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추미애 카투사 아들 병가 : 나는 군대란 곳에 갈 수 없는 몸이었지만, ‘줄을 잘못 선’ 탓에, 다시 말해 ‘아빠 찬스’하고 ‘엄마 찬스’로 군대를 안 갈 수 있는 또래한테 둘러싸인 터라, 군대를 가야 했다. 1995년 11월 6일에 군대에 들어가면서, 더욱이 ‘아빠·엄마 찬스가 없는 아들’이 어떻게 뺑뺑 돌아서 막다른 부대로 떨어지는가를 몸소 겪으면서, 이동안 한 가지만 생각했다. 부디 이 수렁에서 살아남자고, 내가 겪은 바를 낱낱이 이야기하는 날을 맞이하자고.


‘찬스 있는 아들’은 훈련소를 거쳐서 ‘자대’로 갈 적에 차곡차곡 ‘걸러진’다. 군부대 어디가 쉽거나 안 쉽겠느냐만, 군대에는 어김없이 쉽게 보내는 자리가 있고, 이런 자리는 ‘찬스 있는 아들’부터 채운다. 이를테면 국방부나 군단이나 사단 같은 데에 ‘찬스 없는 아들’이 들어갈 턱이 없기 마련이다.


‘찬스 없는 아들’인가 아닌가는 이미 군부대에서 다 살피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연대·대대·중대로 차곡차곡 꿰어맞춘다. 몇 곳은 시험을 치러서 들어가는 군대인데, 카투사도 시험을 치르는 군대 가운데 하나이지만, 카투사가 ‘시험만 잘 치러서 붙을’ 수 있는 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이는 그야말로 이 나라를 모르는 셈이겠지. ‘찬스 없는 아들’한테 카투사란 그냥 그림떡이다.


그리고 군대에 들어갔는데 몸이 아프다면 처음에는 꿀밤을 주지. 꿀밤 다음에 반창고를 주지. 이다음에는 ‘의무대’를 갈 텐데, 의무대는 학교에 있는 양호실보다 못하다고 보면 된다. 이다음에 ‘국군병원’이란 데를 갈 텐데, 국군병원을 가는 군인은 ‘하루 내내 다른 일을 하나도 안 한’다. 그저 그 국군병원을 다녀오는 데에 다 쓴다.


다만 아무나 국군병원에 못 간다. 군인이 되어 의무대 아닌 국군병원에 가려면 ‘정밀진단서’가 있어야 한다. 덧붙여 ‘아빠·엄마 찬스’ 가운데 하나가 있어야 한다. 소속부대장이 꼼짝을 못할 ‘찬스’에 진단서를 얹어야 비로소 국군병원에 갈 수 있다. 그리고 국군병원으로 안 되어 종합병원·대학병원에 가야 한다고 여겨 휴가를 받는다면, 이른바 ‘병가’를 받으려 한다면, 이때에도 반드시 ‘정밀진단서’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진단서 없이 병가를 받았다면 진작부터 ‘아빠·엄마 찬스’를 허벌나게 썼다는 소리이다. ‘아들이 군대를 갔다’는 대목을 자랑하지 말자. 아들을 군대에 보내더라도 그대가 ‘아빠·엄마 찬스’를 허벌나게 쓰셨다면, 이야말로 막짓이요, 군대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디에서나 ‘아빠·엄마 찬스’가 없도록 다스려야 할 노릇 아닌가?


난 군대란 곳에서 ‘사계청소를 하며 뿌린 고엽제 뒤앓이로 다리에 온통 두드러기랑 피고름이 흘렀’어도 의무대는커녕 하루를 못 쉬었고, 마취제는커녕 소독제조차 없이 피고름을 그냥 칼로 도려내는 ‘처방’을 ‘여섯 달 동안’ 부대 막사에서 날마다 받았다. 수건 하나 주며 이를 악물라 하더라. 그게 마취제라고. 그대여, ‘찬스질 아들’ 이야기로 나라를 그만 어지럽혀라. 2020.9.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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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제값 (도서정가제) :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이 어떻게 사고팔리는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아무래도 출판사·도매상·큰책집이 ‘할인율(공급율)’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알기 어려울 테지만, 이런 얘기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나 기획자로 일하더라도 이 대목은 모를 수 있다. 영업부하고 대표만 ‘할인율(공급율)’을 알고서 쉬쉬한다면 한지붕을 인 출판사 다른 일꾼도 모를 만하다.


베스트셀러는 왜 베스트셀러가 될까? 그저 바람을 잘 탄 탓일까? 때로는 그럴는지 모르나, 으레 바람잡이가 있기 마련이다. 방송에 뜨는 책을 출판사에서 방송사에 돈(로비)을 안 풀었다고 여긴다면 그이는 바보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자주 나오는 책을 살핀다면, 몇몇 출판사 몇몇 글쓴이 책이 꽤 잦은 줄 눈치를 챌 만하다. 신문이나 잡지에 광고 한 판을 안 실은 출판사에서 낸 책을 찬찬히 알리는 일은 드물다.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드물 뿐이다.


꽤 예전에는 책집에서 100자락쯤을 시켜야 60%로 책을 보냈다면, 어느 때부터인가 50자락으로 내려왔고, 요새는 30자락으로도 60%를 달라고 한다지. 그런데 큰책집이나 누리책집은 이 ‘할인율(공급율)’을 더 깎으려고 한다. 큰책집은 하나같이 누리책집을 함께 꾸리는데, 오직 누리책집만 하는 곳도 가만히 보면 ‘10% + 5%’에다가 ‘거저로 보내기’를 해준다. 이래저래 따지면 책값에서 20%를 후려친 셈인데, 큰책집·누리책집은 책값 100%에서 20%를 후려치기 하려고 출판사에 40∼50%로 달라고 하기 일쑤요, 웬만한 책은 60%로 가져가려고들 한다.


오늘날 도서정가제란 이름인 틀은 마을책집이나 작은출판사에 크게 이바지하지 않는다. 아예 이바지를 안 하지는 않다만,  ‘10% + 5% + 무료택배’라는 대목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도서정가제는 도서정가제가 아니다. 2020년 8월에 나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을 큰책집·누리책집에서 500∼1000부를 시킨다고 신문에 나온다. 생각해 보자. 큰책집·누리책집이 한 가지 책을 500∼1000부 시킬 적에 출판사에 ‘할인율(공급율)’을 얼마로 해주기를 바랄까? 60%도 50%도 아닌, 더 내려 달라고 하지 않을까? 출판사에서는 큰책집·누리책집이 한 가지 책을 500∼1000부 시키면서 40%로 달라고 하는 말을 쉽게 내칠 수 있을까?


도서정가제가 이름 그대로 “책값을 제값대로 사고팔도록 하는 슬기로운 틀”이 되자면, 큰책집·누리책집·마을책집 모두한테 똑같은 ‘할인율(공급율)’을 매기도록 못박아야 한다. 큰책집·누리책집에서 1자락을 시키든 100자락이나 1000자락을 시키든 ‘할인율(공급율)’은 늘 똑같도록 못박아야 한다. 책값을 제값이 되도록 하려는 틀이란, 몇 가지 책을 밀어넣기 싸구려로 다루면서 베스트셀러 장난질을 끝장내는 길이 될 만하다.


큰책집·누리책집이 ‘할인율(공급율) 장난질 또는 막질’을 하면서 몇몇 책을 베스트셀러로 띄워서 마구 팔아치우며 그들 주머니를 불리는 얼거리를 이제는 갈아엎을 노릇이 아닐까? 이러한 얼거리를 여태 몰랐다면 그이는 출판평론가란 이름을 내려놓아야겠으며, 출판협회 대표란 이름이 창피하다. 이러한 얼거리를 몰랐다면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얼거리를 바로잡을 생각을 안 한다면,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요 한통속으로 끼리끼리 노는 돈장사꾼일 뿐이다.


도서정가제로 ‘모든 책집은 크고작든 똑같이 70%로 책을 받도록 맞추면’ 된다. 도매상에는 65%로 하되, 도매상은 소매를 할 수 없도록 못박아야 한다. 도매상이 65%로 받고서 소매를 한다면 곧바로 도매업 자격을 치워야겠지. 큰책집이나 누리책집이 도매상을 넘겨받으려고도 하는데, 그들이 왜 도매상을 넘겨받으려 하겠는가? 큰책집·누리책집은 소매상인 터라, 그들이 도매상을 끌어안을 수 있다면 출판사에 ‘할인율(공급율)’을 도매로 받고서 소매로 팔며 샛돈(차익)을 앉은자리에서 바로바로 먹을 뿐 아니라, ‘출판사한테서 도매로 받은 책을 소매로 반품하는 장난질’까지 칠 수 있다. 이런 일은 꽤 오래도록 있다. 큰책집·누리책집이 출판사에 ‘100자락 매절 60%’로 사들였다가 ‘70% 공급율 반품’을 하면, 큰책집·누리책집은 책을 1자락조차 안 팔고 반품만 해도 장부에는 ‘오히려 출판사가 책집에 돈을 줘야 하는 숫자 장난’이 생긴다.


간추려 본다면 이렇다. ㉠ 할인율(공급율)은 1자락이든 1000자락이든, 큰책집이든 마을책집이든 소매상에는 모두 언제나 똑같이 70%로 하기. ㉡ 도매상에는 할인율(공급율)을 65%로 하되, 도매상이 소매로 책을 팔면 곧바로 자격 박탈 및 벌금. ㉢ 큰책집·누리책집에서 에누리를 해주고 싶다면 얼마든지 에누리를 해주도록. 다만, ㉠에서 밝혔듯 큰책집·누리책집은 모든 책을 70%로만 받아들이는 테두리에서 스스로 알아서 에누리를 하든 말든.


‘도서정가제’란 말을 처음 듣던 날을 떠올린다. 이 일본스러운 한자말 짜임새는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왜 이렇게 이름을 지어야 할까? “책이 제값을 받도록”을 ‘책값제값’처럼 쉬운 이름으로 붙이면 그만 아닐까? ‘10 % + 5% 에누리’에다가 ‘택배 무료’는 따질 대목이 아니다. 누리책집에서 에누리를 해주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지. 다만 이 누리책집에 모든 책이 70%로 들어가도록 못박으면 될 뿐이다. ‘매절’이 없이, ‘대량주문 할인’이 없이, 모든 책은 1자락을 들이든 1000자락을 들이든 10000자락을 들이든 언제나 출판사한테서 70%로만 받아들여서 팔도록 못박으면 된다. 자질구레한 다른 대목은 따질 일이 없다. 이 하나로 쉽게 푼다.


덧붙인다면, 읽는이(독자)도 책집도 ‘글쓴이(지은이)’를 헤아려 보자. 글쓴이는 글삯으로 10%를 받는다. 그런데 큰책집·누리책집이 500∼1000자락을 한꺼번에 시키면서 할인율(공급율)을 40∼50%로 달라고 한다면, 글쓴이 몫은 그냥 까여 버린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가 팔리면 팔릴수록 오히려 글쓴이(지은이)는 제값(땀흘려 책을 지은 값)하고 멀어지고 마는 셈이다. 오늘날 큰책집·누리책집 베스트셀러 얼거리가 이렇다. 우리가 널리 읽고서 글쓴이(지은이)가 땀값을 제대로 받도록 하기를 바란다면, 큰책집·누리책집이 한꺼번에 500∼1000자락을 장만할 적에도 70%로 받아들여서 글쓴이(지은이)가 땀값을 제대로 받도록 할 노릇일 테지.


도서정가제는 이런 길로 가야 맞다. 도서정가제는 큰책집·누리책집이 ‘할인율(공급율) 후려치기’를 못하도록, 또 도매상이 소매업을 못하도록 막아 놓으면 된다. 이 두 가지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다. 1000자락을 팔아도 70%로 책집에 책을 넣을 수 있다면, 출판사에서 구태여 책값을 뻥튀기로 올려붙일 일이 생길 까닭이 없으리라. 2020.8.2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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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또는 모욕죄 : ‘공인’한테 하는 비아냥이나 비판은 명예훼손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공인’이라 해도 모욕죄는 언제나 걸린다. 그래서 ‘그들(공인)’, 이를테면 조국이나 문재인 같은 사람들이 법원에 가서(또는 변호사한테 일을 맡겨서) ‘모욕죄 고발’을 하면 누구라도 약식재판으로 200만 원 벌금을 치러야 한다. 오늘날 법이 이렇다. 그들(공인)이 굳이 약식재판을 걸지 않는다면, 귀찮기도 할 테고, 이렇게 약식재판으로 거는 일이 둘레에 알려질까 걱정하기도 할 테며, 무엇보다 그들한테도 돈과 품이 든다. 우리가 누리집이나 누리신문 덧글칸에 한 마디 적는 말마디조차 ‘그들(공인)’은 얼마든지 모욕죄로 걸어서 누구한테나 200만 원 벌금을 물릴 수 있는 오늘날 법이다. 그리고 이런 법을 오늘날 이 정부는 더 무섭게 조이려고 하지.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정부에는 ‘언론자유’가 없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누리집이나 누리신문 덧글칸으로 막말을 일삼는 짓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명예훼손’과 달리 ‘모욕’은 ‘약식재판 소송을 거는 사람 마음’에 따라서 그냥 벌금을 매기는 터라, 그야말로 누구나 걸리기 매우 쉬울 뿐이다. 이 이야기를 간추려 보자면, 그들(공인·권력자·집권자·정치꾼·지식인·공무원)은 무엇을 하려는 몸짓인가 하면, “너희들 말야, 따돌림을 받을래?” 아니면 “너희들 말야, 우리 쪽으로 와서 끼리끼리 뭉치고 봐주기를 할래?” 아니면 “너희들 말야,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살래?”를 묻는 셈이다. 나는 이 세 갈래 가운데 셋쨋길, ‘시골에서 조용히 살기’로 나아간다. ‘그들’을 쳐다볼 생각도 없지만, 그들하고 손잡을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다. 나는 우리 아이들하고 앞으로 새롭게 지을 숲길을 헤아리고 싶을 뿐이다. 2020.8.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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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책 검은책 (조국백서 조국흑서) : 밤이 되면 어둡다. 어두운 빛깔을 검정·까망으로 나타낸다. 이 어둠을 무섭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지만, 아이들은 새까만 밤에 꿈나라로 깊이 들어간다. 어른도 매한가지이다. 밝은 데에서는 몸이 못 쉰다. 적어도 눈만큼은 가리개를 하지. 밤에는 밤빛 그대로 맞아들이면서 온몸을 어둠으로 감싸 놓아야 비로소 몸에 새기운이 흐르면서 이튿날 아침을 개운하면서 기쁘게 맞이한다. “검은 것이 나쁘다”라든지 “어둠이 나쁘다” 같은 말을 누가 함부로 읊었을까? 하얗기에 더 좋지 않지만, 하얗기에 나쁘지도 않다. 검기에 나쁘지 않으며, 검기에 더 좋지 않다. 우리 삶에서는 그저 검정하양이 함께할 뿐이다. 밤낮이 늘 어우러진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맞물리면서 밤낮(검정하양)이 알맞게 흐른다. 이 검정하양(밤낮)을 맞아들이기에 모든 숨결이 새롭게 피어나고 자라난다.


‘조국백서’란 이름을 달고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란 책이 나왔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검찰‘만’ 뜯어고쳐야 한다고 여겼을까? 왜 ‘정치개혁·경제개혁·교육개혁’은 입에 안 올릴까? 이 나라 검찰이 깨끗할 턱이 없다고 여긴다면, 경찰은 깨끗한가? 교육·종교·의약·문화·예술·경제 가운데 깨끗한 곳이 있는가? 더구나 뜯어고치자고 말하는 무리에 선 이들치고 ‘가난한 일꾼이나 심부름꾼’은 도무지 안 보인다. 그저 시민단체에서만 일했다는 어떻게 6억이 넘는 돈에 집을 여럿 거느릴 수 있을까? 검찰개혁을 말하는 정치꾼·먹물꾼·글꾼 가운데 근로장려금이나 자녀장녀금을 받을 만큼 가난한(또는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대상) 이는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조국흑서’란 이름이 붙으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이 잇달아 나왔다. 나는 ‘흰책’도 ‘검은책’도 못마땅하다. 나는 두 책 모두 짚어야 할 곳을 제대로 안 짚거나 못 짚는다고 여긴다. 나라를 뜯어고치기란 참 쉽다. 입시지옥을 걷어치우면 된다. 대학교를 서울에 우르르 몰아놓은 틀을 허물면 된다. 막삽질로 떡고물을 얻는 모든 지자체와 공공기관을 끊어내면 된다. 뒷돈(로비)이 없이 살림을 꾸려야지.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 시멘트·아스팔트를 그만 들이붓고, 이제는 숲을 가꾸어야지.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려 할 적에 권정생 할배는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한다”고 외쳤다. 이 말을 조금 고쳐서 “자가용을 버리면 나라가 아름답다”고 외쳐야지 싶다. 서울이고 부산이고 길이 왜 막히는가? 다 자가용 때문이다. 왜 이렇게 빠른길(고속도로)을 엄청나게 뚫었나? 다 자가용 탓이다. 햇볕판을 세우려면 시골이나 멧골이 아닌 찻길 지붕으로 세우면 될 노릇이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시골하고 멧골에 햇볕판을 터무니없도록 때려박았다.


‘백서(白書)’란 모름지기 민낯까지 낱낱이 밝히는 책이다. 그래서 ‘흰책’이다. 그러나 ‘조국백서’는 “아빠 찬스·엄마 찬스”를 비롯한 ‘그들잔치·끼리질’을 눈감기만 한다. 찬스질에 그들잔치를 눈감은 채 무슨 흰책이 될까. 백서에 맞선 ‘흑서(黑書)’는 사전에 없는 말인데, ‘검은책’이란 우리 속내를 고스란히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거듭나자는 생각을 밝혀야 마땅하겠지. ‘조국흑서’라는 책으로 줄거리를 엮어 문재인·민주당 권력자를 매섭게 나무랄 만하다. 제대로 나와야 할 목소리라고 여긴다.


다만 검은책을 쓴 이도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배부른 자리에 섰기에 나라를 아름답게 가꾸는 길을 밝히지 못할 까닭은 없다만, ‘배부르지 않은 일꾼이나 심부름꾼’이 한 사람쯤은 섞여서 이야기판을 벌이면 어떠했으랴 싶다. 가난하면서 참한 글꾼이 이 땅에 한 사람조차 없으리라 보지는 않는다.


자가용이 없이 살면서, 두 다리하고 자전거로 아이들을 돌보고 움직이면서, 숲을 곁에 두거나 숲 한복판에서 지내면서, 즐겁게 집안일을 도맡을 줄 알고, 밥살림·옷살림·집살림을 스스로 건사하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참말로 참하면서 수수한 글꾼 목소리가 깃들 적에 비로소 제대로 ‘검은책’이건 ‘흰책’이건 빛나겠지. 2020.8.28. ㅅㄴㄹ


+ + +


붙임말 : '조국흑서'가 나왔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서, 누리책집 한 곳에서 살펴보려 하는데, 도무지 그 책이 안 뜨더라. 어인 일인가 매우 알쏭달쏭했지만, 하루가 지난 뒤부터는 잘 찾아볼 수 있더군. 그 누리책집은 일부러 그 책이 안 뜨이도록 감추려고 했을까? 부디 그런 얕은짓이 없었기를 빈다. 그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엄청나게 찾아오면서 하루 동안 그 누리책집에서 '오직 그 책 하나'하고 '그 책을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도록 메롱거렸다고 여기고 싶다. 왜냐하면 오직 그 조국흑서 하나면 찾아보기 어렵도록 메롱거렸으니까. 그 자국을 갈무리해 놓았기에 사진파일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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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벗기 : 참된 길이란 참된 삶이니, 참길을 찾아서 가고 싶으면 거추장스러운 옷은 벗는다. 참길을 가고프니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란 옷을 걸칠 까닭이 없다. 참삶을 짓고 싶으니 ‘사회에서 주는 이름(명예)’이란 옷을 두를 일이 없다. 참된 모습은 겉눈으로 볼 수 없다. 참모습은 마음으로 본다. 참사랑은 겉훑기나 겉치레가 아니다. 참사랑은 오직 참다운 마음이다. 그럴듯한 옷으로 몸을 둘둘 감싸는 몸짓이면서 참말을 할 줄 알까? 그럴싸한 옷으로 몸을 친친 감싸는 몸짓이라면 거짓말을 하겠지. 1999.8.2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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