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1.


《토끼와 거북이》

 라 퐁테느 글·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그림/우순교 옮김, 보림, 1996.6.30.



아주 어릴 적부터 들은 이야기 가운데 “토끼와 거북이”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굳이 거북이가 되어야 할까?’ 싶었다. 토끼처럼 낮잠도 자고 샛밥도 먹고 해바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가도 즐거우리라 여겼다. 때로는 거북이처럼 한 걸음씩 씩씩하게 가되, 쉬지도 않고 서둘러 가기보다는 둘레를 가만가만 살피고 꽃내음을 맡고 나무하고 속삭이기도 하면서 느긋느긋 하루를 누리는 삶이 한결 재미난 살림길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림책 《토끼와 거북이》를 아이들이 재미나게 들춘다. 이야기도 이야기일 테지만 그림이 해사하다. 이야기를 살리는 그림책도 틀림없이 좋은데, 이렇게 그림꽃을 활짝 피울 수 있는 손길이 참 알뜰하구나 싶다. 줄거리만 좇아가면 좀 따분하리라. 줄거리는 줄거리대로 찬찬히 엮되, 이 줄거리에 입힐 옷을 곱게 꾸민다고 할까? 수수하거나 투박한 옷도 좋은데, 수수한 옷 귀퉁이에 꽃무늬를 넣으면 얼마나 고운가? 투박한 옷 한켠에 별무늬를 새기면 얼마나 빛날까? 한길을 가는 삶도 참 뜻있다. 두길이나 세길을 가는 삶도 참 뜻깊다. 여러 가지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좋고, 이 길 저 길 두루 다니다가 마지막에 하나를 슬그머니 골라서 폴짝폴짝 뛰어다녀도 좋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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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31.


《메종 일각 1》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19.9.30.



새로 나온 《메종 일각》 첫걸음을 야금야금 읽는다. 책날개를 보니 모두 열다섯걸음으로 나온다고 한다. “도레미 하우스”란 이름이던 만화책을 열 해 남짓 앞서 읽고는, 언젠가 장만할 수 있겠거니 여겼으나 이제서야 새옷으로 하나씩 만나네. 뭔가 튀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막상 우리 곁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이야기이다. 만화책에서만 볼 수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 둘레에서 바로 나나 너라는 모습으로 툭탁거리는 이야기이다. 무엇을 볼까? 무엇이 좋을까? 무엇이 섭섭할까? 마음을 어떻게 드러낼까? 겉모습인가? 속마음인가? 손에 쥐고 싶은가? 따스하게 흐르는 사랑이 되고 싶은가? 같이하고 싶은가? 혼자 있고 싶은가? 재미있는가? 따분한가? 누가 동무이고 이웃인가? 낮나절에 작은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에 다녀온다. 며칠 앞서 붕어빵장수를 면소재지에서 보았다. 와, 이 깊은 시골자락 면소재지에서 붕어빵을? 다만, 가는 날이 저잣날이라고, 작은아이하고 붕어빵을 장만하러 나가 보았으나 가게를 안 여셨다.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을 보았다. 바람도 없다시피 한 늦가을 어귀를 느꼈다. 뭐, 아이하고 자전거마실을 한 하루로도 넉넉히 즐겁다. 저녁에 〈Kubo and the Two Strings〉를 모처럼 다시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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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30.


《마야 인의 성서 포폴 부》

 고혜선 편역, 여름언덕, 2005.4.20.



날마다 어느 만큼 하면 일거리를 마칠 수 있으려나 하고 어림해 보면 딱히 길이 안 보인다. 일거리를 마치려는 생각보다는 날마다 꾸준히 이 일거리를 다스릴 뿐이지 싶다. 많이 할 수도, 쉬잖고 할 수도, 끝없이 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인데, 지며리 하는 길이라고 느낀다. 마치 별 같다고 할까. 가만히 돌고도는 별. 스스로 돌면서 해를 복판에 두고서 찬찬히 도는 별. 어느 별이든 스스럼없이 차분하게 돈다. 해와 같은 별이라면 그 별은 꾸준하게 빛이며 볕이며 살을 내놓는다. 삶이라고 하는 길도 이러하리라. 《마야 인의 성서 포폴 부》에 흐르는 이야기는 알쏭한 듯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이 책을 열 몇 살이나 스물 몇 살 무렵에 읽었다면 알아들었을까? 그때에는 그때만큼 알아들었겠지. 오늘은 오늘만큼 알아듣는다. 앞으로 예순이나 여든이란 나이를 지나가면 그때에는 또 그때만큼 알아들으리라. 책이름은 “마야사람 성서”로 옮겼다만, 마야겨레한테 거룩한 책으로,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는 이야기로, 아이들이 배우고 어른들이 되새기는 살림꽃으로 하나씩 품은 발자취이지 싶다. 그러면 이 땅에는 어떤 거룩책이 있을까? 이 겨레한테는 어떤 살림꽃이나 삶책이 흐르고 흐르는 나날일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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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29.


《득도 아빠》

 사와에 펌프 글·그림/고현진 옮김, 애니북스, 2018.11.15.



길을 깨달은 사람이 있고, 길을 깨닫고 싶은 사람이 있다. 길을 보는 사람이 있고, 길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길을 깨달으면 무엇이 달라지거나 나아질까? 길을 보면 무엇이 좋아지거나 바뀔까? 《득도 아빠》에 나오는 아빠란 사람은 처음에는 그저 수수한 사내였다고 한다. 어느 날 아주 크게 느낀 바가 있어 이곳에 있는 몸을 홀가분하게 털어낼 만했고, 이때부터 ‘부처 모습’인 채 지낸다고 한다. 이이는 깨달은 몸이면서 왜 이곳을 떠나지 않을까? 이곳에서 어느 몸도 대수롭지 않은 줄 알지만, 무럭무럭 크는 아이가 있고, 아이 곁에서 새롭고 즐겁게 일하고 싶은 곁님이 있으니, 두 사람을 돌보는 나날을 걸으면서 ‘깨달은 몸’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뜻이지 싶다. 깨닫기에 확 바뀌면서 몸이란 옷을 내려놓고 하늘로 갈 수 있겠지. 깨달았기에 오히려 그대로 깃들면서 몸이란 옷을 한결 홀가분하게 다루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 길을 보았기에 어느덧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겠지. 길을 보았으니 바로 이곳에서 더 기쁘고 아름답게 사랑을 지피는 하루를 누릴 수 있겠지. 어느 쪽이든 모두 아름다운 깨달음이자 바라봄이리라. 아쉽다면 《득도 아빠》가 꼭 한걸음만 나오고 두걸음이 없다는 대목!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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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0.28.


《나무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

 세이와 겐지 글/양지연 옮김, 목수책방, 2018.10.31.



곁님이 문득 뒤꼍에 가서 나무하고 논다. 아이들은 어머니 따라 나무 곁에서 같이 논다. 세 사람은 먼저 우리 집 석류나무를 감싼 하늘타리하고 환삼덩굴을 걷는 놀이를 하더니, 뽕나무로 옮기고, 감나무로 옮긴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슥슥 덩굴 걷는 놀이를 하고, 유자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도 걷는다. 다음이 감나무인데, 사다리를 높이 받쳐서 톱하고 낫을 같이 쥐고 올라가서 우듬지에 얽힌 덩굴을 슥슥 베고 잘라서 걷는다. 얼마쯤 걸렸을까? 한나절을 고스란히 썼지 싶다. 이동안 나무가 매우 시원해 하는 줄 느꼈다. 그리고 나무타기하고 얽힌 이야기를 알려주네.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나무를 탈 수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매달릴 수 있고, 새도 그렇게 많이 내려앉을 수 있는 까닭은, 모두 저(나무)를 좋아하고 아끼기 때문이요, 이때에는 나무가 힘껏 받쳐 준다고 속삭인다. 《나무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를 편다. 옮김말은 꽤 아쉽다. 나무하고 마음으로 속삭이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니 더 보드랍고 수수하게 옮기면 좋겠는데. 나무를 학문이나 산업이 아닌 마음벗으로 바라보면서 찬찬히 풀어내는 이야기가 곱다. 참말로 나무는 입 아닌 마음으로 우리한테 온갖 이야기를 들려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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