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23] 봄까지꽃, 봄까치꽃, 개불알풀꽃



  조그마한 봄꽃을 놓고 세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봄까지꽃’은 시골에서 조용히 쓰는 이름이라 할 만하고, ‘봄까치꽃’은 어느 수녀님이 쓴 시 때문에 퍼진 이름이라 할 만하며, ‘개불알풀꽃’은 이제 익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한국 학자가 고스란히 옮긴 이름이라 할 만합니다. 봄꽃 하나를 놓고 어느 이름으로 가리키면서 마주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어서, 이 사랑으로 봄꽃을 마주하면 넉넉합니다. 그러면, 하나씩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을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돌보려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개불알’이라는 이름이 이녁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치’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봄꽃하고 ‘까치’라는 새하고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 때문인가요, 아니면 어느 수녀님이 쓴 시가 마음에 들기 때문인가요? ‘봄까지’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봄꽃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딱히 다른 데에 얽매일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봄까지꽃’은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될 때에 처음 피고, 봄이 저물 무렵까지 피기 때문입니다. 봄이 끝나면 봄까지꽃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이름 그대로 “봄까지 피는 꽃”이 ‘봄까지꽃’입니다. 나는 세 가지 이름 가운데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봄꽃을 마주합니다. 봄 내내 이 작은 꽃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아끼려는 마음입니다. 4348.4.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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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07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한동안(2010년까지) 봄까치꽃으로 잘못 알았어요.
그러다가 강운구 님이 쓴 글을 읽고 처음으로 알아차렸고
블로그 이웃님도 알려주셨고,
저 스스로 자료를 찬찬히 찾아보고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한테 여쭙기도 하면서
이 꽃이름을 비로소 제대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도 고맙게 배워서 안 이름이라
얼마든지 둘레에 퍼뜨려 주셔도 되어요.

저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랍니다 ^^
수녀님인 시인이 시에서 `치`로 쓰시는 바람에
갑자기 널리 퍼졌는데
그 수녀님이 `지`로 제대로 적으셨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해요.

그런데, 그 수녀님이 시에 이 꽃 이야기를 안 쓰셨으면
저도 `봄까지꽃`이라는 이름을 아는 오랜 여행길을 걷지 못했겠구나 싶기도 해요~

2015-04-1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12 00:03   좋아요 0 | URL
`일제`라고도 할 테지만,
한국 지식인과 학자 스스로 생각이 깊지 않은 탓이 짙어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식민지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도 안 고치는 모습을 보면 `식민지 탓`은 할 수 없거든요.

저도 나중에서야 배웠지만
`며느리밑씻개` 같은 풀이름도 일본 이름을
엉터리로 아직까지 그대로 쓰는 풀이름이에요.

그러나, 풀이름뿐 아니라, 여느 말투도
`한국 말투`를 제대로 쓰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2015-04-13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4-13 12: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 말을 하는 분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전남 고흥에서도
들꽃 사진 찍는 분들 가운데 `봄까지꽃`으로 이름을 바로잡는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멋지냐(?)`면서 그런 이름을
누가 어떻게 붙였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풀이름뿐 아니라, `여느 한국말`도 제대로 안 살피는 사람이 아주 많고,
이는 `지식 있는 분`한테서 쉽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애써 주시는데,
부디 마음 다치지 않으시기를 빌어요.
꽉 막힌 분을 보시더라도
너그러이 헤아려 주셔요.

그야말로 고맙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334) 동하다動 1


모처럼 마코토가 마음이 동했는데

《니노미야 토모코/서현아 옮김-그린 2》(학산문화사,2001) 194쪽


 모처럼 마음이 동했는데

→ 모처럼 마음이 움직였는데

→ 모처럼 마음이 생겼는데

→ 모처럼 마음이 섰는데

→ 모처럼 마음이 꿈틀했는데

 …



  ‘動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은 어떤 마음으로 쓸는지 궁금합니다. 왜 한국말로 ‘움직이다’라 하지 않고 ‘움직일 動’이라는 한자를 빌어서 ‘動하다’라 말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움직이니까 움직인다고 합니다. 꿈틀하니까 꿈틀한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생기면 생긴다고 하고, 마음이 서면 선다고 합니다.


 식욕이 동하다 → 밥맛이 돌다 / 밥맛이 나다

 호기심이 동하다 → 호기심이 생기다 / 궁금해지다

 실없이 화가 동하는 것이었다 → 괜히 골이 났다

 병이 동하다 → 병이 도지다

 마음이 동하다 → 마음이 움직이다

 예가 아니거든 동하지를 마라 → 옳지 않거든 움직이지를 마라


  옳게 쓸 말이라면 옳게 쓰면 되고, 옳지 않다 싶은 말이면 물리칠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움직여서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을 아름답게 갈무리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38.12.6.불/4348.4.7.불.ㅎㄲㅅㄱ



동하다(動-)

1. 어떤 욕구나 감정 또는 기운이 일어나다

   - 식욕이 동하다 / 호기심이 동하다 / 실없이 화가 동하는 것이었다

2. = 도지다

   - 병이 동하다 / 할머니께서는 요즘 무리를 하셨는지 풍이 다시 동하셨다

3. 마음이나 사물이 움직이다

   - 마음이 동하다 / 예가 아니거든 동하지를 마라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746) 동하다動 2


배가 어느 정도 차면 술 생각이 동한 누군가가 큰소리로 술을 찾고, 주인 마나님은 마시다 남은 막걸리라도 내오게 마련이다

《강분석-씨앗은 힘이 세》(푸르메,2006) 118쪽


 술 생각이 동한 누군가

→ 술 생각이 난 누군가

→ 술 생각이 나는 누군가

→ 술이 생각나는 누군가

 …



  “술 생각이 나다”라고 하면 넉넉합니다. “술 생각이 뭉싯뭉싯 나다”라든지 “술 생각이 솔솔 피어나다”처럼 쓸 수 있을 테고, “술 생각이 그립다”나 “술이 그립다”처럼 써 보아도 어울립니다. “술 한잔 하고 싶다”로 써도 되겠지요. 4339.12.16.흙/4348.4.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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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어느 만큼 차면 술 생각이 난 누군가가 큰소리로 술을 찾고, 그 집 마나님은 마시다 남은 막걸리라도 내오게 마련이다


“어느 정도(程度)”는 “어느 만큼”이나 ‘얼마큼’이나 ‘얼마만큼’으로 다듬습니다. “주인(主人) 마나님”은 “마나님”이나 “그 집 마나님”으로 손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8) 동하다動 3


의욕이 제일 중요한데, 그것이 동하지 않는다

《레몽 드파르동/정진국 옮김-방랑》(포토넷,2015) 5쪽


 그것이 동하지 않는다

→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 할 마음이 솟지 않는다

→ 하려는 마음이 나지 않는다

 …



  이 보기글을 살피면, 토씨만 한국말입니다. 토씨를 뺀 낱말은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말짜임도 한국 말투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투가 자꾸 퍼집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글을 올바르게 쓰기를 빕니다. 조금 더 마음을 슬기롭게 움직여서 글을 사랑스레 가다듬기를 빕니다. 4348.4.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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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장 대수로운데, 할 마음이 안 난다


‘의욕(意欲)’은 “할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할 마음’으로 다듬거나 ‘뜻’이나 ‘마음’으로 다듬습니다. ‘제일(第一)’은 ‘가장’으로 손질하고, ‘중요(重要)한데’는 ‘대수로운데’로 손질하며, ‘그것이’는 ‘이 마음이’나 ‘할 마음이’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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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6 ‘걸음마’와 ‘걸음’



  모든 아기는 걸음마를 디디면서 이 땅에 새롭게 서려 합니다. 걸음마는 아직 걸음이 되지 못한 몸짓이지만, 아기는 저를 낳은 어버이처럼 걷겠노라 하는 꿈을 키우니,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서서 이 땅을 디디려 합니다. 아기는 제 힘을 써서 제 몸으로 우뚝 서려 합니다. 홀로 씩씩하게 서려 합니다. 그러니까, ‘홀가분하’게 서려고 ‘걸음마’를 뗍니다.


  아기가 ‘첫’ 걸음마를 뗀 뒤에는 ‘새’ 걸음마를 떼려고 애씁니다. 걸음마가 날마다 새롭도록 애씁니다. ‘첫걸음마’는 언제나 ‘새걸음마’로 나아갑니다. 걸어 보려고 애쓰고 힘쓰고 용쓰면서 나중에는 드디어 ‘걸음’이 됩니다. 어버이 손을 잡지 않고도 제법 먼 길을 혼자 걸어서 오갈 수 있습니다. 이때에 비로소 ‘걸음’이라고 합니다.


  걸음마를 떼면서 걸음을 할 수 있는 아이는, 맘마를 떼면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걸음마요 맘마입니다. ‘밥’이 아닌 ‘맘마’입니다. 밥처럼 지어서 밥처럼 먹으라고 하는 맘마입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이가 얼마 안 돋거나 없으며, 아이는 이가 아직 제대로 안 돋았기 때문입니다.


  아기와 아이가 떼는 걸음마는, 어른으로 치자면 ‘훈련’이라 할 만합니다. 어른도 어떤 낯선 일을 처음으로 할 적에는 서툴거나 어수룩합니다. 낯설기에 익숙하지 않아요. 어른도 일손을 익숙하게 하려면 하고 또 하고 다시 해야 합니다.


  손놀림이나 몸놀림이 익숙해지면, 이제부터는 새롭게 하려고 나섭니다. ‘똑같이’ 하려고 나서는 삶이 아닙니다. ‘새롭게’ 하려고 나서는 삶입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익히는 까닭은 ‘어른과 똑같이’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어른처럼 걸음을 떼’고 나서 ‘내 나름대로 새롭게 걸음을 지으’려는 뜻입니다. 어른들이 낯선 일을 마주하면서 손놀림과 몸놀림을 익숙하게 가다듬으려 하는 까닭도, 어른들 나름대로 ‘이 일을 새롭게 맞아들여서 새롭게 누리’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걸음마나 맘마를 거칠까요? 왜 ‘훈련’을 할까요? ‘삶짓기’를 하려는 뜻입니다. 삶을 지으려는 뜻으로 ‘걸음마(첫 단추)’를 떼려 합니다. 첫 단추를 꿰면 다음 단추를 꿸 수 있고, 단추를 모두 꿰면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옷입기’는 ‘삶짓기’와 같습니다. ‘걸음 떼기’는 ‘삶짓기’와 같아요. 나한테 찾아드는 새로운 하루(오늘)를 그야말로 새롭게 맞이해서 새롭게 누리려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떼려 하고, 이 첫걸음이 언제나 새걸음이 되도록 몸을 움직입니다.


  삶을 지으려고 하는 걸음마(훈련)입니다. ‘잘 걷는 선수’가 되려고 걸음마를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틀’에 갇히려고 똑같은 걸음걸이를 익히려 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를 놀려 제대로 걸으려고 하는 까닭은, 내 마음과 몸을 제대로 다스려서 내 삶을 제대로 지을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걸음이 아닌 걸음마는 여러모로 서툽니다. 아직 삶이 아닌 훈련은 이모저모 서툽니다. 서툴지만 빙긋빙긋 웃으면서 걸음마를 떼려 합니다. 서툴지만 활짝활짝 웃으면서 훈련을 하려 합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삶짓기로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 삶짓기를 이루는 길로 씩씩하게 새 걸음을 내딛습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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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73) 그리고 5


버찌와 수박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케이크에 터널을 뚫어 안쪽에서부터 먹었습니다 … 겨울잠쥐는 제일 큰 화분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쿠자와 유미코/엄기원 옮김-숲 속의 단짝 친구》(한림출판사,2004) 13, 15쪽


 그리고 나서

→ 그리고

→ 그러고 나서

→ 그리하고 나서

→ 그렇게 하고 나서

 …



  “그리고 나서” 꼴로 잘못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라는 이음씨 뒤에는 ‘나서’를 붙일 수 없으나, 이렇게 잘못 쓰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서”나 “그러나 나서”처럼 쓸 수 없는 줄 안다면, “그리고 나서”처럼 쓸 수 없는 줄 알 테지요. 이 보기글에서는 ‘나서’를 덜고 ‘그리고’만 적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 글월을 다르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러고 나서”인가 하면, ‘그러고’는 ‘그리하고’를 줄인 낱말입니다. ‘이리하다’를 줄이면 ‘이러다’이고, ‘저리하다’를 줄이면 ‘저러다’예요. 그러니, “그러고 나서·이러고 나서·저러고 나서”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다만, “그림을 그리다”를 말하려 한다면, “그림을 그리고 나서”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그리고’나 ‘그러다’를 알맞게 살펴서 써야 합니다. 4348.4.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버찌와 수박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케이크에 구멍을 뚫어 안쪽부터 먹었습니다 … 겨울잠쥐는 가장 큰 꽃그릇을 골랐습니다. 그러고 나서


‘터널(tunnel)’은 ‘구멍’으로 손질하고, ‘제일(第一)’은 ‘가장’으로 손질하며, ‘화분(花盆)’은 ‘꽃그릇’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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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331) 미지의 1


이처럼 우리는 보통 미지의 것들에 대해 보호막이 없다고 느끼게 되고, 그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끔찍한 일들을 상상하게 되는 거야

《타하르 벤 젤룬/홍세화 옮김-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상형문자,2004) 18쪽


 미지의 것들에 대해 보호막이 없다

→ 모르는 것을 막아 줄 울타리가 없다

→ 알 수 없는 것을 막아 주는 울타리가 없다

→ 낯선 것들한테서 지켜 주지 못한다

 …



  한자말 ‘미지’는 “알지 못함”을 뜻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사람들이 “알지 못함”이나 “모름”이라고 쓰는 말을 한자로 옮기면 ‘미지’가 되는 셈입니다. “미지의 세계”란 “알지 못하는 세계”이거나 “모르는 세계”입니다.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아득한 두려움”이거나 “하나도 모르는 어렴풋한 두려움”입니다. 말뜻 그대로 쉽게 쓰면 될 노릇이면서, 한국말로 쉽게 쓰면 됩니다. 4338.9.24.흙/4348.4.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처럼 우리는 흔히 낯선 것을 막아 주는 울타리가 없다고 느끼고, 그래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끔찍한 일을 생각하고 말아


한국말사전에서 ‘보호막(保護膜)’을 찾아보니 ‘점막(粘膜)’을 가리키는 북녘말이라 풀이하는군요. 글쎄, 보호막과 점막은 쓰임새가 다른 낱말이 아닐까요. 여기에서는 ‘지켜 주는 품’나 ‘막아 주는 울타리’쯤으로 손질합니다.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다듬고, ‘상상(想像)하게’는 ‘생각하게’나 ‘떠올리게’로 다듬습니다.



미지(未知) : 아직 알지 못함

   - 미지의 세계 / 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곧 사라졌고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24) 미지의 2


이것도 역시 텍스쳐의 강조가 표현에 박진감(迫眞感)을 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강철(鋼鐵)이 갖는 미지(未知)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낸 작품이다

《와타나베 츠토무/육명심 옮김-사진의 표현과 기법》(사진과평론사,1980) 54쪽


 미지(未知)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어렴풋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감춰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찾아내다

 …



  이 보기글에서는 ‘미지’라는 한자말에도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적습니다. 그러나, ‘미지(未知)’처럼 적는다고 해서 잘 알아볼 만하지 않습니다. 외려 더 뒤죽박죽이 됩니다. 알기 쉽도록 풀어야지요. 뜻이 환하게 드러나도록 글을 써야지요.


  이 자리에서는 ‘알 수 없는’으로 풀 수도 있고, ‘숨은’이나 ‘감춰진’으로 풀 수도 있으며, ‘속에 깃든’으로 풀 수도 있습니다. 4339.6.7.물/4348.4.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또한 겉느낌을 도드라지게 살려서 마치 참으로 그러하다는 듯이 나타낼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무쇠에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낸 작품이다


보기글을 보면, ‘박진감’과 ‘강철’이라는 한자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로 어떻게 적는가를 밝힙니다. 이 두 낱말은 한글로만 적으면 알아듣기 힘들다고 여기는구나 싶은데, 한자를 밝혀서 迫眞感으로 적는다고 해서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지 않습니다. “표현(表現)에 박진감(迫眞感)을 줄 뿐만 아니라”는 “참으로 그러하다는 듯이 나타낼 뿐만 아니라”로 손보고, ‘강철(鋼鐵)’은 ‘무쇠’로 손봅니다. “텍스쳐(texture)의 강조(强調)가”는 “질감을 도드라지게 해서”나 “겉느낌을 살려서”로 손질하고, ‘발견(發見)해’는 ‘찾아’로 손질합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53) 미지의 3


또 한 명의 칠레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었다

《조안 하라/차미례 옮김-빅토르 하라》(삼천리,2008) 29쪽


 미지의 인물이었다

→ 모르는 사람이었다

→ 알쏭달쏭한 사람이었다

→ 궁금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



  알 수 없는 일이 참 자주 일어난다고 느끼면서도, 알고 보면 알 수 없던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옆으로 밀어 놓던 일은 아니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일어남직한 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바람에 어느 결에 깜짝 놀래키듯 터지기도 합니다.


  알기에 알고, 모르기에 모릅니다. 아니까 궁금하지 않고, 알지 않으니 궁금합니다. 알면 알 뿐이요, 모르면 아리송하거나 알쏭달쏭합니다. 모르니까 수수께끼가 되고, 그저 물음표투성이입니다. 4342.1.18.해/4348.4.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또 다른 칠레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알쏭달쏭한 사람이었다


“또 한 명(名)의 칠레인(-人)”은 “또 다른 칠레사람”이나 “또 하나 있는 칠레사람”으로 다듬고, ‘도착(到着)하지’는 ‘오지’로 다듬으며,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다듬어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30) 미지의 4


나와는 아주 다르게 히피로 살아온, 마치 미지의 정글과도 같은 한 남자의 삶이 그런 나의 소망 속으로 파고들었다

《신지아-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샨티,2014) 274쪽


 미지의 정글과도

→ 아리송한 

→ 알 수 없는

→ 수수께끼 같은

→ 새로운

 …



  알 수 없으면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 가운데에는 ‘수수께끼’라 할 만한 것이 있고,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이 있으며, ‘낯설다’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모르기에 모두 새롭지는 않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모르다’와 ‘새롭다’와 ‘낯설다’를 알맞게 씁니다. 4348.4.5.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와는 아주 다르게 히피로 살아온, 마치 수수께끼 숲과도 같이 살던 사내가 그런 내 꿈으로 파고들었다


‘정글(jungle)’은 ‘숲’으로 다듬고, “나의 소망(所望) 속으로”는 “내 꿈으로”나 “내 꿈에”로 다듬습니다. “한 남자(男子)의 삶이”는 “한 남자 삶이”로 손볼 수 있는데, 한국말에서는 ‘한’을 얹음씨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자 삶이”나 “사내 삶이”로 손보면 어쩐지 글이 안 어울립니다. 낱말만 손보아서는 글이 제대로 엮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보기글은 “-같이 살던 사내가”로 다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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