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사다



  어제 새벽 6시에 철수와영희 출판사 대표님이 쪽글을 보내 주신다. 새벽에 무슨 일이 있어서 쪽글을 보내셨나 했더니, 새로 나온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한겨레〉에서 잘 다루어 주었다고 하신다. 신문도 방송도 안 보는 터라 나로서는 신문에 책소개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모른다. 더구나 고흥에서는 신문을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마침 광주로 바깥일을 보러 나온 터라 광주버스역으로 가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길에 한 부 장만해 보기로 한다. 광주버스역에서 이리저리 헤맨 끝에 신문 파는 곳을 찾아낸다. 신문 한 부를 집고서 “한 부에 얼마예요?” 하고 묻는다. 신문집 아저씨는 손전화 기계만 만지작거리면서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얼마라고 하는데 안 들린다. 두 번쯤 개미만 한 목소리로 한 말이 들려서 800원을 꺼낸다. 그런데 이 신문집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콕콕 찍듯이 가리킨다. 뭔 손가락짓인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내 그 손가락짓이 어디에 돈을 올려놓고 가라는 뜻이라고 알아챈다. 신문을 안 사고 갈까 하다가 돈을 내려놓고 뒤돌아선다. 2018.7.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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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에서 삼십 킬로미터



  오늘 처음으로 진도마실을 합니다. 고흥서 진도로 달려 보았습니다. 진도에 계신 이웃님이 고흥에 오셨고, 두 아이까지 자동차에 태워서 진도를 살짝 돌아보았어요. 진도읍에서 삼십 킬로미터 즈음 떨어진 안골도 돌아보는데, 읍내서 멀면 멀수록 숲이나 들이나 하늘이나 등성이가 싱그럽네 하고 느껴요. 참으로 그래요. 서울이나 읍내 같은 곳에서 멀면 멀수록 하늘이 파랗고 풀벌레와 새가 춤을 추어요. 밤에 별이 빛나는 곳은 안골이요, 밤에 개구리가 노래잔치를 펼치는 곳도 안골이에요. 이 안골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2017.6.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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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고치다



  몸처럼 여기며 늘 짊어지고 다니던 가방을 고쳤어요. 지난주에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어깨끈이 끊어져서 손질을 맡겼지요. 손질집에서는 어깨끈이며 이것저것 고치는 데에 5만 원이 든다며, 고치지 말고 그 돈을 새 가방을 사는 데에 보태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어요. 저는 오래오래 쓸 가방으로 여기며 장만한 가방이기에 손질값이 비싸지 않다고 얘기했어요. 이레 만에 가방이 우리 집으로 돌아와요. 낡고 닳아서 끊어진 어깨끈이며 이곳저곳 새로 덧댄 가방이에요. 그동안 어깨끈을 두 차례 고쳤고, 이제 세 차례째 고쳤어요. 새 가방을 장만하는 값이 쌀는지 비쌀는지 몰라요. 다만 저는 이 가방을 앞으로도 아끼면서 쓸 마음이에요. 나중에 또 어깨끈이 낡고 닳는다면 다시 손질집에 맡겨서 고칠 생각이에요. 2017.6.1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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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내보내다



  밤이 깊어 갑니다. 오늘 하루 마무리를 지을 일을 살피며 글을 쓰는데 셈틀에 벌레 한 마리가 붙습니다. 처음에는 파리인가 여겼는데, 나중에 보니 벌입니다. 자그마한 벌이 이 밤에 잠을 안 자고 길을 잃은 듯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흰종이를 쓰면 되겠네 싶더군요. 흰종이를 살살 밀며 벌이 흰종이에 앉도록 합니다. 벌은 얌전히 흰종이를 붙듭니다. 천천히 마루를 가로질로 마루문을 열고서 훅 바람을 일으킵니다. 네 보금자리로 찾아가렴. 네 보금자리까지 못 가더라도 풀밭에서 날개를 쉬렴. 이튿날 해가 뜨면 풀밭에서 꽃가루를 먹고 기운을 차려서 네 보금자리로 깃들렴. 2017.6.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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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5분



  오늘(6.11)은 서울에서 고흥으로 달리는 시외버스가 제법 느긋합니다. 오늘 이 시외버스를 달리는 기사님은 고속도로 쉼터 두 군데에서 느긋하게 쉬었고, 고속도로에 아무리 다른 자동차가 없다 하더라도 마구 달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달리면 마구 내달리는 시외버스보다 고흥에 5분이나 10분 때로는 15분 즈음 늦게 닿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5분이나 15분쯤 더 달려도 좋아요. 5분이나 15분을 줄이려 하면서 내달리다 보면, 손님도 기사님도 버스까지도 모두 고단해요. 차근차근, 즐겁게, 넉넉하게, 둘레를 고루 살피면서 가는 길은 언제나 홀가분하면서 상냥합니다. 아름다운 숨결은 바로 이 느긋한 5분을 즐길 줄 아는 마음에서 태어나지 싶습니다. 2017.6.1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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