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우량식품 : 우리는 불량식품을 먹기 때문에 몸이 나빠질까? 어쩌면 그럴 때도 있겠지.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우량식품을 먹기 때문에 몸이 좋아질까? 어쩌면 그럴 때도 있겠지. 자, 하나도 안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하나도 안 즐거운 자리에 갖은 밥을 갖추었다고 해보자. 이 자리에서 먹는 밥이 맛이 있을까? 맛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참으로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물 한 잔을 마신다고 해보자. 이 자리에서 마시는 물은 얼마나 달콤할까? 고작 물 한 잔이라지만, 바로 이 물 한 잔은 온사랑이 가득 흐르는 숨물(생명수)이지 않을까? 거북한 사람하고 있으면 잔칫밥을 먹더라도 속이 더부룩하겠지. 반가운 사람하고 있으면 쫄쫄 굶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더라도 해가 넘어가는 줄도 잊은 채 신나게 노래하고 웃고 춤추겠지. 굳이 불량식품을 찾아서 먹을 까닭은 없지만, 나쁘거나 좋다고 하는 밥은 언제나 우리 마음이 짓는다. 우리 마음이 좋다면 모든 밥은 좋고, 우리 마음이 나쁘다면 모든 밥은 나쁘다. 2019.10.1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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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날씨가 어떻든 : 나는 날씨를 따라갈 생각이 없다. 날씨가 어떻든 쳐다볼 마음이 없다. 오직 스스로 나아갈 길을 읽고 보고 생각하며 마음에 담을 뿐이다. 나는 사람사이(인간관계)를 잘 맺을 생각이 없다. 사람사이를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할 마음이 없다. 억지를 쓰거나 치레를 하거나 허울을 쓸 생각이 없다. 언제나 스스로 사랑하는 맑은 거울이 되어 오늘을 가꾸려 할 뿐이다. 네가 만나는 나라고 한다면,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나’일 테지. ‘겉치레를 하거나 탈을 쓰거나 스스로 미워하는 나’라면, 네가 이런 나를 만나고 싶을까? 내가 만나는 너도 매한가지이다. 내가 만나는 너는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너’이다. 겉치레도 탈도 미움도 아닌 오직 스스로 사랑으로 빛나는 너이기에, 나는 너를 만난다. 2019.10.1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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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멋진 이웃 : 그대가 멋진 이웃이기에, 그대랑 같이 있는 이곳에서 그대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내가 그동안 겪고 치른 삶을 그대로 녹이고 갈무리해서 새말을 들려주고, 새숨을 그대한테서 들여오는, 그야말로 이야기판을 누려 생각꽃이 핀다. 2019.10.1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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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샘물 : 밥을 골고루 안 먹거나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릴까? 어쩌면 그렇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보자. 숲은 빗물하고 바람하고 햇볕으로 살아간다. 숲을 이룬 흙은 가랑잎이 바뀐 몸이요, 나뭇가지가 바뀐 몸이다. 때로는 숲짐승이나 숲벌레나 숲새가 바뀐 몸인 흙도 있으나, 거의 모든 흙은 바로 풀이랑 나무가 바뀐 몸이라 할 만하다. 자, 풀하고 나무는 빗물하고 바람하고 햇볕‘만’ 먹기에 영양실조에 걸릴까? 이 세 가지를 먹는 갖은 풀하고 나무가 맺는 씨앗이나 열매가 허술할까? 똑같은 빗물하고 바람하고 햇볕‘만’ 먹는 푸나무이지만, 이 푸나무는 저마다 다른 맛난 열매를 사람이며 숲짐승이며 숲벌레이며 숲새한테 베푼다. 우리는 이 대목을 궁금히 여겨야지 싶다. 왜 능금하고 배하고 복숭아하고 앵두하고 살구하고 숱한 열매가 다 달리 맺을까? 왜 잣하고 호두하고 밤하고 도토리하고 갖은 열매가 다 다르게 열릴까?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우리가 ‘영양소를 골고루’라고 하는 덫에 갇힌 채, 정작 맑은 샘물은 안 마시거나 맑은 바람은 안 먹거나 맑은 햇볕은 안 받아들이는 삶인 줄 알아챌 수 있다. 하루 가운데 얼마쯤 맑은 빗물에 바람에 햇볕에 우리 몸을 내맡길까? 우리는 샘물 아닌 수돗물하고 페트병에 가둔 물에 길든 철없는 몸이 아닐까? 2019.10.1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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깬다 : “쟤 되게 깬다!”라든지 “너, 왜 이렇게 깨니?” 하고 놀린다든지 비웃는 이가 있다. 또는 그저 놀라는 이가 있다. 이런 말에 들려주는 대꾸는 언제나 한 마디. “깨야 하니까 깨지. 깨야 할 허물이니까 깨지. 깨서 무너뜨려야 할 담이니까 깨지.” 스스로 틀에 가둔 채 살아야 할 까닭이란 없다. 깰 노릇이다. 모든 수렁을 깨고 굴레를 깨고 쇠사슬을 깨고 쇠가시울타리를 깰 일이다. 바보짓을 깨고 멍청짓을 깨어, 그야말로 우리 눈에 스스로 쓴 들보를 깰 길이다. 깨야 깨어나지 않겠는가. 깰 때에 비로소 깨닫지 않는가. 깨기에 드디어 깨쳐서 스스로 날갯짓할 수 있는 삶이 되겠지. 2019.10.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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