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과 살림살이와 집식구


 문을 닫는 헌책방 한 곳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이 헌책방이 조용히 문을 닫는 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테니까,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일으키면서 밤을 새워 글을 적바림한다.

 시골집에서 살림을 잘 꾸리지 못하는 내 삶을 돌이킨다. 나는 책하고만 살아갈 목숨인가. 나는 책하고 떨어진 채 살 수 없는 목숨인가.

 헌책방 한 곳 아픈 발자국을 돌아보는 데에 마음을 쓰는 만큼, 내 보금자리 살림살이 예쁘게 건사하는 데에 마음을 쓸 수 있는지, 아니 제대로 쓰기는 하는지, 옳게 쓰려 한 적이 몇 차례쯤 될는지 되씹는다.

 집일과 집살림은 틀림없이 다르다. 책을 사는 일과 책을 아끼는 일은 매우 다르다. 책방마실을 자주 하거나 책방 이야기를 글로 쓴대서 책사랑이나 책방사랑이 되지 않는다. 살림 이야기는 아주 다르다.

 나는 이제껏 집일만 했지, 집살림은 하지 않았다. 집살림을 하지 않은 까닭이라면 집살림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집일만 생각하고 집일을 할 뿐, 살림을 어떻게 해야 내 몸과 식구들 몸이 튼튼할 수 있는지 곱씹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가슴에 응어리가 크게 지는 나머지 쉬 잠들지 못한다. 문을 닫는 헌책방 이야기가 가슴에 쿡쿡 파고들어 아프고, 내 시골집 보금자리를 사랑스러운 옆지기하고 어여삐 돌보지 못하면서 제대로 못 느낀 채 여태껏 살아온 내 나날이 아프다. 나는 내 바깥일대로 헌책방 사람들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며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안일대로 보금자리 살림살이를 돌아보며 쓰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 삶과 말은 하나이고 삶과 사진은 하나이며 삶과 책은 하나이든, 삶과 살림은 하나이다. (4344.3.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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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닫은 헌책방


 아침 일곱 시부터 나르는 책 일은 아침 열한 시 이십 분 무렵 끝납니다. 몇 평쯤 될까 싶은 참 작은 헌책방에서, 그러니까 너덧 평쯤 될까 싶은 조그마한 헌책방에서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고 꾸준히 팔리며 새로 꽂히기도 한 책을 차근차근 빼냅니다. 자그마한 헌책방 한 곳에 깃든 책은 어제 하루 짐차로 한 대가 나갔고, 오늘은 짐차로 석 대 나갑니다. 이 자리에서는 1985년부터이지만, 건너편에서는 1978∼79년부터였습니다. 건너편 헌책방은 훨씬 작았다니까, 어쩌면 한두 평이나 두어 평이었을까요.

 네 시간 즈음 여러 사람이 바지런히 나르고 쌓으며 책을 빼냅니다. 몇 만 권이었을까요. 몇 만 권은 몇 해가 이룬 더께와 이야기와 굳은살이었을까요. 우리는 돈으로 이 책을 어떻게 셈할 수 있을까요.

 헌책방 한 곳에 깃들던 책은, 이 책방이 튼튼하고 씩씩하게 서던 때에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차츰 줄었고, 문을 닫는다고 할 때에도 알아보는 사람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책들을 넘겨받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되살릴 때에 여느 책손은 어느 만큼 새롭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책 또한 물건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물건으로만 그치는 책이라면 굳이 헌책방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책 또한 지식으로 마주할 수 있으나, 지식으로만 맴도는 책이라면 애써 옛책을 되읽지 않습니다. 헌책방 일꾼은 당신이 건사하던 모든 책을 고이 내려놓고는 조용히 당신 일터를 마무리짓습니다. (4344.4.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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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닫는 헌책방


 엊저녁 서울 ㅎ동에 오래도록 자리하며 책삶과 책사랑을 나누어 온 헌책방 일꾼 한 분한테서 전화가 오다. ㅎ동 헌책방 일꾼은 이제 더는 헌책방 살림을 꾸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당신 헌책방에 건사한 책을 통째로 넘겨받을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며, 한번 알아보아 주면 좋겠다 하면서, 문을 닫기 앞서 밥 한 그릇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동네새책방이 일찌감치 아주 조용히 사라졌다. 수십 군데나 수백 군데가 아닌 수천 군데 동네새책방이 참으로 아주 조용히 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통계청에는 ‘한국에서 문닫은 동네새책방 숫자’를 해에 따라 표로 만들었을까. 이런 통계를 갖추었을까. 책을 읽자느니 책을 읽히자느니 하지만, 정작 책을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사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마음을 쓰는 공무원이나 책벌레나 평론가나 지식인이나 기자는 몇이나 있을까.

 헌책방 일꾼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러 서울마실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속이야기를 속시원히 나눌 만한 책손이 나날이 줄다가는 그예 자취를 감추는 오늘날이기에 헌책방 일꾼 한 사람은 책방살림 꾸리기 힘드셨겠지요. 밥동무이든 말동무이든 술동무이든 고작 하루밖에 안 될 테지만, 마지막 책동무이든 내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숱하게 많던 동네새책방들이 문을 닫던 때, 동네새책방을 고이 이어오던 그분들은 마지막 자리에서 누구하고 마지막 밥과 말과 술과 책을 나누었을까. 문을 닫는 헌책방이 있으면 문을 여는 헌책방이 있을 테고, 문을 닫는 가게만큼 문을 여는 가게가 있겠지.

 서울에는 사람도 많고, 서울에는 자가용도 많고, 서울에는 아파트도 많고, 서울에는 출판사도 많고, 서울에는 돈도 많은데, 서울에는 헌책방 하나 동네에서 예쁘장하게 살아숨쉬기란 참 버겁구나. 아, 그러고 보니, 서울에는 자전거도 많고, 비싼 자전거도 많으며, 자전거 동아리도 참 많구나. (4344.3.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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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봉오리


 노란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합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던 때에도 골목마다 터질 듯 말 듯한 봄철 꽃망울을 어디에서나 만났습니다. 집에 거는 달력은 으레 한두 달 뒤이기 일쑤이지만, 골목을 거닐면서 봄이 오고 여름이 찾아오며 가을이나 겨울이 되는 줄 느꼈습니다. 멧기슭 따라 아이하고 천천히 거닐면서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다고 느낍니다. 올 한 해 새로 찾아와 주는 봄볕을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맞아들입니다. 바람이 제법 쌀쌀해 아직 스산하구나 싶지만, 드디어 집안 물이 녹아 집에서 빨래를 합니다. 집에서 물을 쓰며 빨래하는 일이란 이처럼 고맙구나 하고 새삼 깨달으며 봄을 반깁니다. (4344.3.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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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0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1-03-30 00:49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꽃은 봉오리라고 하는군요 @.@ 고맙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난날 일제강점기에 이 나라 지식인들은 러시아사람이 했던 일을 따라 “민중 속으로”를 외치며 일하고자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외침은 되풀이됩니다. “민중한테 다가서야 한다”라느니 “현장 속으로 가야 한다”라느니.

 그러나, 나는 생각합니다.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이런 외침말은 너무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중이라 하는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다가 어느 날부터 반짝 하면서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껏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다가 머리로만 지식조각을 움직여 여느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마음을 품는대서야 여느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과 내가 딴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 스스로 여느 사람이어야 하고, 여느 사람이 나여야 합니다.

 “민중한테 내려가야 한다”느니 “민생을 읽어야 한다”느니 “민중과 함께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부질없습니다. 왜 ‘내려와야’ 하고 왜 ‘읽어야’ 하며 왜 ‘함께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내 삶이 바로 여느 사람 삶이라면 내려가든 올라가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이 곧 여느 사람 삶이라면 내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곧 여느 사람 삶을 읽는 일입니다. 내 삶이 언제나 여느 사람 삶일 때에는 하루하루 내 삶을 일구는 나날이 곧바로 여느 사람과 함께하는 나날입니다.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다시 밖으로 돌아갈밖에 없습니다. 밖에서 찾아온 사람들로서는 ‘여기(여느 사람들 살림터)’가 저희 보금자리나 마을이나 삶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중을 외치고 싶다면, 진보를 외치고 싶다면, 무슨무슨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뭔가를 외치고 싶다면, 그냥 여느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가면서 내 하루를 알뜰살뜰 착하며 착다이 일구면 됩니다. 가난하거나 후미진 동네 골목 담벼락에 벽그림을 그린대서 동네가 나아질 까닭이 없습니다. 동네사람들 이야기를 녹음기에 담거나 사진 몇 장 찍는다고 다큐멘터리라든지 지역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지내며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면 넉넉히 이루어지는 우리 마을 예쁜 삶입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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