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81 숨을 쉬듯



  숨을 쉬듯 말하면 됩니다. 숨을 쉬듯 글쓰면 됩니다. 숨을 쉬듯 노래하면 됩니다. 숨을 쉬듯 춤추면 됩니다. 숨을 쉬듯 웃고 살림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숨을 쉬듯 바라보면서 읽으면 됩니다. 숨을 쉬면 마주하고, 숨을 쉬듯 꿈꾸고, 숨을 쉬듯 하루를 그리면 됩니다. 숨을 쉬기에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숨을 안 쉰다면 죽어요. 밥을 먹거나 물을 안 마셔서 죽기보다는, 숨을 안 쉬기에 죽습니다. 돈이 없어서 죽지 않고, 숨을 못 쉬니 죽습니다. 우리가 이 별에서 살아가며 가장 대수로운 하나를 꼽자면 숨입니다. 이 숨은 바람이고, 바람은 하늘이며, 하늘은 우리 넋이 빛나는 품입니다. 홀가분하게 날갯짓하는 마음이 숨결로 드러납니다. ‘숨막힌다’는 말이나 “숨막혀 죽는다” 같은 말을 곱씹어 봐요. “숨돌릴 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생각해 봐요. 누구나 아이요 어른(또는 어버이)이라는 두 넋이 하나되어 살아갑니다. 다 다르게 사랑을 받아 태어나고, 다 다르게 사랑을 지으며 살아가지요. 다 다르게 꿈씨앗을 받아 자라며, 다 다르게 꿈씨앗을 가꾸며 살아가고요. 이 둘을 어우르는 길은 언제나 스스로 찾을 노릇이니, 우리가 마음을 밝힐 말씨·글씨는 늘 스스로 헤아려 가다듬을 노릇이에요. 숨을 쉬듯 생각을 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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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80 이제부터



  여태 안 했다면 이제부터 하면 됩니다. 여태 잘못을 저질렀으면 이제부터 잘못을 씻으면 됩니다. 여태 멍청했으니 오늘부터 슬기롭겠습니다. 여태 바보스러웠으니 오늘부터 참하겠습니다. 여태 마구잡이였다면 바야흐로 곱게 거듭나면 돼요. 여태 엉망이었으면 비로소 가지런히 매만지겠어요.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고들 으레 말하더군요. 이 말은 살을 좀 붙여 “마음을 안 고치는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라 해야지 싶고 “마음을 고치는 사람은 고쳐쓸 수 있다”란 말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엉터리인 사람은 마음을 안 고치기에 손짓도 눈빛도 몸짓도 안 고칩니다. 엉성하더라도 착하면서 아름답고 상냥하게 나아가는 사람은 마음부터 고치기에 아직 엉성하다지만 차근차근 새길을 걸어갑니다. 이제부터 한결 신나게 잇고 지으면서 꿈과 사랑을 춤노래로 즐기면 됩니다. 늘 한 가지 길이 있어요. 오늘부터 하거나 이제부터 걸으면 돼요. 지난 걸음은 잊지 말되 말끔히 털고서 즐거이 오늘부터 하고, 이제부터 걸어갈 하루씨앗을 그려요. 하루를 아름다이 노래하려는 마음을 모아 이야기를 짓는다고 생각해요. 새롭게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을 푸르게 누리는 나날이기를 바라기에 달라지거나 바뀌거나 거듭나서 시나브로 피어난다고 느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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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78 불길



  불은 여러 쓰임새입니다. 활활 태워서 재를 남깁니다. 태우기에 따뜻하거나 뜨겁고, 밥을 끓이거나 국을 익힙니다. 태워서 재가 남기에, 재로 빨래를 하거나 이를 닦거나 똥오줌을 재워 거름으로 거듭나도록 다스립니다. 불을 피우니 밝습니다. 불빛이 되니 길잡이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 불길이 치솟으면 그만 스스로 까맣게 타면서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죄다 사라지고 말아요. 마음에 왈칵하고 불을 지피면 어느새 스스로 일구던 살림이며 삶을 모조리 잿더미로 바꾸고 말지요. 불(화·분노·증오)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불길과 불빛이라는 결에 따라 쓰임새가 있습니다. 들불처럼 일어나기에 확 갈아엎지만, 모두 태우지요.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합니다. 마음에 일렁이는 불길을 잠재우거나 다스린다면, 태워서 잿더미로 바꾸는 숨결이 아닌, 스스로 기운을 끌어내는 따스한 빛살이 될 만합니다. 버럭버럭 성을 내며 쓰는 글이라면 이웃이며 동무를 불사르는 무시무시한 씨앗이 퍼집니다. 차근차근 눈을 밝히며 쓰는 글이라면 둘레에 포근하면서 상냥하고 어진 씨앗을 심습니다. 낱말책에 담을 낱말·뜻풀이·보기글·보탬말은 ‘타오르는 불길’보다는 ‘환한 햇빛’이라는 마음이 될 적에 차근차근 달래며 가꿀 만합니다.


성난 아이 마음에 부디 불씨가 아닌 꽃씨가 자라나면 좋겠어요.

怒っている子供の心にどうか火種ではなく、花の種が育ってほしいです。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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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77 고치기보다



  얼핏 보면 제가 숱한 글을 ‘고치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글고치기’를 안 합니다. “글에 생각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살피기”를 합니다. 아무 낱말이나 그냥 안 쓰고, 벼슬꾼(권력자)·나라(정부)·붓바치(지식인)가 눈속임으로 퍼뜨리는 말씨를 섣불리 따르지 않고서, 우리가 저마다 삶자리에서 스스로 즐거우며 슬기롭게 살리거나 북돋우거나 지어서 생각을 가꾸는 징검돌이 될 말씨를 돌아보려 합니다. ‘바깥말(외국어/외래어)’을 우리말로 고치는 일은 만만하지 않아요. 그야말로 꾸준히 오래 익혀야 할 만합니다. 이런 말배우기와 글쓰기는 스스로 생각을 모조리 뜯어고쳐서 숲빛이 되고 싶을 적에 하고, 어린이다운 눈빛으로 온누리를 사랑하려 할 적에 하지요. 수수한 이웃님이 하실 만한 말배우기와 글쓰기라면, “얄궂은 바깥말을 우리말로 고치기”보다, “스스로 살림자리에서 즐겁게 새말을 지어서 쓰기”라고 할 만해요. “쉬운 우리말로 고치기”보다는 “스스로 가꾸는 삶에서 피어나는 말로 생각을 새로 짓기”가 더없이 즐겁고 빛난다고 느껴요. 우리는 모두 하늘빛이니 하늘을 노래하면 됩니다. 우리는 모두 꽃내음이니 꽃을 이야기하면 돼요. 우리는 모두 다 다른 사랑이니, 사랑스레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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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2.3.10.

나는 말꽃이다 76 걱정



  어릴 적부터 하고픈 일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고삭부리였거든요. 고삭부리는 ‘개근상’을 못 받기 일쑤입니다. 툭하면 앓거나 아파서 쓰러져요. 저는 고삭부리에다가 말더듬이인 터라 쉽게 놀림받고, 으레 얻어맞고, 언제나 억눌린 어린 나날이었습니다. 스스로 뭘 잘 하는지도 못 하는지도 모르는 채 꾸역꾸역 하루를 맞이해야 했는데, 앓아누우면서 얻어맞으면서 짓밟히면서 시달리면서 속으로 “여기 있는 나는 내 참된 몸이 아니야. 내 참된 숨빛은 여기에 없어.” 하고 생각했어요. 어느 때부터인가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하고픈 만큼 하고, 할 만큼 했습니다. 어른이나 윗내기가 나무라거나 때리면 달게 받아들이며 “난 내 힘을 다했어.” 하고 생각했어요. 어린배움터에서 내 솜씨보다 떨어지는 동무가 뒷돈을 먹여 으뜸에 오르고서 최우수상을 받아도 빙그레 웃으며 “축하해.” 하고 얘기했어요. 눈가림·눈속임을 하는 이들 스스로 그들 민낯을 알아요. 굳이 안 따져도 되고, 그들이 뭘 해먹는다고 걱정할 일이 없어요. 머잖아 모든 속낯이 드러나 바로잡히더군요. 말뜻풀이를 하거나 말밑찾기를 하며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천천히 찬찬히 하나씩 조금씩 가다듬으면서 별빛·햇빛·바람빛·풀빛을 곱게 새롭게 사랑스럽게 담습니다.


ㅅㄴㄹ


이승만·박정희·전두환만

쓰레기였을까?


이명박·박근혜 때만

나라가 어두웠을까?


곰곰이 보면

이 나라는

누가 우두머리에 서더라도

착하거나 참되거나 사랑스러운 길하고

늘 동떨어졌다고 느낀다.


아이들한테

조선왕조실록을 읽히는 어버이가

끔찍하게 많다.


조선왕조를 이룬 이씨 사내가

참말로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보여줄

아름다운 어른일까?

그무렵 벼슬아치(신하·지식인·사대부)인

사내 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왜 읽히려 하는가?


잘 보면 좋겠다.

조선 500년은

‘이씨 사내 500년’이다.

‘이씨 남자 가부장권력 500년’이란 뜻이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새나라 새누리 새터 새빛을

스스로 가꾸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서기를 바란다면

끔찍한 ‘이씨 남자 가부장 권력 500년’을

처음부터 모조리 까뒤집고서

새로 읽고 얘기할 노릇이리라.


누가 우두머리에 서느냐가 아닌

‘집·마을·터전·나라·지구’를

우리가 어떤 눈빛과 마음으로

돌볼 적에 아름답게 나아가는가를

생각할 오늘이라고 느낀다.


‘민주’란 말에서 ‘민(民)’이란

“눈먼 종”이라는 속뜻인 줄

아는 사람이 드물다.


한자말을 써서 나쁠 일은 없다.

한자말에 어떤 숨은뜻이 있는지

민낯을 안 읽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종(노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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