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같은 책 : 헌책집에는 ‘같은 책’이 더러 들어와도 ‘똑같은 책’은 거의 안 들어온다. 이와 달리 새책집에는 ‘똑같은 책’이 늘 들어오지만 ‘같은 책’은 만날 일이 없다. 무엇이 다른가? 헌책집에 들어오는 ‘같은 책’은 “물건으로서는 같다”만 “읽은 사람 손길하고 숨결”이 다르다. 같은 책이되, 누구는 이렇게 정갈하거나 반듯하게 읽었고, 누구는 책을 함부로 다루거나 엉성히 만진 손길을 엿볼 수 있다. 사랑받은 책하고 사랑받지 못한 책을 느낄 수 있다. 사랑받을 책하고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책도 알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헌책집에서 마주하는 모든 책에는 다 다른 이야기가 흐른다. 헌책집으로 책마실을 가는 까닭이 뭘까? 더 값싸게 물건을 장만하려고? 아니다. 헌책집에서 마주하는 책 하나를 손에 쥐면, ‘같은 책’이어도 이렇게 다 다른 손길로 사랑을 실어서 삶을 누리는 눈빛을 만나면서 배울 수 있다. 책에서 삶을 보고, 책으로 사람을 보며, 책을 사랑으로 마주하는 길을 새삼스레 누리는 헌책집이라 할 수 있다. 2019.10.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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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마치다 : 새롭게 배우며 노래하려고 이곳은 이제 마치고 길을 나선다. 아직 모르는 곳으로 아직 밟거나 디딘 이가 없는 데로 아직 다가설 마음을 품은 이가 나타나지 않은 자리를 그리며 간다. 졸업장을 땄기에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배울 이야기를 하나하나 배웠으니, 이 배움을 삶으로 익혀내어 날갯짓을 할 때일 뿐인 줄 알고서 새삼스레 한 걸음을 내딛기, 이 길이 ‘마침’이다. 2019.10.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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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기쁨슬픔은 남남일까 : 우리는 한국사람이기에 무엇보다 한국말을 똑똑하게 제자리에 써야 한다. 한국사람이 영어를 잘하거나 한자를 잘 쓸 수도 있는데, 때로는 러시아말이나 일본말을 잘할 수도 있을 텐데, ‘한국사람이라는 몸을 입은 마음을 다스리는 숨결로 삶을 짓는 넋’이라 한다면,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말을 바탕으로 생각이라는 씨앗을 심는 길을 알고 가꿀 노릇이다. 이러한 바탕이 선다면, 모든 것은 다 마무리를 할 만하다. 이른바 ‘게임 오버’이다. 처음을 바탕으로 세우지 않았다면, 이때에도 ‘게임 오버’이다. 처음인 것, 바로 한국사람이라는 몸으로서 한국말을 똑똑히 세웠으면 무엇이든 스스로 마무리를 할 수 있으니 즐겁게 ‘게임 오버’요, 내가 어떤 몸인가를 읽거나 새기지 않고서 그냥 이것저것 붙잡으면 무엇이든 스스로 꿈꾸는 대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게임 오버’이다. 이를 읽고서 안다면 기쁨슬픔은 늘 하나요 한몸이자 한숨결이라는 대목을 맞아들인다. 둘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같으면서 다른, 다르면서 같은, 떼어서는 생각하거나 볼 수 없는 하나이자 한넋이자 한빛이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아닌 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 할 수 없다. ‘미움과 슬픔과 싸움도 모두 내 것이다’라 해야 알맞다. 이 대목을 짚어내야 한다.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평화도 싸움도 모두 내 것이면서 오롯이 나이다’부터 실마리를 찾을 노릇이다. 사랑도 미움도 내 것이면서 나라면 어느 길을 가면서 삶을 짓겠는가? 이 수수께끼를 풀면 된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나인 터라, 모두 나인 두 갈래 가운데 어느 길을 가느냐 하고 고르면 끝날(게임 오버) 뿐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 길은 나온다. 그리고 그 길은 스스로 골라서 짓는 길이다. 태클질도 나요 포근히 안는 가슴도 나이며, 손가락질도 나인데다가, 티없이 돌보는 손길도 나일 수밖에 없다. ‘기쁨 = 긍정적, 슬픔 = 부정적’이라고들 으레 금을 긋지만, 이런 금은 그을 수 없다. 기쁨이나 슬픔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나’일 뿐이니까. 첫머리부터 이렇게 금을 그어 버리기에 우리는 스스로 기쁨하고 슬픔을 똑똑히 바라보지 못하고, ‘오롯이 내 길로 삼고 싶은 사랑하고 기쁨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꿈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는 삶을 짓는 하루(오늘)’가 마치 딴곳에 있는 줄 여기고 말며, 이러한 깨우침을 뛰어난 스승한테서 가르침으로 받으려고 애쓰고야 만다. 막상 스스로 가슴이란 뚜껑을 열면 스스로 다 풀 줄 아는 길인데. 2019.9.29. ㅅㄴㄹ


https://blog.naver.com/hbooklove/220458408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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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교육 : 아이들은 ‘모두 볼 줄 알고, 모두 할 줄 알며, 모두 받아들일 줄 아는’ 숨결로 태어난다. 이 아이들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느끼며 자랄 어른이라고 해야 옳다고 느낀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가 품고 태어난 숨결을 바라보거나 헤아릴 생각을 안 한다. ‘천재교육·영재교육’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아이들 숨결을 짓밟거나 억누르기 일쑤이다. 어른들 삶터에 맞추어 ‘오직 한 가지만 바라보도록’ 내모는 짓, 이른바 천재교육·영재교육으로 닦달한다. 이름은 천재교육이라지만, 막상 이 짓은 바보로 내모는 노릇이다. 허울은 영재교육이라지만, 정작 이 짓은 어른하고 아이가 몽땅 얼간이가 되는 굴레이다. 2019.10.3.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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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주고받기 : 종이나 물건에 새겨서 상을 주고받곤 한다. 이런 종이나 물건은 모두한테 안 주기 일쑤이다. 몇몇만 받도록 한다. 게다가 숫자를 매겨서 1·2·3처럼 가른다. 이때에 상을 받는 이는 남보다 앞서거나 위에 선다면서 좋아하기 일쑤요, 상을 못 받는 이는 남보다 뒤처지거나 밑바닥이라면서 싫어하기 일쑤이다. 다만, 상을 받든 안 받든 이를 대수로이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숫자가 덧없는 줄 알아차리는 이도 있다. 상을 왜 줄까? 상을 누가 줄까? 우리한테 상을 주려는 이는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일까? 뭐를 했으니 잘하거나 못하거나를 갈라서 상을 주거니받거니 해야 할까? 아니면, 뭐를 하든 말든 오늘 하루를 차분히 되새기면서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될까? 모름지기 참다운 상이라 하면 종이나 물건에 새길 수 없다. 더구나 몇몇 사람끼리 주고받을 수도 없다. 참다운 상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준다. 바로 내가 나한테 주지. 너는 너 스스로 너한테 주고. 남이 우리한테 상을 줄 수 있을까? 남들은 왜 우리한테 다가와서 상을 주려고 할까? 남들이 내미는 상을 우리가 덥석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이 내미는 상으로는 우리를 일으키거나 가꾸거나 사랑하는 길하고 멀어진다고 느낀다. 언제나 스스로 기쁘게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펴면 넉넉할 뿐, ‘상’이란 이름조차 쓸 일이 없다고 느낀다. 2019.10.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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