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hani.co.kr 한겨레 박주희 기자 앞으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당신한테


 ㄱ: 헌책방이 얼마나 만만하면 막말을 할까
 ㄴ: 〈한겨레〉 박주희 기자가 쓴 헌책방 기사를 읽고
 ㄷ: 다시는 이런 폭력이 일어나지 않기를 애타게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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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이란 참 만만한 곳입니다. 만만하기 때문에 헌책 값을 터무니없이 에누리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헌책 값어치는 하찮은 고물 따위로 여기곤 합니다. 더구나 헌책방에서 일하는 일꾼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아요. “세상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은 그저 성경이나 불경에 나오는 말일 뿐, 헌책방 임자를 보면서 이런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고개숙여 헌책방 일꾼 앞에 서려는 분들을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전여옥이나 이명박 이야기를 기사로 쓴다고 할 때, 제대로 조사도 해 보지 않고 글을 쓰는 기자는 없을 거예요. 제대로 조사를 안 하고 쓴다면, 곧바로 명예훼손이나 유언비어다 허위날조 기사다 하는 쓴소리가 줄줄이 들어오거나 법정 소송까지 이루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헌책방을 말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참이 아닌 거짓을, 그것도 나쁜뜻 가득한 편견과 선입관과 고정관념으로 비틀고 있’는데, 이런 막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헌책방 임자들이 이런 엉터리 기사를 보고도 ‘이건 명예훼손이다!’ 하면서 시비를 걸거나 법정소송을 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사람 앞에서는 그지없이 움츠러들고, 명예훼손이니 뭐니 하는 말이 없이 조용히 있는 헌책방 일꾼 앞에서는 더없이 날고 기며 막나가도 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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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윤리나 기자의식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윤리나 의식이 있었다면, 당신이 쓴 기사를 읽으며 즐거움과 기쁨을 듬뿍 느꼈을 테니까요. 당신이 쓴 글 하나로 헌책방이 얼마나 비틀려 보이게 되었는지, 또 헌책방 일꾼이 얼마나 바보처럼 여기지게 되었는지, 또 헌책방을 즐기는 사람들을 멍청한 사람이 되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람이 쓰는 글 때문에 허물어질 헌책방 문화가 아니며, 당신 같은 사람이 쏟아내는 글로 더럽혀질 헌책방 일꾼이 아니며, 당신 같은 사람이 찾아가지 않아도 헌책방 즐김이는 언제나 자기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책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설픈 눈길이나 겉핥기 생각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눈길이나 생각을 안 건네는 편이 낫다고 느낍니다. 세상 어느 공부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으며, 세상 어느 글이 하루아침에 나올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을 안다는 일이, 한 문화를 안다는 일이, 한 역사를 안다는 일이 얼핏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눈길로 얼마나 마음 깊이 다가설 수 있을까요.

 당신께서는 취재거리로 헌책방을 슬쩍 한 번 다녀간 뒤, 이런 느낌으로 기사를 쓰겠지요. 그래서 어느 헌책방 한 곳이 마흔 해 동안 살림을 꾸려 왔다면, 그동안 이곳 일꾼이 만진 책이 몇 권이며, 이이가 만져서 빛을 본 책이 몇 권이며, 이이 손을 거쳐 책즐김이 마음을 살찌운 크기가 얼마나 되며, 이이 손길 하나로 우리네 삶이 얼마나 한쪽 구석에서 빛이 나고 있었는지에는 처음부터 눈길을 안 두었겠지요. 당신한테는 취재거리 하나이지만, 마흔 해 동안, 또는 스무 해 동안, 또는 서너 해 동안 헌책방 살림을 꾸려 온 이한테는 ‘모든 것을 바친 삶’입니다.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바쳐 꾸려 온 삶을 한낱 ‘고정관념-편견-선입관’으로 물들여도 좋을까요. 그렇다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기자라면 으레 이렇다. 취재를 나가지 않고 책상 앞에서 인터넷 살피고 전화 몇 통 건 뒤 스윽 글을 뽑아내는 기계다. 이런 이들한테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샘솟아 나리라 믿으면 바보다.” 하고 생각하며 기자 한 사람을 만나겠습니다.

 정치꾼을 만나더라도 고정관념-선입관-편견을 걷어내야 합니다. 한나라당 정치꾼이든 민주노동당 정치꾼이든 열린우리당 정치꾼이든,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나려고 할 뿐입니다. 그이가 어느 곳에 몸을 담았다고 해도 그이는 ‘고유한 사람 하나’입니다. 〈한겨레〉에서 일하는 기자가 모두 똑같은 기자입니까.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이 움직이는 기자입니까. 한나라당 정치꾼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말을 쏟아내는 정치꾼입니까. 군인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군인입니까. 피우진 대령을 강제전역시킨 사람과, 피우진 대령이 똑같은 군인입니까.

 당신은 기사이름부터 헌책방을 깎아내립니다. 


― 연봉 1억 잘나가는 직장 때려치고 헌책방 차린 김종건씨


 그렇군요. “헌책방은 잘나가는 직장이 아니”군요. 헌책방을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쓰레기겠네요. 요새 유행하는 코메디언 최국 씨 말마따나 “헌책방은 모두 쓰레기”겠네요. 아무 재주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꾀죄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 헌책방 꾸리기겠네요.

 이 말에 이어 ‘기자’인 당신은 남김없는 편견으로 우리 마음을 송곳으로 부지런히 들쑤십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서너평 남짓한 가게 입구에는 과월호 잡지들이 쌓여 있다. 문 앞에서부터 빽빽히 들어찬 책들로 가게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책꽂이에 꽂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사람 키높이 만큼 쌓아올린 책더미는 허리를 숙여서, 책을 한 권씩 살펴봐야 한다. 30분이고, 1시간이고 책방 안을 서성거려도 주인은 말 한마디 걸어오는 법이 없다. 머리가 히끗히끗한 주인은 물어보지 않아도 헌책방만 20년 혹은 30년을 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헌책방’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고요.

 묻고 싶습니다. 헌책방에 가 보셨습니까? 헌책방에 가서 책을 구경해 보셨습니까? 헌책방에 가서 책을 사거나 팔아 보셨습니까? 언제 가 보셨지요? 무슨 책을 구경하고 무슨 책을 사거나 파셨지요? 어느 곳에 있는 헌책방에 가 보셨지요? 지금 우리 나라에 헌책방이 몇 곳이 있는지 아시나요?

 이 다음에 당신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적으셨습니다. “그나마 이런 헌책방들도 서울 청계천 주변에 몇 군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하고 덧붙이더군요. 그래요. 청계천 둘레에 헌책방이 몇 군데 있던가요? 숫자를 헤아려 보셨나요. ‘몇 군데’라는 말은 숫자가 10이 안 될 때, 으레 4∼6이 될 때, 또는 2∼3일 때 쓰는 말입니다. 청계천에는 헌책방이 몇 가부터 몇 가까지 걸쳐서 있는 줄 아시는지요?

 리영희 선생 말을 빌고 싶지 않습니다만, 한 마디 적겠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글 한 줄을 쓸 때 책 다섯 권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적는 글 한 줄이 얼마나 빈틈없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를 살피려고 그만큼 발로 뛰었고, 그만큼 공부했고, 그만큼 사람들과 만나 알아보았다는 소리입니다. 당신께서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말할 때에는 몸소 이곳에 찾아가서 몇 군데 헌책방이나 있는지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아니면 인터넷 찾아보기라도 해서 숫자를 세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통계청에라도 전화해 봐야지요(하지만 통계청에는 헌책방 통계가 없습니다).

 부산에는 가 보셨는지요? 인천이나 대구는, 대전이나 청주는 가 보셨는지요? 진주나 광주는, 수원이나 마산은 가 보셨습니까? 이런 곳에 헌책방이 몇 군데 있는지 아시는지요? 지난해까지 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에는 모두 51군데 헌책방이 있었으나 한 분이 돌아가시고 한 곳이 문을 닫아 49군데가 되었습니다. 올해 두어 곳쯤 더 문을 닫을지 모릅니다. 한 분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두 곳쯤은 장사가 어려워 문을 닫겠구나 싶습니다. 부산에 출장이나 취재 갈 일이 있다면, 부디 자갈치시장 옆, 국제시장 옆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거리에도 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 부산 보수동사람들이 나라나 정부 힘을 빌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 힘으로만 여기 이 골목에 ‘헌책방 박물관’을 열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돈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있는 움직임을 터럭만큼이나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당신이 쓴 다음 글을 읽어 보겠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중고생들로 북적이고, 인문학 책을 사려고 대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풍경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하고 말씀하시는군요. 헌책방은 참고서나 사는 곳이로군요. 그리고 대학생들 발길이 뜸해진 풍경은 그저 추억이라 하시는데, 대학생들이 헌책방을 안 찾아간다면 왜 안 찾아갈까요. 이런 흐름이 헌책방 탓일까요. 헌책방에 볼 만한 책이 없어서 대학생들이 안 찾아가나요? 지난날과 오늘날 헌책방이 갖춘 책이 어떠했기에 대학생들이 안 찾는지요? 학생들은 왜 헌책방에서 참고서붙이를 찾을까요. 그리고 왜 참고서붙이를 이토록 사게 만드는가요? 참고서붙이는 값이 어떻게 매겨지고, 이런 참고서붙이를 사는 학생들은 ‘어느 출판사 어느 참고서’를 사서 쓰게 되어 있을까요.

 이런저런 물음에 제가 손수 대답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달 힘도 없고, 달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당신이 쓴 다음 대목을 읽지요. “우선 ‘헌책방’과는 어울리지 않게 자동문이 스르르 열린다. 60평 규모의 매장은 꽤 규모가 있는 서점처럼 분야별로 책을 갖추고 있다. 손때 묻은 책들이지만 보기 좋게 분류가 돼 있고, 군데군데 편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도 마련돼 있다.” 하고 말씀하네요. 글쎄, ‘헌책방다운’ 것이란 무엇인가요. 헌책방에는 자동문이 있으면 안 되나요? 헌책방에는 정수기가 있으면 안 될까요? 헌책방 일꾼은 컴퓨터를 쓰거나 인터넷을 하면 안 될까요?

 문득, 헌책방은 “분야별 책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보기 좋게 분류가 안 되어 있거나, 편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도 없”는 곳이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쓴 글을 보니 그래요. 참말 그렇습니까?

 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소리를 따라가보면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빛바랜 엘피 음반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만권 되는 책에다, 엘피판도 줄잡아 2천장은 된다고 한다.” 하는 말을 붙이셨군요. 헌책방마다 책을 몇 권쯤 갖추고 있는지 아시는가요? 조그마한 헌책방 한 곳에 책이 몇 권쯤 꽂혀 있을 듯합니까? 책 1000권이면 책꽂이 몇 곳에 꽂히는지 아시는지요? 헌책방 한 곳에 책꽂이가 몇 개쯤 있을 것 같습니까? 레코드판 2천 장은 얼마만한 부피가 되는지 아시는지요?

 이런 말 뒤에 당신이 붙인 말씀, “김씨는 이 헌책방을 차리느라 억대의 넘는 돈을 들였다. 누가 봐도 큰 돈벌이가 될 것 같지 않은 헌책방에 그가 목돈을 투자한 이유는 뚜렷하다. 김씨는 “헌책 사업이 돈이 된다”고 믿는다.”를 보니, 헌책방 일꾼은 돈을 벌 수 없구나 싶은 생각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글쎄, 그렇다면 ‘큰 돈벌이’란 무엇일까요? ‘큰 돈벌이’가 중요한가요? ‘큰 돈벌이’를 하지 못할 듯해 보이는 헌책방은 우리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닌가요?

 이즈음 해서 여쭙고 싶네요. 〈한겨레〉 기자로 몸담는 일은 ‘큰 돈벌이’가 됩니까? ‘큰 돈벌이’를 하고 싶어 〈한겨레〉 기자로 몸담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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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이어지는 당신 글에는 더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궁금한 여러 가지를 더 묻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숨을 쉴 생각은 없고, 욕을 내뱉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라는 기자는 참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지만, 안타깝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렵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자기 삶을 알뜰히 꾸려 왔을 테며, 당신이라는 기자 나름대로 세상을 보며 글을 쓰셨을 테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꼭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폭력을, 당신이 저지른 글 폭력을, 당신이 저지른 글 난도질을.

 당신은 헌책방을 굳이 사랑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당신은 헌책방을 굳이 찾아다니며 책을 구경해야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헌책방 장사를 굳이 할 의무 또한 없습니다. 헌책방에서 알바생으로 일해 보아야 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사랑하지 않거나, 당신이 찾아가지 않거나, 당신이 헌책방 장사가 되는 현장인이 되지 않더라도, ‘당신이 태어나기 앞서부터 있어 온 헌책방’이며, ‘당신이 몰랐어도 언제나 꾸준하게 흘러흘러 움직이고 돌아가던 헌책방’이며, ‘당신이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제 길을 걸어가는 헌책방’입니다. 당신이 농사꾼들 땀방울을 몰라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농사꾼들이 풀베느라 손이 베고 몸이 다치는 줄 몰라도, 푸성귀 한 접시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과 푸성귀 한 접시를 먹으면서 반드시 농사꾼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아껴야 하지 않아요. 당신이 버스공장 노동자를 모르더라도, 버스회사 정비사를 모르더라도 시내버스를 못 탈 까닭이 없습니다. 차바퀴 만드는 공장 노동자를 몰라도, 차유리 만드는 공장 노동자를 몰라도, 버스 타고 볼일 보는 데에 아무런 말썽이 없습니다. 당신이 교통표지판 만드는 공장 사람을 몰라도, 신호등을 만들던 노동자 손길을 몰라도, 당신이 쓰는 컴퓨터 부품 하나를 만든 노동자가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몰라도,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재봉틀로 만든 청계천 피복노동자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당신 가방을 채운 온갖 물건이 어느 나라 산과 들과 강과 바다를 깎고 파헤치고 더럽히며 캐낸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어느 제3세계 나라 노동자가 낮은품삯으로 죽을 동 살 동 일해서 만들어서 그 가방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이 나라에서 진보를 걱정하고 사회를 생각하고 평화를 아끼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한편 좋은 님 하나 만나 알콩달콩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헌책방 문화 하나를 모른다고 해도 환경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노동자를 모른다고 해도 노동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헌책 한 권을 모르더라도 책 유통구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 즐김이를 모르더라도 사람들 살림살이와 사람들 생각을 철학과 사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헌책방 현실을 모르더라도 우리 세상 현실을 알 수 있어요. 그뿐입니다. 이제, 이런 글은 맺겠습니다. 저도 힘들어 죽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애써 헌책방 이야기를 기사로 써 주셨는데 선물 하나 드려야겠네요. 저를 비롯해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땀방울과 다리품과 손품을 들여서 만들어 낸 ‘전국 헌책방 목록’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 ‘전국 헌책방 목록’은 제가 펴낸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라고 하는 891쪽짜리 책에 권말부록으로 붙였습니다. 891쪽짜리 책은 값이 29000원인데, 헌책방 이야기를 펼치는 이 책을 사는 데에 29000원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면, 인터넷에서 ‘전국 헌책방 목록’을 받아 볼 수 있습니다. http://club.cyworld.nate.com/50154471111/68509456 이 주소로 들어가면 아래한글97 파일로 만든 목록을 내려받기 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서울 헌책방 전화번호부’를 드립지요. http://club.cyworld.nate.com/50154471166/51292666 이 주소로 들어가셔요. 다만, ‘서울 헌책방 전화번호부’에는 청계천 헌책방은 따로 넣지 않았습니다. 청계천은 거리를 이루어 죽 모여 있으니, 굳이 전화번호가 없어도 찾아가는 데에 어려움이 없거든요. ‘헌책방 전화번호부’는, 찾아가는 길을 모르는 분들한테 도움이 되고자, 또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아보려는 이들한테 보탬이 되고자 만들었습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는 이야기를 물어 보라고 만든 목록이 아닙니다. ‘무슨무슨 책 있어요?’ 하는 이야기로 헌책방에 전화를 걸면, 세 곳 가운데 두 곳은 귀찮아 하거나 퉁명스레 받을 겁니다. 그렇게 전화로 묻는 사람치고 자기가 묻는 책을 사러 오는 사람 없고, 헌책방에 가득가득 쌓여 있는 ‘자기가 찾는 책 말고 다른 수많은 책’을 구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4340.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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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7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8 01:33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쓴 글만 올립니다 ^^;;;;;;;;
제가 쓴 글은 싸이월드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에 올리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려서 이곳에 걸쳐 두고 있습니다 ^^;;; 에구구구../..

2007-03-18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9 12:34   좋아요 0 | URL
좋은 헌책방은, 굳이 신문에서 소개해 주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다 알려지고 알게 되곤 합니다. 아무개가 소개했다고 해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아요. 그리고 신문 보고 오는 사람이 처음에는 있지만, 그 사람들이 그 뒤로 그곳 단골이 되지는 않고요. 스스로 찾아가는 분들이야말로 오랜 단골이 되지요. 잠깐 반짝 하듯 도움이 되는 듯 생각할 수 있어도, 실질로는 `헌책방 참모습'이 엉뚱하게 뿌리내리는 큰 단점이 되고 맙니다. 흠....... 무엇보다도, 기자들이 기자윤리를 지켜 주면 좋겠어요. 말씀 고맙습니다~

2007-03-19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9 23:29   좋아요 0 | URL
글이 괜찮다 싶으시면 옮겨 가셔도 돼요.
음, 제가 헌책방 기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왜냐하면, 잘못 적은 헌책방 기사는 `역사처럼 자료로 남아', 실제로 그 헌책방이 그 모습이 아닌데, 몇 해 지난 뒤에는 그 헌책방을 그 신문기사로 잘못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잘못된 기사들 쓰는 신문들을 무척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퍼지지 않도록 마음을 쓰고 있으며, 헌책방 주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꼬박꼬박 적어 놓고, 다른 책손과 다른 헌책방 주인과 샛장수 이야기를 고루 들어서, 되도록 정확성 있는 자료를 적어 놓으려고 합니다... 흐흠...

2007-03-20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보통 길을 놓는다'는 말로 주민들을 속인 채 `50미터 산업도로' 계획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이 산업도로로 동네가 두 동강이 날 뿐 아니라, 엄청난 재개발이 잇따르며 그동안 고유하게 지켜 온 삶터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퍽 늦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힘을 뭉쳐서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보통 길을 놓는다'는 말로 주민들을 속인 채 `50미터 산업도로' 계획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이 산업도로로 동네가 두 동강이 날 뿐 아니라, 엄청난 재개발이 잇따르며 그동안 고유하게 지켜 온 삶터가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고, 퍽 늦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힘을 뭉쳐서 막개발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돈과 힘과 이름 없는 사람들 삶터를 지키고자
 -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을 가로지를 산업도로를 반대하며

 


 그제와 글피, 비 그친 뒤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매섭지 않은 겨울을 아쉬워하는 추위였는지 모릅니다. 퍽 센 바람이 조금 잦아드니, 뿌옇던 하늘이 대단히 파란 하늘로 바뀌었습니다. 아침햇살이 눈부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눈물 날 만큼 싱그러운 빛살이었습니다. 이 빛살은 서울에도 충주에도 광주에도 원주에도 인천에도 내리쬐었겠지요. 누구한테나 고른 빛살이며 따뜻한 햇살입니다. 하지만 어제 만난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햇볕과 하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참 고운 햇볕인 줄 몰라서일까요. 하늘 올려다볼 틈이 없어서일까요. 그깟 햇볕이야 돈이 안 되어서일까요. 하늘 올려다볼 열린 마당이 없어서일까요.

 인천 금곡동에 자리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는 아침부터 곱고 부드러운 햇볕이 내려앉았습니다. 참고서를 찾는 부모와 학교옷 입은 아이들부터, 마음을 살찌울 만한 낱권책 하나 찾는 책나그네까지, 이곳을 찾는 누구나 좋은 햇볕과 싱그러운 바람과 살뜰한 책 하나 즐겼습니다. 가까운 동네에서 이곳을 찾은 이들이 있고, 저으기 먼 곳에서 다리품 판 이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차소리 적어 조용하고, 수런수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을 거쳐서 옵니다. 동인천역에서 오는 길에는 한복ㆍ누비집 골목을 지나고 전통문화거리로 탈바꿈한 지하상가를 지나게 되며, 구석구석까지 깃든 옛 저잣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가게 간판을 보면 좀 낡아 보이는 것이 많은데, 이 간판은 가게 빛깔을 알려주는 데에 아무 걱정이 없고, 한편으로는 가게 역사를 헤아리게 합니다. 돈 몇 푼 들이면 번들번들 큼직한 간판으로 고쳐올릴 수 있으나, 지금 이대로도 좋습니다. 아니, 지금 이 모습이 한결 좋습니다. 수십 해를 묵은 빛바랜 간판은 이 한 자리를 오래오래 지키며 고이 살림을 꾸린 분들 숨결을 느끼게 하며, 우리가 하루하루 잊고 있는 푸근함을 돌아보게 하거든요. 빛바랜 간판은 이 골목과 저잣거리에 뿌리내려 동네사람이 오순도순 지내 온 발자취를 가만히 보여주는 나이테구나 싶어요.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 송림동, 금곡동 사람들은, 요즈음 우리들이 `쿠바 아바나 생태도시'를 배우려고 법석을 떠는 바로 그 `생태 지킴이' 삶을 진작부터 수수하게 꾸려오지 않았을까요.
손수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곳 송림동, 금곡동 사람들은, 요즈음 우리들이 `쿠바 아바나 생태도시'를 배우려고 법석을 떠는 바로 그 `생태 지킴이' 삶을 진작부터 수수하게 꾸려오지 않았을까요. 다만, 이분들은 책을 읽은 적이 없고 쿠바사람들 이야기는 까맣게 모르지만, 그저 당신들이 살던 그대로 살 뿐입니다.

 


 도원역쯤에서 쇠뿔거리(우각로) 옛길을 걸어 헌책방으로 오는 동안에는, 손바닥 만한 텃밭에 파며 양파며 콩이며 고추며 배추며 상추며 알뜰히 심어 가꾸는, 집크기도 손바닥 만하고 지붕 낮은 작은 살림집, 곧 골목집을 스쳐 지나갑니다. 일제강점기 때 억지로 항구 문을 연 세 곳 가운데 하나인 인천입니다. 이곳 쇠뿔거리는 옛 조선이 처음 개화라는 물결을 타야 할 때 서울로 온갖 문물이 들어가던 첫 길이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큰길 둘레 좋은 목에는 선교사며 장사꾼이며 권력자며 일본사람이며 집을 우뚝우뚝 세웠고(지금도 이런 건물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 산비탈에는 뱃사람으로 일하고 짐꾼으로 일하던 가난한 보통사람들 지붕 낮은 집이 다닥다닥 붙었습니다. 이제는 아파트에 밀려 거의 모두 사라진 지붕 낮은 집이지만, 이곳 쇠뿔거리와 함께 여태껏 잘 살아남은 골목집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 쇠뿔거리를 걷다가 눈길을 잠깐 안쪽으로 돌리면, 근대 교육 첫 터전이 된 학교인 영화학교, 창영학교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편, 세무서 붉은벽돌 담벽에는 “자수간첩 도와주자”라는 페인트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어, 지난날 ‘반공’을 앞세워 독재정권을 휘두르던 가슴아픈 역사를 고이 보여줍니다. 서울에는 현저동에 서대문형무소가 그 무시무시한 뼈대를 고스란히 남긴 채 일제강점기 아픔을 온몸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인천 금곡동에는 나라밖 제국주의 물결에 휩쓸려 눈물로 항구를 열어야 하면서 세운 학교, 관공서, 철길, 적산가옥 들이 곳곳에 조용히 남아서 우리들 보통사람이 어떤 슬픔과 눈물을 부대껴야 했는지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글귀. 이 글씨를 안 지운 까닭이 궁금하지만, 이렇게 안 지우고 두었기 때문에, 외려 지난날 반공독재 문화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자수간첩 도와주자"는 글귀. 이 글씨를 안 지운 까닭이 궁금하지만, 이렇게 안 지우고 두었기 때문에, 외려 지난날 반공독재 문화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이 벽돌담과 글씨는, 앞으로도 고이 간직해 `지난날 우리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도록 하는 문화재'로 삼으면 더 좋으리라 믿습니다.

 


 1961년에 신호등이 처음 들어온 인천입니다. 도시화나 지역개발이 더뎠다고 하겠지만, 신호등 없이도 사고나 큰탈이 없어서 사람과 차가 평화롭게 오가던 고즈넉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천은, 동인천과 용산을 오가는 직통열차가 뚫리고, 제2경인고속도로며, 연수동 새도시며, 영종도 국제공항이며, 송도 새도시며, 청도 재개발구역이며, …… 무언가 포크레인 삽날로 파헤쳐 새 콘크리트 집을 짓거나 확 뜯어고치거나 갈아엎으며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할 곳처럼 되고 있습니다. 몇 조 또는 수십 조에 이르는 돈을 들여 철거를 하고, 재개발을 하고, 수십 층 아파트와 쇼핑몰을 들이고(또는 들이려 하고), 길을 널찍하게 새로 또 냅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논리에 보통사람들 삶터는 밀려나고, 돈으로만 굴러가는 시멘트 소굴이 들어섭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얼마만한 돈이 있어야 할까요. 돈을 얼마나 벌어서 어디에 쓰려 하나요.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곳 대한민국, 그리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 한켠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와야 즐겁거나 재미난 삶이 될까요. 흐르는 냇물이나 땅속 우물을 길어 먹는 일보다 정수기 물을 마셔야 즐거움일까요. 유기농 곡식을 많은 돈 들여서 사서 먹는 편이, 집앞 텃밭이나 스티로폼 농사보다 몸에 더 좋을까요. 돈버는 일을 하느라 운동할 틈이 없어 뱃살 늘고 비계가 느니, 헬스클럽에 자가용 타고 찾아가 런닝머신을 타야 할까요. 이런 운동이 두 다리로 걸어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보다 몸을 더 튼튼히 하거나 앞선나라 일등시민으로 사는 길인가요. 인터넷으로 채팅하는 일이, 담 없는 이웃사람과 수다를 떨 때보다 웃음이 묻어나는가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 보는 물건이,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장보고 에누리하며 사서 쓰는 물건보다 쓸모 많거나 더 좋은가요.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송림동 언덕길을 싹 밀어붙이고 뚫은 이 굴과 이어집니다.
 
50미터짜리 산업도로는 송림동 언덕길을 싹 밀어붙이고 뚫은 이 굴과 이어지게 됩니다. 이 굴로 들어서자면, 또 이 굴을 지나 새로운 길을 놓자면, 어쩔 수 없이 `고가도로'를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새 길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송림동 야산에 ‘달동네 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그곳 ‘달동네’ 집을 싸그리 밀어붙여 없앤 뒤 수십 층 아파트를 무더기로 세웠고, ‘덤’으로 근린공원 하나 지어 주면서 퍽 많은 돈으로 지은 박물관입니다. ‘가난한 시절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마음을 썼는지 모릅니다만, 왜 “달동네 집 = 가난+슬픔+지저분함 = 나쁜 것 =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여길까요. 가난하게 사는 일은 불쌍하거나 슬프기만 할까요. 한 달 30만 원으로도 알콩달콩 지내는 삶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과는 동떨어진’ 삶인가요. 달동네 박물관 둘레를 보면, 송림동 ‘달동네 집’은 아직도 여러 열 채 남아 있습니다. 가까운 금곡동이나 화수동이나 만석동, 또 서울 중림동이나 평동이나 누하동이나 사직동이나 숭인동 들에도 ‘달동네 집’, 그러니까 ‘지붕 낮은 집’은 참 많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니까, ‘가난을 없애 주고’자 재개발을 해서 높직높직한 아파트를 스무 해마다 새로 올려서 돈을 벌어 주어야 하는가요. 아니면 이곳 사람들은 사람들 눈에 안 뜨이는 곳으로 몰아내어 ‘도시 미관 정화’를 해야 하나요.

 관공서나 정부 공무원이 보기에는 구질구질한 가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 사람들로서는 여태껏 즐겁고 조촐하게 꾸려 온 삶입니다. ‘즐거운 우리 집’입니다. 다 함께 모여서 어울려 살아가는 기쁨을 맛본 터전입니다. 굴이나 조개를 까고 마늘을 벗기거나 감자를 깎으며 살아도, 버는 만큼 쓰고 버리는 물건 없습니다.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에 들뜨고, 손으로 북북 비벼 빤 빨래를 탁탁 털어 싱그럽고 따순 햇볕에 말리는 시원함을 맛보며 지냅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는 값싼 책 하나 구경하는 재미, 교과서와 참고서를 찾는 수험생들, 인문사회과학 책과 교양책 들을 만나려는 책나그네까지, 누구나 껍데기 아닌 조촐한 알맹이를 부대끼며 지냈습니다.

가난하지만, 돈이 적다뿐, 돈 빼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넉넉한 골목집, 산비탈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지만, 돈이 적다뿐, 돈 빼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넉넉한 골목집, 산비탈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 골목집은 30년, 40년, 50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고이 이어갈 수 있지만, 뒤쪽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20년도 채 못 되어 허물고 재개발을 한다고 법석을 떨겠지요.

 


 그러나 이와 같이 조용하고 조촐하던 보통사람 삶터가, 5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을 가로질러 뚫으려는 시와 개발업자 손길에 깡그리 무너지려 합니다. 사람 사는 이곳에서 사람이 아닌 돈만 보고 있기에, 나무와 꽃을 돈으로 사서 심는 돈길이 아니라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내리고 자라가는 살림길을 생각하지 않는 돈바라기 마음만이 떠돌기에.

 묻고 싶습니다. 지금 있는 길로도 공단으로 물류를 실어나르는 데에 걱정이 없고,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에 막힘이 많지 않습니다. 길을 새로 뚫는다면 누구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요. 사람이 다니는 데에 좋자고 뚫는 길이 ‘사람 삶터를 죄 밀어내고 지을 만큼 중요’한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새로 내는 길은 왜 ‘즐거운 우리 집을 이루며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 삶터’만을 가로질러야 하는지요. 돈 많은 사람들 동네는 보상금이 많이 드니까, 그런 데에는 높으신 분들이 사니까 에돌아가야 하는지요. 가난한 사람들 집터는 ‘돈 많고 이름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차막힘 덜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닦도록 무너뜨리고 몰아내야 하는지요.

조그마한 빈터에도 씨앗을 심는 이곳 골목집 사람들 마음이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조그마한 빈터에도 씨앗을 심는 이곳 골목집 사람들 마음이 사랑스럽고 좋습니다.

 


 태어나서 여태껏 이웃사람을 해꼬지한 적 없고, 남을 등처먹은 일 없고, 늘 조용하게 제 몫을 다하면서 낮은 자리에서 허리 숙여 일해 온 이곳,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 사람들은 앞으로도 자기 보금자리를, 고향을, 조그마한 텃밭을, 골목집을 살가이 간직하면서 햇볕과 바람과 물과 사람을 부대끼고 싶습니다.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지내 온 지금 같은 이음고리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시끄러운 차소리나 무시무시하게 골목을 내달리는 자동차에 벌벌 떨지 않으며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십 수백 억을 들여서 짓는 박물관이나 문화시설보다는, 수십 수백 해를 고이 간직하며 살아온 보통사람 보금자리야말로 참다운 문화요 생활사라고 느낍니다. 청계천에는 고가도로를 뜯어내어 자동차 흐름을 줄이고 맑은 물과 바람이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는데, 인천 금곡동과 송림동에는 마을을 두 동강 내고 맑은 물과 바람마저 싸그리 밀어 버리는 산업도로를 놓아야 하는지요. 돈과 이름과 힘이 없어도 사랑과 믿음과 나눔으로 살아온 골목집 사람들 삶터를 앞으로도 꿋꿋하고 즐겁게 가꾸며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조용한 헌책방 한켠에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헌책방거리가 깃든 이곳 금곡동과 송림동을 고이 간직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조용한 헌책방 한켠에서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헌책방거리가 깃든 이곳 금곡동과 송림동을 고이 간직할 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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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3-16 09: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된장님. 글을 읽으면서 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 이리 말씀드립니다.
제 고향, 인천이야기와 헌책방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지라 제 서재에 모셔놓고
천천히 읽고 싶습니다. 글도 자료도 진솔함에 짠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2007-03-16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3-17 12:26   좋아요 0 | URL
얼마든지 옮겨 가셔도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이 파란여우 님한테 즐겁게 읽을 만한 글이라면 옮겨 가셔요. ^^;;;;

개발업자들이 현장에서 물러날 나이가 되지 않고서야 깨닫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울 땅조차 없음을 느끼고, 그동안 한 짓을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을는지도...
 



 

.. 세상이 어찌나 야박하게 되었는지, 요즈음은 거리의 책가게에 들어가서 책을 좀 서서 읽을 수도 없읍니다. 좌판 위에 놓인 새로 나온 월간잡지를 이것저것 뒤적거려 보는 것이 조그마한 생활의 낙이라면 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요만한 자유마저 용납되지 않습니다. 광화문이나 종로거리의 책가게에 들어가서 5분 동안만 책을 들고 서 있어 보십시오. 점원 아이들이 얼굴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책가게가 없을 것입니다. 책을 펴 보기가 무섭게 벌써 점원 아이가 득돌같이 팔뒤꿈치 옆에 바싹 다가와서 위압을 주는 것쯤은 예사입니다. 노골적으로 책을 빼앗고 나가라고 호령을 치는 책가게도 있읍니다. 얼마 전엔가 동대문 쪽 길가에 있는 고본옥에를 들른 일이 있읍니다. 릴케의 시집이 있길래 그 안의 시를 몇 편 뒤적거리면서 읽기 시작했읍니다. 때마침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하여서 나는 그 책사가 인심이 너그럽지 못한 책사인 줄 알면서도 미적미적 서 있었읍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임꺽정이같이 생긴 주인이 달려와서 왈칵 책을 빼앗고는 “아니, 고만 읽고 나가시오, 가게를 닫아야겠소!” 하고 모욕적인 어조로 소리를 질렀읍니다. 나는 졸지에 가게를 닫아야겠다는 말이 납득이 안 가서, “아니, 대낮에 가게를 닫아야겠다니 무슨 말이요?” 하고 반문했읍니다. 그랬더니 주인은 “오늘은 날씨도 비가 오고 해서 가게를 닫고 낮잠이나 자야겠으니 어서 나가 달란 말요.” 하면서 바로 나를 점포 밖으로 팽개치기라도 할 것 같은 험한 기세를 보였읍니다. 나하고 얼마 동안 옥신각신을 하는 중에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서, 금방 가게를 닫겠다던 주인은 그쪽으로 가 버리고, 나는 그래도 울화가 가라앉지 않아 얼마 동안 미적미적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버렸지만, 나는 가게를 닫아야겠다는 주인의 핑계가 화가 나면서도 한쪽으로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 (1963.2.) / 《김수영-퓨리턴의 초상》(민음사,1978) 214쪽


 ‘고본옥(古本屋)’은 ‘헌책방’ 또는 ‘옛책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대문에 있는 곳이고,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는 소리로 헤아려 볼 때, 이곳은 지금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가리키는구나 하고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김수영 님은 광화문과 종로에 있는 책방에 들른 뒤, 그길에 청계천 헌책방거리, 또는 청계천 둘레 동대문 골목골목에 있던 헌책방에 들러 책을 뒤적여 보다가 입술이 파르르 떨릴 만한 일을 겪고 글을 하나 남겼네요.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순 헌책방 임자를 만났다면, 한결 살갑고 따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을 남겼지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대문에서 김수영 님을 차갑게 내쫓은 분은 ‘헌책방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대목’을 적바림하게 만들고야 맙니다. 하긴, 이때는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에서도 ‘서서 읽는 사람 내쫓기’를 똑같이 했다니, 말 다했지요.

 그러고 보면, 서울 광화문에 있는 큰 새책방이든 나라에서든 학교에서든 ‘책을 읽자!’고 소리높여 외칩니다만, ‘서서 읽기’ 하는 사람은 ‘책읽는 사람’으로 안 치지 싶습니다.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고, 책방에서 서서 읽을 수 있어요. 그래,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는 푯말을 달리 붙여야지 싶습니다. “책을 읽자!”가 아니라 “책을 사서 읽으쇼!”로. (4340.3.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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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고 나서 눈이 내렸습니다. 방에 있느라 눈이 내린 줄 몰랐습니다. 잠깐 바람을 쐬려고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려다가 흠칫 놀랐어요. 하얗게 쌓인 눈,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았거든요. 아, 눈이구나. 이야, 눈이네. 낮에 쌀 사러 읍내에 마실을 갈 때 조금씩 흩날리더니, 그예 펄펄 내리는 눈으로 바뀌었군요.

 뽀독뽀독 눈을 밟아 볼까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합니다. 가만히 저 눈을 바라보기만 하렵니다. 그래 보았자 다가오는 새날 아침, 해가 반짝 비치면 슬금슬금 녹을 테지만.

 이렇게 눈이 오면 부랴부랴 눈을 쓰는 분이 있고, 눈이 와도 멀거니 구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한때 부랴부랴 눈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요사이는 눈을 쓸지 않습니다. 그냥 두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녹던걸요. 겨울이라 해도 한 주면 다 녹고요. 길에 쌓인 눈을 쓴다면, 자동차가 덜 미끄러지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자동차도 천천히 달리면 그다지 미끄러지지 않아요. 아니, 차가 미끄러질 만큼 눈이 많이 오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도 눈이 수북히 오는 일이란 없을 테며, 그저 몇 센티미터 오면 많이 왔다고 할 테지요. 이런 눈이라면 가만히 두고 눈을 즐기면 어떨까 싶어요. 눈싸움 할 만큼 많이 쌓이지 못했으니 눈싸움은 못하고, 눈사람도 못 굴리겠지만, 가만가만 눈길을 걸으며 눈을 느껴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바라기를 하며 얼어붙은 하늘도 보고, 눈 덮인 산기슭에 짐승들 발자국이 있나 두리번두리번 살피기도 하고. (4340.3.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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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잠깐 덮습니다. 문득, 요즈음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요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때 책이 없어서 못 팔 만큼 되었지만, 이제는 책을 더 안 찍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보지 못했고, 그다지 볼 마음이 없지만, 책을 더 안 찍기로 했다니 사서 볼 길은 없군요. 헌책방에 나온다면 그때는 사 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제 나름대로 든 몇 가지 생각을 적어 보고 싶습니다.


.. 당시 일반 시민들은 개인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조선인 차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또 특별히 식민지 지배사상의 오염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어느 나라나 편집광이나 맹신자는 있기 때문에 유언비어가 일반 민중 차원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부정할 수는 없다 … 조선인에 대해 “선천적으로 배신자이고 거짓말꾼이며 무능력자이고 사회의 부적격자”라고 부르고, ‘언제나 너희들은 이등국민이다’라며 치안 단속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관헌집단의 존재는 재일 조선인 역사의 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해방 전 재일 조선인으로서 ‘특고내선계 나리’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강덕상-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역사비평사,2005) 91, 104쪽


 ㄱ.사람을 괴롭히는 짓

 
 《요코 이야기》에 담긴 줄거리를 모두 거짓이라고만 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한국땅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그 북새통에서 일본사람들이 겪어야 한 일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요. 그동안 ‘이등국민’으로 깔보고 짓밟던 조선사람들한테 돌을 맞고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몸만 달랑 빠져나와 부리나케 고향나라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입니다. 낫이며 도끼를 들고 일본사람들 때려죽이려고 돌아다니던 조선사람이 없었을까요? 틀림없이 있었겠지요. 저라도 그때 일본놈들 죽이려고 온갖 곳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조선땅에서 ‘고향 일본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들볶던 조선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수십 해 동안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백성들을 들볶고 괴롭히던 잘못은 어떻게 다를까요.

 집과 재산을 모두 놓고 고향나라로 돌아가야 한 일본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조선땅에서 저지른 죄값(?)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고 느끼면서, ‘아, 나도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저렇게 조선사람을 괴롭혔지’ 하고 뉘우쳤을까요. 또는, 자기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일은 까맣게 잊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만 놓고 ‘저 나쁜 조선놈들’ 하고 생각했을까요. 소설 《요코 이야기》에는 어떤 눈길과 생각이 담겼을까요. 궁금합니다.

 
 ㄴ.전쟁문학


 《요코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 ‘문학동네’는 인터넷 누리집을 닫고(이제는 인터넷검색조차 안 됩니다) 해명글을 올려놓았습니다. 해명글을 보면, “『요코 이야기』의 출간을 결정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일본민족=가해자, 우리민족=피해자라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논의될 수 없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의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적습니다. 이 해명글에 나오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 문제를 다룬 적이 우리 문학 발자취에서 한 번도 없는지, 또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는지도요.

 전쟁폭력은 ‘여성한테만’ 쏟아졌을까요. 여성한테 좀더 많이 폭력이 저질러졌다고 하겠으나, 이 나라에 살며 친일부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여자니 남자니 어른이니 아이니 할 것 없이 똑같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이런 발자취와 이야기들, 이 가운데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 이야기는 꾸준하게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런 아픔을 달래고 추스르는 움직임도 적잖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책이나 움직임에 제대로 눈길을 두는 사람이 잘 안 보인다뿐입니다. 몇 해 앞서 이승연 씨가 ‘종군위안부 알몸사진’을 찍으며 말썽을 일으킨 일을 떠올려 봅니다. 이승연 씨와 사진 찍은 회사에서는 ‘조금도 상업주의 의도가 없었다’고 몇 차례나 힘주어 말했지만, 상업주의 뜻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님들한테 이런 일을 해서 사람들한테 널리 알리겠다고, 할머님들 아픔을 뼛속 깊이 느끼며 이런 아픔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겠지요. 그러면서 할머님들 눈물 뜻을 속깊이 헤아렸겠지요. 하지만 이승연 씨나 회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나요. 처음부터 상업주의였기 때문에 〈나눔의 집〉 할머님한테 찾아가기는커녕 귀기울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들끓던 여론도 곧 잠자겠거니 하다가, 외려 여론이 나빠지니 뒤늦게 사과를 하고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종군위안부로 몸과 마음을 다친 할머님들 가슴에는 또다른 날선 칼이 들쑤시고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제대로 눈길을 두는 우리들이었을까요? 윤정모 님이 이런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이토 다카시라는 일본 사진작가가 종군위안부 할머님 삶을 사진이야기로 남겨 놓고, 정대협 사람들이 할머님들 증언자료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내는 동안, 우리들 눈길은 얼마나 쏟아졌을까요.

 적어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만큼이라도, 문학책을 낸다는 출판사에서라도 이런 움직임에 따순 손길을 보내 본 적이 있었는지요. 그러면서 고작 펴내는 책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요코 이야기》뿐인지. 이것도 출판 다양성이라면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태껏 여성이 받은 전쟁폭력을 다룬 살뜰한 책이 제대로 없는 판이라면 모르되, 그런 책이 있어도 눈길을 거의 안 두었으면서, 《요코 이야기》 하나만 앞에 내세워도 좋은지 모르겠네요.

 나아가, 《요코 이야기》를 내치는 왼손이 있다면, 일제 식민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살피고 돌아보는 책을 찾아서 손에 쥐는 오른손도 있어야지 싶어요. 아울러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을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책을 찾아볼 수 있는 눈길도 추스르고요. 우리 스스로 일제강점기 때 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적바림할 수 있는 움직임도 있어야겠고, 이런 적바림을 문학으로 빚어내는 움직임도 있어야겠으며, 문학으로 빚어진 열매를 반갑게 맞아들이고 널리 읽고 나누는 움직임까지 있어야지 싶어요.

 
 ㄷ.언론과 교육

 
 우리한테는 얼마나 언론 자유가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친일부역자 죄값을 달게 물은 적이 있는지, 일제 강점기 때 죽을 고생을 했거나 끝내 죽고 만 사람들 아픔과 슬픔을 달래거나 씻어 주는 언론매체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일부역자들은 언제 한 번 죄값을 달게 받았을까요. 이 땅에서 친일부역자들이 판치는 모습을 막거나 붙잡을 수 있었나요. 아직까지도 친일부역으로 조선총독부한테 물려받은 땅을 ‘찾겠다’는 소송을 거는 친일부역자 후손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움직임을 막거나 꾸짖는 손길이나 움직임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피해자들은 지금 어찌 지내고 있나요. 한국땅에서, 일본땅에서, 중국땅에서, 러시아땅에서, 또 중부아시아땅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꾸리고 있나요. 가만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나라 역사교육도 짚어 보면서.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지요? 시험문제에 나오는 지식으로만 가르치지 않나요. 아이들이 일제강점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도록 가르치는가요. 교과서 달달 외우기와 시험점수 따지기에만 푹 빠진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보고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나요. 이런 흐름을 헤아릴 때, 《요코 이야기》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어른과,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어떤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역사 교육이 엉터리인 한국에서 소설 《요코 이야기》는 얼마나 ‘전쟁이 일으키는 아픔’을 우리들 가슴마다 깊이 새겨 놓을 수 있을까요.

 
 ㄹ.책

 
 문득, 이 나라에서 역사ㆍ문화ㆍ사회를 샅샅이 살피고 파헤친 책이 얼마나 대접받는지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얼마나 언론매체 눈길을 탔을까요. 얼마나 제대로 소개가 되었을까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이 책은 일본사람이 힘겹게 취재해서 나온 책입니다. 그것도 퍽 예전에. 2005년에 한국말로도 나왔습니다)라는 책이 나왔을 때 알아본 언론사 기자는 몇이나 되었을까요. 소개는 몇 줄이나 했을까요. 캄보디아에 살아 있던 ‘훈 할머니’를 찾았다고 호들갑을 떨며 ‘특종 취재’로 법석까지 부리던 언론매체 가운데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2004)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한 줄이라도 소개를 해 준 곳이 몇 군데나 되었지요? 임종국 선생이 《정신대실록》이라는 책을 펴냈을 때, 1990년대 첫머리부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한울)라는 책이 나와서 3권까지 나온 뒤, 출판사를 옮겨 5권까지 나오도록, 또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책이 나왔을 때에도, 이 책을 알아봐 준 언론매체는 어디가 있을까요.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라는 책이 나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책이 나와도, 일본 사진작가가 취재한 《종군위안부》(눈빛)라는 사진책이 나왔어도, 이런 책을 하나라도 사서 읽은 지식인은 얼마나 되며, 이런 책을 기꺼이 소개하고자 나선 출판평론가는 누가 있으며, 여성학자와 여성운동가 가운데 이런 책을 둘레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읽고 공부한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ㅁ.군복 입은 남자들

 
 《요코 이야기》를 낸 출판사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을 말하고,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위한다면『요코 이야기』처럼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거짓없는 좋은 뜻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요. 우리 현실을 안 보고 말로만 좋은 이야기를 읊을 수는 없겠지요.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 뒤로 이때까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을 이룬 적이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부역 노릇을 했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살아남아서 미군정기 때 돈과 이름과 힘을 얻었고, 이들은 이승만 독재정권 때 행정조직과 공무원 구석구석을 차지합니다. 그 뒤 이어진 박정희 독재정권 때는 아주 탄탄히 뿌리를 내렸고, 이어진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에는 이 나라 어느 두메에도 이들 손아귀가 안 뻗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 나라입니다. 우리 사회요 역사요 발자취입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과 평화를 외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붙잡혀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끔찍하게 고문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옳은 소리 했다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입다물고 고개숙이며 사는 게 낫다는 몸가짐을 익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우리 나라이며, 이런 흐름은 아직도 굳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방식은 《요코 이야기》라는 소설인지요.

 글쎄,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같은 책에서는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을 찾을 수 없을까요. 《한국의 히로시마》 같은 책에서는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바라는 길’을 찾을 수 없을까요. 《역사교과서와의 대화》 같은 책에서는 ‘군복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역사’를 찾을 수 없을까요.


 ㅂ.내가 참말 하고 싶은 이야기


 저도 《요코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차분하게 돌아보고 싶습니다. 참말로 이 책에 무슨 줄거리가 담겼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라도 꼭 헌책방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찾아볼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니 힘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몇 가지 다른 책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먼저 《맨발의 겐》(아름드리미디어)이라는 만화책. 일본에서 나온 ‘역사 다룬 만화책’ 가운데 일제식민지와 태평양전쟁을 바탕으로 균형을 어느 만큼 잘 잡고 자신들 잘못과 전쟁문제를 날카롭게 잡아챘다고 해서 널리 칭찬을 받았고, 나라안에도 10권까지 번역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히로시마》(사계절)라는 그림책. 이 그림책은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은 ‘철저히 피해자이기만 한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평화와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 그림책은 《맨발의 겐》과는 달리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만화책 《맨발의 겐》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가 주인공이 되어 나오지만, 이 주인공은 ‘미국놈 미워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권력자와 천황제’를 남김없이 비판합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일본이 왜 원자폭탄을 맞았는가?’ 하는 뉘우침이나 돌아봄이 없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되뇌이는 말은 ‘전쟁은 나빠, 평화를 사랑하자’입니다.

 그림책 《히로시마》를 펴낸 출판사도 《요코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와 거의 비슷한 말로 ‘전쟁문학을 봐야 하는 까닭’을 이야기했습니다.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책으로 왜 《히로시마》나 《요코 이야기》 같은 책을 골라야 했을까요? 그 많은 전쟁문학 가운데 우리 나라에도 번역해서 펴낼 만한 책이 이런 책밖에 없었을까요?

 일본에서는 《혐한류》(2005)라는 만화책이 나와서 꽤나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저도 이 만화책을 헌책방에서 한 권 우연하게 찾아서 샅샅이 읽었습니다. 모두 아홉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혐한류》는 ‘한국이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아무런 근거 없는 헐뜯기라고 둘러대면서 ‘한국이야말로 일본 문화를 베껴먹기로 훔치는 도둑나라이고, 거짓말과 노예근성이 가득한 못된 나라이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혐한류라는 만화책을 보며 우리 사회에 깃든 편향성과 온갖 문제를 비판하고 뉘우치자’는 말을 앞세워 번역할 출판쟁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런 출판쟁이가 없는데, 다양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책도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양성’을 빼면, 이런 책은 무슨 값이, 무슨 뜻이, 무슨 생각이, 무슨 가르침이 남을까요.

 《요코 이야기》 말썽은 시간이 지나면 오래지 않아 잊혀지리라 생각합니다. 생각의나무 출판사 사재기 말썽도, 한젬마 대리창작 말썽도, 정지영 대리번역 말썽도 벌써 잊혀진 옛일이 되었잖아요. 《마시멜로 이야기》는 이제 광고 한 번 안 때리고도 베스트셀로 높은자리를 아무 어려움없이 차지하는 책으로 튼튼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젬마 말썽은 이 일을 세상에 알린 〈한국일보〉를 빼놓고는 아예 기사로 다루지 않습니다.

 숨을 돌리며 생각을 마무리지어 봅니다. “《요코 이야기》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 역사를 돌아보도록 하는 책’을 부지런히 읽어 줄까요. ‘이 나라에서 전쟁피해자로 아파한 사람들 이야기’를 얼마나 따순 눈길로 살펴봐 줄까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전쟁이야기(전쟁피해와 군대와 학살을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 가운데, 《요코 이야기》 때문에 가슴이 아팠거나 씁쓸함을 느꼈거나 화가 잔뜩 치민 분들께서 다음과 같은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봐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얄궂은 책 비판’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살갑고 훌륭한 책 읽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테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1.몽실언니 (권정생)
 2.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츠보이 사카에)
 3.너를 부른다 (이원수)
 4.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윤정모)
 5.노근리 이야기 (박건웅)
 6.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모리카와 미치코)
 7.종군위안부 (이토 다카시)
 8.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5)
 9.맨발의 겐 (나카자와 케이지) (1∼10)
 10.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11.나무소녀 (벤 마이켈슨)
 12.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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