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일보>에 보낸 글입니다. 아마 6월 12일에 실릴 듯합니다.


 《작가들》이라는 잡지 2007년 여름호를 보면, 1991년에 했던 이야기나눔(좌담)이 다시 실렸습니다. 이야기나눔 주제는 ‘인천문화의 재건을 위하여’. “서울이 문화적 활동무대를 제공해 주면, 인천은 언제든지 저버릴 수 있는 하나의 ‘대합실’과도 같은 존재로 격하되기 일쑤였지요 …… 인천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서울 등지로 이주하는 게 하나의 변함없는 유행으로 굳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247쪽)”라 말하는 대목이 보입니다.

 《김광식의 민주기행, 김광식의 아시아기행》이라는 책에, ‘상실의 시대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인천’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는 대학생과 택시기사하고 나눈 이야기가 실렸군요. “대기업의 소유자들과 임원들은 거의 다 서울에 삽니다. 그러니까 인천에 화이트칼라인 사무직노동자와 생산직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이 대종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통시설은 잘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합니다. 계속 타면 익숙해져서 덜 할지는 몰라도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283쪽)” 하는 이야기와 “예전 삼미슈퍼스타가 잘하니까 인기가 대단했습니다만, 김진영 감독을 쉽게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그게 만약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 팀이었다면 가능한 일입니까? 지방 방송국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도 없었어요. 서울 가서 쇼핑하고 서울 텔레비전만 보니까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극장식 스탠드바는 잘되고 자꾸자꾸 생겨납니다.(287쪽)” 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1975년에 인천 중구 송월동 3가 3번지에서 태어나 신흥동 안국아파트에서 고1 때까지 지냈고, 고2부터는 연수동에서 보냈습니다. 대학교 1년은 인천에서 다녔으나 날마다 네 시간 반을 길에서 버리니 고달프고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에 있기 싫어서, 2학년이 되던 해에 집에서 나와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자취를 합니다. 그러고는 인천에 돌아오지 않고 서울에서 삽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썩은 뒤 사회로 돌아온 다음, 대학교 교육도 초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제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에 홀로 안타까워하다가 그만둡니다. 1999년부터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2003년에 충주로 옮겨 이오덕 님 유고 갈무리를 하며 지냈어요. 이 일을 마친 다음 한 해 동안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며 지냈고, 시골에서 마을도서관을 꾸릴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벨서점〉 아주머니한테, ‘그런 도서관이라면 인천에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말씀을 듣고 모든 계획을 바꿔 고향인 인천에 오기로 마음먹고, 지난 4월 창영동으로 살림을 옮기고 6월 1일에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인천으로 돌아온 저를 반긴(?) 소식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중ㆍ동구를 싹 뜯어없애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세운다는 계획. 너비 50m 산업도로가 송림동과 금창동을 싹뚝 잘라버린다는 움직임. 열두 해 만에 돌아온 인천 길이 낯설어 1:5000 정밀지도를 사서 보노라니, 중ㆍ동구는 어디를 보아도 ‘재개발-환경정비 지구’입니다. 그래, 제 도서관은 끽해야 2013년까지 배다리 한켠에서 버티면 다행이겠더군요. 더구나 아시아경기대회 관광객한테 ‘지금 인천 모습’을 안 보이고픈 인천시장 정책까지 붙었으니.

 재개발이 모두 나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공동뒷간 한두 칸 덩그러니 있는 만석동과 인현동에 좀더 넓고 아늑한 공동뒷간 마련해 주는 공사는 반갑습니다. 다만, 새로 올린다 해도 스무 해를 못 버티고 허물어 다시 지어야 하는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50년, 100년도 넘은 지붕낮은 골목집을 죄 쓸어내야 할까요. 제 도서관이 깃든 건물은 1958년에 지은 것이나 아직도 멀쩡할 뿐 아니라 무척 튼튼합니다. 역사가 무엇이고 문화가 무엇일까요. 이처럼 한 자리에 고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과 마을 삶터가 역사요 문화가 아닐는지요. 지금 배다리는 첫째, 이웃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고, 둘째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고, 셋째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가 없는 깨끗함이 있으며, 넷째 서로 조용하고 알뜰히 골목길을 가꾸며 텃밭과 스티로폼 농사를 일구는 재미가 있는 한편, 다섯째 사람 냄새가 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여섯째 자동차가 씽씽 달릴 수 없어 아이들도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고 어르신도 걱정없이 마실할 수 있는 싱그러움이 있습니다. (4340.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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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6-11 17:15   좋아요 0 | URL
인천에서 대학생활을 한 저로서도 동인천-신도림 구간의 국철은 지옥철이라는 말이 딱 맞았죠. 강릉-인천간 버스가 개통되기 전까지의 국철 타기는 실로 끔찍한 기억이네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저녁나절, 아무리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빨래를 한다. 한 가지라도. 아니, 한 가지 빨래 말고 무엇이 더 있으랴. 입는 옷가지가 많지 않고, 입는 옷가지들은 단출한 녀석들인데. 오늘 몸이 고단하다고 빨래를 미루면 내일 일을 마친 뒤에는 몸이 안 고단할까. 오늘은 내일과 같고 모레는 글피와 같을 텐데, 그날 입은 옷을 그날 빨지 않으면 하루하루 쌓이며 늘어나는 빨래를 어떻게 짐지워 낼까.

 내 몫으로 주어진 빨래를 그날그날 하노라면 하루나 이틀 걸러 빨래감이 없는 때가 있다. 같은 옷을 이틀이나 사흘 내리 입을 때도 있으니까. 이럴 때면 머리 감으며 나오는 물을 빨래할 때에 쓰지 못하니 물이 아깝다. 걸레라도 함께 빤다. 그렇지만 걸레도 깨끗하여 안 빨아 주어도 될 때에는, 그냥 흘려버리는 물이 아쉽다. 어딘가 써 주면 좋을 텐데.

 함께 사는 식구가 한 사람 늘며 빨래감이 새로 생긴다. 이제는 날마다 한 가지 빨래쯤은 꼬박꼬박 나온다. 아침에, 또는 저녁에 빨래를 하면서 ‘이렇게 손을 놀리고 움직여 주면 몸이 굳을 일이란 없고, 죽는 날까지 이렇게 조물락조물락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내 몸 어디에 병이 깃들겠는가?’ 싶은 생각. 몸을 놀리지 않으니까,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때그때 할 몫을 다하려 하지 않고 미뤄 두거나 남한테 맡기기만 하니까, 자꾸자꾸 마음이 지치면서 깎여나가고, 마음이 지치거나 깎여나가면서 몸도 무너지거나 흐물흐물거리지 않을까.

 새 식구가 된 이가 내놓게 되는 빨래감을 큰 대야에 담고 물을 받는다. 적잖은 빨래감을 보며, ‘저 빨래 언제 다 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느긋하게 하나하나 빨면서, ‘그렇구나. 빨래란, 잔뜩 밀린 것을 치워내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새삼 느끼다. 빨래란, ‘한 벌 두 벌 깨끗해지는 옷을 보며 내 마음도 빨래 따라 깨끗해지는 일’이구나 싶다. 깨끗이 빨린 옷이 한 벌 두 벌 늘면서 내 마음이 차츰차츰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는 빨래만큼 집구석이 환해지는 일이 빨래로구나. (4340.6.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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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소 2007-06-07 19:13   좋아요 0 | URL
예전엔 몸과맘이 우울하면 부러 손빨래를 하곤 했어요..ㅎㅎ 요즘엔 귀찮고 피곤해서~..ㅋㅋ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는데 어깨죽지며 팔뚝이며 근질거립니다. ‘씻은 지 좀 되었나?’ 싶어서 도서관 문을 닫고 4층 살림집으로 올라가 찬물로 몸을 씻습니다. 몸을 씻는 김에 수건 하나 빱니다. 다 빤 빨래는 집게옷걸이로 집어서 4층 마당 한켠에 넙니다. 오늘은 햇볕이 따뜻해 잘 마르겠네요. 이제 내려갈까 하다가, 올라온 김에 아침을 먹자고 생각합니다. 된장 풀고 감자와 양파 썰어 김치와 참치 조금 넣고 간을 맞춘 칼국수 한 그릇 끓입니다. 밥을 퍼 냄비에 담아 살살 섞으면 아침 준비 끝.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즐깁니다.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냄비에 물을 붓습니다. 이 물로 냄비 구석구석에 붙은 찌끄레기를 떼어냅니다. 저녁을 먹을 때에는 이 냄비를 그대로 씁니다. 제가 먹은 냄비이니까, 이 그릇에 물을 더 붓고 된장 풀고 푸성귀 조금 넣으면 아침과 마찬가지로 쓸 수 있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햇볕바라기를 잠깐 하면서 동네를 죽 휘둘러봅니다. 맑은 햇볕은 지붕 낮은 집에도 높직한 아파트에도 골고루 내리쬡니다. 다만, 높직한 아파트는 그늘을 너무 많이 만드네요.


 달리는 전철에도 내리쬐고, 자동차와 찻길에도 내리쬐는 이 햇볕은, 저기 경상도 안동땅에도 내리쬐겠지요. 기지개를 켜고 담벽에 기댑니다. 지난 5월 17일, 일흔한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권정생 할아버지를 떠올려봅니다. 몸이 나빠서 젊은 날부터 병치레를 하셨고, 오줌을 눌 수 없어 배에 누런 고무호스를 끼우며 여태껏 살아온 그분. 아프게 살아왔기에 아픈 이웃을 온몸으로 느끼셨지 싶습니다. 세상에 쓸모없이 버려진 자기 자신을 알았기에 이웃한 모든 낮은자리 사람을 껴안을 수 있었지 싶습니다. 가진 것 없이 사셨기에 책 몇 권 내어 적잖은 인세를 벌게 되었을 때, 그 돈은 자기 아닌 이웃한테 쓰며 사셨지 싶고요.


 이제 권정생 할아버지는 세상 걱정과 시름을 모두 내려놓고, 고운 흙과 맑은 물과 향긋한 바람이 감도는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어떤 이는 ‘혼인해서 아이 낳고 살아야’ 어른이라고 합니다만, 혼인 안 하고(또는 못하고) 아이 안 낳고(또는 못 낳고) 살아간 권정생 할아버지야말로 어른이지 싶어요. 참 어른 말입니다. 자기 살을 깎아서 어린이한테 내어주는 사람, 자기 몸을 바쳐서 어린이를 보살피는 사람, 자기 마음을 다해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이셨으니까요.


 한 어른이 저세상으로 갔으니, 이제는 우리 스스로 자신을 가다듬고 추슬러 ‘또다른 어른’이 되어 살아가야겠지요. 예전에 권정생 할아버지한테 들은 말을 곱씹습니다. “동화 몇 편 썼다고, 그거 대단하다고 보면 안 돼요.”, “나보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쁜 이야기기예요. 나 대신 아파 주면 좋겠어요.” (4340.5.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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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것저것 준비만 하고 있는 도서관 ^^;;;;)


 지난 4월에 충주에서 인천 배다리 골목길로 살림집을 옮겼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도서관을 열 생각이거든요. 인천 배다리 둘레에는 ‘2014년 아시아 경기대회 유치’ 된바람이 차츰 모질게 불어서, 2013년까지 전철역과 찻길과 학교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아파트’만 빼놓고 모두 재개발, 시청과 개발업자 말을 빌면 ‘도시정비-도시정화’ 사업을 벌인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를 ‘아파트 + 쇼핑센터 재개발’을 해 버리면, 이곳 사람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마득할 뿐인데, 10조를 투자해서 100조를 벌면 나라살림이 좋아진다고 믿는 공무원과 개발업자 목소리에 밀려날 뿐입니다. 새만금과 천성산은 자연 삶터였기에 지역사람들 문제였어도 널리 이야기가 되지만,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100년 역사가 넘는 골목길 문화를 이루어 온 배다리 같은 곳은 ‘낡고 오래되고 지붕 낮은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외국 관광객이 들이닥치기 앞서’ 죄 갈아엎을 곳으로 여기는 흐름도 있습니다. 그래, 오래 버틴다고 해도 2013년까지 고작 대여섯 해뿐이지만, 그 대여섯 해라도 지역사람들하고 책 문화를 나누고픈 마음에 이 자리에서 도서관을 열려고 해요.

 도서관이라 하면, 으레 돈을 들여서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 곳,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입시공부를 하거나 대학생들이 고시공부 하는 곳쯤으로 알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진짜 도서관은 한 사람(개인)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한 가지 주제로 모아 온 책을 차곡차곡 모아서 나누는 곳이기도 하며, 돈이 없더라도 자기 살림집을 고쳐서 책꽂이를 알뜰히 짜 놓은 뒤, 느긋하게 책 하나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금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도서관사서 자격증을 갖추고 도서관위원회를 꾸리고 무슨 시설검사에 합격을 해야만 도서관을 열 수 있다고 못박는데, 돈이 없는 사람도 책을 즐길 수 있는 곳, 동네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찾아들 수 있는 곳, 멀리서도 찾아와 지역 책 문화와 지역 사람들 삶터를 함께 부대낄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요, 이런 지역 도서관이 전국 곳곳에 하나둘 문을 열 수 있으면 좋으리라 꿈꿉니다.

 저는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주제를 내겁니다. 지난 1992년부터 하나둘 모아 온 책이 얼추 3만 권 남짓 되고, 이 책 가운데 1/8쯤이 사진책입니다. 아직 얼마 안 되는 숫자이지만, 도서관이란 ‘처음부터 모든 책을 다 갖추고 여는 곳’이 아니라 ‘새로 나오는 책과 새로 알게 된 책을 꾸준히 갖추면서 조금씩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 5월 끝무렵에 모자란 대로 도서관 문을 연 다음,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한테 좋은 생각을 얻고 도움도 받으면서, 좀더 푸근하고 넉넉한 도서관으로 가꾸고 싶습니다. 한편,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해서 사진책만 갖추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그림책과 만화책, 소설책과 어린이책, 우리 문화와 말을 다룬 책, 사상과 철학과 언론과 역사와 교육 같은 인문사회과학을 다룬 책, 책을 말하는 책, 여성과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책, 환경과 생태를 다룬 책도 함께 갖출 생각입니다. 밥 한 그릇을 먹어도 골고루 먹어야 몸에 알맞듯이, 책 하나를 즐길 때에도 여러 갈래 책을 골고루 살피고 돌아볼 수 있어야 알맞다고 느끼거든요. 사진을 찍거나 공부하는 분들한테 나라 안팎 온갖 책을 구경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사진을 이루는 밑바탕이 될 인문학과 우리 문화 소양을 일깨우는 책도 함께 보도록 하고,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 생태계와 환경이 어떠한지 느끼는 가운데 사진감을 찾도록 도우며, 어린이책과 문학책 들을 같이 살피면서 자기 뜻과 마음을 서로서로 더 즐겁게 나누는 길을 찾아나서도록 거들고 싶어요.

 다만, 지금은 돈과 힘과 이름 모두 없는 형편입니다. 저한테 있는 것은 여태껏 모아 온 책, 그동안 만나고 어울리던 사람들, 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과 뜻, 꿈과 뜻을 펼쳐 나가려는 몸뚱이입니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면, 무엇보다도 집임자한테 달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도서관을 연다고 해서 알아줄 사람이 있을는지, 널리 알려줄 사람이 있을는지, 도서관이 열린 줄 알고 찾아올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세 걱정, 2013년까지 이루어질 재개발 걱정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 이룬다고, 아무 뜻도 펼치지 못한다고 느껴요. 이 도서관에 딱 한 사람이 찾아오더라도, 그 한 분한테 소중한 책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고맙다고 느낍니다. 조그마한 꿈이든, 자그마한 실천이든,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된다고 느껴요. 백 가지를 꿈꾸었으나 한 가지만 가까스로 할 수 있겠지요. 때로는 한 가지조차 못할 수 있을 테고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꿈꾸고 생각한 대로 제 길을 걸어갈 생각입니다. 이루어지는 것만 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루려고 애쓰는 세월과 제 몸짓과 땀방울이 바로 꿈이라고 느낍니다. 책을 믿고 살아온 대로 사람을 믿으며 살려 하며, 사람을 믿고 살아온 대로 제가 디디고 있는 이 땅을 믿으며 살 생각입니다. (4340.5.15.불.ㅎㄲㅅㄱ)

 

글쓴이 : 최종규 /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를 인터넷방(http://hbooks.cyworld.com)에 꾸준히 올리는 한편, 《모든 책은 헌책이다》와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잡지 <우리교육> 청탁을 받고 오늘 아침 막 보낸 글입니다. 오늘이 마감이었는데, 마감에 늦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대로 적어 놓으니, 막힘없이 술술 나오더군요. 제가 쓴 글이라서가 아니라, 글을 쓸 때에는 언제나, 자기 모습을 그대로 담으면 어려움이 없고, 자기 모습을 숨기거나 덧바르려고 하면 어려움이 가득하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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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바지를 빨아야 할 때면 늘 두렵습니다. 저 녀석 빨려면 한참 팔이 뻑적지근하겠군 하면서. 새로 빤 청바지를 입을 때면, ‘아끼면서 입어야지. 청바지 빨 때 얼마나 힘든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바지에 때가 많이 끼어 슬슬 빨 날이 다가오면 ‘곧 빨 옷이니까 거친 일을 할 때 입자’고 생각하며 때 타는 일을 할 때 여러 번 더 입습니다. 그리고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담가 놓습니다. 이렇게 담가 놓기를 하루나 이틀, 대야에 담긴 청바지를 보며 ‘저거 빨아야 하는데’ 하면서 자꾸 손쉬운 다른 빨래를 먼저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더 미루면 안 되지’ 하면서 북북 비벼서 빱니다. 오른손잡이인 저는, 오른손으로 비비곤 하지만, 청바지는 한손으로만 비비면 너무 힘들어 왼손도 번갈아 쓰며 비빕니다. 그래도 팔이 뻐근합니다. 거친 솔이 있으면 청바지 빨래는 한결 손쉽지만, 거친 솔이 있어도 웬만하면 맨손 비비기를 합니다. 힘이 많이 들기는 해도, 청바지를 빨 때에는 청바지 빠는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탁기로 돌리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맛, 느끼지 못하는 맛.

 세탁기로 빤 청바지와 손으로 빤 청바지는 아주 다릅니다. 보송보송함이 다르고 옷감이 허벅지와 종아리에 닿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손으로 빤 청바지는 제 살결이 많이 닿는 자리를 한결 마음써서 비벼 주었기 때문에 제 몸도 손빨래 청바지를 더 반긴다고 느낍니다.

 십 분 남짓 청바지를 빨고 한쪽 다리로 살살 걸치며 두 손으로 낑낑대며 물을 짭니다. 물을 다 짠 뒤 탁탁 텁니다. 자잘한 물방울이 얼굴에 와닿습니다. 다 된 빨래에서 털려 나오는 물방울은 꽤 시원합니다. 집게 옷걸이로 콕콕 집은 뒤 햇볕 드는 마당에 한동안 널어 놓습니다. 바지 아랫단으로 물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는 방으로 들여놓습니다. 하루가 꼬박 지나면 바작바작 마릅니다. 다 마른 청바지를 집게 옷걸이에서 떼어내어 고이 접습니다. 접으며 손에 닿는 천 느낌이 부드럽습니다. 가끔 얼굴을 대어 보곤 합니다. (4340.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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