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읽은 책


 대통령 이명박 님이 읽은 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어느 출판사에서 책 하나 내놓는다면 꽤 불티나게 팔리리라 본다. 이명박이라고 하는 분이 쓸개빠진 일을 하시든 훌륭한 일을 하시든 이와 같은 책은 불티나게 팔릴밖에 없다. 숨을 거둔 김대중 님이나 노무현 님 책도 매한가지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어느 분이 책을 하나 새로 내놓았다. 당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다. 사람마다 다른 삶이요, 다른 삶에 따라 다른 속내와 빛이 담길 책이니, 이 나라 이 땅에서 책을 밝히는 또다른 좋은 목소리가 나왔다고 여긴다. 다만, 이분이 하는 환경운동이란 무엇이요, 이분이 내는 목소리와 이분이 꾸리는 삶이 얼마나 맞아떨어지는가를 돌아본다면, 이분이 내놓은 ‘환경운동을 하는 일꾼이 읽은 책’하고 ‘토목공사로 일자리와 돈벌이를 만드는 대통령이 읽은 책’하고 무엇이 어떻게 다를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둘은 서로 똑같다고 느낀다.

 슬프다. 이와 같은 책을 쓰는 사람도 슬프고, 이와 같은 책을 나무 베고 물과 기름을 쓰며 책을 내는 사람도 슬프며, 이와 같은 책을 돈 들여 사서 읽는 사람도 슬프다. (4343.8.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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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지난 2002년 한국땅에서 벌어진 축구대회 때에는 나 또한 길거리에서 뜀박질을 하며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무렵은 나 스스로 참 철이 없기도 했으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 앞을 누비면서 뜀박질을 할 수 있다는 대목이 더없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드넓은 찻길에 차가 못 다니도록 가로막고 사람이 앉아서 몇 시간이고 퍼질러 있을 수 있는 대목이 기뻤다. 비록 ‘운동-사랑놀이-영화’ 세 가지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며 바보스레 깎아내린다 하지만, 어쩌면 정치권력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세 가지를 잘 살리면서 우리 나름대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길이 나올 수 있지 않느냐고 꿈을 꾸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는 가운데 지난날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으며 어설픈가를 뼛속 깊이 느낀다. 모든 사람이 착하고 참되며 고운 길로 접어들려 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생각조차 않음을 느끼거나 깨달으면서 바보는 바보일 수밖에 없으니 덧없는 꿈은 꾸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딱 한 번 주어진 아름답고 멋지며 사랑스러운 내 삶임을 깨닫거나 느끼며 야무지게 기쁘게 붙잡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있는가.

 나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축구대회에 눈길을 두지 않는다. 눈길을 둘 까닭이 없기도 하며, 아이와 옆지기와 바쁘고 힘겨이 살아가는 살림살이에서 이런 데까지 둘 눈길이란 처음부터 있지 않다. 지난 6월 며칠이더라, 축구대회가 벌어진다고 하는 소식조차 모르고 살았는데, 만석동이었나 어느 골목을 세 식구가 나란히 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옆지기가 어느 가게에서 받아 온 전단지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 이거 축구대회 편성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에 비로소 올해 2010년에 축구대회가 또 있음을 알았고, 남녘나라와 북녘나라가 나란히 축구대회 본선에 올라 있음을 알았다.

 지난밤이겠지. 우리 시간으로 새벽에 북녘나라하고 브라질이 축구 한 판을 치렀다. 이런 새벽에 축구대회를 보자고 일어날 수 없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애 아빠와 애 엄마 모두 텔레비전을 키울 마음이 없다. 아무튼 경기를 볼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으나, 북녘나라 선수들이 1966년 뒤로 처음으로 축구대회 본선에 올랐을 뿐 아니라, 남녘나라와 북녘나라가 함께 올라 있다는 대목은 놀랍다고 느낀다. 북녘나라가 치른 축구 경기는 뒷소식이 궁금했다. 어떻게 되었나 알아보려고 누리그물을 들여다본다. 북녘나라는 브라질한테 1대 2로 졌단다. 그런데 이런 소식보다 ‘북녘 나라노래가 흐를 때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정대세 선수’ 이야기가 도드라지게 보인다.

 그렇구나. 눈물이구나. 그래. 눈물이지.

 엊저녁, 수원 칠보산 기슭에 자리한 칠보산자유학교라는 곳 선생님들하고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느즈막하게 막차꼬리를 붙잡으며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 하나를 읽었다. 이날 수원 팔달문 앞 헌책방 〈오복서점〉에서 찾아낸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자유포럼,1999)라는 책을.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소설쟁이가 되었다는데, 한때 이분 책이 우리 말로 곧잘 옮겨지곤 했으나, 이제는 이분 책은 모조리 판이 끊어졌다. 어느 한 가지조차 새책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헌책방에서도 만나기 힘든 이분 책인데, 다문 한 가지라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고마운 노릇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 터에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를 만났다.

 이 책은 일본사람도 조선사람도 한국사람도 재일조선인도 재일한국인도 아닌 한 사람이 쓴 소설이다.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당신한테 1/4만큼 한겨레 피가 흐르는 줄을 모른 채 살았을 뿐 아니라 아무도 이를 얘기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소설 쓰는 일을 하면서 당신 삶을 소설에 담으려고 당신 집안 뿌리를 알아보다가 아주 우연하게 할머니가 평안도사람임을 알았다지.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일본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아니 그냥 일본사람이었을, 이러면서 아무런 걱정이나 푸대접을 받을 일조차 없으며, 당신 몸에 한겨레 피가 1/4이 흐르는 줄 알았다 하더라도 당신 이름이며 국적이며 그냥 ‘일본사람’인데,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소설쓰기를 붙잡다가 뒤늦게 알아 버리고야 만 당신 뿌리 때문에 스스로 짐을 짊어졌다. 이 짐을 지다가 그만 고꾸라졌다. 몹시 꽃과 같은 나이에 스스로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른여섯,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 같은 나이에 눈을 감은 사기사와 메구무 님인데, 사람들은 서른여섯이면 꽃과 같은 나이가 아니라고 여기려나. 열둘은 어린 싹이고 스물넷은 푸른 잎이며 서른여섯이 꽃다운 아름다움이고 마흔여덟에 무르익다가는 예순에 씨앗을 남기고 일흔둘에 우람한 나무가 되다가는 여든넷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아흔여섯에 마지막 잎새를 피우는 줄을 살피는 사람은 없으려나.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정대세 선수를 누리그물을 들여다보며 만나는데, 이이 눈물에서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홀로 조용히 흘렸을 눈물이 떠올랐다. 이러면서 나 또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모든 운동경기는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이기려고 하는 운동이란 운동이 아니다. 이기려고 바둥거리는 운동경기란 전쟁하고 똑같으며, 돈벌이에만 매달리는 엉터리 삶하고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아름답고자 우리 한삶을 꾸린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맛보고 즐거움을 누리며 사랑을 나누고자 한삶을 꾸린다. 한삶을 꾸리는 가운데 운동경기를 치르는 선수들 또한 ‘이기는’ 데에 큰뜻을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운동선수한테는 꿈과 같다는 무대에 서는 일이 그지없는 아름다움이니까, 이러한 무대에 서는 날까지 피와 눈물을 바칠 수 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목사님이라면 당신이 하느님을 섬기는 자리에 서는 날마다 벅차오르는 눈물을 흘릴 테고, 교사라면 당신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날마다 북받치는 눈물을 흘릴 테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신부님이라면 거짓 신부님이요, 눈물을 쏟지 않는 교사라면 거짓 교사라고 느낀다. 맨 처음 들어서는 때에만 눈물이 솟을 수 없다. 맨 처음뿐 아니라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눈물은 샘솟으며, 마지막이 되든 언제가 되든 눈물바다를 이룬다.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고 입을 맞출 때에 맨 처음에만 기쁘겠는가.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기쁘며 언제라도 기쁘다. 노상 눈물이 흐르고, 한결같이 웃음을 머금는다.

 축구를 하는 정대세 선수가 흘리는 눈물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 구지레하게 덧붙이거나 덧달 이야기란 한 가지도 없다. 눈물은 그저 눈물이다. 정대세 선수는 가없는 북받침을 있는 그대로 쏟아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름다우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다울밖에 없고, 눈물을 흘리는 몸뚱이로 온누리를 부대끼는 사람은 온누리에 아름다움을 펼치고 있다. (4343.6.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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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6-16 11:03   좋아요 0 | URL
정대세 선수의 눈물을 보면서 저는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머무는 타국적인 분들 생각도 나구요.

숲노래 2010-06-16 11:11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을 쓸 마음은 없었는데, 문득 궁금해서 '조선일보는 어떤 기사를 썼을까?' 하고 들여다보다가 더없이 슬픈 마음이 들었답니다. 왜 그렇게들 '비틀기'를 하려고 안달일까요... 불쌍한 사람들...

무해한모리군 2010-06-16 11:07   좋아요 0 | URL
참 시사인에 인터뷰 잘 보았습니다.
사는 곳을 옮기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럽고 한편으로는 아쉽고 그랬습니다.

숲노래 2010-06-16 11:46   좋아요 0 | URL
인터뷰는 아니고 전화로 몇 가지 물어 본 다음에 나온 기사예요 ^^;;;
사진도 지난해에 <책방 이음>에서 사진잔치 할 때에 찍었던 녀석을
다시 실었구요 ^^;;;;;

그래도, 제 모자란 책에 눈길을 보내 주는 분들은 누구나 고맙답니다~

시골로 살림을 옮기면서
인천골목 사진 찍기 많이 어렵지만,
식구들이 튼튼하게 지낼 수 있어 좋답니다~
 


 차윤정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꽤 사랑받아 오고 있다. 나도 이 책을 읽었고 잘 간직하고는 있으나, 이 책을 읽던 지난날이나 이 책을 책꽂이에 모셔 놓고 있는 오늘날이나 그다지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숲이나 나무나 도시나 시골 살림살이를 제대로 모르며 지내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한테는 책이름이 퍽 충격스럽다든지 남다를 뿐더러,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새롭거나 놀랍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 숲살림을 다루고는 있어도 우리 숲살림 밑바탕을 밝히거나 보듬고 있지는 못하다.

 한젬마라는 분이 쓴 《그림 읽어 주는 여자》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은 이제 헌책방에서 사랑받지 못한다. 2006년까지는 새책으로만이 아니라 헌책으로도 몹시 사랑받던 책인데, 2006년부터는 헌책방에서 이보다 더 막대접인 책이 드물다. 스스로 옳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거짓말을 일삼았던 발자취가 드러났으니, 헌책방으로 다리품을 팔며 책을 찾아 읽는 분들한테 겉발린 빈 껍데기 이야기가 사랑스럽거나 살갑게 스며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침묵의 봄》이라든지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든지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든지 《녹색세계사》라든지 하는 책하고는 견줄 수 없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하거나 괜찮다 할 만한 환경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2010년 5월 17일에 차윤정 씨가 보여준 모습을 보니 이 책이 앞으로는 더는 살아남을 까닭이 없겠구나 싶다. 빈 껍데기 지식조각으로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허울좋은 이름을 찾아 높은자리에 올라서려는 사람들이 읊는 책으로는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굴 수 없기 때문이다.

 ‘4대강본부 환경부본부장’이라는 이름이란 얼마나 놀라운 공무원 직책인가. ‘전문계약직 1급’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리인가. 4대강 사업 일자리가 32만 개나 나온다고 하는데, 하나같이 이런저런 일자리란 셈이 아닐까 궁금하다. 아마 31만 개는 삽질하는 일자리일 테고 1만 개는 차윤정 씨처럼 홍보하는 일자리일 테지.

 차윤정 씨는 스스로 ‘굳은 심지’에 따라 4대강 사업을 널리 알리는 일자리를 함께 누리겠다고 밝히는데, 바로 이 ‘굳은 심지’로 높이높이 올라설 차윤정 씨 일자리란 얼마나 오래가는 맑고 밝으며 고울 내음일는지 머잖아 스스로 느끼는 날을 맞이하리라 본다. 착하지 않고 참되지 않으며 곱지 않은 사람은 생태와 자연과 사람을 입에 담을 자격이 어림 반 푼어치조차 없다. (4343.5.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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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5-29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기사 보고, 근래 들어 최고로 웃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요. 좋다 좋다 이야기만 듣고 벼르고 있었던 '신갈나무..'는 영원히 보관함에서 아웃.

숲노래 2010-05-29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기사를 볼 때에 '그럴 만한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하고 다시금 생각했기에 이런 어줍잖은 글이나마 끄적이면서, 우리 스스로 옳고 착한 길을 잃지 않기를 다짐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샘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곡학아세...라고... 대학에서 공부 깨나 한 사람들이 돈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들어가는데 1억/마리당...이라잖아요. 근데, 1급 공무원 어쩌고 제의가 들어오면, 까짓거 돈벌러 가는 거죠. 변절자 더러운 거야, 친일파 놈들이나 김문수나 그게 그건거죠. 신갈나무들이 4대강물 쪽쪽 빨아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윤정이야 뭐 차,버리면 그만이구요.

숲노래 2010-05-29 17: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분은 교수 신분인 한편, 여러 방송에도 나가고 이런저런 강연도 많이 해서 벌이가 꽤 많을 텐데, 이만한 벌이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큰 '욕심'을 어찌하지 못하셨는가 봐요. 참 불쌍하고 딱하고 안쓰럽습니다...
 

 

강상중 교수 책이 새로 나와서 참 잘 팔린다. 

고사명이라는 아저씨 책은 몇 해 앞서 나왔으나 거의 안 읽힌다. 

 

두 가지 책을 다 읽어 본 나로서는 

강상중 교수 책이 그리도 많이 팔리고 읽혀야 할 까닭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이 옳은 책에 좀더 손길과 눈길을 뻗치지 못하고 있으니 

아주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일 테지. 

 

고사명이라는 아저씨가 쓴 <산다는 것의 의미>는 

더없이 대단하고 훌륭해서,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지 한 해가 되어 가지만, 

섣불리 곰삭여 내지 못하고 

내 마음속에서 이야기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상중 교수 책에서는 내 마음속을 건드리는 불꽃이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이 따위 글이라면 종이가 너무 아까웠다. 

 

세상이 참 슬프다. 

책이 참 슬프다. 

사람이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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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과 이명박 대통령
 ― ‘헌책방 주인’이 그렇게 고맙다고 한다면



.. 이 대통령이 사재 331억 4200만 원을 기부한 것도 ‘친(親)서민’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이 대통령은 좌판 장사할 때 자리를 열어준 이웃 가게,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 환경미화원 시절에 일감을 주던 이태원 재래상인 등을 일일이 거명하며 친서민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  〈대전일보〉 2009.7.8.

.. 이 대통령이 중학교 시절 은사, 좌판 장사할 때 자리를 열어준 이웃 가게,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대학생 시절에 일감을 준 이태원 재래 상인들을 일일이 거명한 대목 또한 특기할 만하다. 출연 재산이 이들에 대한 보은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의 소외 계층을 위한 소중한 재원일 것임을 짚어 보게 한다 ..  〈문화일보〉 2009.7.7.


 헌책방버러지인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2년부터 헌책방을 다녔습니다. 1994년에 박상준이라는 분이 쓴 ‘헌책방 순례기’라는 글을 읽으면서, 이분이 쓰지 못한 다른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 끄적여 보았고, 1994년부터 혼자서 내던 소식지에 헌책방 소식과 이야기를 틈틈이 실으면서, 어설프나마 ‘헌책방 문화 나눔’을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출판사에 다니며 서울에서 일하던 2003년 8월까지는, 짜투리에 아주 작게 실린 ‘헌책방을 다룬 기사’라 할지라도 신문을 모두 챙겨서 그러모았으나, 충북 충주 시골마을로 들어가서 신문 한 장 사읽을 수 없게 된 뒤로는 따로 그러모으지 못했습니다. 고향 인천에 와서도 몇 가지 신문은 도무지 살 수 없는 터라, 기사 모으기는 못합니다. 그저, 인터넷창에서 날마다 ‘헌책방’을 쳐넣으면서 오늘 하루 어떤 기사가 나오는가를 헤아려 볼 뿐입니다.

 그런데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이 ‘인터넷에서 헌책방 다룬 기사 찾아보기’가 퍽 고달픈 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1960년대에 대학교에 다녔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그무렵 ‘서울 청계천 헌책방’을 다니며 ‘대학교재를 거저로 얻었다’는 이야기가 몹시 많이 떠돌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유세를 할 때면 어느 유세에서든 꼬박꼬박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라는 말마디가 들어갔습니다. 대통령에 뽑힌 다음에 하는 인사말에도 이 말마디가 들어갔습니다. 대통령으로 뽑힌 뒤에도 서민 경제를 이야기하는 연설글에서 어김없이 이 말마디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앞서 313억이 넘는 큰돈을 내놓았다고 하는 자리에서도 이 말마디를 넣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 일꾼들은, 이렇게 자주 꾸준히 오래도록 당신들을 칭찬하고 알려주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없이 고맙겠구나 싶습니다. 10대 일간지뿐 아니라 온갖 경제신문이며 지역신문이며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라는 글월이 깃들고 있으니까요.

 서울 청계천 헌책방 일꾼한테 고맙다고 밝히는 이 글월은 ‘부자 대통령이지만, 서민을 알고 서민을 걱정하려 한다’는 뜻으로 이명박 정권을 부추깁니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어느 대통령도 ‘헌책방 아저씨 고맙습니다!’ 하고 밝힌 적이 없을 뿐더러, 당신들이 헌책방에 다니며 책을 사서 읽었다고 한 적 또한 없습니다. 반지하와 옥탑방을 모른다 할지라도, ‘가난한 학생이라면 으레 다니기 마련’이라 하는 헌책방을 안다고 하니, 다른 여느 정치꾼하고는 사뭇 견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몇 해 앞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똑같은 글월로 똑같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있는 말마디,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 퍽 귀에 거슬립니다. 신문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이야기합니다. “재래 상인들을 일일이 거명한 대목 또한 특기할 만하다”고. 그런데 조금이나마 이 연설글을 눈여겨보았다면 여러 해에 걸쳐 이 연설글이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이어져 왔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대통령후보로 있을 때, 대통령으로 뽑힌 뒤, 대통령으로 정권을 붙잡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연설글은 앞뒤 차례조차 바뀌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회창 님이 김대중 님하고 대통령 자리를 놓고 부딪혔을 무렵, 이회창 님은 당신 자서전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도 이회창 님은 ‘대학 때 가난해서 청계천 헌책방을 다니며 책을 보았다’고 한 줄쯤 밝혀 놓았습니다. 그 책을 헌책방에서 선 채로 읽고 제자리에 내려놓았기 때문에, 당신 목소리를 고스란히 밝혀 놓지 못해 아쉬운데, 저로서는 정치ㆍ경제ㆍ사회에 내로라하는 분들이 젊을 적 가난한 살림이었을 때에는 한결같이 헌책방마실을 했다고 밝히는 대목이 놀랍습니다.

 그렇지만, 썩 반갑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회창 님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대학교재’ 사다 읽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안 어느 헌책방이든 교재와 참고서를 팔아 살림을 꾸립니다. 교재와 참고서 아닌 책만 다루는 헌책방이 몇 군데 있고, 교재와 참고서보다 여느 인문책을 알차게 다루는 곳이 꿋꿋이 있습니다만, 헌책방에서 ‘교재 장사’는 아주 큰몫을 차지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 나라 대한민국은, 아이들(학생들)한테 ‘교재 아닌 책은 못 보도록’ 시험 굴레를 뒤집어씌우니까요. 오로지 시험점수 잘 따도록 교재만 보도록 하고 있으니까요.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딴 책을 보라’고 말하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은 대학교에 가서도 ‘교재 아닌 딴 책’은 못 보거나 안 봅니다. 대학교에 들어서면 또 그 나름대로 바쁘고 힘겨워 ‘토익이나 토플이니 다른 교재’에 잔뜩 매여 버리거든요.


.. 조선학 연구자는 아울러 고서 수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전문학을 연구하면서 열렬한 고서수집가가 된 김태준도 그러했다 … 최남선, 양주동, 방종현, 이희승, 이병기, 조윤제, 김태준, 이병도, 황의돈, 이인영, 김양선 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 국만학자ㆍ국어학자ㆍ국사학자ㆍ기독교사가를 아우른 공동 기반은 고서 수집이다. 1930년대 조선학이 논의ㆍ연구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고서를 모아 조선학 연구의 기초를 쌓아 나갔다 ..  《이중연-고서점의 문화사》(혜안,2007) 204∼207쪽


 아직까지도 숱한 언론매체에서는 헌책방(고서점)을 ‘교재나 소설책 싸게 사는 곳’으로만 여기고 있지만, 또 이명박 대통령은 틈나는 대로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을 들추고 있지만, 헌책방은 ‘교재 싸게 파는 곳’이나 ‘가난한 학생을 도와주던 곳’만이 아닙니다. 이런 얼굴은 헌책방 수많은 얼굴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예나 이제나 수많은 학자와 교수와 연구자들은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당신이 파고드는 학문길을 단단히 다스려 줄 좋은 책 하나 캐내려고 땀흘리고 있습니다.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여느 새책방에서 제대로 다루어 주지 않아 사라져 버린 좋은 책을 찾아 읽으려고 헌책방마실을 합니다. 조금 눅게 책을 사는 맛도 있다지만, 눅은 값보다 ‘모든 책이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꽂히면서 책다운 섬김을 받는’ 헌책방에서 책바다를 느끼고 책마음을 얻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자한테만, 또는 가난뱅이한테만 문을 여는 헌책방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문을 여는 헌책방입니다. 값싼 책만 있는 헌책방이 아니라, 값있고 값없는 모든 책을 골고루 갖추어 놓고 있는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이 없이는 책 문화를 말할 수 없고, 헌책방이 있기에 책 문화는 밑바탕이 튼튼하게 이루어집니다. 최남선 님이 헌책방을 날마다 숱하게 마실하면서 ‘단군 역사’ 자료를 찾아 헤매어 당신 연구를 이룬 일도, 양주동 님이 헌책방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향가 읽기’ 자료를 맞아들여 당신 연구를 빛낸 일도, 언제나 한 뿌리입니다. 학문이 깊은 분들한테도 그렇지만, 학문길을 따로 걷지 않는 여느 사람한테도, 헌책방은 책으로 쉬는 곳이요 책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책이 있어 반가운 곳이며, 책이 있기에 찾는 곳입니다.

 부산에서는 ‘헌책방 문화관’을 21억이나 들여 새로 짓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들은 지난 2004년부터 당신들 힘만으로 ‘헌책방 문화잔치’를 벌여 왔는데, 이렇게 여러 해에 걸쳐 구슬땀을 빚은 보람을 비로소 얻은 셈입니다. 다만, 이런 구슬땀은 ‘돈으로 새로 짓는 건물’에 있지 않았습니다만, 행정 관청 사람들한테는 돈으로 건물 짓는 데에서만 무언가를 찾아보고 있을 뿐인데, 그래도 이렇게 번듯하게 ‘헌책방 문화관’을 짓는다면, 이제부터라도 이 건물 하나에 수많은 자료를 모아 놓고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삼을 수 있습니다. 문닫고 사라지려 하는 헌책방에서 간판을 얻어 차곡차곡 모아 둔다든지, 전국 헌책방 연락망을 만들어 사람들한테 나누어 준다든지, 헌책방 문화를 나누는 소식지를 엮어 본다든지, 하다 못해 헌책방 명함이라도 골고루 모아 전시를 한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청계천 헌책방 일꾼한테 더없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면, 청계천을 ‘헌책방 문화거리’로 삼아, 헌책방 일꾼이 비싼 건물임대삯에 시달리지 않게끔 돕는 손길을 내밀 수 있으며, 청계천뿐 아니라 서울과 온나라 골목길에 뿌리내리고 있는 헌책방이 고유한 맛과 멋을 지킬 수 있는 제도를 함께 마련하는 데에도 생각을 뻗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청계천 되살리기’를 하는 그때부터 장사를 제대로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 집 두 집 다른 데로 옮기거나 쫓겨났는데, 그토록 청계천 헌책방 일꾼을 고맙게 여긴다면, 이곳 일꾼들이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받게끔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이를테면, 다른 가게들은 당신 가게 물건을 길바닥에 내놓아도 아무런 단속을 하지 않지만, 청계천 헌책방거리 가게에서 책을 길바닥에 내놓으면 동사무소 단속 짐차가 와서는 책을 착착 싣고 ‘빼앗아(압수)’ 간다고 합니다.

 길바닥에 책을 내놓아 걷기 번거롭게 하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가게들 앞에 쌓인 물건은 그대로 두면서 헌책방거리 앞 책만 단속하는 일은 어딘가 얄궂습니다. 더욱이, 청계천 헌책방거리 앞 찻길을 줄여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정작 이곳 청계천을 관광지이든 명소처럼 꾸밀 마음이었다 한다면, 그곳에 주차장을 놓을 일이 아니라, 헌책방들이 ‘길거리 책꽂이’를 마련해 놓고, 프랑스 세느강 못지 않게 ‘책 난장판’이 이루어도록 꾸미면서 사람들한테 더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선사할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해 봅니다.

 문화란 돈이 아니니까요. 문화란 돈으로 이루지 못하니까요. 문화란 삶이니까요. 문화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루니까요.

 이참에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313억이 넘는 그 어마어마한 돈 가운데 꼭 1억이라도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데에 쓰일 수 있기를 꿈꾸거나 바라지 않습니다. 헌책방거리를 살리거나 살찌우는 일은 돈으로 할 수 없기도 하지만, 돈으로 살리거나 살찌우는 책 문화는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책은 누구한테나 똑같습니다. 어느 누구든 책을 두 손으로 쥐어들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몇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곰삭이며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부자라고, 대통령이라고, 책을 다르게 읽을 길이란 없습니다. 옆에서 누가 읽어 준다 한들 몇 시간이 걸려야 다 들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와 같은 책을 문화로 삼고, 책 다루는 헌책방을 문화로 여기려 하는 몸짓이라 한다면, 돈이 아닌 문화와 삶이라는 테두리에서 청계천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러한 눈길은 ‘헌책방에서 교재 값싸게 샀거나 거저로 얻었다’는 고마움을 넘어, ‘헌책방에 어떤 책이 깃들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데로 옮아가면서 새롭게 발돋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런 마음씀과 생각줄기를 바탕으로 삼는 이명박 대통령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또다시 “대학 진학을 권한 청계천 헌책방 주인” 같은 말마디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런 소리는 그만 듣고 싶습니다. 한 가지를 더 바란다면, 여러 해째 똑같은 말만 되풀이되고 있는 데에도 ‘받아쓰기’만 부지런히 하고 있는 신문방송사 기자들 매무새도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면, 더없이 반갑겠습니다. (4342.7.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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