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50 어린이 눈높이



  낱말책은 모름지기 열 살 언저리부터 누구나 읽도록 쓰고 엮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마친 사람조차 알아보기 어렵도록 써서는 안 되고,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혀 어려운 말씨를 잔뜩 외워야 하는 푸름이마저 읽어내기 어렵도록 엮어서는 안 되지요. 더 헤아린다면, 한글을 익힌 아이 누구나 읽도록 할 적에 비로소 말꽃답다고 할 만합니다. 여느 글도 열 살 어린이를 이웃으로 생각하면서 쓴다면 매우 쉽고 부드러우면서 상냥한데다가 아름답겠지요. 일고여덟 살 아이를 동무로 삼으면서 쓰면 그야말로 깔끔하고 고우면서 사랑스러울 테고요. 시골 할매 할배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눈높이로 글을 쓰고 낱말책을 엮으면 눈부신 책이 태어난다고 하겠습니다. 뜻밖에 “어린이 눈높이로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분이 많은데, 어른이라면 모두 어린이로 살았습니다. 아기로 안 태어나고 어린이로 안 살고서 어른이 못 됩니다. 모든 사람 마음밭에는 어린이가 숨쉬지요. 스스로 마음을 틔워서 ‘어린이 눈길’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일고여덟 살이나 열 살이 되어 어떻게 글을 여미고 말을 가다듬으면 어울릴까 하고 생각하기를 바라요. 어린이를 품은 어른이란 몸과 마음이기에 비로소 ‘철든 사람’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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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49 척척척



  글이 척척척 나온다면 생각을 숨기지 않고 척척척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글이 꽉꽉꽉 막히거나 멈춘다면 생각을 숨기려 하거나 창피해 한다는 뜻이고요. 생각이 술술 흐른다면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생각이 마르거나 샘솟지 않는다면 삶을 좋거나 나쁘다고 가르면서 좀처럼 못 받아들이고 안 사랑한다는 뜻이지 싶어요. 글을 쓰기란 매우 쉽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 하루가 좋았다거나 나빴다고 가르지 않으면서 스스럼없이 풀어내면 됩니다. 창피하다거나 부끄럽다고 여기는 느낌을 하얗게 씻어내고서 우리가 짓고픈 꿈을 즐겁게 그리면 됩니다. ‘글’은 ‘그림’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눈으로 읽을 수 있도록 그렸기에 글이에요. 생각을 누구나 눈으로 읽도록 즐겁게 그리기에 글이란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낱말책을 쓰자면 척척척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을 감추지도 숨기지도 덧씌우지도 꾸미지도 말아야지요. 술술 흐르는 생각을 차분히 가다듬어서 한 올씩 엮기에 낱말책입니다. 여느 글책도 모두 매한가지라서, 우리가 짓고 누리며 나누는 삶을 그저 즐겁게 마주하기에 써냅니다. 도마질할 적에 망설이나요? 쌀을 씻으며 머뭇거리나요? 척척척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사랑할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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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48 더듬이



  저는 말더듬이입니다. 어릴 적 언제부터 말을 더듬었는지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으나, 골목에서 동무하고 놀다가 누가 저를 가리키며 “너, 말을 더듬네?” 하고 웃은 뒤로 참 오래도록 더듬질을 했고, 더듬질을 놀리는 또래 사이에서 얼굴이 시뻘건 채 암말을 못하고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아무도 없구나 싶은 길을 일부러 혼자서 한나절씩 걸었습니다. 아무도 안 보이기에 쩌렁쩌렁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더듬질을 바로잡으려는 뜻이 아니라, 제 목소리를 찾고 싶었어요. 푸름이로 살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싸움터(군대)에서 멧골을 오르내리는 길에 늘 혼자 카랑카랑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낱말을 하나하나 더듬으면서 다듬는 살림을 짓습니다. 더듬더듬 읽으니 엉성해 보일 텐데, 하나씩 더듬어 나아가기에 빠뜨리거나 놓치지 않으면서 살핍니다. 풀벌레한테 ‘더듬이’가 있을 만하구나 싶어요. 빨리 알아채거나 휙휙 날지 못하더라도 ‘더듬이’로 찬찬히 보면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다듬어요. 가다듬습니다. 다독입니다. 달랩니다. 말을 더듬는 어린이요 푸름이로 살아온 나날은 제가 앞으로 걸어갈 삶이 ‘가다듬는 더듬이를 마음에 달고서 풀벌레처럼 푸르게 노래하라는’ 뜻이었더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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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47 자서전



  쉽게 말하니 쉽습니다. 어렵게 말하니 어렵습니다. 꾸밈없이 말하니 꾸밈이 없을 뿐 아니라, 티도 티끌도 허울도 없어요. 꾸미려 하니 티나 티끌이나 허울이 들러붙습니다. 글판에서는 으레 ‘자서전’ 같은 어려운 말을 씁니다만, ‘스스로글’이나 ‘삶글’이나 ‘삶자취글’처럼 쉽게 말해야지 싶습니다. 잘 생각해 봐요. ‘자서전’이라는 이름 탓에 “내가 무슨 자서전을 써?” 하고 여깁니다. ‘삶글’이라는 이름이기에 “삶을 쓴다고? 그럼 나도 내 삶을 쓸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와 맞물리는 어려운 말 ‘평전·위인전’이 있어요. 처음부터 아예 울타리를 높이 쌓으니 ‘평전·위인전’은 아무나 못 쓸 글로 여겨요. 꾼(전문가) 아니면 건드려서는 안 될 글로 삼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껍데기말, 어렵게 들씌운 말을 가다듬어 봅니다. ‘내가 스스로 사랑하는 이 삶을 바로 내가 손수 즐겁게 글로 옮기’면 됩니다. ‘내가 스스로 사랑하는 동무나 이웃이나 어른을 바로 내가 손수 즐겁게 그리면서 기쁘게 글로 담으’면 되어요. 우리 삶은 뛰어나거나 놀랍거나 대단하거나 훌륭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거우면 됩니다. 즐겁게 사랑하는 삶이기에 이 즐겁게 사랑하는 삶결을 고스란히 글결로 어루만지면서 펼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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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46 미루기



  미루는 일이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없을 텐데” 하고 말합니다. 얼핏 미룬다고 보이는 모든 모습은 아직 때가 아닐 뿐이지 싶습니다. 서두르지 말아요. 느긋이 내려놓고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글을 못 쓰겠거나, 일이 안 된다거나, 읽어도 못 알아듣겠거나, 자꾸 싸운대서 툴툴거리지 말아요. 다 손을 놓고서 기다려 봐요. 어느새 하나씩 실타래를 풀면서 가닥을 잡기 마련이니, 조바심이 아닌 사랑으로 지켜보기로 해요. 뜻풀이를 하거나 글손질을 하다가 막히면 바로 멈추고서 등허리를 폅니다. 눈을 살며시 감고서 꿈그림을 마음에 담습니다. 이러다가 까무룩 잠드는데, 얼핏 넋을 차리고서 눈을 뜨면 몸이 개운할 뿐 아니라 아까까지 풀거나 맺지 못하던 곳을 찬찬히 풀거나 맺더군요. 꼭 이때까지 해내려고 하기보다는 하루를 스스로 더 누리자고 여기면 되는구나 싶어요. 억지로 몰아붙이거나 다그치기보다는 한결 느슨하게 찬찬히 헤아리면서 스스로 돌보거나 아끼면 되는구나 싶고요. 우리는 ‘미루는’ 일이 없어요. 그저 ‘때가 아니’기에 아직 안 할 뿐입니다. 오늘 할 일을 이튿날로 미루지 말라고들 합니다만, 마감에 따라 일할 때가 있겠습니다만, 모름지기 모든 일은 때가 있기 마련이니, 오늘몫을 오늘만큼 하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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