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날아온 책



  한낮이 되어 빨래를 하자고 생각할 무렵, 집에 책 한 권 날아온다. 내가 시킨 적이 없는 책이다. 누가 책을 보내 주었을까. 봉투를 뜯으니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라는 조그마한 책이고,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이 선물로 보내셨다. 이 책을 옮긴 분은 영국에서 다섯 식구가 오순도순 지낸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국에서 일군 책이 하늘을 가르고 훨훨 날아서 우리 집에 온 셈이다. 그나저나, 이 책을 옮긴 분은 어떻게 나한테 이 책을 보내셨을까.


  책에 깃든 편지를 읽는다. 내가 예전에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님 책을 읽고서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그 느낌글을 읽으셨구나 싶다. 고맙다. 고운 책을 읽은 느낌을 찬찬히 적었을 뿐이지만, 이 글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었구나.


  새롭게 태어난 책을 쓰다듬는다. 새롭게 태어난 책에는 어떤 숨결이 깃들었을까. 여러 해 앞서하고 오늘은 다르다. 사람도 삶도 마을도 이야기도 다르다. 지난날에 나는 도시에서 살며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를 읽었다면, 이제는 시골에서 살며 이 책을 새롭게 만나는 셈이다. 어디에 있든 나는 틀림없이 나일 텐데, 내가 보고 마시고 맞아들이고 느끼는 보금자리는 다르다. 아침저녁으로 나무와 인사하는 시골집에 찾아든 책을 기쁘게 읽자. 4347.12.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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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2-10 17:38   좋아요 0 | URL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이고, 아름다운 책이네요~~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책제목도 좋구요!
기쁘게 읽으시고, 즐거운 느낌글 부탁드립니다~^^*

숲노래 2014-12-10 21:31   좋아요 0 | URL
네, 아주 부드러우면서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어버이나 교사가
이런저런 교육책이나 육아책이 아닌
이러한 `이야기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를 바라요.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 만화책 ㄴ



  요즈음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학교로 만화책을 몰래 가져와서 서로 돌려읽곤 했다. 만화책이 있는 아이도 없는 아이도 학교에서 만화책 한 권을 같이 읽으면서 즐거운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국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이나 군립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좀처럼 장만하거나 갖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만화책을 ‘책’으로 안 여긴다. 만화책 가운데 몇 가지는 도서관에도 들어가고 ‘추천 교양도서’ 이름을 받지만, 어여쁜 이야기와 그림으로 어여쁜 꿈과 사랑을 심도록 이끄는 멋진 만화책이 두루 알려지거나 읽히지는 않는다.


  지난날에는 학교에서 교사가 왜 만화책을 빼앗아서 찢거나 불살랐을까. 왜냐하면, 교사 스스로 만화책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학교에서 왜 만화책을 먼저 장만해서 도서관에 갖출 수 있는가. 왜냐하면 오늘날 교사 가운데에는 어릴 적부터 만화를 보고 자라면서 ‘만화책도 아름다운 책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챈 어른이 있기 때문이다.


  숲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숲이 베푸는 기운을 모른다. 나무를 심어서 돌본 적 없는 사람은 나무와 함께 일구는 살림을 모른다. 풀을 손수 뜯어서 먹은 적 없는 사람은 풀내음이 우리한테 어떤 사랑인지를 모른다. 기저귀를 손수 갈며 빨래해서 말리고 갠 적이 없는 사람은 아기를 돌보는 하루가 얼마나 고되면서 즐거운지를 모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문학은 오직 글로 이야기를 엮는데, 만화책은 글과 그림을 함께 쓰기 때문에, 만화책에서 흐르는 글은 문학과 같고, 만화책에 깃드는 그림은 예술과 같다. 문학과 예술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질 때에 어여쁜 만화책이 태어난다. 그냥저냥 따분하거나 이냥저냥 읽어치우는 만화책이 있지만, 두고두고 되읽는 아름다운 만화책이 있다. 두고두고 되읽는 아름다운 만화책은 문학과 예술을 고루 갖춘다.


  시골 아이들도 도시 아이들도 아름다운 숨소리를 만화책에서 배울 수 있기를 빈다. 시골 어른들도 도시 어른들도 사랑스러운 노랫소리를 만화책에서 얻을 수 있기를 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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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짓왕 2014-12-05 08:02   좋아요 0 | URL
상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젊은층들 중에서도 만화책은 그저 애들이나 읽는 수준 낮은 책에 불과하며, 그 만화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작품성을 띠는지를 전혀 알아보려 시도조차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주류 도서의 서글픈 운명인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4-12-05 09:23   좋아요 0 | URL
슬픈 운명일 수도 있지만,
요즘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 스스로 `아름다운 책 하나`를
스스로 등돌리면서
아름다운 이야기하고
스스로 멀어지는 셈이로구나 싶기도 해요.

누구나 스스로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하지만
아예 모르기도 하지 싶어요...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 만화책 ㄱ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에 찾아간다. 이곳 아이들과 이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잔치를 누린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마음속에는 어떤 씨앗이 있을까.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동무를 사귄 아이들 가슴속에는 어떤 노래가 있을까. 시골에서 나고 자라 학교를 다니지만 모두 도시로 가고 싶다는 뜻을 키우는 아이들 머릿속에는 어떤 사랑이 있을까.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은 그리 크지 않다.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이 갖춘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작은 책터는 누구한테나 열렸고, 햇볕이 잘 들며, 아기자기하게 예쁜 책들이 쏠쏠히 있다. 도시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보다 작으며, 시골 읍내에 있는 더 작은 책방보다 작은 시골 고등학교 도서관이지만, 이곳에는 ‘읽을 책’과 ‘읽힐 책’이 있다.


  그렇다. 도서관은 커야 하지 않다. 도서관에는 책이 가득 쌓여야 하지 않다. 도서관에는 ‘책을 둘러싼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도서관에는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책으로 짓는 꿈을 키우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도서관에는 ‘내 삶에서 몸으로 미처 겪지 못한 이야기를 배우도록 돕는 길동무’가 있어야 한다.


  만화책 《닥터 노구찌》가 아주 너덜너덜하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 만화책을 읽었을까. 이 만화책을 읽은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과 뜻을 가슴에 씨앗으로 심을 수 있었을까.


  내 어릴 적을 돌아본다. 내가 처음 만난 ‘학교 도서관’을 떠올린다. 고등학교를 두 해째 다니던 때에 비로소 ‘학교 도서관’을 만났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에는 ‘학교 도서관’이 없었고, 중학교에는 ‘학급문고’조차 없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학교 문을 연 지 다섯 해’가 되어서야 ‘빈 교실’ 한 칸을 고쳐서 겨우 ‘도서관 시늉’을 낼 뿐이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나로서는 스무 해 남짓 앞선 지난날에, 낡거나 닳은 책이 있으면 겉종이를 새로 대고, 하얀 실로 꿰매었다. 책손질을 마친 뒤에는 무거운 돌로 며칠쯤 눌렀다. 겉종이를 새로 댈 적에는 붓으로 책이름을 정갈하게 새로 적었다. 그림까지 그려 넣지는 못했지만, 하얀 빛깔로 새 겉종이를 대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여러 사람 손길을 기쁘게 탈 수 있기를 바랐다.


  책 한 권을 새로 사자면 돈이 그닥 많이 안 든다. 만화책 한 권 새로 장만하자면 오천 원이면 넉넉하다. 낡고 닳은 만화책 《닥터 노구찌》를 손질하자면 며칠쯤 걸릴까. 두꺼운 종이를 대고 나무풀을 바르고 실로 꿰매고 하얀 종이를 덧대어 이름을 새로 적고 무거운 돌로 눌러서 책꼴을 새로 내도록 할 수 있는 책아이를 기다린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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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책



  이웃한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란, 참 즐거우면서 예쁜 책이로구나 싶어요. 동무한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란, 참 기쁘면서 사랑스러운 책이로구나 싶어요.


  예쁜 책은 나 한 권 갖고 이웃한테 한 권 선물합니다. 사랑스러운 책은 나 한 권 읽고 동무한테 한 권 선물합니다. 예쁜 책이기에 내 책을 이웃한테 빌려줍니다. 사랑스러운 책이기에 내 책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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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30 08:22   좋아요 0 | URL
<윤미네 집>을 요즘 다시 보았는데 괜히 반갑네요~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보니, 독일에서 동생 결혼식에 딸아기를
데리고 잠시 돌아온 대녀에게 선물하고픈 마음이 마구 듭니다~*^^*

숲노래 2014-11-30 09:57   좋아요 0 | URL
예쁜 책은 오래도록 꾸준하게 사랑받을 테지요?
박정희 할머님이 이제 많이 늙으셨는데
올겨울 따스히 나시기를 마음으로 빕니다
 

‘책읽기’와 ‘책값 읽기’



  도서정가제라는 제도가 모든 것을 이루어 줄 수 없다고 느낀다. 다만, 도서정가제는 적어도 한 가지 일은 할 수 있다. 큰 출판사와 사재기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장난질’을 하려고 ‘책값 장난 치기’를 하려는 짓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혼자 살면서 출판사 일꾼으로 있을 적에 ‘한 해에 책값 천만 원 쓰기’를 곧잘 했다. 시골에서 네 식구가 살아가는 요즈음은 이렇게 못 한다. 그러나, 예전이나 이제나 똑같이 하는 일은 하나 있다. 책을 장만할 적에는 오직 책만 본다. 책을 장만할 적에는 책값을 보지 않는다.


  책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본다. 책값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책값을 본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는다. 베스트셀러를 읽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베스트셀러를 읽는다. 이야기를 만나려는 사람은 언제나 이야기를 만난다. 유명 작가를 만나려는 사람은 언제나 유명 작가를 만난다.


  책값을 보거나 베스트셀러를 보거나 유명 작가를 보는 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그럴 뿐이다. 책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책을 만나는 일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다만 그러할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가려는 길을 간다. 이 길은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그저 이러한 길일 뿐이다. 이를테면, 요즘 사회에서 진보로 갈 수 있고 보수로 갈 수 있다. 진보로 가기에 늘 아름답지 않고 보수로 가기에 늘 안 아름답지 않다. 진보로 가지만 검은 꿍꿍이를 품기에 이웃을 등치는 사람이 있다. 보수로 가지만 맑은 마음이 되기에 이웃을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 공무원이 되면서 아름다운 정책을 펴는 사람이 있고 공무원이 되면서 쇠밥그릇을 붙잡는 사람이 있다. 신문기자가 되면서 끔찍한 비틀기를 일삼는 사람이 있고 신문기자가 되면서 곧은 붓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일을 한대서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지 않다. 어떤 일을 한다면 그예 어떤 일을 할 뿐이다. 어느 곳에 서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길을 걷든,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름이 그리 안 알려진 사람이 쓴 알찬 책을 읽는다고 해서 더 훌륭하지 않고, 이름을 팔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쓴 허울좋은 베스트셀러를 읽는다고 해서 바보스럽지 않다.


  ‘책값 읽기’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값을 읽기에, ‘읽을 책’을 살피는 눈길보다는 ‘더 값싸다 싶은 책’을 살피는 눈길이 되기 쉽다. ‘즐겁게 읽을 아름다운 책’이라 하더라도 ‘값이 세다’고 여겨 끝끝내 이 책은 손에 쥘 생각을 못 하기 쉽다.


  ‘책읽기’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책을 읽기에, ‘내가 읽을 책’이 값이 높다면 ‘높은 책값을 장만하는 길’을 생각한다. 꾸준히 돈을 벌고 모아서 ‘내가 읽을 책’을 끝끝내 장만하고야 만다.


  값이 싸거나 에누리를 많이 하는 책을 읽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못 누리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을 살뜰히 가눈다면 어떤 책을 손에 쥐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누린다. 그저 ‘값이 싼 책’이나 ‘에누리를 많이 하는 책’을 살피면서 장만한다면. ‘이야기’가 아닌 ‘값’에 휘둘리기 쉬울 뿐이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려 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려 한다고 느낀다. ‘책값’이 아니라 ‘책’을 보려는 사람이 틀림없이 많다고 느낀다. 고마운 이웃님이요 책동무는 우리 둘레에 아주 많다고 느낀다. 이들이 있어 책마을이 살아나고, 이들이 있기에 책지기는 새로운 책을 씩씩하게 엮어서 내놓을 수 있다.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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