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152] 꽃바라기



  시골에서 노는 아이들은 늘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바라봅니다. 차츰 찬바람으로 바뀌는 늦가을에도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바라보기는 똑같지만, 이무렵에는 해가 잘 드는 곳을 찾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겨울에도 해바라기를 하며 놀아요. 그러니까, 낮에는 ‘풀바라기·꽃바라기·나무바라기’를 하면서 놉니다. 밤에는 ‘별바라기·달바라기’를 하며 놀지요. 해나 별을 보려고 하늘로 고개를 돌려 눈길을 두기에 ‘하늘바라기’입니다. 자전거를 달려 바다로 나들이를 가면 ‘바다바라기’예요. 샛노란 가을들을 누리려고 논둑길을 거닐 적에는 ‘들바라기’입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사랑하기에 ‘숲바라기’가 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놀이를 즐기니 ‘놀이바라기’가 되고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바라기’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가슴에 꿈을 품기에 ‘꿈바라기’입니다.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을 보살피면서 ‘님바라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면 ‘책바라기’이고, 영화를 즐기면 ‘영화바라기’입니다. 돈이 좋으면 ‘돈바라기’일 테며, 노래가 좋으면 ‘노래바라기’예요. 비 내리는 소리와 냄새를 좋아해서 ‘비바라기’요, 눈 내리는 결이랑 빛을 좋아해서 ‘눈바라기’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바라기로 삶을 짓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8.10.12.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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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51] 가을스럽다



  가을날 아침에 마당에서 초피알을 훑다가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초피알은 새빨갈 적에 훑기도 하고, 겉껍질이 짙누렇게 마른 뒤에 훑기도 합니다. 따서 말릴 수 있고, 나뭇가지에 달린 채 말려서 가볍게 훑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훑든 다 좋고, 어떻게 말려도 다 즐겁습니다. 가을이기에 초피나무에서 초피알이라는 열매를 훑어요. 가을볕을 받으며 바싹바싹 마르고, 가을바람이 불면서 가을바람이 퍼지지요. 가을들은 샛노랗게 물들면서 가을빛을 퍼뜨리고 가을노래를 일으킵니다. 감알도 익고 나락도 익는 구수한 시골마을은 더없이 싱그러운 가을이기에 ‘가을스럽네’라고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곧 ‘겨울스러운’ 바람으로 바뀌리라 느끼고, 겨울스러운 석 달이 지나면 새롭게 봄이 되어 ‘봄스러운’ 볕이랑 바람이 찾아올 테지요. 이 가을을 온몸으로 한껏 받아들이면서 가을사랑을 꿈꿉니다.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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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50] 배움바라지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뒷바라지’입니다. 그러면 앞장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때에는 ‘앞바라지’라 하면 돼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이때에는 ‘옆바라지’가 될 테고, ‘곁바라지’도 있을 테지요. 다만, 한국말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그저 우리가 신나게 쓰고 즐겁게 나누는 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책바라지’를 합니다. 이를테면 도서관이 하는 몫이라면 ‘책바라지’라 할 만해요. 사람들이 책으로 즐거움을 누리도록 돕거든요. ‘놀이바라지’라든지 ‘살림바라지’라든지 ‘꿈바라지’도 있을 만합니다. 노래하는 사람 옆이나 뒤에서 소리를 받쳐 준다면 ‘노래바라지’라 할 수 있어요. 돕는 일은 누군가 무엇을 배우도록 도울 수 있어요. 요즈음은 아무래도 ‘배움바라지’가 가장 많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이 넉넉히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어버이가 많거든요. 나도 우리 아이들이 시골에서 삶이랑 사랑을 기쁘게 배우도록 도우니 배움바라지로 지내고, 우리 집 곁님이 스스로 하고픈 공부를 하도록 도우면서 언제나 배움바라지로 삽니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곁님도 나한테 배움바라지입니다. 웃음과 노래와 춤과 이야기로 서로서로 배움바라지요, 사랑바라지로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8.10.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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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9] 밭흙·논흙·숲흙


  밭이나 논은 흙으로 이루어집니다. 흙이 있어야 밭이나 논을 가꿉니다. 숲도 흙으로 이루어집니다. 숲에 흙이 없으면 나무나 풀은 자랄 수 없습니다. 흙이 없을 적에는 아무것도 못 삽니다. 사람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 수 있는 까닭도 흙이 있기 때문입니다. 흙에서 밥을 얻고, 흙에서 집을 짓는 바탕을 얻으며, 흙에서 잘 자란 나무를 베어서 살림살이를 가꾸고 불을 지펴요. 흙이 있기에 풀과 함께 풀벌레가 있어요. 흙이 있으니 새도 풀밭이나 숲에 보금자리를 틀어요. 흙을 살피고 읽으며 헤아릴 줄 알아야 삶을 짓고 가꾸며 보살필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들추니 ‘논흙’하고 ‘개흙’이라는 낱말은 올림말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밭흙’이라는 낱말은 없어요. 오늘날은 누구나 도시에서 사느라 밭을 살피지 않기 때문일까요. ‘숲흙’이라는 낱말도 한국말사전에는 없어요. 가만히 생각하면 논흙이나 밭흙이나 숲흙은 모두 달라요. 개흙도 다르지요. 사람 손길을 타지 않는 숲에서 저절로 가랑잎이 쌓이고 벌레와 짐승이 죽고 나면서 태어나는 흙은 까무잡잡하면서 폭신합니다. 비료와 농약과 비닐을 머금은 흙은 누렇거나 허여면서 딱딱합니다. 거름을 잘 머금은 흙도 빛깔이 다르고, 풀이 잘 자란 곳도 흙빛이 사뭇 달라요. 사람이 흙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줄 깨달으면서 흙하고 얽힌 말을 슬기롭게 바라본다면 삶을 곱게 다스리는 길에 눈을 뜰 수 있지 싶습니다. 4348.10.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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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8] 배롱꽃빛 옷

 

  곁님이 배움마실을 다녀오면서 내 옷을 한 벌 선물해 줍니다. 반소매 웃옷입니다. 여덟 살 큰아이가 이 옷을 보더니 “아버지, 이 옷 분홍이야?”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니.” 하고 말합니다. “그럼?” 하고 다시 묻는 아이한테 “배롱꽃빛이야.”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아, 우리 마을에 있는 배롱나무 꽃!” 하고, 이내 “나도 알아 배롱꽃빛! 배롱꽃빛 좋아. 그렇구나. 분홍은 배롱꽃빛이로구나.” 하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아니야. 배롱꽃빛을 분홍이라고도 하지.” 하고 말을 바로잡아 줍니다. 선물받은 새 반소매옷을 입고 장흥으로 바깥일을 보러 나옵니다. 장흥고등학교 푸름이하고 장흥 이웃님이 쉰 분쯤 모여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옵니다. 이곳에 저처럼 ‘배롱꽃빛’이 나는 웃옷을 입은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새삼스레 웃으면서 “저기, 배롱꽃빛 옷을 입으신 분?” 하고 살며시 말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은 못 알아들으십니다. 다시 “저기 분홍 옷 입으신 분이요.” 하고 말하니 곧 알아차리십니다. 장흥이나 고흥에서는 흔히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인데, ‘배롱꽃 + 빛’인 ‘배롱꽃빛’이라는 빛깔말이 아직 낯설 만하겠지요. 진달래꽃빛하고 배롱꽃빛이라는 말마디를, ‘꽃말’을, 시골말을, 숲말을 고요히 읊습니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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