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47] 과자굽기



  이 나라에 빵이나 과자 같은 먹을거리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됩니다. ‘빵’이나 ‘과자’라는 낱말을 쓴 지도 얼마 안 돼요. 빵이나 과자를 마련할 적에 쓰는 낱말도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빵이나 과자를 놓고 예전에 쓴 말을 헤아리면 ‘빵굽기·과자굽기’입니다.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빵굽기·과자굽기’라 했고, 일본을 거쳐서 전문 지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제빵·제과’라 했어요. 전문으로 빵이나 과자를 굽는 사람은 예전에는 한자를 빌어서 ‘製’를 썼는데, ‘製’는 “지을 제”입니다. 그러니 이 한자를 쓴 ‘제빵·제과’는 ‘빵짓기·과자짓기’처럼 옮겨야 올발랐다고 할 만합니다. ‘밥짓기’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제빵·제과 전문가나 국어학자는 ‘밥짓기·밥하기’를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싣지 않았고, ‘빵짓기·과자짓기’ 같은 낱말도 따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빵이나 과자는 밥과 달리 굽습니다. 그래서 ‘빵굽기·과자굽기’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맞지만 ‘제빵·제과’만 한국말사전에 싣고 말아요. 게다가 ‘밥짓기·밥하기’는 한국말사전에 없고 ‘요리(料理)’만 싣는데, 요리라는 한자말을 “음식을 만듦”으로 풀이하고 맙니다. 한국말사전부터 이러다 보니 “요리 만들기·밥 만들기·빵 만들기·과자 만들기” 같은 엉터리 말이 퍼져요. ‘밥짓기·빵짓기·과자짓기’하고 ‘밥하기·요리하기’하고 ‘빵굽기·과자굽기’를 써야 알맞습니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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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6] 늪꿈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 오히려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물이 고이고 바닥이 진흙일 적에는 발이 폭폭 빠지면서 그만 몸이 잠겨 버릴 수 있어요. 마음이나 몸이 괴로울 때라든지 힘든 일이 있으면 “늪에 빠졌다”고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해요. 이와 비슷하게 “깨어나기 어려우면서 마음이 괴로운 꿈”을 꾼다면 ‘늪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 적에 늪꿈을 흔히 꾸고, 마음에 맺히거나 응어러진 일이 있어도 늪꿈을 곧잘 꿉니다. ‘나쁜 꿈’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쁘다기보다는 꿈속에서 그저 허우적거리면서 이도 저도 못하고 마냥 넋을 잃는다면 그야말로 늪꿈이에요. 4348.9.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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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4] 수수께끼짓



  눈을 찡긋하면서 마음을 살며시 보냅니다. ‘눈짓’을 합니다. 손을 놀려서 말을 겁니다. 나는 ‘손짓’을 합니다. 그런데 손짓으로는 아무래도 내 뜻을 알리기 힘들구나 싶어서 발을 함께 놀립니다. 어느새 ‘손짓 발짓’을 합니다.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몸만 움직이면서 저희 뜻을 밝힙니다. ‘몸짓’으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사랑짓’을 나누고, 꿈을 꾸는 사람은 차근차근 ‘꿈짓’으로 나아갑니다. 책을 읽거나 쓰면서 삶을 누리는 사람은 ‘책짓’을 합니다. 고운 책싸개를 마련하거나 살피를 손수 꾸미는 몸짓도 ‘책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쏭달쏭하거나 궁금한 이야기를 풀려고 서로 ‘수수께끼짓’을 합니다. 때로는 아리송하게 이끌거나 궁금함을 부추기면서 ‘수수께끼짓’을 합니다. 삶을 새롭게 짓는 모습은 ‘삶짓’이고, 글 한 줄에 드러나는 모습은 ‘글짓’입니다. 우리는 서로 ‘말짓’을 헤아리면서 생각을 북돋웁니다. 네가 나를 아끼고 내가 너를 보살피는 동안 우리는 기쁜 웃음이 피어나서 ‘웃음짓’을 짓다가 신나게 ‘춤짓’을 선보이지요. 네 웃음짓이 아름답고, 내 춤짓이 어여쁩니다. 4348.8.2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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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5] 구슬치기



  아이들은 구슬을 몹시 좋아합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구슬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사내들은 으레 고샅이나 골목이나 너른 마당에 모여서 구슬을 치며 놉니다. 씩씩한 가시내도 구슬치기를 함께 합니다. 꽤 많은 가시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구슬을 만지작거리면서 놉니다. 예쁜 빛을 사랑하는 사내도 가시내 사이에서 얼마든지 구슬을 함께 만지작거리면서 소꿉놀이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함께 어우러져서 놀면서 까르르 웃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웃음꽃이 터지고 이야기꽃이 핍니다. 아이들이 놀며 부르는 노래는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듯합니다. 유리구슬이 구르든 돌구슬이 구르든, 또 흙구슬이나 떡구슬이 구르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시골마을에는 멀구슬나무가 자라고, 어른들은 동글동글 해맑거나 빛나는 구슬을 엮어 목걸이도 빚고 팔찌도 빚습니다. 구슬을 실에 꿴 옷을 입은 아이들이 춤을 추면 구슬이 서로 부딪히면서 톡톡 탁탁 재미난 소리가 퍼집니다. 빙글빙글 신이 나는 아이들 눈망울이 꼭 구슬처럼 또렷하면서 환합니다. 4348.8.2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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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3] 흔들아비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바닷가로 마실을 가다가 남새밭 옆을 지나면서 ‘흔들거리는 곰 모습 반짝이’를 봅니다. 여덟 살 아이는 이 모습을 보고 다섯 살 동생한테 “저기 봐, 저기 곰이 흔들려!” 하고 말하더니, “아버지, 저기 흔들리는 곰은 뭐야?” 하고 묻습니다. 나는 아이가 외친 말을 고스란히 받아서 “응, ‘흔들곰’이야.” 하고 이야기합니다.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새를 쫓는 구실을 하는 곰 모습을 한 인형이기에 ‘흔들곰’이라고 했습니다. 예부터 한겨레 들녘에는 ‘허수아비’가 씩씩하게 서면서 새를 쫓아 줍니다. 고장에 따라 ‘허새비·허재비·허수아재비’라고도 한다는데, 이 이름을 살짝 바꾸어 ‘흔들아비’ 같은 말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람 따라 가볍게 흔들거리면서 새를 쫓는 구실을 한다면 ‘흔들-’을 앞에 붙일 만해요. 햇빛을 반짝반짝 되비치면서 새를 쫓는 구실을 한다면 ‘반짝아비’라고 할 수 있을 테지요. 곰이 아닌 끈이나 띠를 길게 두르면 ‘반짝끈’이나 ‘반짝띠’이고요.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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