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104) 밑의 1


밑의 수레바퀴에 묶어 둔 밧줄을 내 지팡이에 매어 두었소

《마인다트 디영/김수연 옮김-황새와 여섯 아이》(동서문화사,1990) 200쪽


 밑의 수레바퀴에

→ 밑에 있는 수레바퀴에

→ 밑에 깔린 수레바퀴에

→ 밑에 놓인 수레바퀴에

→ 밑쪽 수레바퀴에

 …



  밧줄을 ‘묶’고, 지팡이에 ‘매어’ 두었다고 적는 보기글입니다. 지난날 어린이책에서는 ‘묶’는 일과 ‘매’는 일을 잘 가려서 적었습니다. 요즈음은 두 낱말을 제대로 가리는 분이 자꾸 줄어듭니다. 신발끈을 매고 목끈을 맵니다. 두 손을 오랏줄로 묶고 짐을 묶습니다. 염소를 묶어 놓으면 풀을 뜯어먹을 수 없고, 염소를 매어 놓아야 풀을 뜯어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밑의 수레바퀴”는 아쉽군요. ‘밑의 (무엇)’처럼 적으면, 수레바퀴가 ‘밑에서 어떻게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 어렵거든요. 밑에 있는지, 밑에 깔렸는지, 밑에 놓였는지 모릅니다. 밑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았는지, 밑에 여럿 있는지, 밑에서 구르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러니 “밑 + -의” 꼴이 아니라, 뜻과 느낌이 제대로 드러나도록 써야 합니다. 그냥 “밑쪽 수레바퀴”처럼 적으면서 “수레바퀴에서 밑이 되는 자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4340.10.5.쇠/4348.4.16.나무.ㅎㄲㅅㄱ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7) 밑의 2


위의 눈은 / 추울 거야 /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 밑의 눈은 / 무거울 거야 / 몇백 명이나 지고 있으니

《가네코 미스즈/서승주 옮김-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소화,2006) 28쪽


 밑의 눈은

→ 밑 눈은

→ 밑쪽 눈은

→ 밑에 깔린 눈은

→ 밑에 있는 눈은

 …



  눈이 내립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입니다. 밑쪽에 있는 눈은 ‘깔리는’ 눈입니다. 위쪽에 있는 눈은 ‘덮이는’ 눈이에요. 한쪽은 깔리고 한쪽은 덮입니다. 또는, 위나 밑을 모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밑에 있는 눈”과 “위에 있는 눈”으로 하면 돼요. 그리고 “밑쪽 눈”와 “위쪽 눈”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위에 덮인 눈은 / 추워 / 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 밑에 깔린 눈은 / 무거워 / 몇백이나 등에 지니까


“위의 눈”은 “윗눈”이나 “위에 있는 눈”이나 “위에 덮인 눈”으로 다듬습니다. “추울 거야”는 “추울 테야”나 “추워”나 “춥겠지”로 손보고, “무거울 거야”는 “무거울 테야”나 “무거워”나 “무겁겠지”로 손봅니다. “지고 있으니”는 “지니”나 “등에 지니까”로 손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27) -의 : 프랑스의 마을, 할머니의 아들


옛날에,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할머니 아들은 아프리카에서 … 할머니의 아들이 생일 선물로 뱀을 보냈지 뭐야

《토미 웅거러/장미란 옮김-크릭터》(시공주니어,1996) 3, 5, 7쪽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프랑스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프랑스에서 어느 조그만 마을에

→ 프랑스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

→ 어느 조그만 프랑스 마을에

 …



  이 보기글에서는 ‘-의’만 덜어도 됩니다. 또는 ‘-에서’를 붙입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니까, “옛날에, 프랑스에서, 어느 조그만 마을에”처럼 글머리를 열면 되지요. 또는 “옛날에, 프랑스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처럼 글머리를 엽니다.


 할머니 아들 (o)

 할머니의 아들 (x)


  이 보기글을 보면 “할머니 아들”이라고 적은 대목이 있어요. 이 대목에서는 ‘-의’를 안 붙여요. 이러다가 다시 “할머니의 아들”처럼 적습니다. ‘-의’ 없이 “할머니 아들”이라 적으면 되는 줄 알면서, 다른 자리에서는 그만 ‘-의’를 붙이고 말아요.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 자리에도 ‘-의’가 없이 알맞게 잘 쓸 수 있습니다. 4348.4.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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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5) 너의 9


너의 삼촌 되는 어른도 그렇거든.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닌 너를

《현덕-광명을 찾아서》(창비,2013) 39쪽


 너의 삼촌 되는 어른

→ 네 작은아버지 되는 어른

→ 너한테 작은아버지 되는 어른

→ 네게 작은아버지 되는 어른

 …



  한국말은 ‘네’이니 ‘네’로 적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한국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너의’로 적으니 얄궂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너 한테’로 적을 수도 있고, ‘네게’로 적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적든 ‘너’라는 낱말에는 ‘-의’가 붙을 수 없습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네 작은아버지 되는 어른도 그렇거든. 그분이 낳은 아이도 아닌 너를


‘삼촌(三寸)’은 ‘작은아버지’나 ‘큰아버지’로 손보고, ‘자기(自己)가’는 ‘그분이’로 손보며, ‘자식(子息)’은 ‘아이’로 손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25) 위의 8


채반에 깔린 색색의 은행들을 만질 수 없는 게 나는 안타까웠다. 무명천 위의 노랑, 초록, 보라, 연분홍색 은행들

《황선미-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사계절,2010) 9쪽


 무명천 위의

→ 무명천에 놓은

→ 무명천에 놓인

→ 무명천에 둔

→ 무명천에 올린

 …



  무명천을 바닥에 깔고 은행알을 올립니다. 그러니 “무명천에 올린” 은행알입니다. 무명천에 은행알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명천에 놓은” 은행알입니다. ‘위 + 의’처럼 쓰지 않습니다. 무명천에 ‘어떻게’ 은행알이 있는가를 헤아리면서 알맞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채반에 깔린 알록달록 은행알을 만질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무명천에 노랑, 풀빛, 보라, 옅붉은빛 은행알


‘나는’은 글월 사이에 끼워넣지 못합니다. 글월 맨 앞으로 옮깁니다. “색색(色色)의 은행들”은 “알록달록 은행알”로 손질합니다. 은행 열매를 말하는 보기글이니 ‘은행 열매’라 하든 ‘은행알’이라 해야 올바릅니다. 밤 열매를 말할 적에는 ‘밤알’이라 하지 ‘밤들’이라 하지 않습니다. “만질 수 없는 게”는 “만질 수 없어서”로 다듬고, ‘초록(草綠)’은 ‘풀빛’으로 다듬으며, ‘연분홍색(軟粉紅色)’은 ‘옅붉은빛’이나 ‘옅은분홍’으로 다듬어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23) 전의 9


그 놓는 방법이 아까 전의 이야기입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최성현 옮김-나무에게 배운다》(상추쌈,2013) 75쪽


 아까 전의 이야기

→ 아까 이야기

→ 아까 그 이야기

→ 아까 한 이야기

→ 아까 했던 이야기

→ 아까 말한 이야기

 …



  “아까 전의 이야기”라고 하는 말투는 관용구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 말투를 흔히 씁니다. 새로 나타난 말투일 텐데, 이 말투가 익숙한 사람들은 이 말투를 그대로 쓰려 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예부터 “아까 이야기”라든지 “아까 그 이야기”라든지 “아까 말한 이야기”라든지 “아까 한 이야기”처럼 말했습니다. 한자말 ‘전(前)’을 그대로 두려 한다면 “아까 전 이야기”처럼 쓰면 됩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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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387) 심층적 1


우리는 각 주제들을 더욱 심층적으로 다룬 책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것이다

《제임스 브루지스/정지인 옮김-지구를 살리는 50가지 이야기 주머니》(미토,2004) 12쪽


 더욱 심층적으로 다룬 책

→ 더욱 깊이 다룬 책

→ 더욱 깊숙하게 다룬 책

→ 더욱 꼼꼼하게 다룬 책

→ 더욱 낱낱이 다룬 책

→ 더욱 차근차근 다룬 책

 …



  한국말사전에는 ‘심층적’이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낱말을 쓰는 분이 꽤 많습니다. 한자말 ‘심층’은 ‘깊은 곳’이나 ‘깊숙한 곳’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깊은 곳’이나 ‘깊숙한 곳’처럼 쓰면 됩니다.


 바다의 심층 → 바다 밑바닥 / 바다에서 깊은 곳

 심층 취재 → 깊은 취재 / 밑바닥 취재

 내 마음의 심층 → 내 마음 깊은 곳


  “바다의 심층”이라면 “바다 밑바닥”이 되겠지요. ‘바닷바닥’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을 수도 있어요. 땅에서는 ‘땅바닥’이니까요. 게다가 ‘심층’ 같은 한자말을 섣불리 쓰기 때문에 “심층은 수심의 깊이에 따라” 같은 엉성한 말까지 나타납니다. ‘수심(水深)’은 “물깊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수심의 깊이”는 “물깊이의 깊이”인 꼴이고, “심층은 수심의 깊이에 따라”는 “깊은 층은 물깊이의 깊이에 따라”인 꼴이에요. 도무지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심층은 수심의 깊이에 따라 수온이 차차 낮아진다

→ 바닷바닥은 물깊이에 따라 온도가 차츰 낮아진다

→ 밑자리는 물깊이에 따라 온도가 차츰 낮아진다


  한 마디씩 꼼꼼하게 살피지 않으면 말을 엉터리로 쓸 수 있습니다. 한자말을 쓰느냐 마느냐라든지 ‘-적’을 쓰느냐 마느냐 같은 이야기를 넘어서, 말을 말답게 쓰느냐 마느냐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4338.12.20.불/4348.4.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더욱 깊이 다룬 책을 여러분한테 알려주려 한다


“각(各) 주제(主題)들”은 “주제마다”나 “이야기마다”나 “모든 이야기”로 손봅니다. “여러분에게 소개(紹介)할 것이다”는 “여러분한테 알려주려 한다”나 “여러분한테 이야기하겠다”나 “여러분한테 밝히려 한다”로 손질합니다.



심층적 : x

심층(深層)

1. 사물의 속이나 밑에 있는 깊은 층

   - 바다의 심층 / 심층은 수심의 깊이에 따라 수온이 차차 낮아진다

2.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물이나 사건의 내부 깊숙한 곳

   - 심층 취재 / 심층 보도 프로그램 / 내 마음의 심층에 있었던 것 같아

..



 '-적' 없애야 말 된다

 (916) 심층적 2


게다가 박수근의 미망인마저 세상을 뜬 후여서 화가를 심층적으로 파 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용숙-박수근》(열화당,1979) 3쪽


 심층적으로 파 보려는 

→ 깊이 파 보려는

→ 깊은 곳까지 파 보려는

→ 속속들이 파 보려는

→ 남김없이 파 보려는

→ 차분히 파 보려는

 …



  언론에서는 ‘심층 취재’를 한다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심층적 취재’라고는 쓰지 않지만, ‘심층’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보면, ‘깊은’을 뜻하는 만큼, ‘깊은 취재’나 ‘깊이 있는 취재’나 ‘깊이 파고든 취재’쯤으로 다듬어 쓸 수 있어요.


  “심층적으로 파 보려는”과 비슷한 말투로 “심도(深度) 있게 파 보려는”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심도’도 ‘심층·심층적’과 마찬가지로 ‘깊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한국말 ‘깊음(깊다·깊은)’을 잘 살려서 쓰면 넉넉합니다.


  깊이 판다고 할 적에는 속속들이 판다고 할 수 있고, 남김없이 파거나 모두 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숨김없이 파거나 낱낱이 판다고도 할 수 있어요. 4340.6.27.물/4348.4.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게다가 박수근한테는 곁님마저 이승을 뜬 뒤여서 이녁을 깊이 파 보려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미망인(未亡人)’은 ‘홀어미’로 다듬을 낱말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박수근의 미망인마저”를 “박수근한테는 곁님마저”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세상(世上)을 뜬 후(後)여서”는 “이승을 뜬 뒤여서”로 손보고, “파 보려는 노력(努力)을”은 “파 보려는 일을”로 손보며, ‘포기(抛棄)하지’는 ‘그만두지’나 ‘그치지’나 ‘멈추지’로 손봅니다.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않을 수 없었다”로 손질합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705) 심층적 3


직접 피해자인 농민들 이야기나 국민들이 쌀 개방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김덕종·손석춘-식량 주권 빼앗겨도 좋은가?》(철수와영희,2014) 20쪽


 심층적으로 파고들지

→ 깊이 파고들지

→ 깊숙히 파고들지

→ 파고들지

→ 깊이 살피지

→ 깊숙히 살펴보지

 …



  ‘파고들다’라는 낱말은 “깊숙이 들어가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깊은 층’을 가리키는 한자말 ‘심층’을 넣어서 “심층적으로 파고들지”처럼 쓰면 “깊이 깊이 들어가다” 꼴이 됩니다.


  말뜻이 겹치더라도 일부러 “깊이 파고들지”처럼 쓸 수 있으나, “파고들지”라고만 적어도 넉넉합니다. 그리고, ‘깊이’나 ‘깊숙히’ 같은 낱말을 넣으려 하면 “깊이 살피지”나 “깊숙히 살펴보지”처럼 쓰면 돼요. 4348.4.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곧바로 피해를 보는 시골사람 이야기나, 사람들이 쌀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깊이 살펴보지 않습니다


‘직접(直接)’은 ‘곧바로’나 ‘바로’로 손봅니다. ‘농민(農民)’이나 ‘국민(國民)’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농사꾼’이나 ‘사람’으로 손볼 수 있고, ‘농민’은 ‘시골사람’이나 ‘흙지기’나 ‘시골지기’로 손보아도 됩니다. “쌀 개방과 관련(關聯)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쌀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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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9 콩씨와 팥씨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주고받는 말 가운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있습니다. 이 말은 아주 옳습니다. 그야말로 옳습니다. 대단히 옳고 바르면서 멋진 말입니다. 콩을 심으니 콩이 납니다. 팥을 심기에 팥이 나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마음에 심으면 사랑이 자랍니다. 꿈을 마음에 심으면 꿈이 자라요. 더할 나위 없이 올바른 말입니다.


  내 마음에 미움을 심으면 무엇이 자랄까요? 미움이 자라지요. 내 마음에 시샘을 심으면 무엇이 자라나요? 시샘이 자라지요. 내 마음에 기쁨이나 웃음을 심으면 기쁨이나 웃음이 자라고, 기쁨이랑 웃음을 함께 심으면 ‘기쁜 웃음’이나 ‘웃는 기쁨’이 자랍니다.


  나무를 심기에 나무가 자랄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살피고 아끼기에, 나무는 우리한테 사랑스럽고 맛난 열매를 고맙게 베풉니다. 씨앗 한 톨을 흙땅에 정갈한 손길로 기쁜 꿈을 품으면서 심으니, 씨앗 한 톨은 흙 품에 안겨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한편, 한겨레 옛말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콩을 심은 데에 팥이 나거나, 팥을 심은 데에 콩이 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요? 심기는 콩을 심었는데 왜 팥이 나지요? 콩을 심으면서 콩이 아닌 팥을 생각하니까 팥이 납니다. 팥을 심으면서 팥이 아닌 콩을 생각하니 콩이 납니다. 이 또한 아주 옳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진다.”고도 이야기합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면서 ‘씨앗 한 톨’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콩씨를 심어도 콩알이 안 맺을 수 있습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면서 ‘열매가 잔뜩 열리면 돈을 많이 벌어야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때에도 열매가 제대로 안 맺을 수 있습니다. 첫발(첫걸음)을 내디디는 우리는 새발(새걸음)을 내딛으려고 해야 합니다. 첫발을 내딛으면서 끝(열매)을 지레 생각하니까, 첫발부터 어긋나고 맙니다.


  다시 말하자면, 콩씨를 심으면서 팥을 생각한 사람은 처음부터 ‘콩을 심지’ 않고 ‘팥을 심는구나’ 하고 여길 만합니다. 씨앗을 심으면서 ‘씨앗’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른 것’을 심은 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우리가 손수 심은’ 대로 거둡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처럼, 생각을 마음자리에 심거나 뿌린 대로 삶이 나타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씨가 삶이 됩니다. 말은 언제나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과 같은 말을 함부로 뇌까린다면, 나는 내 삶을 스스로 함부로 망가뜨리려는 셈입니다. 언제나 씨앗과 같은 말이니, 말을 정갈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슬기로운 생각으로 마음자리에 둘 수 있으면, 이 말은 마음자리에서 사랑스레 깨어납니다.


  어떤 씨앗을 심을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씨앗을 바라보면서 내 손에 쥐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선 땅에 어떤 씨앗을 쥐고 어떤 몸짓으로 어떤 삶을 지으려 하는가를 또렷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손에 쥔 씨앗을 제대로 바라볼 때에 내 길을 제대로 걷습니다. 내 손에 쥔 씨앗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 길은 그예 어긋나기만 합니다. 4348.3.3.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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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4) 충성

보도 할머니는 입이 틀어막힌 채 의자에 꽁꽁 묶이고 말았어. 그때에 충성스러운 크릭터가 잠에서 깨어나 사납게 도둑에게 달려들었어
《토미 웅거러/장미란 옮김-크릭터》(시공주니어,1996) 28쪽

 충성스러운 크릭터가
→ 믿음직한 크릭터가
→ 씩씩한 크릭터가
→ 다부진 크릭터가
 …


  군대에서 으레 ‘충성’ 같은 한자말을 씁니다. 군대에서는 한손을 눈썹과 이마 사이에 척 붙이면서 인사할 적에도 ‘충성’이라는 말을 외치도록 시킵니다. 한자말 ‘충성(忠誠)’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뜻한다고 합니다. ‘진정(眞情)’은 “참되고 애틋한 정이나 마음”을 가리키고, ‘정성(精誠)’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성실(誠實)’은 “정성스럽고 참됨”을 가리킨다고 해요. 그러니까, ‘정성 = 참됨 + 성실’이요, ‘성실 = 정성 + 참됨’인 셈입니다. 한국말사전 뜻풀이가 오락가락 겹말입니다. 아무튼, 한국말사전 뜻풀이를 살피면, ‘진정·정성·성실’은 모두 “참된 마음”이나 “참됨·참다움”을 가리키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충성을 다하다 → 온힘을 다하다
 충성을 맹세하다 → 마음을 바치겠노라 다짐하다
 충성된 하인 → 믿음직한 일꾼
 나라에 충성하다 → 나라에 몸바치다
 나라에 대한 충성 → 나라에 몸바치기

  한국말사전에서 ‘충성’이라는 한자말을 더 살펴보면,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을 이른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충성’이라는 한자말은 군인이나 신하한테 쓰는 낱말인 셈이고, 몸이나 마음을 바쳐서 따르라고 하면서 쓰는 낱말입니다.

  ‘충성’이라는 한자말은 말뜻처럼 ‘참됨·참다움’과는 동떨어진 자리에 씁니다. “온힘을 다하다”라든지 “마음을 바치다”라든지 “몸을 바치다”라 할 만한 자리에 씁니다. 때로는 “믿음직한 아무개”를 가리키는 자리에서 써요. 이러한 얼거리를 슬기롭게 헤아려서 한국말을 알맞게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보도 할머니는 입이 틀어막힌 채 걸상에 꽁꽁 묶이고 말았어. 그때에 믿음직한 크릭터가 잠에서 깨어나 사납게 도둑한테 달려들었어

‘의자(椅子)’는 ‘걸상’으로 다듬습니다.


충성(忠誠) :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특히,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을 이른다
   - 충성을 다하다 / 충성을 맹세하다 / 충성된 하인 / 나라에 충성하다 /
     신하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 나라에 대한 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80) 대답

에밀리가 물었어요. “너 뭐하는 거니? 그거 주떼니?” 타냐가 대답했어요. “아니, 이건 타조야.”
《페트리샤 리 고흐/김경미 옮김-흉내쟁이 꼬마 발레리나》(현암사,2003) 14∼15쪽

 타냐가 대답했어요
→ 타냐가 대꾸했어요
→ 타냐가 얘기했어요
→ 타냐가 말했어요
 …


  한국말에 ‘대꾸’와 ‘말대꾸’가 있습니다. ‘대꾸·말대꾸’는 같은 뜻이며, 두 낱말은 “제 뜻을 나타내는 일이나 말”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무엇을 물을 적에 제 뜻을 나타낸다고 하면 ‘대꾸한다’고 하지요.

  이 보기글에서도 ‘대꾸했어요’로 손보면 되고, ‘얘기했어요’나 ‘말했어요’로 손볼 수 있습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 불러도 대꾸가 없다
 대답을 잘하는 아이 → 대꾸를 잘하는 아이
 아무 대답이 없다 → 아무 말이 없다

  ‘대꾸·말대꾸’는 한국말이고, ‘대답(對答)’은 한자말입니다. 두 낱말은 뜻이나 쓰임새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쓰느냐 하는 갈래가 다를 뿐입니다. 다만, 요즈음은 ‘대꾸’나 ‘말대꾸’라는 낱말은 쓰임새를 잃고, ‘대답’이라는 한자말만 널리 퍼집니다. ‘대꾸·말대꾸’는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이 하는 말을 버릇없이 받아친다고 여기는 자리에서만 쓰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하다’와 ‘이야기하다(얘기하다)’라는 한국말을 쓰면 되는데, 막상 ‘말하다·이야기하다’를 알맞게 쓰는 사람도 늘어나지 못합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 못하는
→ 묻는 말에 대꾸도 잘 못하는
 그의 침묵을 긍정의 대답으로 여겼다
→ 그가 말이 없어 받아들인다고 여겼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는지
→ 묻는 말에 궁금함을 풀었는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음을
→ 이 일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없음을

  한국말사전을 보면 “그의 침묵을 긍정의 대답으로 여겼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한국말을 옳게 쓰지 못하다 보니 이런 말투까지 쓰고 맙니다. “그의 침묵”이나 “긍정의 대답”은 어떤 말일까요? 이러한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긍정의 대답”처럼 “부정의 대답”이라 쓸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말마디는 “받아들이다”와 “안 받아들이다”로 고쳐쓸 수 있고, “고개를 끄덕이다”와 “고개를 젓다”로 고쳐쓸 만해요.

  “문제에 대한 대답”에서 ‘-에 對한’은 번역 말투입니다. 이러한 말투는 한국말이 어떻게 얽히는가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퍼집니다. 자, 문제는 어떻게 할까요? 풀겠지요. 문제는 풉니다. 그러니, “문제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대답”으로 바로잡아야 하고, 문제를 푼다고 할 적에는 수수께끼를 풀듯이 ‘실마리’를 찾아서 풉니다. 곧,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한국말로 옳게 고쳐쓰자면 “문제를 푸는 실마리”이고, “문제를 푸는 실타래”라 해도 됩니다. 4348.4.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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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가 물었어요. “너 뭐하니? 그거 주떼니?” 타냐가 말했어요. “아니, 이건 타조야.”

“뭐하는 거니”는 “뭐하니”로 다듬습니다.


대답(對答)
1. 부르는 말에 응하여 어떤 말을 함
  - 불러도 대답이 없다 / 부르면 대답을 잘하는 아이가 귀엽다 /
    집에 누가 있느냐고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2. 상대가 묻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해답이나 제 뜻을 말함
  - 묻는 말에 대답도 잘 못하는 어수룩한 사람 /
    나는 그의 침묵을 긍정의 대답으로 여겼다 /
    이 정도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3. 어떤 문제나 현상을 해명하거나 해결하는 방안
  - 어떠한 제안도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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