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55. 수박 한 조각이랑



  한창 무덥던 여름에 수박 한 통을 읍내에서 장만해서 낑낑거리며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 올여름에 아이들한테 수박을 몇 번 못 먹여서 미안하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올여름에는 여름 내내 집에서 얼음과자를 만들어서 먹었거든요. 후박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에 빨간 접이책상이랑 걸상을 놓습니다. 네모난 받침접시에 수박을 썰어서 올립니다. 수박 한 조각을 집기 앞서 이 멋지고 예쁘며 고마운 수박으로 우리 몸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아버지가 수박 노래를 부르는 사이 작은아이는 수박 속살에 살짝 손을 댑니다. 어서 먹고 싶지? 그래, 얼른 먹자. 4348.9.2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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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4. 마당에서 책읽기


  마당은 우리 놀이터입니다. 아이들 놀이터요, 어른한테도 놀이터입니다. 해바라기도 하고, 손님도 맞이하며, 때때로 책을 들고 평상에 앉아서 바람을 쐬는 쉼터입니다. 평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마당 한쪽에 그대로 둔 풀이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베푸는 노래를 듣습니다. 우리 집 마당이기에, 농약바람이 아닌 따사롭고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마당이기에, 이 마당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뛰놀다가 작은 그림책 하나를 들고 바닥에 털썩 앉아서 함께 들여다보면서 읽습니다. 나도 아이들처럼 맨발이 되어 가만히 지켜보다가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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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3. 서로 똑바로 바라보기



  작은아이가 나를 봅니다. 나도 작은아이를 봅니다. “아버지 어디 가?” “응,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다녀와야 해.” “서울에?” “응.” “혼자 가?” “응, 오늘은 혼자 가.” “언제 와?” “하룻밤 자고.” “하룻밤 자고?” “응.” “알았어. 잘 다녀와.” “고마워. 보라도 누나하고 집에서 사이좋게 잘 놀아.” “응.” 새벽 일찍 짐을 꾸려서 조용히 집을 나서는데 작은아이가 부시시 일어나서 배웅을 해 줍니다. 배웅하는 작은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습니다. 바깥일을 보는 동안 아이 얼굴빛과 마음을 내 가슴에 새기면서 기운을 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 이 사진은 6월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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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9-20 10:52   좋아요 0 | URL
보라의 얼굴빛과 마음이 정말 숲노래님의 가슴에 새겨져~기운을 잘 내셨겠어요~
어느덧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기는 하지만, 이렇게 온마음을 다해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드물었던 듯 싶습니다 ^^

숲노래 2015-09-20 12:12   좋아요 0 | URL
이런 사진을 찍은 날은
사진이란 참 뭔가부터 해서
아이와 지내는 삶이란 또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오래오래 가슴에 새기면서
힘들 적마다 이 사진을 다시 보면서
스스로 기운을 냅니다.
 


사진노래 52. 빨래를 널 적에


  빨래를 널 적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빨래 그림자 때문에 호박알이 덜 굵을까 싶어 빨랫대를 슬슬 옆으로 옮깁니다. 해가 움직이는 결에 맞추어 빨랫대가 움직입니다. 빨래를 널 적에 풀내음을 한껏 들이켭니다. 빨래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십니다. 여기에 풀내음과 꽃내음까지 고요히 받아들입니다. 마당에 빨래를 널기에 우리 곁님과 아이들 옷가지는 우리 집에 드리우는 모든 아름다운 숨결이 깃드는 옷을 새롭게 입을 수 있습니다. 빨래를 다 널고서 빨래 곁에 섭니다. 또 호박꽃과 호박알 곁에 앉습니다. 빨래랑 함께 해바라기를 하면서 따사로운 바람결을 즐겁게 맞이합니다. 4348.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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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래 51. 벽에 그림을 붙이자


  우리 집은 말 그대로 ‘우리 집’입니다. 삯집이 아닌 우리 집입니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우리 집이지 못했지만, 시골에서는 우리 집을 누리기에, 이 집에서는 벽이고 바닥이고 온통 아이들 그림으로 가득합니다. 나도 곁님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아이들하고 함께 그림을 붙입니다. 우리 꿈을 그림으로 그려서 붙입니다. 사랑스레 그린 그림을 붙입니다. 우리 그림을 우리가 늘 바라봅니다. 벽에 새 그림을 붙이자고 하니 두 아이는 서로 붙이겠다고 해서, 그림 두 점을 붙이기로 합니다. 즐겁지? 재미있지? 좋지? 여기는 우리 집이니까 우리 마음껏 논단다. 4348.9.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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