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


《논 벼 쌀》

 김현인 글, 전라도닷컴, 2019.10.31.



11월 끝자락에 광주 마을책집 ‘심가네박씨’에서 조촐히 책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는 《논 벼 쌀》이라는 책을 기리면서, 이 땅에서 논이라고 하는 터, 논에 심어서 거두는 벼, 벼로 얻는 쌀밥이 얽힌 이야기가 흘렀다고 한다. 광주를 다녀가는 길에 마을책집에 들러 《논 벼 쌀》을 장만했고, 바로 저녁에 가만히 읽어 보았다. 책이름처럼 논이며 벼이며 쌀하고 얽힌 살림을 다룬다고 할 텐데, 논·벼·쌀보다 다른 이야기가 조금 더 많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가 좀 어렵다. 글쓴님이 흙지기이기 앞서 서울대를 나온 탓일까. 요즈음 거의 듣기 어려운 한문 말씨가 책에 빼곡하다. 굳이 이런 한문결로 글을 써야 했는지 모르겠다. 먼먼 옛날부터 흙지기 살림이란 임금이나 벼슬아치 살림이 아니지 않은가? 1500년대나 500년대나 더 먼 지난날 흙지기가 한문결로 말을 했을까? 아닐 테지. 논말을, 벼말을, 쌀말을, 무엇보다 하늘말이며 바람말이며 비말이며 흙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좋겠다. 무당벌레가 알아듣고 거미하고 제비랑 속삭이는 말씨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좋겠다. 이웃집이랑 잔치를 하고, 동무집이랑 어깨춤을 짓는 숲말로 구름말로 꽃말로 이야기를 섞을 수 있으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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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30.


《엄마와 나》

 나카가와 미도리·무라마쓰 에리코 글·그림/이재화 옮김, 디앤씨미디어, 2017.5.2.



그림을 그리는 노인경 님이 빚은 《사랑해 아니요군》이 꽤 사랑받는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아이하고 누리는 수수한 하루’를 조용하게 돌아보는 이야기가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 살짝 달라졌구나 싶다. 크다란 인문이나 커다란 예술이나 큼직한 철학이나 굵직한 문학이란 이름이 아니어도 된다. 아니, 그런 이름은 ‘삶을 사랑하는 슬기’에 댈 수 없겠지. 《엄마와 나》를 노인경 님 책하고 나란히 읽었는데, 《엄마와 나》가 한결 수수하면서 차분하구나 싶다. 일본이란 나라는 참 오래도록 이렇게 수수한 하루를 차분하면서 참하게 담아내는 눈빛이 밝다. 먼 데에서 찾지 않는달까. 바로 곁에서 찾아보고, 바로 스스로 알아보며, 바로 이곳에서 하루를 짓는구나 싶다. 곰곰이 보면 한국이란 나라도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다른 데를 높이거나 섬기거나 따르지 않았다. 나라지기나 벼슬아치란 이름을 내세운 이들은 한문이며 중국을 높이거나 섬기거나 따랐다지면, 거의 모든 수수한 사람들은 작은 보금자리·마을·숲에서 그야말로 작디작게 사랑으로 삶을 짓는 슬기로운 살림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더 재미난 모습은 안 찾아도 된다. 삶은 다 뜻있고 재미나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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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29.


《아름다운 손》

 나해철 글, 창작과비평사, 1993.3.30.



광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난다. 길손집에 샛바람이 꽤 많이 들어와서 코가 시렸다. 바닥은 후끈하되 샛바람이 센 얼개는 여러모로 아쉽다. 다만 샛바람이 많이 드니 숨쉬기에는 좋은 셈이려니 여겼다. 새벽에 ‘빵’을 헤아리며 노래꽃을 한 자락 쓴다. 어제 찾아간 ‘산수시장 책빵’ 문틈에 이 노래꽃을 가랑잎하고 슬쩍 꽂아 놓는다. 광주에서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30분. 이만큼 날려고 하늘나루에서 꽤 오래 보낸다. 가만히 기다리면서 ‘섬’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노래꽃을 한 자락 쓴다. 기다리는 곳에서 생각을 가다듬으며 노래가 흐른다. 몸도 가볍게 풀면서 춤을 추어 본다. 시집 《아름다운 손》을 읽었는데, 글맛이 썩 좋지는 않다. 겉치레가 좀 많다. 구태여 멋을 안 부려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될 텐데. 굳이 겉치레를 씌우지 않아도 아름다이 시요 사랑스레 노래가 될 텐데. 시집을 그냥 덮으려는데 끝자락에 김남주 님이 붙인 글이 있다. 아, 이 글이 있기에 이 시집이 빛나는구나. 있는 그대로 이 시집을 타일러 주는 목소리가 듬직하다. 참말로 김남주 님은 시인일 뿐 아니라 글꾼이요, 일빛이며 사랑손이네. 이런 손으로 낫질을 하면 볏줄기가 가멸게 누울 테고, 이런 손으로 붓을 쥐면 글살림이 가멸차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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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28.


《즐거운 빵 만들기》

 간자와 도시코 글·하야시 아키코 그림/김나은 옮김, 한림출판사, 2008.12.2.



금요일에 광주공항에서 제주로 건너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한다. 표를 끊어 주신 분이 10시 35분에 탄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모저모 하려고 일찍 가야 할 텐데 아무래도 고흥서 광주까지 그때에 못 맞춘다. 하루 일찍 광주로 시외버스를 타고 달린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뒤 전철로 갈아타 금남로에서 내리고, 슬슬 걸어서 〈심가네박씨〉라는 마을책집에 들렀다. 이러고서 ‘신시와’라는 길손집으로 가다가, 코앞에 산수시장이 있기에 저잣길을 둘러보려 한다. 전라도서 열 해를 살았어도 광주길은 아직 낯설다. 더 걸어야 조금씩 낯을 틔우겠지. 길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주워 수첩에 하나씩 끼우는데 〈책빵〉이란 이름이 붙은 가게 불빛이 밝다. 아, 이곳은 어떠한 살림을 지을까? 저잣길 안쪽에서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길손집으로 돌아가다가 슬쩍 들른다. 〈책빵〉은 빵집이라고 한다. 빵집이되 아이들이 어버이랑 찾아와서 그림책을 누릴 수 있도록 꾸몄단다. 파는 그림책 아닌 읽는 그림책으로 앙증맞게 가꾸었네. 《즐거운 빵 만들기》가 눈에 뜨인다. 큰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나온 그림책이네. 그때에는 큰아이를 돌보느라 책을 거의 못 읽어서 몰랐다. 나중에 아이들 이끌고 이곳에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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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1.27.


《거인을 깨운 캐롤린다》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전하림 옮김, 보물창고, 2007.5.25.



조용한 나라는 더없이 재미없으리라. 노래가 없고 춤이 없는 나라는 무척 따분하리라.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서 신이 나는 노랫가락이나 춤사위를 누리지 않는 나라는 그야말로 메마르리라. 그림책 《거인을 깨운 캐롤린다》는 눈치를 보느라 조용하기만 한 마을에 새롭게 태어난 시끌벅적 말괄량이하고 숲님이 만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는 노래하고 싶고 춤추고 싶으며 놀고 싶다. 다른 어른이나 또래 아이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숨을 죽이며 얌전하다. 생각해 보라. 우리네 학교란 곳이 어떠했는가? 모두 책상맡에 반듯하게 앉아서 입을 다물도록 내몬 나날 아닌가. 요새는 조금 달라졌다지만, 교실은 그대로이고 학교도 그대로이다. 교과서라든지 대학입시도 그대로 있다. 이 머저리 교실에 학교에 대학입시에 교과서를 몽땅 갈아엎지 않고서야 아이들이 어떻게 노래하고 놀고 춤추면서 새롭게 사랑을 지피는 아름다운 길을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짓겠는가. 캐롤린다란 아이는 뭘 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첫째, 큰님을 깨웠다. 둘째, 큰님을 재웠다. 깨웠으니 재운다. 노래로 깨웠고, 노래로 재웠다. 이뿐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가? 노래하며 논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나? 노래를 듣고서 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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