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숨’을 읽는다



  사람은 왜 바보가 될까요. ‘숲’을 잊거나 잃으면서 ‘숨’을 모르거나 등지기 때문입니다. 숨은 숲에서 나오고, 숲은 숨을 낳습니다. 숲이 있기에 밥과 옷과 집이 태어나며, 밥과 옷과 집이 태어나기에 목숨을 잇습니다. 숲이 없으면 밥과 옷과 집이 태어나지 못하고, 밥과 옷과 집이 태어나지 못하면 목숨을 잇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숲이 없이도 밥과 옷과 집을 만드는 척합니다. 그러나, 도시문명은 도시와 퍽 먼 데에 있는 시골에서 밥과 옷과 집을 끌어 옵니다. 숲이 우거진 시골이 없으면 도시는 아무런 무역을 할 수 없기에 물질문명을 세우지 못합니다. 도시에 있는 사람은 숲을 본 적이 없지만 숲이 없으면 도시가 버티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숲을 가꾸거나 돌본 적이 없지만 숲이 없으면 돈이 모조리 사라집니다.


  도시에서는 아이와 어른 모두 숲을 못 보고 숲을 못 배우며 숲을 못 물려주고 숲을 못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 살며 숲을 생각하거나 배우려고 하면 마땅히 도시를 떠나려 할 테니까요. 도시에서 살며 숲을 잊거나 잃어야, 도시에서 힘·돈·이름을 거머쥔 이들이 다른 사람을 종처럼 부리면서 힘과 돈과 이름을 더 무시무시하게 떨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종으로 부리거나 짓누르면서 밥그릇을 챙기려는 속셈이기에, 도시에서는 학교와 사회와 문학과 언론과 교육 어디에서도 숲을 이야기하지 않고 숲을 등돌리게 이끌 뿐입니다.


  숲은 모든 것입니다. 숲에서 숨이 자라기 때문에 숲은 모든 것입니다. 숲은 숨을 북돋아 사람이 살도록 합니다. 지구별이라는 터전에서는 숲이 있기에 사람이 있고, 사람은 숲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얼거리입니다. 숲에 깃들어 숲이 왜 태어났고 숲이 왜 이루어지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 뜻과 값을 깨닫거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밥을 먹거나 고기를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풀을 뜯거나 나물을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쌀이나 밀이나 밥이나 빵을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숨을 쉬어야 합니다. 우리 몸뚱이는 바로 숨을 바랍니다. 숨을 알고 느껴서 숨을 읽을 때에 비로소 목숨을 깨닫고, 목숨을 깨달은 뒤에 숨결을 느끼며, 숨결을 느낀 다음에 넋을 헤아립니다.


  몸은 밥을 먹지 않습니다. 몸은 숨을 쉽니다. 숨을 쉴 때에 언제나 싱그럽게 흐르는 몸입니다. 숲은 이를 잘 알려줍니다. 즈믄 해를 살고 만 해까지 살기도 하는 나무가 ‘목숨’이 무엇인지 잘 알려줍니다. 나무는 숨을 쉴 뿐이고, 숨을 나누어 줄 뿐입니다. 사람도 스스로 숨을 쉬고, 숨을 둘레에 나누어 줄 수 있다면, 비로소 ‘목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도시에 나무가 없는 까닭, 게다가 요새는 시골에까지 나무가 드문 까닭(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 때문에)을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도시에서 정치를 하거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이들이 자꾸 나무를 베거나 치는 까닭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도시에 온통 건물만 높이고 나무를 짓밟는 까닭을 슬기롭게 알아야 합니다. 아예 나무를 쳐다보거나 바라보지 않아야 숲을 모조리 잊을 수 있고, 사람이 숲을 모조리 잊어야 종(노예)으로 부리기 쉽습니다.


  마음은 밥을 먹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합니다. 마음을 가꾸려면 밥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을 가꾸려면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마음자리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야 비로소 마음이 자랍니다. 사랑이라는 씨앗은 어떻게 심을까요? 마음을 움직여 생각을 할 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생각을 움직여 사랑을 심을 때에 싱그럽습니다.


  대통령을 갈아치우든 국회의원을 바꾸든 사회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 스스로 ‘우두머리한테 얽매인 종살이 얼개’를 그대로 두면서 붙들리니, 아무것도 안 달라집니다. 나무를 심고 숲집을 가꾸어,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안 달라집니다. 투표가 정치나 사회를 바꾸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넋이 정치와 사회를 모두 바꿉니다. 이런 신문을 안 보거나 저런 신문을 본대서 정치나 사회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모든 신문을 끊고 나무를 심으면서 숲을 돌보면서 숲바람(숨)을 느낄 적에 정치와 사회가 모두 달라집니다.


  ‘종살이 얼개’에서는 왼쪽 무리와 오른쪽 무리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버팁니다. ‘종살이 얼개’이기 때문에 늘 두 갈래로 길을 가릅니다. 이와 달리, 숲은 왼쪽도 오른쪽도 없습니다. 숲에는 그저 숲이 있을 뿐, 왼쪽이나 오른쪽이라는 갈래길이 없습니다. 나뭇가지에도 꽃에도 왼쪽이나 오른쪽이 없습니다. 숲은 모두한테 골고루 숲이고, 숨은 모두한테 똑같이 숨입니다.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교육은 언제나 금긋기(편가르기)를 하면서 이쪽이 투표로 이겨야 하는 듯이 다투는데, 언제까지나 사람을 다툼질에 얽어매면서 바보로 길들일 뿐인 투표와 ‘민주 사회 제도’입니다.


  잘 살펴야 합니다. 왼쪽 무리이든 오른쪽 무리이든, 몸뚱이가 있으면 누구나 밥을 먹어야 합니다. 시골지기는 왼쪽 무리한테든 오른쪽 무리한테든, 흙을 일구어 밥을 나누어 줍니다. 왼쪽 무리는 오른쪽 무리와 나누지 않고, 오른쪽 무리는 왼쪽 무리와 나누지 않지만, 먼 옛날부터 시골지기는 왼쪽과 오른쪽이 없이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두레와 품앗이를 했습니다. 시골지기는 숲바람을 마시면서 숨을 느꼈기에 금긋기 따위는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숲에서 숨을 쉴 때에 비로소 웃습니다. 숲에서 숨을 쉬기에 비로소 이야기꽃이 핍니다. 숲을 읽을 수 있는 눈썰미일 때에 모든 것을 읽습니다. 숨을 지을 수 있는 몸가짐일 때에 모든 것을 짓습니다.


  우리는 “읽고 짓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웃고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금긋기를 하루 빨리 내려놓아야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종이책이나 인문책에 매이지 말고, 삶을 읽고 지으면서 가꿀 때에 비로소 사람이 됩니다. 4347.12.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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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와 삶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모든 일은 똑같다고 느낍니다. 다 다른 일은 없다고 느낍니다. 책읽기가 밥짓기와 다르지 않고, 대학교가 초등학교보다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사람이 스리랑카에서 배운 사람과 다르지 않으며, 핀란드에서 배운 사람이 대만에서 배운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배운 사람이 이라크에서 배운 사람과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ㅅㄱㅇ이라는 대학교가 칠레에 있는 대학교와 다르지 않아요.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책을 읽어야 배우지 않습니다. 밥을 지으면서도 배우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배우며, 밭을 가꾸면서도 배웁니다. 배우려면 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아기를 돌보면서도 배우고, 걸레를 빨면서도 배우며, 짐을 나르면서도 배웁니다. 우리는 늘 배웁니다.


  오늘날 학교는 시험문제를 푸는 곳이 됩니다. 배우는 곳이 학교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날 쏟아지는 수많은 책은 ‘삶을 배우는 그릇’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삶을 배운다’거나 ‘사랑을 배운다’고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진을 배우려면 삶을 배우면 됩니다. 강의를 듣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글을 배우려면 사랑을 배우면 됩니다. 글쓰기 강의를 듣거나 글쓰기 길잡이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밥을 짓는 사람이 사진을 잘 배웁니다. 아이와 놀고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이 글을 잘 배웁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사진을 잘 배우고, 나물을 잘 뜯는 사람이 글을 잘 배웁니다.


  하루하루 삶을 지을 수 있으면 ‘종이로 묶은 책’이 없어도 됩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하루 사이에 ‘종이책 만 권’을 너끈히 짓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삶을 지은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종이책 만 권’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입니다. 4347.12.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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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책 한 권을 쓴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느낀다. 책 한 권을 펼치면서, 책 한 권을 엮은 사람이 흘린 땀방울을 헤아린다. 책 한 권을 장만하면서, 책 한 권이 태어나기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내가 책 한 권을 쓴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웃과 동무한테 퍼진다. 내가 책 한 권에 이르는 말을 조곤조곤 들려주면,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 어린 씨앗이 톡톡 터진다. 내가 아이한테 베푸는 이야기는 아이가 받아먹는 마음밥이 되면서, 내가 나한테 다시 아로새기는 따사로운 다짐말이 된다.


  ‘내가 이루고 싶은 삶’은 ‘내가 손에 쥐어 읽는 책’이 된다. ‘내가 이룬 삶’은 ‘내가 스스로 쓰는 글’이 된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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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d 2014-12-19 09:19   좋아요 0 | URL
사진 속 아이곁에 앉아 함께 들여다보고싶은 충동이 이네요 ^^

숲노래 2014-12-19 13:43   좋아요 0 | URL
책순이 옆에 앉으면 하루 내내 함께 놀 수 있습니다 ^^
 

고운 책빛



  꽃송이를 감싸는 고운 기운을 느끼면서 꽃을 바라본다. 꽃 한 송이에는 이 꽃이 피기까지 드리운 햇볕과 빗물과 바람과 흙이 골고루 섞인다. 꽃송이는 그냥 꽃송이가 아니라, 햇볕을 머금은 꽃송이요 빗물을 마신 꽃송이요 바람을 먹은 꽃송이요 흙으로 자란 꽃송이라 할 수 있다.


  책을 감도는 고운 손길을 느끼면서 책을 마주한다. 책 한 권에는 이 책이 태어나기까지 받은 사랑과 꿈과 이야기와 노래가 골고루 어우러진다. 사랑을 받아 태어나는 책이다. 꿈이 모여 태어나는 책이다. 이야기가 샘솟아 태어나는 책이다. 노래가 흘러 태어나는 책이다.


  고운 꽃빛은 우리 눈과 코와 살갗을 기쁘게 북돋운다. 고운 책빛은 우리 넋과 마음과 생각을 즐겁게 살찌운다. 고운 꽃빛은 꽃송이가 뿌리를 내린 흙을 더욱 기름지게 가꾸는 숨결이 되고, 고운 책빛은 이 책을 엮은 사람들한테 더운 웃음을 베푸는 숨결이 된다.


  책을 짓는 사람이 삶을 짓는다. 삶을 짓는 사람이 책을 짓는다. 책을 읽는 사람이 이웃을 읽고, 이웃을 읽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


  꽃마다 다 다른 빛이 흐른다. 책마다 다 다른 빛이 춤춘다. 꽃마다 아기자기하게 하늘거린다. 책마다 사랑스럽게 팔락거린다. 오늘 태어나 눈부시게 맑은 잎을 벌리는 꽃은 앞으로 새로운 꽃이 태어날 밑거름이 된다. 오늘 태어나 눈부시게 밝은 슬기를 퍼뜨리는 책은 앞으로 새로운 책이 태어날 밑거름이 된다. 고운 책빛을 두 손으로 담으면서 눈을 뜬다. 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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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장만하지 못한 책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고른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앞으로 읽으려는 책을 고른다. 그런데, 책방마실을 할 적마다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책이 꼭 있다. 오늘 내 주머니에 따라 책을 고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더 많은 책에 눈길이 가지만, 내 주머니는 홀쭉하기 때문이다.


  책을 어느 만큼 장만할 수 있으면 흐뭇할까. 새책방에서건 헌책방에서건 하루에 백만 원쯤 책값으로 쓸 수 있으면 흐뭇할까. 이백만 원이나 오백만 원쯤 날마다 책값으로 쓸 수 있으면 흐뭇할까.


  한 사람이 책방 한 곳에서 날마다 백만 원어치에 이르는 책을 장만한다면, 이 책방에 책이 남아나겠느냐 하고 물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한 사람이 날마다 책방 한 곳에서 백만 원어치에 이르는 책을 장만한다면, 이곳 책방지기는 날마다 더 많은 책을 갖추려고 더 바지런히 힘을 쓰리라 본다. 그래서 날마다 백만 원어치에 이르는 책을 책방 한 곳에서 장만한다면, 이 책방은 나날이 살림을 더욱 북돋우면서 훨씬 많은 책을 갖추어 더 많은 사람한테 훨씬 많은 책을 선보이는 책살림이 되리라 느낀다.


  미처 장만하지 못한 책을 마음속으로 그린다. 다음에는 이 책들을 장만하자고 다짐한다. 다음에 찾아올 적에 이 책들이 이곳에서 사라질 수 있지만, 다른 예쁜 책손이 이 어여쁜 책을 기쁘게 장만할 수 있지만, 나중에라도 이 책들이 그대로 있다면, 아니면 다른 책방에서 이 책들을 만날 수 있다면, 내 주머니가 ‘책값이 끝없이 철철 흘러넘치는 멋스러운 샘물’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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