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남짓 책을 묶었습니다. 컨테이너에 담긴 책을 묶었습니다. 여기는 불이 안 들어오기에 해가 떠 있는 동안에만 묶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해가 졌으니, 방에 있는 책을 묶어야겠어요. 그에 앞서 뭣 좀 먹으려 합니다. 한참 책을 묶다 보니 뱃속에서 꼬르르 하더군요. 그래도 꾹 참고 묶었는데, 더는 못 참겠더군요. 도랑물에 발과 손과 낯을 씻습니다. 쌀도 씻어서 안칩니다. 팥을 아침부터 불려놓았는데 제대로 불려지지 않았네요. 해 놓은 밥을 다 먹기 하루 앞서부터 불려야겠네요. 이제 십 분쯤 있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구수하게 밥이 익을 테고, 밥이 익을 무렵 된장칼국수 한 그릇 끓여서 함께 먹을 생각입니다. 된장칼국수 끓인 냄비에 밥을 두어 주걱 퍼넣고 말아서, 옆에는 책을 펼친 다음 책을 읽으며 먹으려 합니다. 밥이 얼만큼 들어간 뒤에는 어제 사 온 소주를 반 병쯤 곁들여 마셔 볼까 하고요. (4340.4.6.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루마리 휴지를 새로 꺼냅니다. 여태껏 쓰던 두루마리 휴지 하나는, 다른 사람이 쓰던 것을 얻었으니 온것 그대로 쓴 셈은 아니었지만, 이태 만에 새 두루마리 휴지를 꺼냅니다. 지난해 1월인가 2월에 스물네 개들이 두루마리 휴지 묶음을 사고 오늘 처음 뜯었습니다. 똥누고 뒤 닦을 때 빼고는 휴지 쓸 일이 없고(뒤 닦을 때는 두 칸씩 둘을 뜯어서 씁니다), 코를 풀 때에는 한 번 푼 휴지를 잘 펴서 고이 말린 뒤 다시 쓰곤 하다 보니까 이렇습니다. 무엇을 닦을 때에는 걸레를 쓰거나 손을 씁니다. 굳이 휴지를 뜯어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두루마리 휴지 묶음에 스물세 개가 남았으니, 이 휴지는 앞으로 쉰 해 안팎 쓸 수 있을까요? 죽는 날까지 이 두루마리 휴지를 다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4340.4.6.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혼인해서 살다가 헤어지기로 한 뒤, 서울에서 살던 집을 아내한테 넘겨주면서 이 전세집을 얻느라 다른 사람한테 꾼 돈은 갚아야 하니, 그 빚만 갚게 해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헤어진 아내는 그러마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전세집 소유권을 넘긴 다음에는 말을 바꾸어 빚갚이 할 때 들어가야 할 돈을 안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빚갚이 할 돈은 받지 못했고, 앞으로 그만한 돈을 다시 벌 수 없도록 살아가는 저인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손을 벌리며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가 도서관을 열 준비를 하는 요즈음, 돈 나갈 일이 없도록 몸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짐차를 부르는 일부터 해서 새로 들여야 할 책꽂이와 책걸상, 이밖에 자질구레하게 들어갈 여러 곳에 쓰일 돈을 생각하면, 아내와 헤어질 때 받기로 했던 그 빚갚이 돈이 새삼 떠오릅니다. 사람이 없이 살다 보니, 자꾸 어느 한쪽에 아쉬움이 남겠지요. 하지만, 빚갚이를 못하고 둘레사람들한테도 손 벌리지 못하는 형편이 되노라니, 주는 고마움과 받는 고마움을 새삼스레 돌이켜보게 됩니다. 또한 제 삶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랬듯이 제 두 주먹으로 헤쳐 나가야지, 어설피 옛생각에 매여 살아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빚갚이를 했다면 어깨짐은 가벼워졌겠지만, 좀더 다부지게 세상과 맞설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로 새로운 일감을 찾으려 하지 못했을 테지요. 무언가 가지고 있다면, 그처럼 가지고 있는 재산(또는 물건 또는 힘)으로 그동안 생각했던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두 손에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다면, 모든 것을 새로 찾아야 하고 새로 생각하고 새로 몸을 놀려야 하고 새로 부대끼고 뛰어야 합니다. 저라고 하는 사람이 낡은 자리에 머물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움직이되,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이 되라는 뜻에서 빚갚이를 못하게 운명이 지어졌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4340.4.4.물.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7-04-05 10:14   좋아요 0 | URL
빚이라는 게 한번 사람 덜미를 잡기 시작하면, 어디가서 뭘해도 주눅이 들어서
사람 사는 모양새가 영 안나오더군요. 저도 한때 큰돈이라면 큰돈일수 있는 금액의 빚으로 한참을 고생했는데, 지나고 보니 어찌살았나 싶습니다.;;
지금 고생스러우신거 십분 이해한다면 오버가 되겠지만, 적으신 글가운데는 저와는 전혀다른 희망을 갖고 계신 분인듯 합니다. 모쪼록 조만간에 염려없이, 그 빚들이 잘 해결되길 소망해 봅니다. 좋은 봄날 맞으시길요.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체셔고양2 드림.

숲노래 2007-04-06 13:36   좋아요 0 | URL
빚을 지며 고달파 본 사람들은, 서로를 더 잘 헤아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
오버라니요~
채셔고양2님도 좋은 희망으로 즐겁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빕니다~
 

 50미터 산업도로와 재개발을 반대하며
 - 인천 배다리와 금곡동과 송림동을 지키고자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꾸린 뒤 자전거를 탑니다. 때때로 자전거를 놓고 전철을 탑니다. 자전거를 탈 때면 홀가분하게 차가운 새벽 바람을 느끼며 등판을 흥건히 적시는 땀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놓고 걸어서 전철역까지 갈 때에는 제가 디디는 땅을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느끼며 좀더 더디게 제 둘레 삶터와 사람들을 살피게 됩니다. 전철을 타고 움직이는 동안 책 한 권 펼칩니다. 아직 제가 모르거나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이웃들 이야기와 생각을 책을 읽으며 느낍니다.

 일곱 시에서 일곱 시 반 사이에 인천 동구 금곡동에 자리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닿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까지 이곳 헌책방거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조그마한 자리를 하나 얻어 ‘개인 도서관(중심 주제는 사진책)’을 열 생각이라서, 헌책방거리 일꾼과 함께 책꽂이를 짜고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곳에도 도서관이 제법 여러 곳 있기는 하나, 이곳들은 중고등학교 아이들 입시공부를 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인천에서 살아가는 적잖은 젊은 넋들은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과 수험서에 매여, 정작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이 걸을 길을 찬찬히 생각하거나 찾아볼 ‘책’ 하나 만나는 즐거움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지난 열 몇 해에 걸쳐서 모아 놓은 갖가지 책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나,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책 하나를 느긋한 마음으로 살피면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책이 있구나’, ‘이렇게 온갖 책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여태껏 무엇을 보아 왔나’ 하고 찬찬히 곱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 헌책방거리에 문을 열 도서관이 얼마나 오래 살림을 이을 수 있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 세 해쯤은 버티겠지만, 그 뒤는 모르는 일이거든요. 배다리 헌책방거리와 이웃한, 또는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가는 길 가운데 하나인 ‘쇠뿔거리(우각로)’라는 길을 가로지르는 50미터짜리 산업도로가 놓일 판이기 때문입니다.

 인천시와 개발업자는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으려고 1998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습니다. 길 닦을 자리는 길그림을 보며 ‘곧은 금’을 그었고, 그 곧은 금에 놓인 사람들 집터와 가게터는 ‘한 평에 얼마씩 보상해 주겠다’고 말에 한 집 두 집 쫓겨났습니다. 새길이 닦인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찌하겠느냐’며 돈 몇 푼 받고 살림을 옮겼습니다. 자기들 삶터에 왜 길이 놓여야 하나 묻지도 못한 채, 아니 처음부터 물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참말로 왜 새길이 놓여야 하고, 새길은 왜 가난한 사람들 집터나 가게터를 싸그리 밀어내며 뚫려야 할까요. 인천은 서울보다 자동차가 적고 대구나 부산보다도 적지만, 길은 제법 많이 뚫려 있습니다.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앞서부터 ‘항구를 억지로 열’면서, 인천을 거쳐서 조선땅 수많은 자원이 배에 실려 일본으로 빼앗겨야 했으며, 일본 문물이 인천을 거쳐서 서울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온갖 길을 놓아야 했고, 이때에도 지붕 낮은 집에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터는 남김없이 밀려나고 무너졌습니다. 이 역사가 2007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셈이랄까요.

 돌이켜보면, 쇠뿔거리(우각로)는 이 나라 얼과 넋이 짓밟히고 무너지면서 이 나라가 일본한테 식민지로 살며 괴롭힘에다가 시달림으로 골머리를 앓게 한 ‘첫 번째 길’입니다. 나라님께서는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쇠뿔거리는 ‘싹뚝 잘라내어’ 산업도로를 뚫고 나라살림을 북돋워야 인천 살림이 살고 나라한테도 좋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어요. 더욱이, 산업도로를 다 뚫은 뒤에는 길 둘레에 자리잡고 있는 송림동과 금곡동을 세 해 안에 모두 철거하고 ‘문화와 쇼핑과 패션이 넘치는 복합상가와 산업단지’를 유치해서 사람들한테 돈벌이를 시켜 주겠다고 내세웁니다. 그런 뒤, 헌책방거리와 공예거리를 쫓아내어 아파트를 올리고, ‘지붕 낮은 집’들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외국사람들한테 볼꼴사나우니까(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보기 좋은 새 시멘트 집’들을 높이높이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송림동과 금곡동에서 살아가며 조용히 살림을 꾸리던 분들이 모인 오래된 저잣거리까지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겠지요.

 한 평에 사백만 원이라던가, 집있는 사람들한테 내어준다는 보상금이. 이 마을 분들 집은 열 평이 채 못 되곤 하니까, 열 평이라 치면 사천만 원. 서른 해, 쉰 해, 일흔 해 동안 허리가 구부정하도록 살아온 이들이 어렵사리 장만하고 알콩달콩 가꾸어 온 살가운 마을살림과 집터 보상금이 사천만 원. 웬만한 대졸 취업자 연봉만큼도 안 되는 돈. 이 돈을 받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자기들 살림을 다시 마련할 수 있을까요. 전세집이나마 얻을 수 있을까요. 집을 옮겨야 한다면, 그동안 해 온 일은 어떻게 다시 이을 수 있을까요. 생판 낯선 곳에서 무슨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손바닥 만한 집에 살며 손바닥 만한 텃밭을 돌보는 재미를 누렸고,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이라지만, 그 적은 돈으로도 한삶을 조촐하게 꾸리며 모자랄 것도 넘칠 것도 없는 알맞춤한 삶을 꾸렸습니다. 남한테 해코지할 일도 없으나, 해코지할 까닭 또한 없이 오순도순 낮은 지붕이 다닥다닥 달라붙고 이어붙으며 언제나 웃음꽃과 눈물바람을 함께 나누며 살았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분한테는 우리들 삶과 삶터는 ‘문화가 아니’며 ‘한낱 가난뱅이 구질구질’일 뿐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분들은 ‘자가용 하나도 몰지 못하는 주제에 얼른 집과 가게 빼고 떠나 주길’ 바라겠지요. 하지만 우리들 집터와 가게터는 ‘인천 개항 역사와 발맞추어 함께 해 온 문화’요, ‘인천 개항 앞서부터 조용하면서 살뜰하게 이어오던 삶’입니다. 우리들 지역문화와 어깨동무 삶은 돈 몇 푼으로 보상받을 수 없지만, 이런 보상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동안 닦은 반듯하고 널찍한 수많은 길로도 넉넉한 인천이며, 자동차 세상보다는 사람들이 아늑하고 포근하게 살아갈 삶터가 인천이라는 곳을 한결 아름다이 보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으로 빚는 문화나 삶터가 아니라, 사람들 따순 마음으로 가꾸는 문화나 삶터를 고이 지키고 즐기며, 앞으로도 웃고 울며 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4340.3.22.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란 자유


 〈파이미디어〉 편집장을 맡고 있는 분한테 편지를 받았습니다. ‘소폭 개편’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말하면 ‘미운 놈 잘라내기’일 테지요.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이 쓰는 글이니, 이런 글을 받아서 〈북데일리〉 기사로 달기 퍽 껄끄러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도 제가 쓴 글이 ‘엉뚱한 제목이 달려(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이 쓴 글답지 않은 잘못되거나 얄궂은 말투가 쓰인 글이름 들)’ 기사가 되고, ‘보기에도 나쁜 편집상태로 실린’ 모습을 보며 마음이 씁쓸하고 답답했습니다. 지금 어느 인터넷매체를 보더라도, 또 어느 인터넷모임이나 블로그 들을 보더라도,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기사 편집을 하는 곳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동안 이런 문제를 거의 말하지 않고 한 주에 두어 차례씩 글을 보내 왔습니다. 제가 걷는 길, 또 제가 글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알맹이, 또 제가 쓴 글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며 함께하기를 바라는가 하는 마음은, 〈북데일리〉라는 매체에 실리는 글과 견주면 아주 다릅니다. 아마, 제가 늘 비판해 마지않는 대목을 거의 빠짐없이 〈북데일리〉가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북데일리〉라는 매체가 있는 줄 몰랐고, 김민영 님이 저를 취재한 뒤로 이곳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책마을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 ‘네가 왜 거기에 글을 쓰냐? 네 성격하고 안 맞을 텐데?’ 하고들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가는 길하고 아주 다른 곳인데, 왜 글을 쓸까요?’ 하고.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있고, 좋아하는 길이 있으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소리와 얼굴이 다르며, 즐기는 먹을거리와 옷이 다릅니다. 살고 싶은 집이나 나들이하고 싶은 여행지도 다르겠지요.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보다 더 낫거나 훌륭할 수 없습니다. 가는 길은 달라도, 저마다 소중한 자기 자신을 찾고 있다면, 또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온힘을 다하고 있다면 모두 아름다운 삶을 가꾸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자기 혼자만 잘났다고 생각하거나 믿으면,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로 빠집니다.

 우파라고 해서 나쁘고 좌파라고 해서 좋을 수 없습니다. 극좌와 극우가 나쁠 뿐이며, 자기 빛깔을 밝히지 않고 좌와 우 사이에 왔다갔다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나쁩니다.

 김민영 님이 쓴 글을 보며, 이이는 어떤 책을 즐기나 가만히 살피노라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같이 최종규라는 사람이 〈함께살기〉 게시판이나 지난날 〈오마이뉴스〉나 요즈음 〈시민의신문〉 들에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책’이라고 비판한 책입니다. 아니, 저는 처세나 경영이나 자기계발을 다룬 책은 ‘책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책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장사지요. 처세와 경영을 빌미로 말장난을 하고 지식덩어리만 머리에 쑤셔넣는 일이지요. 우리가 참다이 처세를 하자면, 《논어》를 읽고 《목민심서》를 읽고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나 《시와 혁명》 같은 책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 생각이고, 제가 가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제가 걷는 이 길대로 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가는 길도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어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사서 읽고 있는데, 줄거리는 ‘나쁘지 않지만’, 정작 ‘세계 절반이 굶주리는 기막힌 까닭과 밑바탕’은 다루지 않더군요. 미국이 왜 소말리아에 군대를 보냈고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으며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을까요? 미국과 쿠바는 왜 이리 사이가 나쁠까요? 왜 이탈리아와 영국은 1960년대까지 소말리아를 식민지로 삼았으며, 유럽 거의 모든 나라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남미에 그토록 많은 식민지를 꾸렸을까요. 이런 식민지는 왜 아직도 버젓이 남아 있을까요. 아프리카와 중남미 내전은 왜 일어날까요? 이런 속내를 밝히지 않는다면, 적어도 ‘카길’이란 미국계 다국적 재벌이 무슨 꿍꿍이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지 못한다면, 세계 절반 넘게 굶주리는 까닭을 느낄 수 없습니다. 또한, 정작 본질을 못 느낀 채 이런 책만 읽는다면, 지식만으로 세상을 읽을 뿐, 자기 자신을 올바르거나 깨끗하거나 아름답게 가꿀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기 자신을 올바르거나 깨끗하거나 아름답게 가꿀 수 없는 사람이 자기 삶을 즐길 수 있을까요? 자기 삶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 많이 벌어서 이웃한테 몇 푼 나누어 주는 일이 봉사나 자선행위일는지요.

 《나무소녀》라는 책이 있습니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이 뭔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들은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니, 그다지 놀라울 일이 없을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다 알지만, 실천을 안 할 뿐인 이야기’, ‘우리들이 다 알 만하지만, 굳이 알려고 않는 이야기’, ‘우리들이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중요하게 느끼지 않아 스치고 지나갔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만이 중요한 책이라고 느끼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이런 책을 다 찾아서 읽어야 한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훌륭하다고 손꼽히는 책을 1000권 읽는다고 해서, 그 책을 다 읽은 사람이 훌륭하게 살까요? 한 달에 책 300권을 읽어서 독서왕이 된다 한들, 그 독서왕이 올바르게 세상을 꿰뚫어보는 만큼 실천을 하면서 살까요. 인도사람 아룬다티 로이는, ‘실천할 수 있는 이야기만 글로 쓴다. 그리고 글로 쓴 이야기를 실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제가 몸소 하는 일을 글로 쓰고, 제가 쓴 글을 어김없이 몸으로 옮깁니다. 나무젓가락을 씻어서 말린 뒤 다시 쓰고, 대중교통조차 안 타고 걷거나 자전거를 즐기며, 밥집이나 술집에서 먹고 남은 먹을거리는 어김없이 빈통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서 먹습니다. 옷을 사입는 일이란 없고, 헌옷을 얻어서 입거나, 예전부터 입던 옷을 10년이고 20년이고 손바느질로 깁고 손질해서 꾸준히 입습니다. 옷 한 벌을 10년이나 20년 입자면, 살이 찌면 안 되는데, 대중교통조차 쓰지 않으니 살이 붙을 일이, 비계가 붙을 일이 없겠지요. 그러면 옷 한 벌로 스무 해뿐 아니라 쉰 해도 입습니다. 돌아가신 이오덕 님, 살아 계신 권정생 님은 온삶을 이렇게 살아가셨고, 지금도 꿋꿋하게 사십니다. 당신들한테 옷 한 벌이면 넉넉하다고 말하며, 그 말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이분들, 이오덕 님이나 권정생 님은 파벌로 나누자면 우파에 들어가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분들 사상이나 파벌이 어떠하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분들은 자기 사상은 사상대로 가꾸되, 언제나 올바른 편에 서려고 했고, 한결같이 올바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자기 삶을 추슬렀습니다. 남들 눈치를 안 보고 곧은소리를 했고, 때때로 타협(죄지은 이 허물도 감싸기)을 하며 살아가셔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많은 분들이 섬기고 모십니다. 리영희 선생은 좌파 쪽 사람이라 하지만, 우파 사람들도 모시거나 우러릅니다. 리영희 님 당신이 살아가는 모습, 글쓰는 기자로서 보여주는 매무새는 누가 보더라도 훌륭하거든요. 글 한 줄 쓰고자 책 다섯 권만큼 살피고 자료를 찾고 발로 뛰는 이런 매무새는 리영희 당신이 훌륭하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글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기자라면 더더구나’ 지킬 기본이거든요. 적어도 한국기자가 아닌 나라밖 기자들은 이런 매무새가 기본입니다.

 저는 기독교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불교도 꽤나 싫어합니다. 천주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교는 본바탕이 비뚤어지게 퍼지기에 안타깝게 여깁니다. 부두교는 종교 바탕이 좋은 데에 자리하고 있기에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종교’가 되며 비틀어지는 대목이 많습니다. 그 어떤 믿음이든 ‘종교’가 되면 돈벌이로 탈바꿈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종교를 간직하는 사람들을 싫어할 마음이 없고, 딱히 거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자기가 좋아하는 종교라면 자기 혼자 좋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종교를 빌미 삼아 세금 돌려먹으며 우람한 집짓기에만 골똘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종교 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자꾸 종교를 억지로 간직하라고 붙잡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제 마지막 글로 등록이 되었을 텐데, 제가 소개한 《성모의 곡예사》라는 만화책에서는 ‘캉탈베르’란 이름은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하느님을 모시려고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 붙인 이름을 엉뚱하게 바꾸는 바람에, 글 줄거리가 잘못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북데일리〉라는 인터넷매체가 ‘최초의 책 이야기 전문 신문’이라는 구호를 내걸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맨 처음’ 했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요. 두 번째는 중요도가 떨어지나요? 세 번째면 어떻고 꼴찌면 어떨까요. ‘맨 처음’으로 치자면, 저는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으로 “헌책방 모임”을 만들었고 “헌책방 이야기책”을 펴냈으며 “헌책방 전문 사진”을 맨 처음으로 찍었습니다. “헌책방 사진 전시회”도 맨 처음으로 했고, “우리 말 운동가” 명함도 가장 어린 나이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맨 처음’이 뭐가 중요할까요. 일찍 했든 늦게 했든, 얼마나 올바르고 알뜰하고 재미나고 보람차고 신나고 조촐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는지요.

‘맨 처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책 이야기를 어떻게 누구와 함께 언제 어디에서’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책이란 ‘다양성’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며 생각한 이야기를 다 다르게 담아서 다 다른 자리에서 사고팔기에 다 다른 때에 다 다른 까닭으로 만나서 다 다르게 받아들이며 읽고 다 다른 자기 삶에 받아들이거나 곰삭이도록 이끌어 주는 매체라고 느낍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다 다름’ 가운데 한 가지 목소리를 내고자 했습니다. 예전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이렇게 제 목소리를 내며 살 생각입니다. 그러면 지금 〈북데일리〉가 보여주는 목소리는 어떠한가요. 얼마나 ‘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책’을 보여주고 있는가요.

 책 한 권을 살 때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만 가야 할까요. 동네책방에 가면 안 될까요. 헌책방에 가면 안 될까요.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빛 한 번 못 보고 사라지는 책이 너무 많아서, 도서관에 없는 책이 숱합니다. 이런 책들은 마지막으로 헌책방에 남아서, ‘헌책방을 기꺼이 찾아오는 책 좋아하는 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참말로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헌책방을 가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헌책방을 안 가면 ‘잊혀지거나 사라지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기 일쑤니까요. 출판사마저 문닫고 사라지면, 이곳에서 펴낸 책을 어디서 찾을까요? 도서관에서? 도서관이 책을 제대로 사들여서 갖추던 곳이던가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틀림없이 〈북데일리〉는 이런 대목을 못 짚습니다. 어쩌면 안 짚는지 모릅니다. 독서광들 ‘장서 숫자’를 이야기하고, 한 달에 몇 권, 한 해에 몇 권 읽었다 하는 이야기, 무슨 책이 몇 만 권 팔렸다 하는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책 하나가 내 삶을 어떻게 흔들었다’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 이야기는 있지만, ‘사랑 이야기’라는 것도 너무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겨레와 나라와 인류와 숱한 목숨붙이와 문화 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잘 팔릴 만한 대중 인문서 이야기는 있어도, 속깊고 알뜰하나 기자들하고 가깝지 않아서 언론소개 한 번 못 받고 사라지는 인문한 책들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책들은 ‘누가 찾아서 읽어’ 주고, ‘누가 이런 책 소개를 써’ 주며, ‘누가 이런 책들을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에 마지막으로 꽂혀 있을’ 때 알아보도록 해 주면 좋을까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쓸 때 글자수를 똑같이 할 수 없습니다. 글자수 똑같이 해서 글을 쓰면 ‘글 뽑는 기계’이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우리들이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자기 생각과 뜻을 홀가분하고 스스럼없이 펼칠 수 있도록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을 한낱 ‘길이만 놓고 따진다’면, 그 어찌 자유롭고 싱싱한 숨결이 살아숨쉬는 풋풋한 글이 샘솟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만드는 책은 사람들 삶이 담깁니다. 그래서 모든 책은 쪽수가 다르고 두께가 다르고 짜임새가 다릅니다. 50쪽짜리 책이 있고 300쪽짜리 책이 있으며 1000쪽짜리 책이 있습니다. 300쪽짜리 낱권이 10권이 모이는 장편소설이 있고, 250쪽짜리 낱권 50권이 모이는 장편만화가 있습니다. 자, 50권짜리 장편만화를 소개하는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50권을 하나씩 따로따로 소개하는 글을 50차례에 걸쳐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장편만화 50권이라면 적어도 15∼20년이란 세월을 쏟아부어야 가까스로 이룹니다. 이런 큰 작품을 몇 줄로 간추릴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감동을 쏟아내어 조금 길다고 느낄 만하게 쓸 수도 있겠지요. 왜 인터넷기사는 전문평론으로, 논문에 버금가는 글로 쓸 수 없을까요? 한편, 50쪽짜리 책을 읽고도 50쪽에 이르는 느낌글을 쓸 수 있습니다.

 책을 엮은 우리들 사람이며, 책을 읽는 우리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펴내고 다 다르게 읽어냅니다. 이 다 다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얼마나 팍팍할까요.

 자전거를 탈 때, 모든 이가 평속 35km로 달려야 할까요. 어떤 이는 대단히 잘 달리지만 일부러 5km로 달릴 수 있어요. 어떤 이는 그럭저럭 15km를 지킬 수 있어요. 어떤 이는 달리는 틈틈이 쉴 수 있어요. 우리가 쓰는 글도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우리 사는 세상도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만나는 사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우리가 부대끼는 모든 것은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은 자유입니다. 언제나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서 어디에 쓰나요.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니 즐거우신지요.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 김민영 님께서는 자신이 바보 아닌 사람이라고 느끼시는지요.

 〈북데일리〉에 첫 글을 보내고 나서, 이곳에 실린 글을 죽 살피며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저는 저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도 하늘처럼 섬겨야 하며, 내가 모르거나 못 느끼는 대목도 짚기 때문에, 고개숙여 배워야 한다고 느끼며, 그 뒤로도 꾸준하게 글을 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렇게 고쳐먹은 마지막 보람이 이렇게 되는군요. 생각해 보면, 첫 글을 보내고 나서 ‘쓰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통보를 받으며 한편으로는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런 통보는 사람한테 하는 예의가 아닙니다. 한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하면 안 되지요. 벌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법이니, 앞으로 다른 분들한테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기 바랍니다.

 제가 몇 차례에 보낸 건의(또는 비판이든)에 아무런 대꾸가 없다고, 얼마 앞서 보낸 글은 아예 기사로 싣지도 않고, 이렇게 ‘강제추방’을 한 것은 뚜렷한 명예훼손이며 인격모독이고 계약위반입니다. 대한민국 책마을은 워낙 뒤떨어지고 형편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니, 뭐 이런 일이 있더라도 ‘언론사 편집부 책상에서 힘을 쥔 이’ 앞에서 ‘글 쓰는 사람’은 깨갱일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쥔 분이 칼을 휘둘렀으니, 칼자루조차 없는 사람은 그 칼에 맞아야지 어쩌겠습니까. 김민영 님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글 쓰는 사람’ 처지를 거의 헤아리지 않는 이런 모습은, 저으기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니까요. 이 현실을 거스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은 해야 하’며, 이런 말할 권리조차 없거나 가로막힌다면, 도무지 한국땅에서 글쟁이들은 어떻게 제 목소리를 다 다른 느낌과 마음과 뜻으로 펼치면서 다 다른 삶을 글이나 책으로 펼쳐낼 수 있을까요.

 저는 제 글이 〈북데일리〉에 갑작스레 못 실리는 일이 안타깝지 않습니다. ‘최종규이든 다른 사람’이든, ‘다 다른 생각과 목소리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가, 칼을 쥔 사람 힘 앞에 난데없이 목아지가 달아날 수 있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폭력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 놀라울 뿐입니다. 총자루나 칼자루보다 붓자루가 무섭습니다. 붓자루가 사람 마음을 더 난도질합니다. 붓자루가 사람을 더 크게 아프게 하며 더 괴롭게 죽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붓자루로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죽이는 일을 저지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어쩌다가 잘못해서 또다시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거나 죽이더라도 부디 그 다음에는 잘못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세상사람이 60억이면, 60억 가지 책이 있고 60억 가지 이야기가 있으며 60억 가지 느낌글이 있습니다. 김민영 님이나 최종규란 사람이나 그 60억 가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꿋꿋하게 자기 글을 쓰려고 애쓰는 김민영 님임을 느꼈기 때문에, ‘제 기나긴 시간’을 일부러 들여서 ‘이처럼 긴 글’을 써서 보냅니다. 부디, 복 많이 받으소서. (4340.3.20.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