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3.


《내 이름은 푸른점》

 쁘띠삐에 글·그림, 노란돼지, 2019.2.22.



우리는 서로 사랑이란 숨결이 되면 마음을 저절로 읽고 느끼며 알 수 있다. 우리가 왜 서로 마음을 못 읽거나 못 느끼거나 모를까? 사랑이라는 숨결이 안 되기 때문이요,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고 누구는 우리 쪽이고 누구는 나쁜 놈이고 하면서 금을 긋고 담을 치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울타리도 담도 없지만 ‘좋고 싫음’에는 울타리도 담도 있을 뿐 아니라, 시샘이나 미움까지 있다. 오롯이 사랑이라면 겉모습이나 겉치레를 모두 걷어치운다. 참다이 사랑이라면 속마음하고 속꿈을 맞아들인다. 밥 한 그릇을 마주할 적에도 사랑일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랑이 아니라면 풀밥만 먹더라도 ‘풀을 괴롭히는 몸짓’이 된다.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어떤 마음인가를 보아야 한다. 풀도 똑같이 목숨인걸. 풀도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이 있는 목숨’인 줄 안다면, 고기를 안 먹고 풀만 먹는대서 ‘좋은 쪽’이 될 수 없다. 그림책 《내 이름은 푸른점》은 돼지라는 이름으로 가리키는 아이를 ‘이웃’으로 삼는지 ‘고기’로 여기는지를 잘 잡아채어 부드러이 들려준다. 생각해 보자. ‘돼지벗’인가 ‘돼지고기’인가? 무엇을 볼 생각인가? 어떤 마음이 되려 하는가? 돼지가 왜 ‘멱 따는 소리’를 내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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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2.


《나무를 그리는 사람》

 프레데릭 망소 글·그림/권지현 옮김, 씨드북, 2014.5.26.



우리 집에는 ‘우리 집 나무’가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손수 심은 나무는 아직 없고, 우리가 이 집을 보금자리로 삼기 앞서부터 자라던 나무이다. ‘심은 나무’는 아니지만 ‘함께 사는 나무’이다. 이 나무를 심은 이웃들은 해마다 엄청나게 가지치기를 해대면서 ‘관리’를 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관리’가 아닌 ‘사랑’으로 함께 살고 싶기에 ‘우리가 바라지도 시키지도 않는 가지치기 관리’를 하지 말아 주십사 여쭈었고, 한 네 해쯤 지나자 비로소 ‘우리 집 나무’를 나무결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 관리질 아닌 사랑질을 받는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집을 곱게 감싸 준다.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흐벅지게 베푼다. 왜 나무를 관리하지 않고 사랑하려는가? 아이한테도 똑같으니까. 나는 아이들을 ‘관리’하고 싶지 않다. 그저 ‘사랑’하고 싶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무슨무슨 관리를 한다고 나서지만, 제발 사랑만 하면 좋겠다. 이런 몸짓일 적에 비로소 《나무를 그리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 터전을 저마다 아름답게 가꾸면서 함께 웃는 길을 열겠지. 경제성장이나 대북정책이나 무기증강 아닌 ‘나무사랑’이란 길을 수수하게 생각하고 펼 줄 아는 이웃이 하나둘 늘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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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1.


《행복한 허수아비》

 베스 페리 글·테리 펜+에릭 펜 그림/이순영 옮김, 북극곰, 2019.10.10.



광주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일찌감치 고흥으로 돌아가려다가 아이들하고 곁님이 저자마실을 하러 고흥읍에 나온다고 하기에, 세 사람이 고흥읍에 닿을 즈음에 맞추어 광주버스나루에서 시외버스를 타기로 한다. 무릎셈틀을 꺼낸다. 시끌벅적한 한복판에서 노래를 들으며 사전 글손질을 한다. 책상셈틀에 무릎셈틀이 있으니, 이제는 사전쓰기도 한결 수월하다. 버스를 두 시간 기다리며 일하고, 버스를 두 시간 달리며 마저 일한다. 며칠 만에 본 아이들이 달려와서 품에 안아 준다. 같이 짜장국수를 먹고 저자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니 잠이 쏟아진다. 그래, 이제는 마음을 폭 내려놓고 쉬어야지. 감기는 눈을 슬 비비고 《행복한 허수아비》를 넘겨 본다. 허수아비는 무엇 때문에 즐겁거나 안 즐거웠을까. 허수아비 곁에는 누가 있어야 즐겁거나 서운할까. 들녘에 혼자 선 허수아비를 비롯해 모든 사람한테 매한가지이리라 느낀다. 벼락돈이나 벼락이름이어야 즐겁지 않다. 벼락돈이 있더라도 같이 나눌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가 없다면 따분하겠지. 벼락이름이 없더라도 함께 노래할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가 있다면 즐겁겠지. 그런데 허수아비한테는 나락도 해님도 바람도 빗방울도 늘 동무요 이웃이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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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9.


《우리말 글쓰기 사전》

 숲노래 기획·최종규 글, 스토리닷, 2019.7.22.



한글날에 국립한글박물관으로 간다. ‘어린이 손편지 공모전’ 심사평을 어린이 앞에서 들려준다. 어린이가 쓴 글을 놓고서 어떤 어른도 점수나 등수를 매길 수 없다고, 책을 읽은 느낌을 담은 글에 줄거리는 조금만 적어도 좋다고,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여 스스로 오늘을 새롭게 바라보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으면 한결 즐겁다고 말한다. 여러 어린이는 ‘작가 선생님’이란 분을 처음 본다며 수줍어서 말도 못하지만 ‘글쓰기에 힘이 되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북돋워 주는 한 마디’를 적어 주면 좋겠다고 수첩을 내민다. 이 아이들한테 모두 새 동시를 한 자락씩 써서 준다. 넉줄시도 따로 써서 건넨다. 웃음짓는 아이들 마음이 환히 보인다. 반가우며 고맙다. 올해에 ‘여느 사전 틀을 왕창 깨는’ 새로운 사전인 《우리말 글쓰기 사전》을 선보였다. 왜 여느 사전 틀을 이렇게 깨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있다. ‘우리는 표준말도 서울말도 교양 있는 말도 아닌, 스스로 하루를 사랑으로 지은 살림을 즐겁게 노래하듯 이야기로 엮으면, 저마다 새로운 우리말로 마음을 밝힐 테니, 이런 글이 모두 새로운 올림말이요 뜻풀이에 보기글이 되니, 다 다른 사투리 사전을 다 다른 보람으로 지어 보자’는 뜻이라고 그분한테 말씀을 띄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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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10.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미카 아처 글·그림/이상희 옮김, 비룡소, 2018.10.15.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학교에서 숙제를 날마다 짐덩이로 안겨 주었다. 이때에 내준 엄청난 짐덩이 가운데 하나는 ‘동시 쓰기’였는데 우리가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쓰면 꾸지람을 들었고, 그무렵 교사란 어른들은 ‘동시집에서 멋지게 쓴 글자락을 베껴서 쓰’라고 시켰다. 동시란 그렇게 ‘말장난 동시집을 고스란히 베껴서 마치 내 것인 듯’ 치레하는 짓인 줄 알았다. 1990년대 첫무렵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대학입시로 문학을 배우다가 참고서에 갇히지 않은 시집을 헌책집을 다니며 스스로 찾아 읽었고, 내 나름대로 내 이야기를 ‘시’라는 옷에 입혀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집어치울 즈음, 신문배달이란 일을 하는 내 하루를 혼자서 시로 담아 보곤 했는데, 이제 아이들을 돌보는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들하고 나눌 새로운 살림을 ‘노래꽃’으로 옮기곤 한다. 가만 보니 나는 늘 시를 꿈꾸어 사랑으로 꽃피우는 발걸음이었네. 한국말사전을 쓰는 길도 뜻풀이나 보기글이 모두 시가 될밖에 없으니. 그림책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을 만나고 살짝 눈물이 글썽했다. 다니엘을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학습도구나 대학입시나 논술이 아닌, 스스로 사랑이 되는 슬기롭고 상냥한 숲바람을 노래로 부르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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