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93) 존재 193 : 우려가 존재


저널리즘 콘텐츠를 정부가 통제하는 상황에 대해 당연히 우려가 존재한다

《로버트 맥체스니/전규찬 옮김-디지털 디스커넥트》(삼천리,2014) 356쪽


 우려가 존재한다

→ 걱정스럽다

→ 근심스럽다

→ 걱정이 된다

→ 근심이 된다

→ 걱정거리이다

→ 근심거리이다

 …



  ‘우려’라고 하는 한자말은 한국사람이 쓸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말은 ‘근심’이나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한자말로 바꾸거나 영어로 고쳐서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을 ‘근심’이나 ‘걱정’으로 바로잡아도, 이 보기글은 “걱정이 존재한다”나 “근심이 존재한다” 꼴이 됩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걱정이 있다”나 “근심이 있다”처럼 손질해야 할 테지요. 그러나 이렇게 손질해도 좀 어설픕니다. 그래서 “걱정스럽다”나 “근심스럽다”로 다시 손질하고, “걱정거리이다”나 “근심거리이다”처럼 적어 보기도 합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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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정보를 정부가 다스리려는 흐름은 마땅히 근심스럽다


“저널리즘(journalism) 콘텐츠(contents)”는 “언론 정보”로 다듬고, ‘통제(統制)하려는’은 ‘다스리려는’이나 ‘주무르려는’이나 ‘억누르려는’으로 다듬습니다. “상황(狀況)에 대(對)해”는 “흐름은”이나 “모습은”으로 손보고, ‘당연(當然)히’는 ‘마땅히’로 손보며, ‘우려(憂慮)’는 ‘근심’이나 ‘걱정’으로 손봅니다.


..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94) 존재 194 : 내 존재


에베레스트 안에 내 존재를 묻어두고 싶었다 …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시간을 쓰고 내 존재를 이끌어 가고 있는지 계속 질문이 이어졌다

《신지아-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 73, 221쪽


 내 존재를

→ 내 숨결을

→ 내 넋을

 내 존재를

→ 내 목숨을

→ 내 삶을

 …



  에베레스트라는 봉우리에 가서 가슴이 벅차면서 새로운 기운을 느꼈기에 그곳에 “내 목숨”이나 “내 몸”을 묻고 싶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몸을 묻지 못한다면 “내 마음”이나 “내 넋”을 묻고 싶을 수 있어요.


  내가 스스로 나를 돌아보면서 “내 목숨”을 돌아봅니다. “내 숨결”을 돌아보고, “내 삶”을 돌아보지요.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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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 내 숨결을 묻어두고 싶었다 … 나는 무엇에 내 하루를 쓰고 내 삶을 이끌어 가는지 끝없이 묻고 또 물었다


“에베레스트 안에”는 “에베레스트에”로 다듬습니다. “무엇을 위(爲)해”는 “무엇 때문에”나 “무엇을 바라며”나 “무엇에”로 손질하고, “내 시간(時間)”은 “내 하루”로 손질하며, “이끌어 가고 있는지”는 “이끌어 가는지”로 손질합니다. ‘계속(繼續)’은 ‘자꾸’나 ‘끝없이’나 ‘잇달아’로 손봅니다. “질문(質問)이 이어졌다”는 앞에 나오는 ‘계속’과 겹말이 되니까, “물었다”로 손보거나 “묻고 또 물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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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80) 그리고 1


나 또한 직장인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인 평범한 사람으로

《사카시타 사카에/연주미 옮김-얘야 생태가 웰빙이란다》(이매진,2004) 10쪽


 나 또한 직장인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인

→ 나 또한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 나 또한 직장인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인

 …



  이음씨인 ‘그리고’는 앞말과 뒷말을 잇습니다. 그런데, 앞뒷말을 잇기는 하지만, 이 보기글처럼 잇지는 않습니다. 나란히 나오는 여러 가지를 이을 적에 쓰는 ‘그리고’이고, 앞말에 이어서 보태려는 이야기가 있을 적에 글월 첫머리에 넣습니다. “나는 춤을 좋아하지. 그리고 노래도 좋아해.”처럼 쓰고, “우리 집 마당에는 매화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그리고 앵두나무가 있어.”처럼 씁니다.


 -이자 . -이면서 . -이고

 -과 . -와 . -하고 . -서껀


  이 보기글에 ‘그리고’를 넣으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가를 밝히려고 하기에, ‘나는 직장인’이면서 ‘두 아이 엄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면서’나 ‘-이자’나 ‘-이고’ 같은 토씨를 붙여야 알맞아요. 4337.12.20.달/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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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직장인이면서 두 아이 어머니인 여느 사람으로


“두 아이의 엄마”는 “두 아이 어머니”로 손질하고, “평범(平凡)한 사람”은 “수수한 사람”이나 “여느 사람”으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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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94) 그리고 4


밥이 오랫동안 그리고 대단히 존경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로리 팰라트닉,밥 버그/김재홍 옮김-험담》(씨앗을뿌리는사람,2003) 112쪽


 오랫동안 그리고 대단히 존경했던 사람

→ 오랫동안 대단히 우러렀던 사람

→ 오랫동안 참으로 대단히 우러렀던 사람

→ 오랫동안, 그러면서 대단히 우러렀던 사람

 …



  오랫동안 존경한 사람이 있으면 “오랫동안 존경했던 사람”으로 적으면 됩니다. ‘오랫동안’과 ‘존경했던’ 사이에 ‘그리고’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뜻을 힘주어 나타내려고 ‘그리고’를 넣었다고 할 수 있는데, 뜻을 힘주어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야말로’라든지 ‘참으로’ 같은 꾸밈말을 넣는다든지, ‘오랫동안’ 다음에 쉼표로 끊고서 ‘그러면서’나 ‘이러면서’를 넣어 줍니다. 4338.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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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오랫동안, 그러면서 대단히 우러렀던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이승을 떠났다


‘존경(尊敬)했던’은 ‘받들던’이나 ‘우러렀던’으로 손봅니다. “세상(世上)을 떠났다”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이승을 떠났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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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0) 시작 74


우리는 케이크를 먹고 커피 마시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구드룬 맵스/문성원 옮김-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시공주니어,1999) 127쪽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 처음부터 다시 했다



  ‘시작’이라는 한자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모르기에 말버릇처럼 “-하기 시작했다” 같은 꼴로 씁니다. ‘始’라는 한자는 ‘처음’을 가리키니, 이 보기글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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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70) 시작 73


마침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첫 작업을 시작했다

《로알드 알/지혜연 옮김-아북거 아북거》(시공주니어,1997) 46쪽


 첫 작업을 시작했다

→ 첫 일을 했다



  글을 쓸 적에는 글에 넣는 낱말을 하나하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할 적에도 말에 싣는 말마디를 찬찬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올바로 헤아리지 않기에, 이 보기글처럼 “첫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꼴로 글을 씁니다. 어떤 분은 ‘첫’을 덜고 “작업을 시작했다”처럼 쓰기도 할 텐데, ‘일(작업)’을 ‘시작’한다고 하는 말마디도 여러모로 어설픕니다. 왜냐하면, “일을 한다”처럼 쓰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처음으로 한다면 “처음으로 일을 했다”처럼 적을 노릇이고 “첫 일을 했다”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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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6) 시작 72


이웃 사람들, 장사꾼들이 무언가 수군거리기 시작했죠

《파블로 네루다/남진희 옮김-안녕, 나의 별》(살림어린이,2010) 14쪽


 수군거리기 시작했죠

→ 수군거렸죠



  이 보기글에 나오는 ‘시작’은 마치 도움움직씨 구실을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시작’이라는 한자말은 도움움직씨처럼 쓸 수 없습니다. 요즈음 널리 퍼진 말투를 보면, 이 보기글처럼 “수군거리기 시작했죠”나 “수군거리고 있었죠”처럼 말끝을 늘어뜨립니다. “수군거렸죠”로 끝맺으면 될 말인데 자꾸 말끝을 늘어뜨립니다. 때로는 “수군거리는 것이었죠”처럼 ‘것’을 집어넣습니다.


  이 세 가지 말투는 모두 한국말이 아닙니다. ‘시작’을 붙이는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있다’를 붙이는 말투는 번역 말투입니다. ‘것’을 붙이는 말투는 뿌리를 알 길이 없는 아리송한 말투입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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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0) 시작 70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여태껏 내가 믿어 왔던 게 혹시 허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강현정·전성은-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메디치,2015) 27쪽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 의심이 들었다

→ 차츰 의심스러웠다

→ 궁금해졌다

→ 궁금했다

 …



  처음에는 ‘못 미덥지(의심스럽지)’ 않았으나 세상 흐름을 보고 또 보니 자꾸 못 미덥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의심이 들었다”라든지 “생각이 들었다”처럼 쓰면 됩니다. 꾸밈말을 붙여서 ‘차츰’이나 ‘자꾸’를 바로 앞에 넣을 수 있습니다. 4348.4.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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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보니 여태껏 내가 믿어 왔던 모습이 설마 껍데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국(形局)’은 ‘흐름’으로 다듬고, “믿어 왔던 게”는 “믿어 왔던 모습이”로 다듬으며, ‘혹시(或是)’는 ‘설마’로 다듬습니다. ‘허상(虛像)’은 ‘껍데기’로 손질합니다. ‘의심(疑心)’은 ‘못 미더움’으로 손볼 낱말인데, 이 대목에서는 ‘궁금하다’를 넣어 풀어내거나 ‘생각’이라는 낱말을 넣어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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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72) ‘-의’를 쓸 자리 (‘之’와 ‘의’)


형설지공(螢雪之功) : 반딧불·눈과 함께 하는 노력

부자지간(父子之間) : 아버지와 아들 사이

호연지기(浩然之氣) :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

무용지물(無用之物) :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

어부지리(漁夫之利) :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서로 싸우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애쓰지 않고 가로챈 이익



  지난날에 이 나라에서 한문을 쓰던 지식인은 중국사람이 쓰는 말투를 좇아서 ‘之’를 으레 썼습니다. 이 중국말과 중국 말투는 옛 지식인 입과 손을 거쳐서 한국에 스며들었고, ‘부자지간’이나 ‘모자지간’이나 ‘형제지간’ 같은 말투를 여느 사람도 으레 쓰도록 내몰았습니다.


  중국말과 중국 말투가 이 나라에 처음 퍼졌을 적에는 ‘부자지간’처럼 썼는데, 이 말투는 일본 말투와 번역 말투를 만나면서 조금씩 꼴을 바꾸었습니다. 이를테면 “부자의 사이”나 “모자의 사이”나 “형제의 사이” 같은 꼴이 됩니다. “아버지와 아이의 사이”라든지 “어머니와 아이의 사이” 같은 꼴로도 바뀝니다. 이러면서도 ‘부자간·모자간·형제간’ 같은 중국말을 함께 쓰고, “부자 사이·모자 사이·형제 사이”처럼 ‘-의’가 없는 말투로도 나란히 쓰며, ‘“아버지와 아이 사이·어머니와 아이 사이·형제 사이”처럼, 말투도 낱말도 말씨도 곱게 한국말로 쓰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잣수 맞추기를 좋아합니다. 이러다 보니, ‘之’를 빌어서 넉 자로 짜맞춘 중국말이 퍼졌습니다. ‘형설지공’이나 ‘호연지기’나 ‘무용지물’이나 ‘어부지리’는 모두 ‘之’가 끼어들 까닭이 없던 말투입니다. 그런데, 사이에 ‘之’를 넣어서 넉 자로 맞추었어요. ‘형설공·호연기·무용물·어부리’처럼 쓰면 될 말이었지요. 중국사람은 ‘之’를 쓰고, 일본사람은 ‘の’를 쓴 셈인데, 이를 한국 지식인은 몽땅 ‘-의’로 뭉뚱그렸습니다.


 반디와 눈 . 반딧불과 눈으로 애씀

 아비아들 . 아버지와 아들 사이

 하늘바람 . 하늘기운

 쓸모없음 . 못 쓰는 것

 고깃꾼 덤 . 고기잡이 보람


  그런데, 중국말에서 퍼진 ‘之’는 쉽게 털 수 있습니다. 이 말투에서는 ‘之’를 군말로 넣었을 뿐이기에 그대로 덜기만 하면 됩니다. 중국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굳이 ‘넉 자’로 맞추어야 하지 않으니 때와 흐름에 맞추어 알맞게 쓰면 됩니다. 때로는 말놀이 삼아서 일부러 넉 자에 맞추어 한국말로 새롭게 이야기를 지을 수 있습니다.


  생각을 빚을 때에는 언제나 알맞고 바르면서 아름답게 말을 살리고, 생각을 빚지 않으면, 일본 말투나 번역 말투나 중국 말투에 그예 휘둘리기만 합니다. 4348.4.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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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4 쓰다



  햇볕이 뜨겁거나 바람이 차서 모자를 씁니다. 돌이나 나무를 다루어 연장으로 갈고닦으면, 이 연장을 써서 새로운 것을 즐겁게 지을 수 있습니다. 하루를 써서 재미난 일을 하고 신나는 놀이를 합니다. 기운을 써서 짐을 나르고 지게를 지며 장작을 팹니다. 마음을 써서 서로 아끼고 헤아리면서 따사롭게 사랑합니다. 애를 쓰고 힘을 쓰니 두레와 울력이 기쁩니다. 나는 너한테 아름다운 말을 쓰고, 너는 나한테 고운 말을 씁니다. 먼저 떠난 이를 기리거나 그리면서 무덤을 쓰고, 몸에 새로운 기운을 북돋우려고 쓴 나물을 캐서 알뜰살뜰 밥을 짓습니다.


  한곳에 쌓은 돈은 쓰면 쓸수록 줄어듭니다. 한곳에 쌓지 않고 차곡차곡 살림을 가꿀 적에는 돈을 쓰고 또 쓰더라도 살림이 줄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마음은 쓰면 쓸수록 따스해집니다. 사랑은 쓰면 쓸수록 깊어집니다. 꿈은 쓰면 쓸수록 새롭게 자랍니다. 내 몫(밥그릇)만 따지면서 ‘덜기’를 하듯이 쓴다면, 내 몫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내 몫을 따지지 않으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헤아린다면, 나는 언제나 쓰고 또 쓰지만 내 몫(밥그릇)이 줄어들지 않아요. 내가 덜어서 너한테 주는 만큼(또는 더 크게) 내 다른 이웃이 나한테 마음을 써서 내 밥그릇(몫)을 채워 줍니다.


  몸이 닳아서 늙는 까닭은 몸을 함부로 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즐거울 일을 찾아서 하지 않을 때에는 몸이 닳아서 늙습니다. 스스로 즐거울 일을 찾는 사람은 삶을 누리는 동안 언제나 모든 일을 홀가분하게 잘 합니다. 나이 여든이나 아흔에도 고깃배를 몰아서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서 올릴 수 있어요. 나이 아흔이나 백에도 호미를 쥐거나 괭이를 잡고 흙을 갈아 씨앗을 심을 수 있어요.


  억지로 쥐어짜내려고 한다면 몸이 닳습니다. 억지를 쓰니까 몸이 닳습니다. 마음을 쓰고 사랑을 써서 일을 하고 놀이를 누리면, 내 몸은 닳는 일이 없습니다. 함부로 쓰기에 닳고, 기쁘게 쓰기에 안 닳습니다. 아니, 기쁘게 쓰면 새롭게 태어납니다. 새로운 웃음과 노래로 삶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새로운 마음이니, 한결같이 새로운 생각을 길어올려서, 한결같이 새로운 몸으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머리를 잘 쓸 수 있습니다. 어리석거나 어처구니없거나 바보스럽거나 멍청한 짓에 머리를 쓰지 말아요. 검은 꿍꿍이에 머리를 쓰지 말아요. 남을 괴롭히거나 등치거나 들볶는 일에는 머리를 쓰지 말아요.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하며 곁님을 어루만지는 몸짓으로 머리를 써요.


  몸은 닳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닳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내 마음이 한결같은 샘물처럼 늘 싱그러이 솟는, 푸르며 맑고 새파란 숨결로 가득한 물줄기와 같다면, 내 몸은 닳지 않습니다. 맑은 생각을 품어서 맑은 마음으로 가꾸면 맑은 몸짓이 되어 맑은 삶으로 드러납니다.


  잘 써야 합니다. 슬기롭게 써야 합니다. 알맞게 써야 합니다. 기쁘게 써야 합니다. 놀라우면서 새롭게 써야 합니다. 웃음과 노래로 써야 합니다. 춤과 이야기로 써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글 한 줄로 쓸 적에는 언제나 ‘삶노래’를 쓸 노릇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쓸 때에 비로소 글이고, 이러한 글을 엮어서 책을 짓습니다.


  사랑을 쓰는 사람은 이내 사랑을 얻어서 즐겁게 나누고는, 이윽고 새로운 사랑을 쓸 수 있습니다. 꿈을 쓰는 사람은 바로바로 꿈을 이루어서, 시나브로 새로운 꿈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삶쓰기입니다. 돈쓰기도 삶쓰기입니다. 마음쓰기도 삶쓰기입니다. 모든 ‘삶쓰기’는 ‘사랑쓰기’요, ‘마음쓰기’이면서, ‘생각쓰기’입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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