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5.


《안으며 업힌》

 이정임·박솔뫼·김비·박서련·한정현 글, 곳간, 2022.5.18.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리고서, 낮에 저잣마실을 간다. 어제 가볍게 스친 겨울비인데 바람이 차다. 겨울스러운 하루를 느끼면서 되도록 호젓한 데로 걸어다니지만, 시골에서도 골목이며 기스락까지 부릉부릉 쇳덩이가 들이민다. “사람이 먼저”는 거짓말이다. “쇳덩이가 먼저”요, “돈이 먼저”요, “이름이 먼저”요, “힘이 먼저”인 판이다. 어린이가 시골길을 걸어도 부릉거리는 쇳덩이는 사납게 들이민다. 귤을 한 꾸러미 사는데, 보름 앞서보다 1만 5천 원쯤 올랐다. 고흥은 진작에 귤 한 꾸러미가 45000원쯤 한다. 그래도 씩씩하게 장만한다. 아이들하고 곁님이 즐겁게 누리면 값이야 대수롭지 않다. 즐겁게 벌고, 기쁘게 쓴다. 《안으며 업힌》은 부산이라는 고장에서 피어나는 여러 이야기를 뭇눈길로 풀어낸 꾸러미이다. 틀은 글꽃이되, 옆에서 이웃이나 동무가 두런두런 들려주는 하루라고 느낀다. 여러 글쓴이가 ‘문학을 한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발을 딛고서 살아가는 오늘을 그린다’는 마음이라면 글결이 별빛에 가까웠을 테지만, 이만 한 글이 태어난 살림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를 이야기하면 된다. 담 너머가 아닌, 울타리 안팎이 아닌,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살림살이를 풀어놓으면 어느새 아름답고 알차서 서로 새롭게 만난다. 먼발치를 쳐다보면서 거머쥐려고 하면 ‘소설·문학·예술·창작’이란 이름은 얻겠지만 ‘삶·살림·사랑·숲’하고는 멀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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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4.


《세계는 1센티미터씩 바뀐다》

 노자와 가즈히로 글/정선철·김샘이 옮김, 이매진, 2011.11.4.



헛간 오른켠을 치운다. 이곳에 책더미를 좀 옮겨 놓고서 느긋하게 추스르자고 생각한다. 묵은 종잇조각을 차곡차곡 풀어서 쌓고 묶는다. 지나가는 바람은 고이 지나가면 되고, 새로 찾아들 바람은 이 땅을 쓰담쓰담 베풀면 된다. 늦은낮부터 잔뜩 모인 구름은 해거름에 빗방울을 조금 뿌리더니, 밤에는 개어 별이 초롱초롱하다. 오늘은 ‘이무롭다·이물없다’라는 낱말을 둘러싼 말밑을 풀었다. 풀고 나니 개운하면서 쓸쓸하다. 그저 사투리인 말씨인데, 아주 수수한 삶과 살림에서 피어난 낱말인데, 숱한 말글지기는 말을 말로 바라보지 않더라. 아무래도 손수 삶을 가꾸거나 살림을 짓는 하루가 아닌, 책상맡에서 맴도는 터라 말길을 놓치는 듯하다. 《세계는 1센티미터씩 바뀐다》를 읽고서 돌아본다. 퍽 잘 여민 꾸러미라고 느끼면서도 ‘1센티미터씩’이라고 군말을 넣은 대목을 곱씹는다. “온누리는 바뀐다”라고 하면 된다. 더디 바뀌지도 빨리 바뀌지도 않는다. 그저 바뀌어 간다. 바뀌려고 어지럽다. 바뀌는 길이니 어수선하다. 옛몸과 옛틀을 몽땅 녹여야 바뀐다. 티끌 하나만큼 바뀌더라도 옛길을 모조리 내려놓아야 새길로 나아간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옛말이 있는데, 그저 앞을 모를 뿐이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기에, “한 치”라는 군말을 넣었구나 싶더라. 안갯속에서는 참말로 걸을 수조차 없게 마련인데, 오히려 눈을 감으면 근심걱정 없이 척척 걸어갈 수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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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3.


《까만 아기 양》

 엘리자베스 쇼 글·그림/유동환 옮김, 푸른나무, 2006.7.19.



어제부터 큰아이는 한자를 새로 익히기로 한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익히는 길을 지나가는 푸름이라면, 영어를 비롯한 여러 이웃말에 한자를 차근차근 익힐 만하다.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글에 한자말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이웃이 남긴 자취를 읽고 새겨서, 앞으로 우리 나름대로 제대로 쉽고 참답게 사랑스러이 살림빛을 일구어 남기는 틀로 삼도록 이웃글을 익힌다. 《까만 아기 양》을 읽었다. 잘 여민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아쉽기도 하다. 2006년 무렵이라면 이럭저럭 잘 나왔다고도 여길 테지만, 2024년에 와서 짚어 보자니 퍽 묵었다고 느낀다. “우리는 서로 달라” 하는 목소리는 안 나쁘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라는 목소리를 알리려는 데에 빠진다면, 자꾸자꾸 서로 다투거나 싸우는 얼거리를 바탕에 그려 놓고 말더라. “우리는 달라” 같은 말은 처음부터 ‘가르기’를 마음에 심는 얼개라고 느낀다. “우리는 숲”이나 “우리는 사랑”이나 “우리는 바람”이나 “우리는 하늘”이나 “우리는 바다”나 “우리는 들꽃”처럼 꿈 하나를 밝힐 적에라야 비로소 새길을 연다고 느낀다. 가르려 하지 말고 꿈을 사랑으로 속삭이면 된다. 이쪽이 좋거나 저쪽이 나쁘다고 가른들 바뀔 일이란 없다. 갈라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모든 글과 책이란, 사람들이 싸움수렁에 갇힌 채 사랑을 등지도록 내몰더라. 사랑이어야 꽃가루받이를 하고, 사랑일 때라야만 아이가 태어난다.


ㅅㄴㄹ


#TheLittleBlackSheep #ElizabethShaw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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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2.


《제시의 일기》

 양우조·최선화 글, 김현주 엮음, 우리나비, 2019.2.28.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서,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책더미를 치우면서 돌아본다.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책을 더미로 사는구나 싶고, 나중에 읽을 책을 미리 쟁이듯 들여왔구나 싶다. 그러면 집에 쟁이기보다는 책숲에 놓고서 그때그때 옮겨와야 알맞겠지. 헛간에 고이 두고서 조금씩 꺼내어 읽고서 옮겨야 나을 수 있다. 덜어내고 비워서 그득그득 물결을 낮추지만 썩 티가 나지 않는다. 《제시의 일기》를 덮었다. 서슬퍼런 지난 어느 날을 하루글로 남긴 대목은 돋보인다. 아이를 아끼는 마음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가시밭길을 걷던 마음도, 퍽 투박하게 담으려고 힘쓴 자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빠진 대목도 똑똑히 느낀다. 아무런 이름을 남기지 못 하거나 않은 채 땀방울로 이 터전을 일군 숱한 사람들 마음은 이 꾸러미에서 느끼기 어렵다. 남자현 님이 이녁 발자국을 글로 남겼다면 어떤 이야기였을는지 헤아려 본다. 시골에서 나고자라며 들을 짓고 보금자리를 짓고 아이한테 수수한 말씨를 물려준 여느 순이돌이가 이녁 말을 글로 옮길 수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였을는지 생각해 본다. 살림꾼은 살림을 적게 마련이고, 글바치는 글붓에서 맴돈다. 시골내기는 시골을 적을 테고, 서울내기는 서울을 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면, 들숲바다를 푸르게 품으며 어깨동무하는 사랑일 노릇이라고 본다. 예나 이제나 이 대목은 마찬가지이다.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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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1.


《오르페우스의 창 3》

 이케다 리에코 글·그림/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2.4.15.



새는 내려앉아서 귤이랑 능금을 쪼면서 날갯짓소리를 남긴다. 참새떼는 푸릉푸릉 모여서 날아다닌다. 부엌닫이를 손본다. 작은아이가 거들고, 큰아이도 손을 보탠다. 오랜자취를 새롭게 손질하면서 이어갈 보금자리이다. 우리가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살아가려면, 누구나 ‘우리 집’을 누릴 수 있어야지 싶다. 《오르페우스의 창 3》을 지난해에 읽었다. 석걸음에서 멈추었다. 퍽 오래된 그림꽃이기는 하지만, 줄거리나 얼거리가 고지식하다. 뻔하고 따분하다. 어릴 적에 《올훼스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판을 읽은 적 있는데, 예전(1982년)에도 썩 심심했다. 돈·이름·힘이 있어도 스스로 굴레에 갇힌 채 헤매는 몸짓은 갑갑하다고 느꼈고, 이런 틀을 짜서 글이나 그림을 선보이는 보람이 무엇일는지 아리송했다. 눈망울을 틔우는 길동무가 아닌, 외려 눈망울을 가두거나 잠그는 차꼬 같더라. 어질게 하루를 그리면서 사랑으로 오늘을 살림하는 이야기를 글이며 그림으로 담는 사람이 늘어날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더러 먼저 눈망울을 틔우라고 외치기 앞서, 나부터 우리 둥지에서 두런두런 하루를 짓고 펴면서 아이들하고 새길을 일굴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읽고서 아쉬운 책은 아쉽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나누자. 읽는 동안 아름답다고 느낀 책은 아름답다고 기쁘게 노래하고 나누자. 여름이 깊을수록 겨울이 보이고, 겨울이 깊을수록 여름이 보인다.


ㅅㄴㄹ


#池田理代子 #オルフェウスの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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