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18.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순천 할머니 스무 사람 글·그림, 남해의봄날, 2019.2.1.



두 아이하고 곁님이 입을 새 겨울옷을 장만할 돈을 형이 보내 주었다. 얼마나 곱고 고마운 손빛인가 하고 헤아린다. 내가 형이나 둘레에 나눌 수 있는 손빛은 무엇일까 하고 조용히 그려 본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새 사전을 엮는 일을 마무르려고 한창 애쓰다가 큰아이하고 저자마실을 다녀온다. 집에서 보글보글 국을 끓이는데 큰아이가 문득 “다시마에서 나오는 거품은 바다에 있던 공기야.” 하고 말한다. 그래, 다시마랑 얘기하면 그런 대목을 알아챌 수 있구나.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여덟 달쯤 책시렁에 두었지 싶다. 모처럼 느긋하게 읽다가 아주 아쉬운 대목을 느낀다. 이 대목 때문에 여덟 달을 그냥 책시렁에 모셨다고 깨닫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스무 할머니는 시골내기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며 오늘도 시골에서 산다. 그런데 모두 서울 말씨로 글을 썼다. 왜? 왜 순천말이나 전남말이 없지? 왜 모든 글을 ‘-다’로 끝맺도록 썼지? 할머니라기보다 ‘할매’나 ‘할마시’나 ‘할망’이 〈전라도닷컴〉이란 잡지 일꾼하고 만나는 자리에서는 ‘-담시·땀시·-땜시·-땜시롱’처럼 고장·고을·마을마다 다른 말씨가 눈부시다. 순천말도 전남말도 시골말도 없는 할머니 글은 팥소가 사라진 맨빵이다. 씁쓸.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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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16.


《교사, 읽고 쓰다》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 삶말, 2019.7.20.



교사로 일하는 이웃님이 ‘선생님’이란 말씨를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곧잘 물으신다. 이때에 그 말씨는 안 쓰는 쪽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하다가 ‘길잡이’라는 낱말이 떠올랐고 ‘교사·선생님’ 같은 말씨보다는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배우고 가르치는 길에 ‘길잡이’가 되면 좋겠다고, ‘이슬떨이’가 되어도 좋겠다고 여쭈었다. 이러던 어느 날 ‘샘님’이랑 경상도 말씨가 귀에 꽂혔고 ‘샘물 같은 님’이란 뜻으로 새롭게 쓰면 더없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교사, 읽고 쓰다》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란 자리에 서는 어른들이 스스로 돌아보는 이야기를 다룬다. 직업교사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보냈다고 해서 참말로 교사 노릇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스스로 묻는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잘못하는 사람도 잘하는 사람도 없을 테지. 모두 새롭게 마주하면서 하나씩 배워서 차근차근 걸어가겠지. 우리는 모두 길동무이다. 서로 길동무이니 때로는 길잡이가 되고, 때로는 도움을 받는다. 네가 힘들기에 너를 업고 갈 수 있다. 내가 힘들기에 나를 업어 주면서 갈 수 있겠지. 교사란 길을 먼저 가려는 사람 아닐까? 씩씩하게 모든 길을 새로 마련할 적에 교사이지 않을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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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15.


《피카몬 3》

 쿠보노우치 에이사쿠·그림/김은영 옮김, 서울문화사, 2013.11.30.



“서울로 올라간다”는 위아래를 가르는 말씨이다. 곰곰이 보면 ‘중국을 섬기던 이 나라 임금’은 ‘진상(進上)’이란 말을 썼고, 이 나라에서는 임금 곁에서 ‘진상’을 했다. 사람을 밟고 선 임금 무리가 없던 무렵에는 ‘올라간다·올리다’를 섣불리 쓰지 않았다. 계급이며 질서를 세우기에 ‘올리고·내리고’라든지 ‘올라가다·내려가다’를 쓴다. 길든 말씨이자 굴레이면서 터전이다. 생각해 보자. 북녘에서 보면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가다”일까? “백두산에서 한라산으로 내려가다”일까? 그저 ‘가다’요 ‘오다’일 뿐이다. 어릴 적을 떠올리면 “할아버지한테 세배 올려야지.” 하고 어머니가 얘기하면 할아버지는 “뭘 ‘올린다’고 하니, 그냥 ‘하면’ 되지.” 하고 말씨를 고쳐 주곤 했다. 만화책 《피카몬 3》을 읽었다. 웃음꽃을 그리고 싶은 젊은이 둘을 보여준다. 둘은 툭탁거리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길을 찾는다. 누가 위도 앞도 아니요, 아래도 뒤도 아닌, 사이좋게 걷고 어깨동무하는 삶일 적에 더없이 환한 웃음꽃이 되는 줄 알아차린다. 나는 언제나 서울로 가고 인천으로 가고 부산으로 간다. 그리고 숲으로 간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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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14.


《정주진의 평화 특강》

 정주진 글, 철수와영희, 2019.11.13.



사전을 쓰는 하루란 요일도 쉼날도 없으며 방학이든 말미이든 없다. 언제나 똑같이 하루를 쪼개어서 바지런히 글몫을 추스른다. 달력을 안 보고 살다 보니 마감날이 다가온다거나 살짝 지난 줄 놓치기도 한다. 이래서는 안 될 노릇이라 여겨 신나게 마감을 하다가 슬쩍 막혀 자전거를 탄다. 해가 기울기 앞서 면소재지로 달려서 붕어빵을 3000원 어치 산다. 내 몫은 생각 않고 세 사람 몫만 헤아리는데, 하나를 덤으로 주시네. 반바지에 반소매에 맨손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살짝 스산하다고 느낀다. 이제 장갑을 낄 철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보름이 지나면 섣달이네. 《정주진의 평화 특강》을 읽었다. 푸름이한테 평화를 들려주려고 애쓰는 목소리가 반갑다. 그래, 요즈막이 수능이라던가 하는 듯한데, 푸름이한테 입시나 대학이나 취업 걱정이 아닌 평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돈 잘 벌거나 이름있는 대학에 들어가도록 푸름이를 다그치는 짓이 사라지기를 빈다. 어깨동무하면서 하루를 환하게 누리는 기쁜 노래를 꿈꾸는 푸름이로 나아가도록 평화랑 사랑을 들려주는 어른이 늘기를 빈다.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춤추고 어깨동무하지 못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학교도 사회도 나라도 마을도 아니리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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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13.


《도토리시간》

 이진희 글·그림, 글로연, 2019.10.10.



이틀 사이에 두 곳 손님을 책숲에서 맞이한다. 어제는 강원 원주에서 마을책집을 꾸리는 분이 오셨고, 오늘은 고흥 풍남초에서 교감으로 일하는 분이 오셨다. 어제 오신 손님은 아이들을 몹시 좋아하고 말도 재미나게 섞을 뿐 아니라, 우리 사전하고 책도 잔뜩 장만하는데다가, 틀박이 학교가 얼마나 우리 마음을 망가뜨리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오늘 오신 손님은 아이들이 가까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전이며 책을 하나도 안 쳐다보는데다가, 부디 우리 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와서 교육·문화 혜택을 받으라는 말만 했다. 책숲에 오시는 손님은 아이들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보면 어림하기 쉽다. 아이들은 어른들 기운을 바로 알아챈다. 우리하고 이웃이 되려는지, 우리한테서 뭔가 가져가거나 바라는 뒷셈이 있는지 이내 느끼면서 가까이하거나 멀리하더라. 《도토리시간》을 넘기며 생각한다. 우리 책숲이 인천이란 고장이나 다른 도시에 머물렀다면 이 작은 도토리 같은 보금쉼터 노릇을 하겠지. 그러나 우리 책숲이 시골에 있을 적에도 농약·비닐·기계·졸업장·이름값·은행계좌 같은 겉모습을 털어내고 홀가분히 마음을 쉬는 놀이터 구실을 할 테고. 모든 사람이 마당이며 다락이며 마루이며 뜨락이며 숲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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