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4.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글, 창비, 2009.12.30.



오랜만에 송경동 님 시를 읽는다. 열 해를 묵은 시집을 들추어 펼치는데 첫머리에 놓은 노래가 꽤 짙다. 단단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시에서 힘이 빠지고 이리 갈팡질팡 저리 오락가락 어수선하구나 싶다. 시집 하나를 읽으면서 마음으로 꼽을 시를 둘쯤 뽑는다면 훌륭하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이 말이 하나도 안 옳다고 여긴다. 시집 하나에 흐르는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하나로 이어질 노릇이지 싶다. 써 달라고 해서 써 주는 시가 어느 만큼 모였기에 하나로 묶는 책이 아닌, 스스로 가슴으로 뱉어낸 시를 여미는 책이 시집 아닐까. 길바닥을 읽고, 구름길을 읽으며, 들판을 읽고, 냇물을 읽으면서, 빗물이며 눈물을 나란히 읽은 숨결을 하나하나 옮기기에 시집 아닌가. 목에 힘이 들어가도 시가 아니지만, 목에 힘이 없어도 시가 아니다. 헛힘이나 겉힘이 아닌, 속힘이며 사랑힘을 참다이 길어올려서 소나기처럼 터뜨릴 적에 비로소 시힘이리라 느낀다. 써 달라고 해서 무턱대고 써 주지 않으면 좋겠다. 싸워야 할 곳에서 싸우며 길사람이 되듯, 모든 껍데기를 훌훌 벗고서 맨몸으로 아이 손을 잡고서 상냥하게 참하게 나긋나긋, 이러면서 다부지고 씩씩하게 노래하는 한 마디를 읊으면 좋겠다. 시는 구호가 아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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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5.


《여름눈 랑데부 2》

 카와치 하루카 글·그림/김유리 옮김, 삼양출판사, 2012.12.22.



몸을 움직이는 내가 있다. 나는 이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네가 하는 말에 따라 움찔한다든지, 네가 바라는 길에 맞추어 움직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바라면 이 몸은 언제든지 말이 되다가 김밥이 되다가 이불이 되고, 짐꾼이 되다가 부엌지기가 되다가 흙지기가 되다가 책지기가 된다. 붓을 쥐면서 글꽃이나 그림꽃을 피우고, 나뭇가지를 쥐면서 겨우내 웅크리면서 새봄을 꿈꾸는 잎망울이며 꽃망울을 느낀다. 마당을 쓸면서 어느새 내려앉은 가랑잎이며 이 가랑잎이 몸을 바꾸어 태어난 까무잡잡한 새 흙을 느낀다. 《여름눈 랑데부》 두걸음을 넘기니 젊은 사내는 죽은 사내한테 몸을 맡기면서 ‘죽은 사내가 지내는 저승나라’로 넘어간다. 몸은 이승에 두고 넋이 저승으로 간 셈이다. 몸이 없이 저승에 있던 죽은 사내는 젊은 사내 몸을 입고는 ‘몸이 이렇구나’ 하고 새삼스레 놀라고, 고맙게 얻은 이 몸으로 한동안 무엇을 할는지, 이승에 어떤 아쉬움을 묻어 놓았기에 새롭게 떠나지 못하는가를 생각한다. 몸이란 무엇이고 마음이란 무엇일까? 몸으로 만져 보아야 비로소 아는가, 아니면 몸이 아니어도 마음으로 모두 읽고 느끼면서 즐겁게 사랑이라는 숨결로 빛날 수 있는가. 참말로 사랑이라면 몸을 벗고서 환한 마음으로 만나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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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1.


《호호 아줌마의 나들이》

 알프 프로이센 글·비에른 베리그림/홍연미 옮김, 비룡소, 2001.10.25.



마을고양이는 우리 집에 눌러앉을 생각일까 하고 어림해 보는데, 아무래도 마을고양이 마음일 테지. 아이들은 ‘ㅇ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마을고양이한테는 ‘ㅇㅂ’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예전에는 고양이마다 꽤 긴 이름을 붙이더니 짧게 부르는 이름을 생각해 내네. 새가 드나들고 갖은 벌레가 어우러지고, 개미에 나비에 벌에 지렁이에 지네에 뱀에 개구리에 두꺼비에 고양이까지. 우리 책숲에는 고라니하고 꿩하고 족제비하고 너구리하고 갖은 짐승이 곳곳에 보금자리를 틀어서 살아가니 이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넉넉히 누릴 만하다. 《호호 아줌마의 나들이》를 읽으면 호호 아줌마가 여느 때에는 고양이나 개나 돼지나 닭이 들려주는 말을 듣지 못하지만, 어느새 조그마한 몸으로 바뀌면 모든 이웃이 들려주는 온갖 말을 다 들을 뿐 아니라, 호호 아줌마 생각도 펼 수 있다. 그러게. 우리는 너무 커다란 몸뚱이를 붙잡느라 개미하고 말을 못 섞지는 않을까? 고양이만 한 몸이 된다면, 닭만 한 키가 된다면, 나비만 한 날개를 어깨에 붙인다면, 우리를 둘러싼 숱한 이웃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펴면서 한결 아름다이 보금자리를 가꾸고 마을을 일구는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몸을 내려놓으면 마음을 열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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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2.


《검은 여우》

 베치 바이어스 글/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2002.2.28.



이레쯤 앞서부터 곁님이 바늘을 깎는다. 우리 집에는 이런 나무 저런 나무가 제법 있다. 뜨개질을 할 적에도 온하루를 쏟아서 길디긴 날을 한 땀 두 땀 나아가는 곁님은, 겨울볕을 먹으면서 여러 날에 걸쳐서 바늘을 깎고 다듬는다. 손수 깎은 뜨개바늘은 값을 매길 수 없겠지. 손수 지은 뜨개옷도 매한가지이다. 삶이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 기쁜 하루를 누리려고 지은 살림에 어떤 값을 매길까? 나물 한 줌에, 무 한 뿌리에 어떤 값을 매겨야 알맞을까? 온사랑을 담아서 쓴 동시 한 꼭지나 책 한 자락에 어떤 값을 매겨야 걸맞을까? 사고파는 값이 아니라, 즐기거나 나누거나 사랑이 흐르는 빛일 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오늘이 되겠지. 《검은 여우》를 처음 쥔 지는 여러 해 되었으나 그만 까맣게 잊었다. 책상맡에서 퍽 오래 먼지만 묵은 책을 탈탈 털어서 펴는데 어느새 마지막 쪽을 넘긴다. 여우하고 마음으로 생각을 나눈 아이 마음이 대견스럽고, 이 아이를 너그러이 살핀 어른들이 고맙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이 꽝 하고 터지지 않는 까닭을 알겠다. 비록 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총을 팔아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맨몸으로 따사로운 빛을 나누는 아이들이 있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나는 보금자리가 될 테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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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3.


《일하지 않는 두 사람 6》

 요시다 사토루 글·그림/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다섯걸음이 나온 뒤 세 해 넘게 여섯걸음이 나오지 않던 《일하지 않는 두 사람》. 드디어 나왔구나. 살림돈을 푼푼이 모은 끝에 드디어 장만해서, 큰아이가 ‘쌓기밥 차림종이’를 그리는 동안 읽는다. 앞선 다섯걸음을 떠올리니, 여섯걸음은 그림결이 많이 바뀌었다. 어라, 너무 바뀌었는걸?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이끄는 틀도 제법 달라졌다. 아, 어쩐지 다섯걸음째까지 좋았고, 여섯걸음은 좀 군더더기가 많지 싶다. 여섯걸음부터 새로 나오는 예전 벗은 반가우나, 오빠 쪽 동무 여자친구는 그리 반갑지 않다.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은 맞되 “즐겁게 살려는 두 사람”인 만큼, 이 대목에 더 마음을 기울이고, 그림결도 섣불리 건드리지 말고, 굳이 새로운 사람을 더 끌어들이려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본다. 무엇보다도 “돈을 버는 일”이어야 살아가는 보람이 아니라는 대목을 수수하면서 부드럽게 짚으려는 얼거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차분하기를 빈다. 그렇다면 일곱걸음이 한국말로 나오면 장만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살짝 망설이리라. 좋았을 때만 떠올리고 싶달까. 큰아이는 어느덧 차림종이를 다 그렸다. 손수 지어서 먹는 밥을 손수 차림종이로 옮겨내어 그리니 멋지네. 다음달 도서관 얘기종이에 같이 담아서 보낼까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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