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글쓰기


 달빛 예쁘게 보며
 햇빛 따사로이 받던
 골목 기와집 한 채
 가뭇없이 사라지며 5층짜리
 빌라로 태어나려 한다.
 아, 돈 많이 벌 만한 집으로
 새로 지어서 좋겠네요. (4343.1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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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평도 사태를 이렇게 본다. 구지레하게 늘어놓기보다는 내 딸아이하고 나누고픈 이야기를 적바림해 본다. 


 싸움과 글쓰기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하며 양말을 뜬다. 거의 보름쯤 걸려 겨우 당신 양말 한 켤레를 빚어낸다. 드디어 첫 뜨개를 내놓았으니 이제 아이 양말도 한 켤레 뜰 수 있겠지. 아이 양말은 어른 양말보다 실이나 품이 조금 들 테니 조금 더 빨리 뜰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직은 느릿느릿이고 앞으로도 느릿느릿일 수 있는데, 뜨개질을 하여 옷 한 벌 마련하자면 얼마나 기나긴 나날에 걸쳐 많디많은 품을 들여야 할까. 사랑을 참다이 나누고 믿음을 곱게 함께하기까지는 얼마나 오래오래 마음과 생각과 넋과 얼을 쏟아야 하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실을 바늘에 걸어 한 땀 두 땀 꿰다가 한눈이라도 팔면 그만 실을 도로 풀고 다시 떠야 한다. 흔들려서는 안 되고 흔들어도 안 된다. 착하고 어여삐 손을 놀려야 한다. 아이는 뜨개질하는 어머니 곁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거나 놀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뜨개질은 그만하고 저랑 신나게 뛰어놀자면서 안기고 엎어지며 올라타곤 한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에 온삶을 바쳐도 모자라지만, 모자라면서 얼마든지 즐겁기에 사랑하며 살아간다. 내 아이랑 내 아이 엄마랑, 여기에 아이 아빠랑 서로 툭탁질을 하면서 보낼 만큼 목숨줄이 길지 않기도 하지만, 목숨줄이 짧다 하더라도 낫을 무기처럼 휘두른다든지, 아예 무기 하나 벼려 휘두르고 다닐 겨를을 낼 수 없다. 무기를 벼리는 품과 땀과 겨를과 마음이 아깝고 안쓰러우며 슬프다. 주먹이 있으니까 다투고 무기가 있으니까 싸우며 군대가 있으니까 서로서로 죽이며 올라탄다. 둘째 또한 딸아이로 태어나면 좋겠다. 사내아이로 태어난다면 군대에 보내기 싫다. 군대에 가야 한다면, 아, 어떡해야 하나. 사람 죽이는 솜씨를 가르칠 뿐 아니라 몸에 단단히 배도록 하는 군대라는 데에, 푸르며 어린 넋을 어떻게 집어넣나. 사랑하며 살아가기에 즐거운 이 삶터에서 아이한테 사람 죽이는 이야기로 온마음과 온몸을 휘감도록 하는 수렁에 어떻게 밀어넣나. 처음부터 군대란 곳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지만, 힘과 돈과 이름을 쥔 누군가가 군대를 만들었어도 힘이며 돈이며 이름이며 없거나 쥘 마음조차 없는 이라면 군대 아닌 논밭에서 땀을 흘리도록 힘을 쏟아야 할 텐데, 이렇게 해야 참 어버이요 참 어른일 텐데. (4343.11.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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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과 글쓰기


 산골집에서는 탄산 마실거리이든 보리술이든 한 병 얻기 힘들다. 면이나 읍까지 가기에도 멀지만, 마을 구멍가게 또한 없다. 그렇다고 내가 술을 집에 잔뜩 사다 놓고 틈틈이 마시는 사람도 아니다. 때때로 술 생각이 나더라도 술을 마실 수 없다. 이는 아이한테도 좋은지 모른다. 아이 까까를 아무 때나 손쉽게 살 수 없으니까. 그예 멧기슭을 보고 하늘을 보며 논밭을 바라본다.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받아들이며 물을 마신다. 텔레비전이나 기계나 자동차 소리가 아닌, 새와 닭과 풀벌레와 바람과 나뭇잎 소리를 듣는다. 덤으로는 멧쥐가 집으로 기어들어 벽을 갉는 소리.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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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과 글쓰기


 몇 시에 잠들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 한참 자다가 아이가 오줌을 기저귀에 누었다며 칭얼대는 소리에 퍼뜩 깬다. 아이 기저귀를 간다. 오줌 기저귀는 씻는방 대야에 담가 놓는다. 새 기저귀를 채운 다음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자리에 눕는다. 밤이라 시계를 볼 수 없으니 때가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바깥은 그예 깜깜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할 수 없는 일 또한 많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살듯 이것저것 사들이거나 여기저기 누비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만 오늘은 어느 골목부터 걸어 어느 골목을 지나 어느 골목에서 마무리를 하는구나 하고 헤아린다. 11월 25일 오늘 같은 때에는 골목빛이 어떠하겠다고 곰곰이 떠올린다. 어디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고 어느 길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마주하겠는지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부질없는 생각이 아니겠느냐 싶다. 나는 도시사람이 아닌 시골사람인데, 마치 도시에서 살아가듯 생각하면 어떡하나. 오늘 낮에 텃밭 무를 뽑은 일을 생각해 볼까. 그래, 무를 그때그때 한 뿌리씩 뽑아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 무를 그대로 두면 다 얼어서 못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토요일쯤 옆지기네 어머님과 아버님이 찾아오시기로 해서, 어쩌면 그때에 무로 김치를 담글는지 모르기에 그날 다 뽑으면 훨씬 나은 줄 뻔히 알면서 오늘 무를 모두 뽑는다. 마침 아이가 아빠 곁에서 함께 놀고 싶어 하며 텃밭에 함께 서 있기에, 아이한테도 무를 뽑도록 한다. 아이는 처음에는 무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아빠가 먼저 이렇게 손으로 잡아서 살살 잡아올리면 돼, 하며 보여준다. 그래도 무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빠가 힘이 모자라서 무를 못 뽑는 척해 본다. 벼리야 도와줘, 아빠 힘으로는 무를 못 뽑겠어, 얼른 네가 손으로 잡아서 함께 뽑아 주렴. 이제 아이가 아빠 손을 잡는다. 이때에 영차영차 하면서 뽑는다. 이리하여 이제부터는 아이가 모든 무를 다 뽑는다. 무 뽑는 맛에 쉴새없이 뽑아댄다. 거름 한 번 제대로 못 낸 엉터리 텃밭인데 알이 제법 굵은 무가 여럿 있다. 거름을 제대로 냈다면 무가 얼마나 굵었을까. 이듬해에는 거름을 제대로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올망졸망한 무를 고랑 한켠에 주욱 늘어놓는다. 참 예쁘다고 느끼어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사진을 찍는 분 가운데 무를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 있던가 하고 곱씹어 본다. 글쎄, 잘 모르겠다. 벼나 논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곧잘 보지만, 무라든지 배추라든지 파라든지 갓이라든지 콩이라든지 우리가 흔하게 먹거나 마주하는 푸성귀나 곡식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다. 어쩌면, 이런 흔한 푸성귀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일군 작품을 알아보거나 대접하는 사람이나 모임이나 출판사 따위가 없어 구경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더욱이,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무이든 배추이든 파이든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저잣거리 마실을 하면서 푸성귀장수 아지매나 할매가 늘어놓은 녀석들을 찍으면 되니까. 이 푸성귀를 사들여 집에서 밥을 하거나 나물을 할 때에 틈틈이 찍어도 된다.

 무를 거의 다 뽑은 아이는 마지막에 그만 앞으로 고꾸라진다. 꽤 굵은 무가 한 뿌리 있었는지, 이 무를 잡아당기다가 힘이 딸려 앞으로 고꾸라진다. 온몸에 풀씨가 가득 묻었다. 아빠보고 털어 달라며 운다. 하나하나 털고 뗀다. 아이는 이내 “언니!” 하면서 운다. 우리 멧기슭 집보다 위쪽에 자리한 이오덕자유학교를 다니는 언니하고 놀고 싶다는 소리이다. 아이 눈을 보면 졸음이 가득한데 낮잠은 도무지 잘 낌새가 없으며, 곧 밥 먹을 때인데 밥조차 안 먹을 낌새이다. 참 갑갑하다. 놀 때는 놀더라도 밥은 먹으면서 놀고 잠은 자면서 놀아야 하지 않나.

 어찌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멧길을 따라 걷는다.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언니 있는 쪽’으로 걷는다. 차츰 위로 올라갈수록 언니랑 오빠가 놀면서 나는 소리가 크다. 아이는 ‘어? 어?’ 하다가는 아빠한테 안긴 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내려가겠단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오르막 멧길을 달린다. 금세 언니를 찾았고, 언니하고 함께 놀자며 달라붙는다. 그런데 아이는 잠을 실컷 잔 몸이 아니라 졸음이 가득한 몸이기도 한 탓에 언니한테 투정만 잔뜩 부리면서 함께 놀아 주는 언니가 골이 나게 하고야 만다. 아이보고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하고 이르지만,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은 않고 자꾸자꾸 언니한테 달라붙기만 한다. 언니는 심통이 난다고 말하면서도 아이하고 즐겁게 놀아 준다.

 밥때가 슬슬 지나는데 아이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린다. 비로소 아이가 엉엉 운다. 몸집 큰 오빠가 공놀이를 하며 찬 공에 가슴께를 쾅 하고 맞아 아프다며 서럽다며 운다. 그러게, 녀석아, 넌 아직 공놀이를 할 수 없는데, 오빠들 틈바구니에 끼어 멀뚱멀뚱 서 있으니 한 대 얻어맞지.

 아이를 안는다. 아이를 달랜다. 토닥토닥 달래며 안 아프니 괜찮다고 말하며 어여 울음을 그치도록 어른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까만염소 무리를 보고 닭 무리를 본다. 울던 아이가 염소랑 닭을 보더니 뚝 그친다. “꼬꼬다!” 하고 외치면서 또 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아빠 품에서 내린다. 닭한테 달려간다. 그러나 닭은 화들짝 놀라 꼬꼬꼬 하면서 꽁무니를 뺀다. 이제 드디어 집에 닿는다. 아이를 먼저 집으로 들이고 아빠가 뒤따른다. 저녁때에도 어김없이 밥을 제대로 안 먹으려는 아이랑 고단하게 실랑이를 하면서 웬만큼 밥을 먹인다. 방 한켠에 쌓인 그림책을 걸레로 닦는다. 아이 이를 닦인다. 아빠가 먼저 힘이 들어 자리에 눕는다. 아이는 뜨개질 하는 엄마 곁에서 곯아떨어진다. 엄마가 아이를 안아 잠자는 방에 눕혀 기저귀를 채운다. 아빠랑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다. 이러다가 아이가 첫 오줌을 누어 일어나 보니 한밤이나 새벽인 줄 알았더니, 고작 저녁 열 시를 조금 넘은 때이다.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할 기운이 없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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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글쓰기 2


 아름다운 문학을 읽을 때면 으레 나 또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아니, 아름다운 문학을 읽었기 때문에 내 어줍잖은 글에 아름다운 결 하나 살포시 내려앉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결은 이내 사그라든다. 내 삶이 온통 아름다운 빛깔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야 내 손으로 아름답다 느낄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문학을 빚은 사람은 당신 삶을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을 뿐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운 삶으로 하루하루를 알뜰히 일구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삶일 때에 아름다운 문학을 온사랑 쏟으며 일구는데, 이 아름다운 문학을 몇 가지 읽었다고 내가 섣불리 아름답다 싶은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다만, 아름다운 문학을 읽은 뒤끝이 남아 한두 줄 엉성하게 끄적이며 멋을 낼 뿐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문학을 읽고 난 뒤에는 이런 엉성한 멋내기를 해 보아도 즐겁다. 아름다움이란 참 아름다운 선물을 베푼다.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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