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글쓰기


 권정생 할배만큼 온삶을 알콩달콩 재미나게 꾸린 분이 얼마나 있을까. 여느 할매와 할배는 당신처럼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았겠지. 그러나 글 좀 쓴다는 사람들치고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을까. 권력이나 돈힘을 부리던 사람들 가운데 알콩달콩 재미난 삶을 꾸린 이가 있었을까.

 자가용을 버리면 이라크 파병을 안 할 수 있다던 권정생 할배 말은 자가용을 버리는 데에서 내 삶을 맑고 밝으며 즐거이 가꾸는 새날과 새길이 열린다는 슬기로움 묻어난 이야기 한 토막이었다. 우리 스스로 옳은 삶을 재미나게 꾸리면서 옳은 넋과 옳은 말로 서로서로 사랑하며 지낸다면, 어떤 못된 권력자라 할지라도 함부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짓을 못할 뿐 아니라, 이 땅 이 나라에서 섣불리 애먼 못난 짓을 못하게끔 타이를 수 있다.

 우리들 누구나 내 삶을 재미나며 신나게 꾸리고 있을 때에는 어떠한 멍청한 돈벌레라 할지라도 아무렇게나 우리 넋을 망가뜨리거나 장사판으로 만들 수 없다. 우리들 누구나 내 삶을 재미없고 신바람 안 나게 돈바라기 권력바라기 학벌바라기로 치닫고 있으니까, 권력자이든 돈벌레이든 우리들을 마음껏 주무르거나 휘두르거나 짓밟을 수 있다. (4343.7.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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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길과 글쓰기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에 빨래를 하고 빨래를 털고 짜며 빨래를 널었다가 빨래를 걷어서 빨래를 개는 데에 들이는 품이란 참 많다. 쌀을 씻어서 불리고 밥을 안치고 밥상을 차린 다음에 치우는 품 또한 많다. 아이랑 부대낀다든지 집일을 하며 들이는 품이란 얼마나 많은가. 나는 글쓰는 사람이라 하지만 정작 글쓰기를 하는 데에 들일 품이란 얼마나 적은가. 그러나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고 옆지기 어머니를 헤아리면, 내가 집살림에 들이는 품이란 참 적다. 우리 어머니이든 옆지기 어머니이든 당신 온삶을 집살림에 바치고 있다. 두 분 어머니한테서 맛난 밥상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이라든지, 두 분 어머니를 마주하면서 느끼는 넉넉함이란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두 분 어머니가 이제까지 살아온 하루하루가 모두어지며 저절로 느끼는 고마움이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내 살림살이에 제대로 손길을 바치지 못하는 주제에 살림이 어떠하다느니 살림이란 어떠해야 한다느니 하고 떠벌일 수 없다. ‘그나마’가 아니라 ‘꽤 많이’ 품과 틈을 들여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내 삶이다. 집살림을 하느라, 또 자전거를 타느라, 여기에 사진기를 쥐느라 내 손가락과 손바닥에는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히기는 했지만, 내 글쓰기는 다름아닌 굳은살에서 우러나오지 않는가. 앞으로 내 손에는 굳은살이 더 많이 박힐 테며, 이에 따라 글쓰기에 쏟을 겨를은 훨씬 줄어들 텐데, 이렇게 글쓰기에 쏟을 겨를이 훨씬 줄어들면서 외려 ‘글쓰기 삶’은 더 길어지겠지. (4343.7.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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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와 글쓰기


 책을 읽는 일과 책을 쓰는 일은 다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책을 쓸 수는 없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서 책을 쓰고 싶다면 터무니없는 꿈을 키우는 노릇인데, 그래도 한 가지 길은 있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내 손으로 옮겨서 적바림해 볼 수 있으면 책 하나 쓸 수 있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을 셈틀 자판조차 아닌 연필을 쥔 손으로 종이에 옮겨적을 만큼 품과 땀과 마음을 쏟을 수 있으면, 이이는 책만 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책을 써낼 수 있다. (4343.7.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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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안 쓰기


 반쯤 왼쪽이라고 밝히는 ㄱ님은 한겨레신문에 곧잘 글을 쓴다. 그러나 나는 한겨레신문에 글을 쓸 마음이 없다. 예전에 두 해 반에 걸쳐 우리 말 이야기를 한겨레신문에 쓴 적이 있지만, 한겨레신문사에서 나를 취재한다고 할지라도 취재를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없다. 취재를 하고 싶으면 그저 내 책을 읽고 느낌글이나 써 주면 좋겠다. 이는 경향신문이라고 다르지 않다.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말은 내 책에 다 적혀 있으니, 기자들 스스로 읽기 나름이다. 잘 읽어낼 수 있으면 나를 만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취재글을 쓸 수 있다. 잘 읽어내지 못한다면 나를 만나더라도 아무 울림과 떨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이든 동아일보이든 중앙일보이든 취재를 받을 마음이 없고, 이런 곳에 글을 쓸 마음 또한 없다. 그러나 애써 취재를 안 받는다거나 글을 안 쓰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런 일을 할 만큼 나한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야기요, 이런 일까지 하면서 내 고맙고 알뜰하며 아름다운 시간을 흘려버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한겨레신문이든 조선일보이든 어느 신문에고 글을 쓸 수 있고 취재를 받을 수 있으나, 굳이 이런 일은 안 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과 매한가지로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안 쓸 생각이다. 그러나 기사는 띄운다. 기사를 띄울 뿐이지만, 굳이 ‘오마이뉴스이기에 여기에 올리는 글’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날마다 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틀로 기사로 붙일 뿐, 오마이뉴스를 빛내거나 도와준다든지, 또는 오마이뉴스를 빌어 내 생각을 밝히거나 알리려는 마음은 없다. 나는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을 좋아할 뿐, 바른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뜻을 지키며 훌륭한 삶을 일구는 사람을 사귀고 싶을 뿐, 아름답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은 삶을 아무렇게나 꾸리는 사람하고 만날 만큼 널널하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나 스스로 바른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고, 나 스스로 휼륭하다고 느끼거나 믿을 만한 일거리를 찾아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글다운 글을 쓸 마음이어야 글쟁이이다. 사진다운 사진을 찍을 마음이어야 사진쟁이이다. 아이를 참다이 사랑하고자 마음쓰며 살아야 어버이이다. 몸소 올바르며 맑고 착하게 살아야 스승이다. 내가 차츰차츰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내 둘레에서 내가 마주할 사람들 누구나 시나브로 좋은 사람으로 달라질 수 있겠지. (4343.7.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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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와 글쓰기


 내가 대단히 좋아하는 만화책 가운데 《도자기》가 있다. 이 만화를 그린 이는 ‘호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지난 2009년 봄에 몸이 무척 아팠는가 보다(아마 예전부터 몸이 나빴겠지). 호연 님이 몸이며 살림이며 너무 어려운 나머지 당신 블로그에서 어찌어찌 도움을 바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 이야기를 두 군데 신문에서 기사로 내보냈는가 보다. 《미녀는 못 말려》 만화책을 보던 옆지기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그런 일이 있었나?’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뒤적뒤적해 보니 〈한겨레〉 기사가 뜬다. 〈세계일보〉에도 같은 기사가 이틀 앞서 나왔다는 댓글은 읽었으나 〈세계일보〉 기사까지는 찾지 못했다. 줄거리는 〈한겨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 그런데, 이 기사를 놓고 여러 누리사랑방(블로그)이나 누리모임(카페)에서 뒷말이 많다. 나로서는 오늘 처음 알았지만, 호연 님 만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 남긴 뒷말인데, 호연 님은 당신 몸이 아파서 도움을 바라는 글을 올렸던 이야기를 자꾸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덥석 기사로 띄운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띄운 〈세계일보〉도 그렇지만, 이렇게 기사가 된 이야기를 새삼 다시 기사로 띄운 〈한겨레〉는 무얼까? 이렇게나마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돕고자 했기 때문일까?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한겨레〉 기자들이라 한다면, 〈한겨레〉가 그토록 손가락질하는 〈조선일보〉 매무새하고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다. 나는 〈한겨레〉 ㄱ기자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겨레〉 ㄱ기자가 나를 취재하겠다며 연락을 해 온다면 “호연이라는 만화쟁이를 아십니까?” 하고 넌지시 여쭌 다음에,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지면을 빌어 공개사과를 한 적 있습니까?” 하고 조용히 여쭈고, “호연이라는 만화쟁이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디 저를 취재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마무리말을 한 다음 내가 먼저 전화를 뚝 끊으려 한다. (4343.1.15.쇠.ㅎㄲㅅㄱ)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347436.html#opinion1

http://cafe.naver.com/swallowedbir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43159
 


 

2009년 4월에 있던 일을 이제서야 

알아서, 뒤늦게 가슴을 치면서 

뒷통수 치는 글을 끄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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