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1999년 6월 30일, 잘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내부고발’을 했기 때문에 괘씸죄에 걸렸고, 맨 꼬랑지 일꾼이라며 나한테 막말을 쏟아붓는 사장하고 한솥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잘리기 앞서 먼저 사표를 던지고(집어던지고) 그만두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기 앞서까지 신문배달을 하면서 먹고살았습니다. 신문배달을 하던 때에는 지국에서 먹고잤기 때문에 밥값과 잠값 걱정을 안 했으나, 막상 출판사를 그만두고 보니 일자리와 돈구멍이 하나도 없습니다. 굶어죽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내 보배로 여기던 책 가운데 5000∼7000권을 헌책방에 내다 팝니다. 이 가운데에는 소설쓰는 박완서 님 책이 모두 끼었습니다. 이때, 박완서 님 산문책이며 소설책이며 남김없이 내다 팔았습니다.

 나중에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박완서 님 산문책은 다시 한 권 두 권 사들입니다. 그러나 박완서 님 소설책은 다시 사들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떠난 분 문학은 웬만해서는 되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완서 님이 소설쓰던 마음하고, 박완서 님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거나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을 맡는다거나 큼직한 자리를 차지하는 만나보기 기사에 실리는 마음하고 꼭 같다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이 마음은 한길로 이어진다고 느낍니다. 입으로 외치는 좋은 말은 아무리 달콤하게 들릴지라도, 몸으로 보이는 궂은 모습하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못합니다.

 여든 나이에 흙으로 돌아간 분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아무쪼록 따사로우면서 너그러운 흙 품에 안기어 사랑과 믿음을 고이 나누어 주는 어여쁜 씨앗이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머니 품은 사랑이고 할머니 품은 믿음입니다. 어머니는 바보스레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들도 건사하고, 할머니는 못된 짓 일삼는 딱한 아이들도 보듬어 줍니다. 제아무리 끔찍한 짓을 저지른 전두환 씨 같은 사람일지라도, 참말 모든 재산 다 털려 거렁뱅이가 되었다 한다면, 이를 안쓰러이 여기며 밥과 잠자리를 내어줄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돈과 이름과 힘을 떵떵거리는 슬픈 모습으로 온누리에서 으시대는 사람들한테는 조금도 눈물을 보이기 힘듭니다. 왜 마지막 자리에서나마 내 부끄러운 얼굴을 털어놓으면서 깨끗해지기는 어려울까요. 어쩌면, 마지막 자리까지 부끄러운 얼굴을 털어놓지 못했을지라도, 따순 흙은 곱게 쓰다듬으면서 이제는 차분해지라고, 이제는 내려놓으라고, 이제는 아름다워지자고 이끌어 주겠지요. (4344.1.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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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01-22 16:23   좋아요 0 | URL
님이 팔았던 박완서님의 책들을 제가 되사고 싶어지는군요..

숲노래 2011-01-22 18:14   좋아요 0 | URL
헌책방 다니시다 보면 어디에선가 만나리라 생각합니다.

진주 2011-01-22 20:40   좋아요 0 | URL
혹시 책에 '된장'이라고 싸인이라도 있나요? ㅎㅎ
저는 몇해전 이사올 때 책을 대거 없앴답니다. 한 3000권, 필요한 곳에 기증도 하고, 선물도 하고, 폐지 줍는 할머니께 리어카로 세 번 갔다 드렸었어요. 책이라면 이제 집에 안 들인다고 작정하지만 된장님이 보시던 박완서님 책은 제 책장에 꽂을 수 있어요^^

숲노래 2011-01-22 22:15   좋아요 0 | URL
그무렵 헌책방에 내놓은 제 책은 금방 다 팔렸어요. 다른 분들이 금방 사 갈 만한 책으로 골라서 내놓았으니까요. 제가 사서 읽은 책에는 '된장'이라고는 안 적고 'ㅎㄲㅅㄱ'라고만 적어 놓습니다. 그때에도 그렇고 요즈음에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한입으로 조선일보 비판'을 하면서도 막상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문학가들 책을 아무렇지 않게 사서 읽습니다.

철학과 행동과 문학과 삶이란 다 다르다고 여길 수 있고, 똑같다고 바라보는 일은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가슴이 개운하지 못해 안타깝고 슬퍼요.

결 곱게 당신 삶을 마무리지을 수 있던 분들, 이를테면 박완서 님뿐 아니라 이문구 님도 마찬가지인데, 왜 이분들은 당신 삶 막바지에 그렇게 슬픈 길을 걸었을까요.

아름다운 글로 아름다운 삶을 나누는 문학길을 걸었다면, 이와 같은 문학길이란, 돈이나 권력하고는 동떨어지면서도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따사로이 보듬으며 나누고 즐기는 길이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박완서 님이 당신 글을 한 걸음 더 낮추고 한 계단 더 가난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조선일보하고 사귀면서 안쓰럽게 당신 마지막 걸음을 얼룩지게 하지는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흔 나이에 '첫 책'을 내놓은 '여느 할머니 삶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니 책도 있습니다. 나이 예순이 넘어 비로소 수채그림을 그리며 화가로 등단한 분입니다. 박정희 할머님은 '육아일기'로도 알려졌는데, 이분 박정희 님 아버님은 한글 점자를 만든 박두성 님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할머니들이란, 참으로 낮고 가난한 자리에서 따순 품으로 얼싸안는 분들이라고 느껴요.

어쩌면, 박완서 님은 '할머니'라기보다 '소설가'로 아로새겨지면서, 더 나은 걸음을 걷지 못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
 



 미우라 아야코, 三浦綾子


 어느 헌책방을 찾아가든 ‘미우라 아야코’나 ‘三浦綾子’ 산문책과 소설책을 어렵지 않게 한두 권씩 만납니다. 똑같은 책을 만나기도 하고, 예전에 읽은 책을 만나기도 하며, 오늘 읽는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 헌책방 저 헌책방 두루 찾아다니다 보면, ‘미우라 아야코’나 ‘三浦綾子’ 이름이 적힌 온갖 책을 끝없이 만납니다. 똑같은 책인데 이름은 달리 붙으며 나오기도 하고, 같은 책이면서 같은 이름이 붙으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여러 책에 실린 글을 뽑아 낸 책이 있으며, 예전 책을 고스란히 되살린 책이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문득 들은 이야기로, 한국에 가장 많이 옮겨진 일본문학은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 님 전집은 나오지 않을 뿐더러, 미우라 아야코 님 책 목록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미우라 아야코 님이 쓴 책을 한눈에 알기 쉽도록 갈무리하는 사람부터 거의 없다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하나하나 그러모읍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 책에서 본 듯한 이야기가 있고, 저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든 저 책이든 그냥 다 읽습니다. 비슷해도 괜찮고, 닮았어도 나쁘지 않으며, 똑같은 글을 다른 책에서 거듭 읽을지라도 즐겁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도서관을 꾸리던 지난해까지,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는 여든일곱 살 박정희 할머님한테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소노 아야코 님 책을 일본판으로 찾아서 사 드렸습니다.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은 나이가 무척 많기에 눈이 몹시 나쁜 나머지 이제는 도무지 책을 못 읽겠다고 생각하셨는데, 어느 날 어찌저찌 안경을 바꾸고 보니 아주 맑고 또렷하게 잘 보여서 ‘온누리를 다시 얻은 듯한 기쁨’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안경을 바꾸면 될 일이었으나, 그저 당신 눈이 너무 늙어 책은 접어야겠다고 여기셨답니다. 그래, 새눈을 찾은 기쁨을 누리고자, 당신이 늘그막에 마지막으로 가슴으로 껴안고픈 책으로 미우라 아야코 님과 소노 아야코 님 두 분을 들었으며, 어설픈 한국말 번역이 아닌, 처음 그대로 적바림한 옳고 바르며 정갈한 일본말 책으로 읽고 싶어 하셨습니다.

 한국땅 헌책방에는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 일본판으로 꽤 많이 떠돕니다. 조금만 눈을 밝히면 한 달 동안 여러 헌책방을 쏘다니면서 백 가지 책쯤 장만할 수 있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백 가지 책은 다 다른 책일 수 있으나, 같은 책인데 출판사나 판본이 다를 수 있어요. 이러구러 눈을 밝히면 볼 수 있는 책이요, 눈을 밝히면서 읽을 만한 책입니다.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이 일본책으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읽는 마음을 알기에, 저도 일본책으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읽고프다고 꿈을 꿉니다. 그러나 애써 일본말을 새로 익혀 읽을 겨를을 내지는 않습니다. 집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밥벌이를 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일본말을 알뜰히 익힐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로서는 새로 일본말을 배우고자 내 삶을 들이지 않습니다. 새로 일본말을 배우기보다는 아이를 돌보고 집일을 건사하고 싶습니다. 박정희 할머님 또한 처음부터 일본말을 배울 생각은 아니었어요. 일제강점기라는 그늘 때문에 배운 일본말입니다. 이때 일본말을 배워야 하면서 제대로 배웠으니 늘그막에도 일본책을 읽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한국말과 얽힌 삶자락을 들여다봅니다. 틀림없이 잘못 옮긴 대목이 있을 뿐더러 어설프거나 어줍잖은 대목이 많이 엿보이는 한국판 미우라 아야코 님 책입니다. 그러나, 번역하던 사람들 손길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일본사람 미우라 아야코 님은 어떤 일본말로 당신 넋을 이렇게 글조각에 담았을까 곱씹습니다. 차분히 읽다 보면 일본글 맛을 느낄 수 있고, 가만히 되새기면 한국말 번역에서 어설프거나 아쉬운 대목을 깨닫습니다. 그야말로 온힘 쏟아부은 아름다운 번역책을 알아볼 수 있고, 더없이 슬픈 몸짓으로 돈바라기에 이끌려 대충 엮은 책을 알아챕니다.

 생각해 보면, 미우라 아야코 님은 개신교도로서 소설을 쓰거나 산문을 썼다 할 만하지만, 믿음쟁이 한 사람이라는 삶결이라기보다는, 착하면서 참답고 아리땁게 당신 목숨을 사랑하고픈 수수한 동네 아줌마로서 글을 돌본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헌책방에서 한 권 두 권 찾아내어 사들인 다음 누런 소포봉투에 담아 옆지기네 어머님한테라든지, 내 둘레 고맙거나 좋은 분들한테 일반우편으로 때때로 부쳐 주곤 합니다. 얼굴을 마주하며 만나는 자리에서 넌지시 건넵니다. (4344.1.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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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헌책방> 10호에만 싣고 여기에는 걸치지 않은 글이라 슬그머니 올립니다... 



 한대수


 도서관에 있던 노래테이프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 않았다. 도서관에 나들이를 왔던 누군가 슬그머니 훔쳤다. 1975년에 나온 한대수 노래테이프는 2010년까지 맑고 고운 소리결을 들려주면서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한테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노래테이프 하나는 아무한테도 기쁨을 선사해 주지 못한다. 이 노래테이프를 훔친 분은 집에서 홀로 조용히 한대수 옛 노래를 옛 가락과 옛 느낌을 곱씹으며 즐길 수 있을 테지. 그런데 당신 땀과 품으로 장만한 노래테이프가 아닌 다른 이가 아끼던 노래테이프를 훔칠 때에도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무래도 훔치는 마음이기에 훔쳐서 홀로 즐길 때에도 아무런 창피나 부끄러움이 없을는지 모른다. 빌리겠다 한다고 안 빌려 줄까 싶으며, 빌려서 테이프를 복사한 다음 돌려주어도 될 텐데, 노래테이프 껍데기는 놔 두고 알맹이만 빼 갔다. 빈 껍데기만 남겨 놓았으니 그나마 고마운 노릇이라 할 수 있는데, 여덟 해쯤 앞서도 누군가 내 노래테이프 둘을 몰래 가져간 적이 있다. 그때에 그분은 우리 집에서 숱한 옛 노래테이프를 함께 듣다가 ‘김남주 육성 시 낭송 테이프’하고 ‘김민기 첫 앨범 테이프’를 알맹이만 쏙 빼 갔다. 나중에 빈 껍데기만 남은 모습을 보면서 ‘가져가려면 아예 다 들고 가 버리지 왜 껍데기만 남겼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맹이만 빼 간다고 모르겠는가. 나는 날마다 이 노래테이프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다만, 몰래 빼돌렸으니 누가 빼돌렸는가를 알 길이 없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와서 북적거리는 통에 슬쩍했으니까. 김남주 육성 시 낭송 테이프라든지 김민기 첫 앨범 테이프라든지, 이 테이프를 도둑맞은 지 여덟 해가 지났으나 두 번 다시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아마 한대수 1975년 노래테이프 또한 앞으로 여덟 해가 아니라 여든 해가 지나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노래테이프에서 〈옥이의 슬픔〉이라는 노래를 가장 아끼며 좋아했는데, 이 노래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훔친 사람도 슬프고 빼앗긴 사람도 슬프다. (4343.5.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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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아파하자


 경상도 안동땅에서 오늘 하루도 두 끼니 밥만 먹으면서 조용하게 살아가는 권정생 할아버지는 우리들한테 이야기한다. “동화 몇 편 썼다고, 그거 대단하다고 보면 안 돼요.” 하고. 이 말을 제대로 곰삭여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이른바 ‘(학교) 선생님’이나 ‘(큰 신문사) 기자’나 ‘(글깨나 쓴다는) 작가’들한테도 한 마디 한다. “나보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쁜 이야기기예요. 나 대신 아파 주면 좋겠어요.” 하고. 이 말 또한 얼마나 알아들을까? 아마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리라. 그저 ‘늙은이가 이제 노망까지 들었나? 주책이야, 원!’ 하고 생각할 테지. 아니면 ‘권 선생님이 너무 아프니, 이런 말까지 다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뒤엣말을 먼저 생각하겠다. “나 대신 아파 달라.”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가? 이는 바로 “아픈 사람 마음이 되라.”는 소리이다. “아픈 사람처럼 작은 목숨, 작은 일도 고맙고 소중히 여기며 낮은 목소리로 조촐하고 조용하게 살자는 이야기”이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도 모르는 말이 없는 큰 깨달음이 있는데, “어린이 마음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가고, 어린이처럼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머리로는 알아도 ‘어린이처럼 온몸 바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 지식만으로 살아가는 일이 대단히 걱정스러울 수 있는 줄 뻔히 아는 사람들조차 ‘지식이 아닌 삶’과 ‘지식이 아닌 사랑과 꿈’을 보배처럼 여기지 않는다.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하고 ‘한마음 한몸’이 되지 않고서는 내 이웃을 돕는 손길을 내밀 수 없다. 그저 불쌍해서 동전 몇 닢 던져 주는 사람은 잘난 멋에 불쌍히 여길 뿐이지, 참말로 돕는 손길이 아니다. 한결같이 몸과 마음 모두 아늑하고 폭신한 자리에 있으면서 입과 말로만 시끄럽게 ‘가난한 이를 돕자(서민 복지 대책)’는 이야기만 떠들면 무엇하겠는가? 환경을 지키자는 이야기를 입으로만 떠들거나 외치지 말자. 좋은 환경책을 읽자고 추천하지 말자. 이런 목소리 저런 책 하나 내세우지 말고, 나부터 내 돈벌이와 돈씀씀이를 줄이면 된다. 더 많이 벌 생각을 말고, 더 많이 쓸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다니며, 전기 먹는 기계를 덜 쓰거나 안 쓰면 된다. 자동차를 타야 한다고 해도 한 번 적게 타면 되고, 두 번 적게 타거나 한 주에 하루나 이틀쯤은 타지 않으며, 대중교통을 즐겨 타거나 자전거를 타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 “공기가 나빠져 걱정이야”라든지 “지구온난화가 근심이야”라든지 “길에 차가 너무 많아”라든지 “공장이 너무 많이 생겨” 따위 헛지랄만 늘어놓으면 무엇하는가? 나 스스로 몸으로 살아내지 않고서 말로만 시끄럽게 늘어놓는 사람들한테, 권정생 할아버지는 곱디곱고 낮디낮은 목소리로 외친다. “여보게 사람들아, 한 달에 50만 원만 가지고도 넉넉히 하고픈 일 다하며 살 수 있는데, 도무지 얼마나 더 욕심을 부려서 많이 벌고 많이 쓰면서 이 땅을 더럽히고, 우리 마음과 몸까지 더럽히려고 하나?” 하고 말이다.

 첫째 이야기로 가자. “동화 몇 편 썼다고 대단히 보지 말라.”는 이야기는 덧없는 이름값에 놀아나지 말라는 소리이다. 부질없는 이름과 감투에 눈이 멀어, ‘이름도 감투도 없는 낮고 여린 사람 목소리와 삶’을 놓치거나 쉬 지나치거나 얕보거나 깔보는 못된 버릇을 버리라는 소리이다. 온누리 가장 아름다우면서 훌륭한 이야기는 바로 ‘쓸데없는 이름과 감투에 눈이 멀거나 머리가 빈 사람’들이 가장 깔보고 짓밟으며 비웃는 ‘못 배우고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구는 삶에서 비롯한다. 이는 바로 권정생 할아버지가 쓴 수많은 글에 나타난다. 돈있고 이름있으며 힘있는 사람들 이야기 가운데 아름답거나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참다운 이야기는 한 가지라도 있을까? 착하게 돈을 쓰는 부자도 틀림없이 있지만, 착한 부자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착하게 지식을 나누는 사람도 어김없이 있으나, 착한 지식인이란 처음부터 앞뒤가 어긋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떠한가? ‘권정생’이라고 하는 사람 하나만 볼 뿐, ‘권정생이라는 사람이 글로 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도무지 볼 줄 모른다. 그러니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늘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할밖에 없다. “여보게 사람들아, 훌륭한 스승은 먼 데 있지도 않고 하늘나라에 있지도 않으며 바로 당신들 가까이에, 옆에 있는데, 왜 못 보고들 있는가? 왜 이렇게 죽은 이름에 매달려서 떠돌아다니고 싸돌아다니면서 자네들 덧없는 이름만 애써 쌓으려 하는가?” 하고 아파하면서 이야기한다. (4338.6.7.불.처음 씀/4344.1.17.달.말투 손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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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무 님 〈비둘기 합창〉을 다시 보면서


 아빠 허벅지를 베고 잠들었던 아이가 오줌이 마려운지 깨어납니다. 오줌을 누이고 다시 눕히려 하는데 눕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랑 함께 ‘영화’를 봅니다.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나란히 앉아서 “영화 보자!” 하고 외치며 조릅니다. 무얼 보면 좋을까 하며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까치 만화가 보여 돌리는데, 영 재미없구나 싶어 이상무 님 만화영화 《태양을 향해 던져라》를 봅니다. 그러고 나서 《비둘기 합창》이랑 《다시 찾은 마운드》를 봅니다. 《비둘기 합창》은 1970년대 달동네 사람들 삶자락 한켠을 그린 작품으로 1980년대에 만화영화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제법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 삶자락이라 할 텐데, 조금 더 살림이 펴서 ‘내 집’이 있다 하더라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무렵 아이들 고무줄놀이나 구슬치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라든지, 집에서 어머니나 큰누나가 뜨개질 하는 대목이라든지, 아주 부드러이 담습니다. 다만, 어느 만화이든 “여자 = 집안일”이고 “어머니 = 희생”입니다. 참 딱하다 할 만하지만, 이때를 살아가던 사람들 삶이 이러했기에 이러한 삶을 고스란히 만화와 만화영화로 담습니다. 생각을 활짝 연다든지 꿈을 드높이 펼친다면 훨씬 훌륭하다 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1970∼80년대처럼 무시무시한 군사독재 때에는 생각을 활짝 열거나 꿈을 드높이는 만화를 그리다가는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상무 님이 《만화광장》이라는 잡지에 그려서 나중에 낱권책으로 내놓았던 《포장마차》라는 만화책을 헤아린다면, 이상무 님으로서는 당신이 그릴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벼랑’에서 살가우면서 사랑스러운 넋을 보여주었다 할 만합니다. 1970년대 만화를 2010년대 눈길로 섣불리 바라보아서는 이 만화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보여주며 무엇을 즐길 만한지를 알아챌 수 없어요. 1970년대 만화는 1970년대 눈썰미로 읽는 가운데 2010년 오늘을 톺아볼 때에, 우리 터전이 어느 만큼 나아지거나 거듭나거나 발돋움했는가를 꿰뚫어보면서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최규석 님이 ‘패러디’한다면서 그렸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아기공룡 둘리》를 아주 엉터리로 잘못 읽으며 헐뜯은 슬픈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희동이는 ‘사내아이’이거든요. 예전 사람들은 ‘형’이라 안 하고 ‘언니’라 일컬었습니다. 《꺼벙이》를 읽든 《고인돌》을 읽든 《순악질 여사》를 읽든 마찬가지예요. 그무렵 사람들과 삶과 사랑을 헤아리지 않고 ‘(겉훑은) 줄거리’만, 더구나 ‘오늘 눈썰미라는 잣대’로 섣불리 재거나 따지면 작품을 뭇칼질하고야 맙니다.

 아이는 만화영화를 다 보고도 잘 생각을 않습니다. 그러나, 뜨개질하는 엄마 곁에서 스케치북을 펼칩니다. 엄마랑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림을 그려 줍니다. 아빠는 아주 살짝이지만 쉴 틈을 얻어 글조각을 조금 붙잡습니다.

 이제 식구들 모두 잠들 무렵 아빠도 잠든 다음, 아빠는 새벽 서너 시에 다시 일어나서 조용하면서 호젓한 때에 마음을 가다듬어 ‘집식구 밥벌이’이자 ‘아버지가 걷는 한길’인 글쓰기를 해야겠지요.

 오늘도 참 긴 하루였고, 아직 저녁밥상 설거지가 남았습니다. 이듬날에는 잠방 이불과 담요를 털어야지요. 지난주부터 음성읍내 장마당이 모두 닫히는 바람에 먹을거리 사러 읍내에 나갈 수 없이 되었는데, 참 걱정입니다. 발굽병이니 구제역이니 뭐니 한달지라도, 시골사람이랑 이런 병이 뭐라고. 이런 병은 도시에서 고기를 더 값싸게 더 많이 먹으려 드니까 생기는 병인데, 시골에서 고기를 거의 안 먹으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라고. 장마당 장사꾼들은 어찌 살림을 꾸리고, 장마당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하던 우리 같은 시골사람은 어찌하라고. (4344.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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