입니다. 학생 자리에 서는 아이가 이 ‘말’을 귀여겨들으면서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다음에 스스로 삭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가르치다·배우다’가 이루어집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배우려는 사람이 있을 때에 비로소 가르칩니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으면, 더 많이 알건 모두 알건 아무도 못 가르칩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가르칠’ 사람을 부릅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배우려는 사람한테 걸맞’다 싶은 사람을 불러서 ‘가르쳐’ 줄 수 있도록 이끕니다. 배움과 가르침은 모두 ‘배우는 쪽’에서 일으키는 몸짓이요 삶입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처음에는 그저 ‘말’을 할 뿐이지만, 배우려는 사람이 기쁘게 받아들여서 삭이는 얼거리가 되면, 아하 그렇구나 ‘가르침’이란 이렇구나 하고 ‘배웁’니다. 다시 말하자면, 배우려는 사람은 ‘가르침’을 끌어내고, 가르치려는 사람은 ‘배움’을 끌어당깁니다. 배우는 사람은 늘 가르칠 수 있으며, 가르치는 사람은 늘 배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슬기롭거나 철이 든 교사(어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많이 배우’거나 ‘가르치는 동안 언제나 새롭게 배운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를 더 살펴야 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을 주고받는 일은 가르침이나 배움이 아닙니다. 삶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사랑이 바로 가르침이요 배움입니다. 지식은 퍼뜨릴 수 없습니다. 지식은 물려줄 수 없습니다. 오직 삶만 퍼뜨리고, 삶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 어떤 씨앗을 심고, 씨앗이 어느 만큼 자랄 적에 갈무리를 하느냐 하는 대목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은 ‘삶짓기’를 물려주고 물려받는 일입니다. 이는 지식이 아니고 철학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르침과 배움은 어떤 슬기를 물려주거나 물려받는 사람이 스스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이야기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몇째 서랍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일은 ‘알리다’쯤 됩니다. 저녁에 텔레비전에서 어떤 방송이 흐른다고 말하는 일도 ‘알리다’쯤 됩니다. 신문에 나오는 사건이나 사고 같은 이야기도 그저 ‘알리다’일 뿐입니다. 내가 읽은 책에서 재미난 대목을 말할 때에도 그냥 ‘알리다’입니다.


  가르치거나 배울 적에는 ‘말’을 빌기도 하지만, 아무 말이 없이 몸으로 가르치거나 배우기 일쑤요, 으레 마음으로 가르치거나 배웁니다. 사랑으로 가르치거나 배우기도 하고, 믿음으로 가르치거나 배우기도 합니다. 삶을 물려주거나 물려받기에 가르침이면서 배움입니다. 삶을 다룰 때에 비로소 가르침이요 배움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거의 모든 학교교육과 인문지식은 가르침이나 배움하고 크게 동떨어지거나 아예 끈조차 안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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