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9.18.


《배를 엮다》

 미우라 시몬 글/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2013.4.10.



미루고 미루던 소설 《배를 엮다》를 읽다. 사전을 쓰는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아직 이 소설을 안 읽었느냐는 핀잔을 여러 해 들었다. 사전쓰기를 하기에 꼭 이 소설을 읽어야 하지는 않을 테지만, 사전쓰기를 다룬 글이나 책이 워낙 없으니 여러모로 반갑기도 한데, 줄거리가 뻔히 보여서 굳이 안 읽었다. 만화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소설을 읽는데, 소설 줄거리나 얼거리는 만화영화하고 거의 같다. 이렇게 소설을 만화영화로 고스란히 옮기는 일이 있나 싶도록 놀라웠는데, 문득 생각하니 ‘사전쓰기라는 길을 놓고서 만화영화 감독이 뭔가 새롭게 살을 보태거나 틀을 바꿀 엄두’를 못 내었겠네 싶더라. 첫 쪽부터 끝 쪽까지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다 읽는다. 가벼우면서도 찬찬히 사전 일꾼 삶을 잘 담았다. 다만 두어 군데 군더더기는 보이더라. 옮김말도 썩 알맞지 않고. 그렇지만 이 소설을 읽었기에 ‘사전이라는 길을 가는 삶’을 한결 다르면서 즐거운 눈빛으로 동화를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이란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살섞기나 쓰다듬기라고는 여기지 않으리라. 사랑이라는 길을 더 곱다시 풀어내고, 살림하고 삶하고 숲하고 넋이 어우러지는 빛나는 숨결을 한결 새롭게 엮어 보고 싶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9.17.


《불가사의한 소년 6》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대원씨아이, 2008.6.15.



무화과알을 딴다. 손에 닿는 가까운 곳은 아이들더러 따라 한다. 살짝 높으면 가지를 슬슬 잡아당겨서 무화과알을 옆으로 비틀듯이 돌려서 툭툭 따고는 가지를 놓는다.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얼마나 탱탱한지 모른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 따다가, 돌담에 서고 줄기를 붙잡고서 딴다. 도무지 손에 안 닿는 곳은 그대로 둔다. 무화과발벌이며 나비이며 갖은 새에다가 풀벌레랑 개미가 찾아와서 먹겠지. 신나게 훑은 무화과알로 잼을 졸인다. 올해로 두 솥째. 그동안 모은 유리병이 하나둘 찬다. 이듬해에 쑥잎을 덖으려면 유리병을 더 모아야겠다고 느낀다.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기다리며 《불가사의한 소년》 여섯걸음을 읽는다. 수수께끼 아이는 어제오늘을 넘나들고 이곳저곳을 가로지르면서 묻는다. ‘삶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이냐’고. 만화책을 읽다가 살짝 한눈을 파느라 보글보글하다가 넘치는 줄 몰랐다. 아아, 아까운 무화과잼! 넘친 잼은 행주로 닦아낸다. 잼을 하자면 곁에서 오래 지켜보아야 하지. 그런데 어떤 살림이든 다 그렇다. 오래오래 지켜보고, 두고두고 아끼고, 차근차근 건사할 적에 비로소 살림이 된다. 아이들하고 곁님이 가을 지나 겨울에도 두고두고 누리기를 바라며 잼을 졸인다면 더 마음을 쓰자.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9.15.


《이오덕 마음 읽기》

 숲노래 기획·최종규 글, 자연과생태, 2019.7.10.



큰아이가 작은 그림책 하나를 짓는다. 고양시에 사는 이모랑 이모부한테 줄 선물로 짓는다. 말랑감을 얼려서 얼음과자처럼 먹을 수 있는 길을 재미나게 그림으로 엮는다. 이러고서 또 하나를 더 그려서 글월자루에 담는다. 이제 아버지한테 묻는다. “아버지,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어떤 그림책을 드리면 좋을까요?” “음, 아무래도 새를 잘 모르실 수 있으니, 새를 쉽게 알아보도록 하는 책을 그려서 드리면 어떨까?” 큰아이는 한나절을 고스란히 쏟아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드릴 ‘새 알아보기 책’을 손으로 짓는다.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어느새 그림순이는 새 이야기를 이토록 상냥하며 살뜰히 엮는 솜씨꾼이 되었구나.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써낸 지 두 달이 흐른다. 지난 두 달 동안 스스로 일거리가 참 많이 지어서 누렸다. 드디어 마무리를 지은 책을 놓고도 둘레에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지냈다. 이웃님은 이 책에서 어떤 마음을 읽어 주실까? 어느 어른을 둘러싼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숲을 사랑하는 멧새가 되고픈 마음을 읽어 주시면 좋겠다. 이오덕 어른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멧새’가 되어 노래하기를 바랐다. 나는 오늘 멧새 노랫소리가 가득한 숲집에서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수다꽃 피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9.16.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유승하 글·그림, 창비, 2019.1.25.



씨앗 한 톨을 심은 아주머니가 있고, 이 씨앗을 함께 가꾸자고 나선 아주머니가 있다. 그야말로 아주머니들 손길이 모여서 작게 ‘도서실’을 꾸몄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지나치게 많은 자동차 물결에 아이들이 옴짝달싹 못하기 마련이라, 아이들한테 쉼터가 되고 ‘아이 어버이’인 아주머니 스스로도 마음을 쉬고 싶었단다. 이 작은 ‘책마루’는 이윽고 자란다. 작은 씨앗이던 책마루는 여러 사람들 눈길이며 손길에다가 마음길이 모여서 숲이 되려 한다. 다만 차근차근 간다. 빨리 가지 않는다. 나무가 빨리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나무는 알맞게 뿌리를 내리는 만큼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는다. 우리가 보는 줄기하고 가지만큼 뿌리가 땅속에서 고루 퍼진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이란 책숲도 이와 같지 않을까? 자그마한 책마루에서 책숲으로 자랐다고 하니까.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는 아주머니들이 뿌린 씨앗이 나무가 되고 숲으로 우거진 걸음을 단출히 보여준다. 어떻게 얼마나 땀을 흘려서 사랑을 기울였는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새로운 도서관 하나를 이렇게 짓기도 하고, 새로운 도서관에 기울인 사랑땀을 이렇게 알뜰히 만화로 여미어 낼 수도 있구나.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9.13.


《무슨 벽일까?》

 존 에이지 글·그림/권이진 옮김, 불광출판사, 2019.



어느새 열흘쯤 지나간 서울마실길에 장만한 그림책 가운데 《무슨 벽일까?》를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읽는다. 읽고 또 읽고 또 보고 다시 보고 자꾸 들춘다. 그만큼 이야기를 잘 짰고, 줄거리도 알뜰하다. 다음쪽으로 넘어가면 어떤 판이 될까 하고 궁금한 마음이 들도록 알맞게 짚기도 한다. 담이란 무엇일까? 넘지 못하도록 막는 구실도 하겠지. 담이란 뭘까? 넘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세우는 노릇도 하겠지. 담이란 뭐지?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면 춥거나 달갑지 않으니 조금쯤 가려서 안쪽을 포근히 돌보는 몫을 하겠지. 곰곰이 보면 숲에서는 갖은 풀이랑 나무가 담이면서 싱그러운 숨결이다. 울타리란 참 상냥하다. 풀밭이나 나무로 이룬 울타리일 적에는 부드러우면서도 든든하다. 이 너머로 아무나 들이지 않되 누구나 착하고 참다운 마음이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맞아들인다. 우리가 하늘빛을 담은 바람결 같은 목숨으로 산다면 울타리나 담이란 없어도 되겠지. 우리가 서로 하늘하늘 산들산들 춤추고 노래할 줄 아는 넋이라면 언제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보금자리를 가꾸겠지. 넘지 못할 담이란 없다. 넘어서도록 하려고 담을 세운다. 저 너머를 느끼면서 보라는 뜻으로 굳이 담이란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