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45. 사진은 늘 삶이네



  아이들한테 마실을 가자고 이야기합니다.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루문을 나서며 섬돌에 서서 발에 신을 뀁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사진기가 있다면 바로 ‘눈’이요,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필름이나 메모리카드가 있다면 바로 ‘머리’이고,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빛이 있다면 바로 ‘마음’이며,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어둠이 있다면 ‘말(이야기)’이고, 가장 멋지며 아름다운 모델이 있다면 바로 ‘노래’이니, 사진은 늘 기쁘게 흐르는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내 눈으로 바라본 모습을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내 머리에 담으며 내 이야기가 되니 내 노래가 흘러서 내 삶이 됩니다. 4348.8.2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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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44. 빨래터는 놀이터



  빨래터에 물이끼를 걷으러 가면 아이들은 곧 물놀이를 하겠구나 하고 여기면서 기뻐합니다. 두 아이는 아직 빨래터에서 물이끼 걷는 일을 크게 거들지 못합니다. 나는 빨래터에서 아이들더러 여기를 밀라느니 저기를 쓸라느니 하고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걷는 동안 요리조리 달리거나 샘가에서 물을 튀기다가 빨래터 치우기를 마치면 비로소 빨래터에 뛰어들어 온몸을 적시면서 놉니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면서 노는 빨래터이고, 한겨울에도 두 아이는 서로 물을 튀기면서 옷을 흠뻑 적십니다. 아마 먼먼 옛날에도 빨래터는 어른들 일터이자 아이들 놀이터로 오랫동안 예쁜 삶자리였을 테지요.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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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43. 농약 헬리콥터



  이른새벽부터 윙윙 소리가 납니다. 문을 모두 닫아도 들리는 소리에 마루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봅니다. 꿉꿉한 냄새가 물씬 퍼집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농약을 뿌리는 헬리콥터가 마을논에 떴습니다. 마을 할배가 호스로 농약을 뿌릴 적에도 바람을 타고 우리 집 마당으로 농약이 스미지만, 헬리콥터가 뜨면 농약바람은 지붕까지 타넘습니다. 안내방송 없이 ‘친환경농약’조차 아닌 ‘아주 센 농약’을 헬리콥터로 뿌립니다. 친환경농약을 칠 적에는 장독 뚜껑도 창문도 모조리 닫고 바깥마실도 다니지 말라고 안내방송을 했는데, ‘아주 센 농약’을 아무 말 없이 뿌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사진 한 장 찍어서 남깁니다.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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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8-25 13:26   좋아요 0 | URL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기계화된 농업의 음지를 보면서도 말없이 그 생산물들을 소비하는 우리들, 저 자신부터도 돌아봐야겠어요.

숲노래 2015-08-25 14:14   좋아요 0 | URL
한국 사회에서 절대다수는 일반 농약농업 곡식을 먹고,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자연농이나 유기농을 먹는데,
자연농이나 유기농을 믿고
조금씩 옮겨 가는 이웃님이 늘어나면
아무리 시골에 늙은 어르신만 남더라도
이런 무시무시한 헬리콥터 농약질을 멈추고
아름다운 시골로 돌아갈 바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마음을 써 주시는 일만으로도 벌써 한 걸음을
슬기롭게 내딛은 셈이라고 느껴요.
고맙습니다 ^^
 



사진노래 42. 함께 저 멀리 달려



  맨몸으로 함께 달리면 아이들을 따라잡기는 수월합니다. 짐을 든 몸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걷다 보면 언제나 아이들이 저 멀리 사라지려 합니다. 두 아이는 함께 달립니다. 두 아이는 저 앞에서 달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저기 아버지가 개미만 하네.”라든지 “저기 아버지가 장난감 같아.” 같은 말을 외치면서 깔깔깔 웃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아버지한테 달려가 볼까?” 하며 쪼르르 달려오다가 “와, 이제 커졌다!” 하면서 다시 뒤돌아서서 둘이 함께 저 멀리 달립니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지려고 하는 오르막을 바라보다가, 이 오르막 들길하고 맞닿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먼 멧줄기와 짙푸른 들판을 돌아봅니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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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41. 슈풍키 슈풍키



  ‘슈풍키(선풍기)’가 돌아갑니다. 다섯 살 어린이한테는 아직 ‘슈풍키’입니다. 여덟 살 누나가 “슈풍키가 아니고 선풍기야.” 하고 알려주어도 다섯 살 어린이는 그저 ‘슈풍키’입니다. 슈풍키에 바람개비를 대고 돌립니다. 마당에서 달리지 않아도 입으로 바람을 일으키지 않아도, 바람개비는 슈풍키가 신나게 돌려 줍니다. 글씨를 읽을 줄 몰라도 어느 단추를 누르면 켜거나 끄는지를 알기에 놀이돌이는 아침부터 슈풍키 놀이를 하면서 신이 납니다. 나는 신나는 아이 옆에 가만히 서서 아침부터 재미난 노래와 이야기를 누립니다. 4348.8.2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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