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20. 할머니 손을 거쳐서



  할머니가 아이한테 씨앗을 건넵니다. 아이는 할머니한테서 받은 씨앗을 손바닥에 곱게 올려놓고 한 톨씩 살살 집어서 흙으로 옮깁니다. 밭에서 함께 일하니 밭순이가 된 시골순이는, 씨앗을 심는다기보다 아주 곱게 천천히 옮깁니다. 어느 모로 보면 느린 몸짓이지만, 땅에 심는 씨앗을 한 톨씩 낱낱이 살피면서 아끼는 숨결이라고 할 만합니다. 후딱 끝내야 하는 밭일이 아니라, 기쁜 넋으로 곱게 하는 씨앗심기가 될 때에, 나중에 이 씨앗이 자라서 맺는 열매를 고맙게 얻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흐르는 핏줄이, 먼먼 옛날부터 흐르는 핏줄이, 오늘 이곳에 있습니다. 4348.7.1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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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9.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림



  가위질을 하고 싶어서 종이만 보았다 하면 오리는 작은아이는, 그림놀이를 즐기는 누나 옆에 엎드려서 그림 두 점을 그립니다. 방바닥에는 작은아이가 갖고 놀다가 그대로 둔 장난감이 하나씩 늘어나고, 종잇조각이 널브러지며, 마무리로 그림 두 점을 놓습니다. “잘 그렸다. 아버지 보여주면 좋아할 거야.” 큰아이가 작은아이한테 ‘다 들리는 귓속말’을 합니다. “아버지, 자, 다 그렸어. 한번 봐 봐.” 작은아이가 빚은 그림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알갛고 새까만 빛으로 하나씩 테두리를 북북 매기면서 힘껏 새겨넣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4348.7.1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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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7-15 14:28   좋아요 0 | URL
아버지, 라는 호칭이 정겹네요. 큰 애 한창 말 배울 때 `아부지`라 부르게 했던 기억도 나고요.

숲노래 2015-07-15 17: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부지`라고 해도 재미있어요.
아부지 어무니
아바이 어무이
~~
 


사진노래 18. 오늘 이곳에서 내 사진



  사진 한 장을 잘 찍든 못 찍든 대수롭지 않을 줄 느끼기 쉬울 수 있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제 막 한글을 익히는 아이가 글씨를 잘 쓰든 못 쓰든 대수롭지 않은 줄 안다면, 사진찍기도 이와 비슷하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즐겁게 글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글쓰기가 재미있고, 글씨도 정갈하게 거듭납니다. 즐겁게 살림을 꾸리면서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사진찍기가 재미있으며, 내 사진 한 장에 싱그러우면서 맑은 기운이 흐릅니다. 빨래를 널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오늘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등허리를 톡톡 두들기면서 펴다가 하늘숨을 마시며 웃습니다. 4348.7.1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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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7-17 07:58   좋아요 0 | URL
저 이 사진 참 맘에 드네요. 여백을 살리신 것도 좋고, 정지된 화면이지만 빨래감의 움직임이 느껴지고요. 그 움직임때문에 보는 사람 마음도 펄럭이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것도 좋아요.

숲노래 2015-07-17 08:32   좋아요 0 | URL
작은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대던 무렵 사진인데,
지난달에 전라도닷컴에 빨래 이야기를 쓰고 사진을 보내 주며
옛 사진을 뒤적이다가 문득 새롭게 보았어요.

이 사진을 찍을 적에,
바지랑대도, 구름도, 하늘도, 전깃줄도,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도
참 잘 어울리네 하고 느껴서,
마당에 드러누워서 찍었어요~ ^^
 


사진노래 17. 비 오는 날 파를 끊기


  여덟 살 아이도 부엌칼을 쓰고 싶습니다. 아직 여덟 살 아이한테 부엌칼을 손에 쥐도록 하지 않으나, 가끔 작은 칼을 건넵니다. 마당에서 파를 뜯거나 자를 적에 여덟 살 아이한테 심부름을 맡기면서 한 줌 훑어 보라고 말합니다. 비 오는 날 파를 끊으려고 마당을 빙 도는 큰아이를 보고는 다섯 살 동생이 “나도! 나도!” 하고 외칩니다. 여덟 살 큰아이는 동생더러 “너는 아직 안 돼.” 하고 말합니다. “나도 하고 싶은데.” 하고 말하는 동생한테 “그럼 너는 우산 좀 씌워 줄래?”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한테 우산을 받쳐 주면서 칼놀림을 살펴봅니다. 4348.7.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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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16. 바닷가 찔레꽃



  전남 고흥으로 삶터를 옮긴 뒤 ‘찔레꽃’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다른 고장에서도 찔레꽃을 보았을 테지만, 다른 고장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빛으로 살짝 보기만 하느라 이내 잊었어요. 고흥 시골마을에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늘 마주하는 찔레꽃은 ‘우리 집 꽃’이기에 네 철 흐름에 따라서 어떻게 피고 지며, 덩굴나무는 어떻게 뻗고 시드는가 하는 대목까지 살핍니다. 이제는 ‘이웃집 꽃’으로 피는 찔레꽃도 먼발치에서 곧장 알아차리면서 “이야, 찔레꽃내음이 예까지 퍼지네!” 하면서 웃습니다. 바다로 마실을 가서도 바다와 함께 찔레꽃하고 놉니다. 4348.7.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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