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좋은 시외버스



  시외버스는 책을 읽기 퍽 좋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이제 시외버스에서 ‘멀미를 어떻게 안 할 수 있는가’를 알았기에, 시외버스에서 기쁘게 글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책도 예전보다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아이들을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면 아이들과 노느라 바빠서 책을 손에 쥘 겨를이 없다. 참말 아이들과 노는 일이 더 즐거우니, 굳이 책에 손이 안 간다. 시외버스를 여러 시간째 달리다가 어느덧 아이들이 잠들면, 이때에 비로소 책을 살짝 손에 쥔다.


  멀미를 생각하니 멀미가 난다. 멀미를 생각하지 않으니 멀미가 안 난다. 즐겁게 아이들과 노니, 집에서도 시외버스에서도 즐겁다. 즐겁게 책을 손에 쥐니, 어느 책을 펼치든 즐거운 이야기가 흐른다. 그러니까, 꼭 시외버스가 아니어도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셈이요, 굳이 책이 아니어도 삶을 읽거나 이웃과 만나는 기쁨을 누릴 만하다. 4348.2.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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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으면


  시집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는 언제나 노래가 되어, 마음을 따사롭게 밝히는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곤 해요. 그러면, 모든 시가 언제나 노래가 될까요? 네, 모든 시는 언제나 노래가 됩니다. 잘난 시가 없고 못난 시가 없습니다. 대단한 시가 없고 대수롭지 않은 시가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나 풀잎을 흔들어야 노래이지 않습니다. 빗길에 택시가 엄청나게 내달리면서 물을 튀기는 소리는 노래가 아니지 않습니다. 아기가 젖 달라고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빨래를 비비고 헹구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광고도 노래이고, 시곗바늘이 똑딱똑딱 움직이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노래로 여겨 받아들일 수 있으면 모두 노래입니다. 노래로 여기지 못해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예 텅 빈 가슴입니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사롭게 거듭나는구나 하고 느끼는 까닭은, 훌륭한 시를 읽기 때문이 아닙니다. 훌륭하구나 싶은 시를 읽으면 새로운 것을 한 가지 깨우치기는 하지만, 훌륭하지 않구나 싶은 시를 읽더라도 새로운 것을 한 가지 깨우칩니다. 어느 시를 읽든 참말 무엇이나 다 깨우쳐요. 왜냐하면, 삶이거든요. 시는 삶을 노래하려는 몸짓이거든요.

  나는 시를 씁니다. 나는 내가 나한테 읽히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읽을 시를 씁니다. 우리 삶을 노래할 이야기를 손수 짓고, 우리 삶을 사랑하는 길에 나아갈 꿈을 손수 일굽니다. 4348.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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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을 왜 비싸다고 여길까



  책값이 비싸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책 한 권이 ‘내 삶으로 맞아들일’ 만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읽고 싶다’거나 ‘읽어야겠다’고는 여기더라도, 어느 책 하나를 ‘내 삶으로 맞아들일’ 만하다고 여기지 않을 적에는, 늘 책값이 비싸다고 여깁니다.


  책값을 고스란히 치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책값을 놓고 싸다거나 비싸다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야 할 책이니 사고, 읽어야 할 책이니 읽으려 할 뿐입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이 모자라다면, 남한테 빌려서라도 책값을 댑니다. 때로는 외상을 걸고, 때로는 돈을 더 모아서 다음에 책을 장만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책 한 권이 ‘내 삶으로 맞아들일’ 만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책값을 보지 않습니다. 무엇을 볼까요? 오직 ‘책을 봅’니다. 책을 보는 사람은 책값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책을 바라보는 사람은 책값에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습니다.


  내가 읽을 책을 사야 하니까 사는 사람은, 책값이 더 싸다고 해서 그쪽으로 눈이 가지 않습니다. 내가 읽을 책을 장만하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사려는 책값이 퍽 높다 싶으면 그만 한 돈을 벌려고 일을 합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느낀다면, 왜 비싸다고 느끼는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책값이 싸다고 느낀다면, 왜 싸다고 느끼는지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싼 책을 고르는 사람은 ‘읽을 책’이 아닌 ‘값싼 물건을 쟁이려’는 몸짓입니다. 비싼 책을 부러 고르는 사람은 ‘읽을 책’이 아닌 ‘집에 모셔서 남한테 자랑하려’는 몸짓입니다.


  우리가 읽을 책은 그저 책입니다. 우리는 장식품이나 골동품을 모으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에서 삶을 읽으면서 내 삶을 새롭게 가꾸고 싶습니다. 내 삶을 새롭게 가꾸는 길에 동무가 되니까 책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4348.2.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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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상’을 참말 왜 주어야 하는가



  사회를 보면, ‘많이 팔린 책’이 마치 ‘사랑 받은 책’이라도 되는 듯 잘못 다루곤 한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노릇이다. 많이 팔린 책은 그저 ‘많이 팔린 책’이다. 사랑 받은 책은 ‘사랑 받은 책’이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었대서 이런 책을 ‘사랑 받은 책’이라고 한다면, 이를테면 ㅈㅈㄷ 같은 신문을 놓고 ‘사랑 받는 신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사랑 받는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소주’를 ‘서민이 마시는 술’이라거나 ‘사랑 받는 술’인 듯 다루지만, 소주값보다 맥주값이 더 싸다든지, 양주나 포도술이 소주값보다 더 싸다면 어떻게 될까? 맥주값이 소주값보다 쌀 적에도 사람들은 맥주 아닌 소주를 마실까? 양주가 소주보다 값이 쌀 적에도 소주가 ‘서민이 마시는 술’이 될까? 다시 말하자면 ‘서민’이라는 사람을 마치 ‘값싼 것만 사다 먹는 사람’처럼 엉터리로 바라보는 셈이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도서관이라든지 책마을에서 ‘독서상’이라든지 무슨무슨 ‘책과 얽힌 상’을 곧잘 준다. 상을 줄 만하니 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상은 왜 줄까? 이런 상은 어떻게 줄까? 무슨 잣대를 내세워서 누구한테 상을 줄 수 있는가?


  내가 느끼기로는 ‘독서상’뿐 아니라 ‘문학상’도 말이 안 된다고 느낀다. 문학 작품 하나를 놓고 어떻게 1등이니 2등이니 3등이니 하고 금을 그을 수 있을까? 문학을 1등과 2등과 3등으로 갈라서 ‘감동’할 수 있는가?


  문학상 따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독서상도 사라질 수 없다. 왜냐하면, 다 다른 사람들이 이루는 삶을 이야기로 담는 문학인 터라, 높고 낮음이 없어야 할 텐데, 문학을 놓고 ‘높고 낮음’으로 등수를 매기니, 아이들이 학교나 도서관에서 ‘책 읽은 권수’를 놓고 ‘독서상’ 따위로 엉터리짓을 하고야 만다.


  문학상을 굳이 주려 한다면, ‘크게 마음을 울리는구나 싶은 작품’을 놓고 두 작품이건 네 작품이건 ‘작품 숫자’를 따지지 말고, ‘모두 똑같은 자리’에 놓으면서 ‘모두 똑같은 상금’을 주어야지 싶다.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지. 그러면서, 학교와 도서관에서 어설프고 엉뚱한 ‘독서상’은 없애야지. 앞으로는 ‘상’이란 상은 죄다 없애야지.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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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왕짜 2015-01-28 13:01   좋아요 0 | URL
그래도 독서상이랑 문학상은 좀 다른 것 같네요. ㅎㅎ
물론 우리나라 문학상처럼 비리만 없다면.

숲노래 2015-01-28 13:36   좋아요 0 | URL
다르게 느끼시면 다르게 느끼실 뿐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같으니까요.
문학상에 비리가 있듯이
독서상에는 끔찍한 슬픔이 있어요...
 

도서관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사람들 스스로 책을 제대로 모르기에, 책방이나 도서관을 제대로 모른다. 왜냐하면, 스스로 삶을 짓지 않으면서 책만 붙잡으면 책을 모르기 때문이요,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책만 다루려 하면 책을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책은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학교 졸업장이 꼭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배워야 할 이야기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자, 그럼 생각해 보자. 도서관에 책이 많아야 하는가? 아니다. 제대로 된 책을 제대로 갖추면 된다. 도서관 ‘장서 숫자’는 그야말로 껍데기요 겉치레일 뿐이다. 사람들이 도서관에 많이 찾아와서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람들이 도서관이라는 곳에 와서 책을 한 권조차 펴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쉬고 생각을 다스리면서 꿈을 새롭게 키울 수 있으면 된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쉬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조용하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노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왁자지껄하다. 도서관은 책과 함께 꿈꾸는 곳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공책을 펴서 연필로 이녁 꿈을 가만히 적는다.


  ‘더 많은 책’이라든지 ‘더 넓은 터’라든지 ‘더 많은 대출실적’이라든지 ‘더 많은 방문자 숫자’처럼 껍데기와 겉치레에 사로잡힌다면, 이 나라 도서관은 그예 제자리걸음도 아닌 뒷걸음을 칠밖에 없다. 도서관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도서관은 책을 읽으면서 삶을 읽는 넋을 가꾸는 곳이어야 한다. 4348.1.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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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27 13:56   좋아요 0 | URL
딸아이 학교에서 학교도서관 대출실적을 갖고 독서상을 주더군요.
저는 딸아이에게 책을 제대로 읽고 알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책을 많이 빌리는 것만으로 받는 독서상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어요.

숲노래 2015-01-27 14:47   좋아요 0 | URL
에궁, 대출실적으로 독서상이라니... ㅠ.ㅜ
참으로 슬픈 현실이네요 ㅠ.ㅜ

그래도, 하양물감 님이 슬기롭게 딸아이한테 말씀을 해 주셨으니
딸아이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배웠겠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