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28 : 억강부약


하지만 저널리즘 윤리로서 공정에 대해서는 언론 현장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과 ‘최소한의 합의’가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 그것이다

《손석춘-민중언론학의 논리》(철수와영희,2015) 68쪽


 ‘억강부약(抑强扶弱)’이 그것이다

→ 힘센 이를 누르고, 여린 이를 돕기이다

→ 힘센 이는 누르고, 여린 이는 돕는다

→ 어깨동무이다

 …



  ‘억강부약’이라는 한자말은 뜻풀이를 붙여야 비로소 말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낱말 뒤에 한자를 달아 놓는다고 하더라도 말뜻을 알 수 없습니다. 기자 윤리를 말하면서 이러한 한자말을 쓴다고 하는데, 왜 이런 한자말을 빌어서 기자 윤리를 밝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수수하면서 쉬운 한국말로는 기자 윤리를 말하기 어려울까요? 한국사람이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아름다운 한국말로는 기자 윤리를 적거나 밝힐 수 없을까요?


  힘센 이는 누르고 여린 이를 돕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국말로 간추리자면 ‘어깨동무’입니다. 어깨동무는 서로 나란히 서서 어깨를 겯는 몸짓입니다. 한쪽이 위로 올라가도 안 되고, 아래로 내려가도 안 돼요. 말 그대로 ‘힘세다고 해서 올라가서는 안 되’며, ‘여리다고 해서 눌려서는 안 됩’니다. ‘어깨동무’라는 한 마디는 우리가 함께 웃고 노래하는 기쁘며 즐거운 삶을 슬기롭게 나타냅니다. 4348.4.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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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자 윤리로 올바름을 살피면 언론 현장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흐름과 ‘이것만은 지키자’가 있다. 바로 ‘어깨동무’이다


‘하지만’은 ‘그러나’나 ‘그렇지만’으로 바로잡고, “저널리즘(journalism) 윤리”는 “기자 윤리”로 손봅니다. “공정(公正)에 대(對)해서는”은 “올바름을 살피면”으로 손질하고,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傳統)”은 “오랫동안 내려온 흐름”으로 손질합니다. ‘전통’이라는 낱말이 ‘오랫동안 내려오는 버릇이나 몸짓’을 가리키니, 이 낱말 앞에 ‘오랫동안 내려오는’이라는 꾸밈말을 붙이면 겹말입니다. “최소한(最小限)의 합의(合意)”는 “이것은 지키자”나 “이것만은 지키자”로 다듬고, “-이 그것이다”는 “-이다”나 “바로 -이다”로 다듬습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

   - 자식들의 정신이 억강부약에 있다면 / 억강부약하여 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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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7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거움’과 ‘기쁨’은 거의 같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즐거움은 마음이 가벼우면서 좋은 느낌을 ‘내 몸으로 품는’ 모습이고, 기쁨은 마음이 가벼우면서 좋은 느낌을 ‘내 몸 바깥으로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즐거움은 남한테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벼운 모습이라면, 기쁨은 남한테 드러나도록 가벼운 모습입니다.


  ‘괴로움’은 마음이 가볍지 못하면서 이곳저곳에 마구 휩쓸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즐거움·기쁨’은 마음이 가벼운 모습이요, ‘괴로움’은 마음이 무거운 모습입니다. 마음이 가볍기에 ‘홀가분한’ 삶이 되어 즐겁거나 기쁩니다. 마음이 무겁기에 내가 마음을 기울여야 할 곳을 모르는 채 그저 짓눌리기만 하면서 삶이 메마르거나 주눅이 듭니다.


  즐겁거나 기쁠 적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하기에, 마치 나비나 새처럼 하늘을 신나게 가르면서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있습니다. 괴로울 적에는 어느 일이나 놀이를 하든 그저 무거우니까, 힘이 들고 쉽게 지칩니다. 나른하거나 찌뿌둥하면서 짜증이나 골이나 성이 자꾸 찾아들기 마련입니다. 괴로우면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고 바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즐거운 사람은 늘 하늘을 새롭게 올려다봅니다. 기쁜 사람은 언제나 바람을 새롭게 마십니다. 하늘을 새롭게 올려다보면서 늘 하늘빛으로 물듭니다. 바람을 새롭게 마시면서 언제나 고운 숨결로 젖어듭니다. 하늘바람으로 몸을 다스릴 적에는 한결같이 하늘바람으로 지냅니다. 이와 달리,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하늘을 그예 올려다보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움이란 없다고 여깁니다. 새로움은 남이 나한테 주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속에서 길어올려야 하지만, 이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괴로운 나머지 ‘늘 마시는 바람(숨)’을 느끼지 못해, 바람결도 숨결도 내 것으로 가누지 못해요. 이때에는 내 ‘마음결’이 제대로 설 자리를 잃습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눈길(눈결)이 됩니다.


  그런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사람한테 함께 있는 앞모습과 뒷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실마리 때문에 즐겁고, 아주 조그마한 실타래 때문에 괴롭습니다. 아주 작은 눈짓 하나로 즐거우면서, 아주 작은 몸짓 하나 때문에 괴롭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어느 일을 놓고는 즐겁게 받아들이고, 어느 일을 놓고는 괴롭게 여길까요?


  기쁨은 기쁨을 끌어들입니다. 괴로움은 괴로움을 끌어들입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시샘은 시샘으로 이어집니다. 걸음마다 새로우니 자꾸 새걸음을 걷고, 걸음마다 무거우니 자꾸 제자리걸음입니다.


  ‘즐겁고 싶다’고 생각한대서 즐거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안 즐거운’ 사람은 없습니다. 즐거운 줄 모를 뿐입니다. 즐거움을 바라보지 않기에 즐거운 줄 모릅니다. 즐거움을 바라볼 수 있거나 기쁨을 마주할 수 있으면, 사랑과 꿈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괴로움이 나한테 끔찍하거나 싫은 것이 아니라, ‘괴로움’은 내가 이 삶에서 누리거나 겪는 여러 가지 징검돌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러면서, ‘즐거움·기쁨’도 내가 이 삶에서 찾거나 만나는 여러 가지 징검돌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차립니다.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나중에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따로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대로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사랑이기에 사랑은 늘 아무런 토(조건)를 달지 않’습니다. 아무것에 얽매이지 않는 사랑일 때에 삶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랑일 때에 삶을 제대로 마주하면서, 내가 나답게 섭니다. 다시 말하자면, 즐거움이라서 더 좋거나 낫지 않고, 괴로움이라서 더 나쁘거나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모두 삶을 이루는 조각입니다. 이 조각을 곱게 여겨 녹일 수 있으면, 우리는 찬찬히 가없는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4348.3.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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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542 : 운우지락


사람이 결혼을 하면, 서로 이러저러한 일을 해 주기도 하지만, 운우지락을 나누기도 하는 거잖아

《마저리 쇼스탁/유나영 옮김-니사》(삼인,2008) 461쪽


 운우지락을 나누기도 하는 거잖아

→ 기쁨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 살을 섞기도 하잖아

→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



  중국 옛이야기에서 따온 ‘운우지락’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낱말도 한국사람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쓰기는 쓰는데, 이런 낱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글로 적어 놓는들,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밝힌들, 아니면 처음부터 한자로만 적는들, 말뜻을 또렷하게 헤아리는 분은 얼마나 될는지요.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풀이를 보면 “남녀의 정교(情交)”가 ‘운우지락’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정교’를 다시 찾아보면, “1. 매우 가깝게 사귐 2. 남녀의 연애나 성적인 교합”이라고 나옵니다.


  따오기는 중국 옛일에서 따왔으되, 말뜻으로 살피면 한 마디로 ‘사랑’이거나 ‘살섞기’라는 소리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니 ‘사랑’을 나누는 셈이지만, 이를 ‘중국 옛일에서 빌어 온 중국말로 옷을 입혔을’ 뿐이라는 소리입니다.


 부부간의 운우지락을 맛본

→ 부부 사이에 사랑을 맛본

→ 부부가 나누는 사랑을 맛본

→ 부부사랑을 맛본

→ 서로 살을 섞어 본


  남녀 사이에 맺는 사랑이면 ‘남녀사랑’이라 하면 됩니다. 부부 사이 사랑이면 ‘부부사랑’이라 하면 됩니다. 다만, 이런 낱말들, ‘남녀사랑’이나 ‘부부사랑’ 같은 낱말은 아직 한국말사전에 안 실립니다. 이와 달리, ‘형제애’나 ‘부부애’ 같은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실립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리건 안 실리건, 사람들은 ‘아이사랑’이나 ‘부모사랑’ 같은 낱말을 두루 씁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이와 같은 낱말을 싣든 말든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득 실어서 ‘책사랑’, ‘만화사랑’, ‘영화사랑’, ‘노래사랑’, ‘여행사랑’, ‘산사랑’, ‘사람사랑’ 같은 낱말을 얼마든지 쓰면서 삶과 넋과 말을 북돋웁니다.


 남녀사랑 . 부부사랑 . 형제사랑 . 아이사랑 . 부모사랑 … (o)

 남녀애 . 부부애 . 형제애 . 자녀애 . 부모애 … (x)


  한국사람이 슬기롭게 쓰는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차곡차곡 실려야 합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사람이 올바르고 알맞게 글을 쓰고 말을 하도록 도와주는 눈밝은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합니다. 지식인이건 여느 어른이건 서로 따뜻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말과 글을 가꿀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이 혼인을 하면 ……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하면 …… 살을 섞으며 놀기도 하잖아

 사람이 한집에서 살면 …… 사랑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하잖아


  살아가는 기쁨을 담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재미가 스미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보람이 깃드는 말입니다. 살아가며 나누는 모든 사랑과 믿음을 펼치는 말입니다. 스스로 돌보면서 자라는 말이고, 스스로 가꾸면서 빛나는 말입니다. 내가 손수 짓는 말이고, 내가 손수 아끼는 말입니다. 4342.3.4.물/4348.4.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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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함께 살면, 서로 이러저러한 일을 해 주기도 하지만, 사랑을 나누기도 하잖아


‘결혼(結婚)’은 ‘혼인’으로 다듬거나 ‘함께 살면’으로 다듬습니다. “하는 거잖아”는 “하잖아”로 손봅니다.


운우지락(雲雨之樂) : 구름과 비를 만나는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회왕(懷王)이 꿈속에서 어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부인이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 있겠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 이미 부부간의 운우지락을 맛본 적이 있다


..



 살가운 상말

 629 : 운우지정


붉은 철쭉꽃 만발하는 / 운우지정이 아니어도 좋고

《신현림-해질녘에 아픈 사람》(민음사,2004) 36쪽


 운우지정이 아니어도

→ 사랑이 아니어도

→ 달콤한 사랑이 아니어도

→ 달달한 사랑이 아니어도

→ 꿈 같은 사랑이 아니어도

→ 바람 같은 사랑이 아니어도

 …



  고사성어 ‘운우지정’은 ‘운우지락’과 똑같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도 똑같습니다. 하나는 ‘즐거움(락, 樂)’으로 적고, 다른 하나는 ‘마음(정, 情)’으로 적기만 합니다.


  한국사람이 고사성어를 쓴다고 해서 나쁠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국사람이니 한국말로 생각날개를 펼칠 수 있어요. 이를테면, ‘구름사랑’이나 ‘비사랑’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을 만합니다. ‘바람사랑’이나 ‘하늘사랑’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을 만해요.


  사랑은 사랑이로되 여느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니, ‘사랑’이라는 낱말 앞뒤에 여러 가지 꾸밈말을 붙여서 새로운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달콤한 사랑”이나 “달달한 사랑”이라 해도 되고, “그리운 사랑”이나 “아련한 사랑”이라 해도 됩니다. “애틋한 사랑”이나 “이슬 같은 사랑”이라 해도 돼요. 4348.4.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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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철쭉꽃 활짝 피는 / 사랑이 아니어도 좋고


‘만발(滿發)하는’은 ‘활짝 피는’이나 ‘한껏 터지는’으로 손봅니다.



운우지정(雲雨之情) : 구름 또는 비와 나누는 정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회왕(懷王)이 꿈속에서 어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그 부인이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 있겠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 운우지정을 나누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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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601) 세동무


이상하게 생각한 도토리 삼총사는 몰래 쥐들을 뒤따라갔어요

《나카야 미와/김난주 옮김-도토리 마을의 모자 가게》(웅진주니어,2011) 16쪽


 도토리 삼총사

→ 도토리 세동무

→ 도토리 세아이

→ 도토리 세또래

→ 도토리 세벗님

→ 도토리 세짝꿍

 …



  ‘삼총사’라는 낱말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총사(銃士)’라는 낱말부터 한국말이 아닙니다. ‘총’이라는 한자말은 한국사람도 써요. 다만, 한국사람은 ‘총사’가 아니라 ‘총잡이’나 ‘총꾼’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러면 ‘총사’는 어느 나라에서 쓰는 낱말일까요? 일본에서 쓰는 일본 한자말입니다. 그러면, ‘삼총사(三銃士)’는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삼총사’를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가 지은 장편 역사 소설”이라고 풀이를 합니다. 이 낱말을 올림말로 삼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Les Trois mousquetaires”를 일본사람이 “三銃士”로 옮겼고, 한국에서 이를 한글로만 바꾸어 “삼총사”로 적은 셈입니다. 프랑스말 ‘mousquetaires’는 ‘근위 기병’을 뜻한다 하고, ‘근위(近衛)’는 임금 둘레에 있으면서 임금을 지키는 군인을 가리키며, ‘기병(騎兵)’은 말을 탄 군인을 가리킵니다.


  곰곰이 따지면, 일본사람이 옮긴 ‘삼총사’도 그리 잘 안 어울린다고 할 만합니다. ‘임금을 모시는 기병 세 사람’을 ‘총잡이 세 사람’으로 옮긴 셈이니까요. 더군다나 한국사람은 이런 말뜻과 말밑을 이제껏 제대로 안 살피면서 그냥 ‘삼총사’를 아무 자리에나 씁니다.


  ‘총사’이든 ‘삼총사’이든 군인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군인이 하는 일은 전쟁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군인이요, 이런 군인이 셋 모일 적에 ‘삼총사’인 셈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가까운 짝꿍으로 지낸다고 할 적에 이 아이들을 ‘삼총사’라는 이름을 붙여서 가리킨다면, 아이들을 ‘군인으로 여기는 셈’입니다.


  우리는 ‘세동무’로 고쳐서 쓰거나, ‘세아이’처럼 쓰거나, ‘세또래’라든지 ‘세벗님’이라든지 ‘세짝꿍’ 같은 말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세사람’처럼 써도 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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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하게 생각한 도토리 세동무는 몰래 쥐들을 뒤따라갔어요


‘이상(異常)하게’는 ‘아리송하게’나 ‘알쏭달쏭하게’나 ‘궁금하게’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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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4) 반백의 1


먼 마을의 불빛들 스치는 차창에 / 반백의 머리를 허물어뜨린다

《박영근-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1997) 82쪽


 반백의 머리

→ 반쯤 센 머리

→ 반쯤 허연 머리

→ 하얗게 아롱진 머리

 …



  한자말 ‘반백’은 ‘半’이라는 한자가 아닌 ‘斑’이라는 한자를 쓴다고 합니다. ‘斑’이라는 한자는 “아롱지다·얼룩·나누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반백 머리”라면 “하얗게 아롱진 머리”라는 소리입니다. “군데군데 하얗게 센 머리”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반백의 중년 신사

→ 머리가 좀 센 중년 신사

→ 센 머리가 많은 중년 신사


  머리카락이 반쯤 하얗게 셌다면, 이 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조금 세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많이 세었다”고 해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테니, 그때그때 다른 느낌을 나타내면 됩니다. “센 머리”는 하얗거나 희거나 허옇게 보이니, 이러한 빛느낌을 알맞게 나타내도 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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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마을 불빛들 스치는 차창에 / 반쯤 센 머리를 허물어뜨린다


“먼 마을의 불빛”은 “먼 마을 불빛”으로 다듬습니다.



반백(斑白/頒白) : 흰색과 검은색이 반반 정도인 머리털

   - 반백의 중년 신사 / 반백의 머리는 갈기처럼 이마 곁으로 비끼고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2) 만사의 1


이런 것이 만사의 순리 아닐까. 너무 늦도록 기다리지 않아야 한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177쪽


 만사의 순리 아닐까

→ 모든 일이 가는 길이 아닐까

→ 모든 바른 길이 아닐까

→ 온갖 일이 바르게 가는 길이 아닐까

→ 제 길 아닐까

 …



  한자말 ‘만사(萬事)’는 “모든 일”이나 “온갖 일”을 뜻합니다. 그러니, 굳이 ‘만사’라는 한자말을 쓰기보다는 “모든 일”이나 “온갖 일” 같은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단출하게 줄여서 ‘온일’이라고 해도 됩니다.


  보기글을 보면 “만사의 순리”라고 해서 ‘순리(順理)’라는 한자말을 나란히 씁니다. 이 한자말은 “순한 이치나 도리”를 뜻한다고 해요. ‘이치(理致)’는 한국말로 “뜻”이나 “바른뜻”을 가리키고, ‘도리(道理)’는 한국말로 “길”이나 “바른길”을 가리킵니다. ‘순(順)’은 ‘부드러움’을 가리키지요. 그러니까, “만사의 순리”란 모든 일이 부드러우면서 바르게 가는 길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모든 바른길

 모든 바른뜻


  “모든 바른길”처럼 쓸 수 있고, “모든 참길”처럼 쓸 수 있습니다. “모든 바른뜻”처럼 쓸 수 있으며, “모든 참뜻”처럼 쓸 수 있어요. 또는 “모든 길이 가는 곳”이나 “모든 길이 흐르는 곳”이나 “모든 길이 닿는 곳”처럼 쓸 만합니다. 4348.4.8.물.ㅎㄲㅅㄱ



만사(萬事) : 여러 가지 온갖 일

   - 만사가 끝나다 / 만사가 귀찮다 / 만사가 순조롭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3) 그것의 1


뭐든 그 사진을 주시하려고 그것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야 한다. 살아 있을 때 즉시 찍어야 한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178쪽


 그것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 그 숨결이 사라질 때까지

→ 그 목숨이 스러질 때까지

 …



  사진을 찍을 적에 바라보는 ‘그것’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느 모습이나 풍경이 될 수 있고, 풀이나 나무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모두를 뭉뚱그려서 ‘그것’처럼 쓸는지 모르지만, 한국말에서는 사람을 ‘그것’으로 가리키지 않아요. 여러 가지를 뭉뚱그려서 가리키려 한다면 ‘그’라고만 해야 합니다. “그것의 생명”이 아니라 “그 생명”으로 적어야지요.


  이 보기글에서는 “그 사진”을 ‘그것’으로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그 사진을 바라보려고 숨결이 다할 때까지”처럼 ‘그’까지 덜어 줍니다. 4348.4.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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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그 사진을 바라보려고 그 숨결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야 한다. 살았을 때 바로 찍어야 한다


‘주시(注視)하려고’는 ‘바라보려고’나 ‘살펴보려고’로 손보고, ‘생명(生命)’은 ‘목숨’이나 ‘숨결’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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