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9.


《그림자의 섬》

 이마 이치코 글·그림/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3.8.15.



하루가 가볍게 흐른다. 어제는 어느덧 어렴풋하다. 오늘은 새로 오른 해를 보면서 맞이한다.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는 여름하고 겨울이 오는 줄 어떻게 알아?”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아는 바를 바로 말하려다가 멈춘다. 아니야, 이렇게 물어오면 먼저 아이 생각을 들어야지.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느껴서 아는데, 벼리는 어떻게 느껴서 아니?” 큰아이는 철마다 다른 냄새가 있다며, 이 냄새가 어떠한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멋지구나. 예전에는 아이 말을 내가 손수 수첩에 옮겨적었지만 이제는 “그래, 네 멋진 느낌을 글로 갈무리하고서 즐겁게 밤꿈을 꾸자.” 하고 이야기한다. 《그림자의 섬》은 아껴 둔 이마 이치코 님 만화책. 새님하고 살아가는 만화님은 꾸준히 《백귀야행》을 선보이는데, 언제 다음걸음이 한국말로 나오는가 하고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드문드문 이런 짤막얘기를 읽는다. 새님하고 하루를 열고 닫는 만화님이기에 더더욱 마음으로 여러 소리를 듣고서 이러한 결을 만화로도 담아내지 싶다. 생각해 보라. 새님하고는 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노릇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철마다 달마다 다른 빛을 가슴으로 품고서 환하게 일어나는 하루가 되리라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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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8.


《생각의 주인은 나》

 오승현 글, 풀빛, 2017.6.30.



자전거를 달려 볼일을 마치는 재미를 작은아이가 차츰 익힌다. 큰아이도 아버지가 볼일이 있으면 으레 자전거를 같이 타려 했고, 읍내마실을 함께 다니려 했다. 어느덧 십일월로 접어드는데, 문득 생각하니 나나 작은아이나 장갑도 없이 반바지에 반소매(또는 민소매) 차림이다. 겨울에도 워낙 폭하니 이러고 살기는 하지만, 우리 집안을 빼고는 이 남녘에서 다들 두툼한 겉옷에 긴바지 차림이다. 그러려니 하며 지낸다. 춥다고 여기는 마음이라면 추위를 받아들일 테고, 날씨가 아닌 오늘 우리가 스스로 바라보고 나아갈 길을 헤아리면 어느 옷차림이든 덥지도 춥지도 않을 테니까. 《생각의 주인은 나》를 읽는다. 책상맡에 꽂은 지 이태가 지난 줄 어제 깨달았다. 이태씩 묵히고도 있는 줄 잊었다. 열두어 살부터 읽을 만한 책이지 싶으나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말씨가 좀 어렵다. 조금 더 쉽고 부드러이 말결을 골라서 이야기를 풀면 좋을 텐데. 어린이나 푸름이가 다른 눈치가 아닌 스스로 생각을 가꾸고 지어서 하루를 누리기를 바라는 뜻 그대로, 한결 수수하다면 좋겠다. 모든 길은 스스로 열고, 모든 하루는 스스로 누린다. 내 생각은 바로 내 생각이듯, 우리 몸하고 마음은 바로 우리 깊은 넋에서 반짝반짝 별빛으로 피어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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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6.


《진짜 별이 아닌 별이 나오는 진짜 이야기》

 오카다 준 글·윤정주 그림/이경옥 옮김, 보림, 2008.8.25.



둘레에서 우리 아이들을 볼 적마다 으레 “몇 학년이니?” 하고 묻는다. 어른이라는 이들은 다 이렇다. 어른들 스스로 아이를 보며 “난 몇 살이야. 넌 몇 살이니?”처럼 먼저 스스로 밝히는 이가 드물다. 게다가 “네 이름은 뭐니?” 하고만 물어볼 뿐, 어른 스스로 “난 이름이 ○○야. 넌 이름이 뭐니?”처럼 먼저 이름을 밝히는 이도 아주 드물다. 생각해 보라. 반가이 맞이하거나 사귀거나 알고 싶다면, 어른부터 스스로 이름이며 나이를 밝힐 노릇 아닌가? 그대(어른)가 누구인지 알고 아이들이 그대한테 이름이며 나이를 밝혀 주어야 하는가? 《진짜 별이 아닌 별이 나오는 진짜 이야기》를 얼결에 만났다. 얼결이라기보다는 글쓴님 다른 책을 읽고서 꽤 마음에 들어 이분 책을 하나하나 장만해서 읽는다. 다른 책도 좋은데 이 책 ‘별’을 다루는 이야기도 꽤 좋다. 한국에서 ‘별 스티커’를 교실 뒤쪽 알림판에 붙여서 서로 겨룸판이 되도록 일삼던 짓은 아마 일본에서 건너오지 않았을까? 이런 흐름이 여느 일터로도 넘어가서 ‘영업 매출 성과표’로 불거지고. 아이들이 저마다 별인 줄, 또 어른도 어른이란 몸이기 앞서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별인 줄 잊는다면 이 삶터는 망가지는 길로 가겠지. 별을 엉뚱한 데서 찾지 말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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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7.


《지젤 알랭 5

 카사이 수이 글·그림/이청 옮김, 대원씨아이, 2019.10.31.



아이들한테 읍내마실이란 무엇일까? 큰아이는 이제 웬만해서는 읍내이든 다른 곳이든 나가고 싶지 않다. 작은아이는 가깝든 멀든 나들이를 다니고 싶다. 아버지는 책숲 알림종이를 뜨려고 읍내에 다녀오기로 하는데, 작은아이는 같이 가겠다고 짐을 꾸린다. 새삼스럽지만, 시골에서 시골버스를 타노라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늘 새치기를 한다. 새치기를 안 하셔도 빈자리가 많으나 굳이 새치기를 한다. 이 모습을 보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똑같이 군다. 다만 어린이나 푸름이 가운데에는 이런 꼴이 싫어 일부러 뒤로 가서 기다리는 아이가 더러 있다. 오늘도 할아버지들이 새치기를 하며 작은아이 머리를 툭 밀치고는 멀쩡히 올라탄다. “할배, 뭐 하시는 짓이오?” 새치기를 할 적에는 다들 얼마나 잽싼지 모른다. 하! 한숨을 가늘게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2011년에 처음 한국말로 나오고 2014년을 끝으로 더는 한국말로 안 나오던 《지젤 알랭》이 다섯 해 만에 다섯걸음이 나왔다. 드디어! 반가이 펼친다. 여러 해 만에 넘겨서 그런지 줄거리가 살짝 가물거리다가 쉰 쪽쯤 읽자 비로소 떠오른다. 그런데 좀 늘어진다. 늘어지네. 느슨하네. 다잡아 주면 좋겠는데, 어려운 노릇일까. 그래도 오랜만에 뒷걸음이 나온 대목이 고맙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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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2.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김은영 글·김상섭 그림, 창비, 2001.7.30.



한창 새로운 어린이 사전을 쓰려고 갖은 자료를 모으고 책을 새로 읽던 2001년 무렵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를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열여덟 해가 흐른다. 그때 만난 동시집을 새로 읽어 보지만 거북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동시를 쓴 초등교사는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더러 ‘풋고추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푹 찍어서 맛을 보라’고 하는데, 이 땅에는 김치뿐 아니라 풋고추이건 빨간고추이건 못 먹는 어린이나 어른도 많다. 왜 한국사람이 다 김치를 먹어야 하지? 왜 한국사람이 시뻘겋게 물들인 매운김치를 먹어야 하지? 이제는 이런 말을 함부로 뱉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몸이 달라서 ‘삭힌 먹을거리’를 도무지 못 받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섣불리 김치를 먹이려 하지 말고, 그런 얘기를 이렇게 동시로 쓰지 말자. 어른으로서는 대수롭지 않고 ‘어떻게 한국사람이 그래?’ 같은 생각은 제발 접자. 다 다른 아이가 다 다르게 아름다우며, 시골아이도 서울아이도 서로 아름다운 줄 안다면 이제 눈을 다르게 뜨자. 배추로는 김치 아닌 부침개를 할 수 있고, 미역국을 배추로 끓여도 좋으며, 된장찌개도 좋다. 날배추를 아삭아삭 먹어도 되겠지. 배추 하나를 먹는 길이 여럿이듯, 동시도 이야기도 삶도 가르침도 배움길도 여럿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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