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센스 있는 사진 : 나더러 “센스 있는 사진을 찍으시네요.” 하고 말하는 분이 있어, 살짝 할 말을 잃었다. “센스 있는”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더라. 잘 찍는단 소리인지, 느낌이 있단 소리인지, 한때를 바로 잡아챈다든지, 사랑스럽단 뜻인지 종잡지 못했다. 그저 내가 대꾸할 수 있는 말은 하나. “저는 필름으로 사진을 배우던 사람이에요. 디지털 사진을 찍더라도 필름으로 찍듯 한 칸 한 칸을 모두 아끼면서 찍어요. 필름값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잘못 찍거나 엉성하게 찍고 말아 다시 찍는 일이 없도록 꼭 한 칸만 찍고서 끝내려는 생각이에요. 찍고 싶은 모습을 잘못 찍거나 엉성하게 찍으면 자꾸 이 자리에 머물러야 해서, 다음 자리로 넘어가지 못해요. 우리가 찍을 모습은 끝도 없는데 한 자리에만 머무르면 새로운 모습도 새로운 길도 찾을 수 없어요. 언제나 한 칸 사진으로 한 가지 모습을 끝내고 다음으로 나아갈 길을 즐겁게 걷자는 생각으로 찍을 뿐입니다.” 2019.10.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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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글쓰는 가시내 : 글쓰는 가시내가 늘면서 온누리가 차츰차츰 거듭난다고 느낀다. 그러나 ‘글만 쓰는’ 가시내가 차츰 늘면서 ‘글만 쓰던’ 사내로 꽉 차던 무렵처럼 좀 갑갑한 모습도 드러난다. 생각해 보라. 글은 가시내가 쓰든 사내가 쓰든 대수롭지 않다. 아이가 써도 되고 어른이 써도 된다. 그런데 여태 이 나라 이 땅에서는 ‘살림도 사랑도 삶도 숲도 멀리한 채, 오직 글만 쓰는’ 사내가 판친 터라 글밭이 엉망이었다고 느낀다. 글을 쓰고 싶다면 ‘글만 써서’는 아니될 노릇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살림을 익힐 길이다. 왜 있잖은가, 성룡이란 사람이 배우로 나와서 찍은 영화 〈취권〉이 잘 말해 준다. 스승이란 이는 성룡한테 무술에 앞서 ‘살림’을 스스로 익히도록 가르쳤다. 이다음으로는 ‘사랑(고요한 평화를 바탕으로 짓는 따스한 마음)’을 스스로 익히도록 가르쳤지. 밥을 짓고 옷을 다듬고 집을 돌보는 길을 익히고서 글을 쓰면 된다. 짝짓기를 넘어, 온누리 숨결을 아낄 줄 아는 사랑이 되고서 글을 쓰면 된다. 스스로 오늘 이곳을 똑바로 보면서 신나게 노래하는 하루를 짓고서 글을 쓰면 된다. 서울에 머물지 않는 몸이 되는, 다시 말해서 스스로 삶터를 숲으로 일구는 길이 되면서 글을 쓰면 된다. ‘글만 쓰는’ 사람이 넘실거리면 제아무리 글쓰는 가시내가 늘더라도 온누리는 거듭나지 못한다. 2019.10.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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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꽃 : 노래하는 모든 분들 마음에 즐거운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나면 좋겠다. 노래하는 사람은 웃음꽃이든 눈물꽃이든, 꽃을 혀에 얹고 귀로 받으며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에 가꾸면 좋겠다. 마음에 꽃이 있으면 누구나 꽃노래를 부르겠지. 꽃그림을 그리고, 꽃글을 쓰고, 꽃사진을 찍고, 꽃살림을 가꾸겠지. 온누리를 바꿀 수 있는 힘은 들꽃이나 숲꽃 한 송이에 있다고 느낀다. 드센 물결로는 온누리를 바꾸지 않거나 못하리라. 왜? 드센 물결은 모든 지저분한 것을 쓸어내는 일, 청소를 한다. 온누리를 살기 좋도록 가꾸는 길이란 언제나 꽃손, 꽃눈, 꽃마음, 꽃말, 꽃노래로 어우러진 꽃살림을 피우는 꽃집이 모인 꽃마을에서 이룬다고 느낀다. 2019.10.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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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만 : 스스로 책 한 자락을 즐거이 장만해서, 조곤조곤 소리를 내어, 가만가만 누려 보면 좋겠다. 그러면 다 알 수 있다. 겉치레인지 속사랑인지, 겉꾸밈인지 사랑씨앗인지 하나하나 알아챌 수 있다. 모든 꽃은 스스로 피어나며 아름답다. 모든 나무는 스스로 뿌리를 뻗고 자라면서 우람하다. 모든 풀은 스스로 새싹을 틔워 푸르게 노래하기에 사랑스럽다. 치를 값을 아끼면 얻을 수 없다. 2009.10.2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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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부 막내일꾼으로 지내며, 2001∼2003년 어린이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하며, 이러하든 저러하든 그때에는 꽤 나이가 적은 사내이다 보니, 언제나 술자리 뒤치다꺼리를 도맡았다. 이무렵 출판사 편집부 일꾼이나 사장은 으레 밤 열한두 시 즈음이나 새벽 한 시 언저리이면 달아난다. 이들은 이무렵 달아나면서 ‘영업부가 알아서 끝까지 챙기라’고 이른다. 영업부에서도 막내였으니 새벽 두어 시까지 곁을 지키면서 ‘제발 작가 선생님이 술자리에서 깨어나서 집주소를 입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있기 마련. 겨우 넋을 차리고 집이 어디인가 말할 수 있구나 싶으면 어깨동무를 하고서 택시를 부르고, 같이 택시에 타서 그 ‘거나한 작가 선생님 집’으로 끌고 가서, 문을 어찌저찌 열고, 자리에 눕히고, 양말을 벗겨 주고, 웃옷 단추를 끌러서 숨통이 트이게 하고, ‘그나저나 난 집에 어떻게 돌아가지?’ 하고 근심하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 보자. 이곳이 어떤 마을인지 하나도 모르잖아?’ 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 여러 해 사이에 매우 지저분한 술버릇으로 영업부 막내일꾼이자 사전 편집장을 들볶은 이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무슨무슨 띠 시인이거나 화가이거나’였다. 그때 그분들은 왜 그랬을는지, 또 이제는 달라졌을는지, 또 그무렵 다른 데에서는 어떠했을는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는 어림해 본다. 부디 그분들이 어느 한 가지에 푹푹 절어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되기로 한다. 그 사람, 그분, 그 ‘작가 선생님’은 그때에 아직 철이 하나도 안 든 몸짓이었을 테니, 철이 안 든 모습이란 무엇인가 하고 되새기면서 내가 스스로 철이 들면서 나아가는 길을 곰곰이 짚기로 한다. 2019.10.2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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