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과 글쓰기


 아이가 기름을 이불에 잔뜩 쏟았다. 인형 얼굴을 손으로 닦아 주는 시늉을 하더니, 인형한테도 ‘아이를 씻긴 다음 몸에 바르는 기름’을 발라 주겠다면서 부엌에 가서 기름병을 들고 오는데 질질 흘리면서 온 데다가 이불에 그만 쫙 쏟았다. 날이면 날마다 속이 터지도록 하는 말썽만 신나게 부리는 아이가 또 큰일을 터뜨렸다. 기름이 밴 이불을 어쩌나. 힘들고 짜증스러워 이틀을 그대로 두다가 오늘 아침에 빨래를 한다. 이불을 빨면서 아이를 씻긴다. 아이는 씻을 때에마저 머리를 안 감겠다며 땡깡을 부린다. 참 괴롭다. 낮은 목소리로 타이르며 아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감긴다. 머리를 감기고 나서 이불을 구석구석 뒤집어 가며 빤다. 미끌미끌한 데는 이제 없다 싶을 때까지 빨래를 한 다음 마당에 내다 넌다. 날이 춥기 때문에 이불 빨래는 끔찍히 안 마른다. 그래도 어찌하는 수 없다. 빨아야 한다. 슬슬 저녁이 되니 이제 이불을 걷어 방에 놓고 말려야겠지. 이불이 얼추 마르면 이불 밑에 있던 깔개도 빨아야 한다. 비나 눈은 안 올 듯하니까 깔개를 빨아서 널어도 되겠지. 그래도 모처럼 엊저녁에는 기저귀 빨래가 두 장만 나와 빨랫감은 아주 적다. 내 웃옷과 반바지를 빤다. 빨랫감이 적으니 내 옷을 함께 빨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옆지기랑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느라 내 옷은 늘 뒷전이다. 아니, 늘 뒷전에 둘밖에 없다. 나는 면티 한 벌을 한 주 즈음 입는데, 빨래를 해야 하는 줄 잊으며 지나치고, 갈아입고 빨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고단한 채 드러누우며 잊는다. 옆지기 옷가지는 내 옷가지보다 자주 빠니까 빨래를 하면서 손이 덜 가고, 내 옷가지는 드문드문 빠니까 한 번 빨래를 할 때마다 조금 더 힘을 써야 하고 품이나 겨를이 많이 든다.

 옆지기는 빨래기계를 사자고 이야기한다. 읍내에 나가 전기제품 파는 데에 가 보니, 10킬로들이 빨래기계는 40만 원, 17킬로들이 빨래기계는 70만 원 한다. 이불을 넣으려면 17킬로들이가 되어야 할 테지. 드럼세탁기라는 녀석은 110만 원부터 있다. 빨래기계 하나가 이렇게 비쌌나? 일손을 덜어 준다는 빨래기계인데, 새것으로 쓰자면 돈이 참 많이 나가겠구나. 더욱이, 물이나 전기를 꽤 많이 먹잖은가. 손으로 이불이건 옷이건 빨래를 하면 헹굼물을 얼마든지 되쓸 뿐더러, 머리 감은 물로 헹굼물을 쓰고, 또 이 헹굼물은 마지막에 걸레를 빨고 씻는방을 닦을 때에 쓴다.

 손빨래를 할 때에는 품이나 겨를을 많이 써야 하지만, 이동안 무겁거나 어수선했던 마음을 추스르거나 다스린다. 옆지기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애 아빠로서 하루하루 참말 고되게 보내야 하니, 옆에서 보기에 무척 안쓰러우리라.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안쓰럽다. 아이한테 피아노를 하나 선물하고 싶은데, 빨래기계 값이 이렇게 비싸다면, 피아노고 빨래기계이고 영 눈알이 핑핑 돌며 꿈 같은 일인가 싶다. 나는 몇 살까지 손빨래를 하면서 우리 집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마당가 이불 빨래를 걷으러 나가서 아래쪽을 꾹꾹 비틀어 짠다. 바람이 차고 이불이 차며 물이 차다. 물이 투두둑 떨어진다. 빙 돌며 한참을 짠 다음 걷어서 집으로 들어온다. (4343.1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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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과 글쓰기


 바람이 모질다 느낄 만큼 차갑게 분다. 겨울이니까 그렇겠지. 온통 집에서 밍기적거려야 하는 하루. 아이가 이것저것 들추며 놀다가 옷장 위쪽에 얹은 귤 쟁반에서 귤을 하나씩 끄집어 내어 방바닥에 톡톡 던지며 밟는다. 심심하다며 이 짓을 하고 논다. 귤을 몇 알씩 껍질을 까 놓고 안 먹을 때에는 가만히 봐주었으나, 이 짓은 도무지 봐줄 수 없다. 먹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아이가 귤물로 적신데다가 기름을 쏟은 담요를 마당가 빨래줄에 널어 놓는다. 바닥을 닦던 걸레를 셋 빨아 빨래줄에 함께 넌다. 귤물에다가 기름을 쏟았으니 방바닥은 닦고 또 닦아도 미끌미끌하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담요가 날려 바닥에 뒹군다. 주워서 탁탁 털고는 빨래줄에 다시 넌다. 바람이 차가와 걸레는 얼어붙는다. 그래도 햇볕 좀 쬐라며 밖에 둔다. 바람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했고 설거지를 했다. 아이한테 어렵사리 밥을 먹였고, 이제는 등허리가 아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 아이는 졸리면서 누울 생각을 않고, 더 장난질을 해댄다. 아스라한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이 겨울 햇살에 시골집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는 하루인가. (4343.1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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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와 글쓰기


 편지를 읽는다. 손으로 한 글자 두 글자 적바림한 편지를 읽는다. 내가 요즈음 너무 고단하다 못해 지친 나머지 집식구한테 자꾸 골을 부린다고 새삼 돌아본다. 아이 하나를 돌보며 이토록 고단하다면 아이 둘일 때에는 어쩌지? 깊은 밤 손글씨 편지를 읽다가 문득, 내 일거리로 수첩에 뭔가 끄적이느라 손글씨로 글을 쓰기는 하지만, 정작 내 살붙이나 동무한테 손글씨로 편지를 얼마나 썼는가 헤아리다 보니, 한 달에 두어 번 쓰기는 하지만 찬찬히 글을 적어 띄우지는 못하는구나 싶다. 나는 손으로 글을 적을 때에 첫머리에는 좀 또박또박 반듯하게 쓰지만, 이내 삐뚤빼뚤 날림 글씨가 되고 만다. 나 스스로 내 생각을 차분하게 추스르지 못하는 탓이다. 할 말이 넘친다든지, 해야 할 말을 가만히 모두지 못하는 탓이다. 천천히 숨을 돌리면서 한 글자를 적고 두 글자를 쓰지 못하는 탓이다.

 셈틀을 켜고 글을 쓰면 훨씬 빨리 한결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셈틀 자판으로 글을 쓰면 제아무리 빨리 두들기거나 마구 두들긴다 할지라도 화면에 박히는 글씨는 반듯반듯하다. 일그러지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몹시 차분해 보이는 글인 셈틀 글씨이다. 셈틀 글씨로 글을 읽을 때에도 얼마든지 이 글을 쓴 사람 마음을 읽을 만하다. 종이에 찍힌 책을 펼칠 때에도 얼마든지 이 책에 글을 쓴 사람 넋을 읽지 않는가.

 바쁘다고 글을 더 바삐 쓸 수 없다. 느긋하다고 글을 더 느긋하게 쓰지 않는다. 바삐 쓰는 글이라 해서 어줍잖은 글이 되지 않으며, 느긋이 쓰는 글일 때에 한껏 멋스럽거나 알차다 말할 수 있지는 않다.

 히유, 내가 쓰고픈 글은 우리 살붙이들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기쁘며 즐거운 삶이 아닌가. 셈틀로 글을 쓰든 손으로 글을 쓰든 언제나 속으로 말을 하면서 글을 쓰는데, 음, 목소리랑 숨소리랑 손길이랑 마음길을 한결같이 잘 생각해야겠다. 곰곰이 떠올리며 편지를 써야겠다. (4343.1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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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실과 글쓰기


 아이와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다녀온다. 아이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참말 일찍 깨어난다. 저녁에는 참말 늦게 자려 하고, 낮잠은 안 자는 가운데, 밤새 끝없이 잠들지 않고 깨어나면서 아빠보고 손 잡은 채 자자며 보챈다. 이러다 보니 아빠는 아빠대로 아침부터 밤까지 도무지 느긋하게 쉴 겨를이 없는데다가 잠이 모자라고, 아이 또한 잠이 쏟아지면서 안 자니까 아침에 일어났어도 말끔히 깨어나지 못한다. 더 신나게 놀아대면서 네가 곯아떨어져야 하니? 오늘은 아침 버스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전거를 태우든 시골버스를 타고 가든, 아이는 장마당만 다녀오면 꼭 곯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산에 올랐다 내려오면 잠을 안 잔다. 이때에도 틀림없이 졸린데 얼마나 잠을 참아대는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 부랴부랴 아침 버스를 놓치지 않고 잡아 탄다. 장마당을 몇 바퀴 휘휘 돈다. 아이는 힘들다며 아빠보고 안아 달란다. 저잣거리에서 파는 까까를 한두 점 깨물어 먹지만, 그닥 당기지 않는 듯하다. 아이는 읍내에 나오면 언제나 ‘아쮸꾸림’ 사 달라 노래하는데, 오늘은 이 노래마저 안 부른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탈 때가 되고, 시골버스에 다시 오르니, 아이는 신을 벗겨 달란다. 눕는단다. 아빠 무릎에 모로 눕는다. 금세 곯아떨어진다. 아빠는 왼손으로 아이 베개를 삼고 오른손으로 가방을 붙잡는다. 내릴 무렵 아이를 긴걸상에 눕히고 가방을 멘다. 아이를 살며시 들어 안는다. 집까지 이십 분쯤 시골길을 걷는다. 아이를 큰방 한켠 두꺼운 이불 깔린 자리에 눕힌다. 기저귀를 대지 않고 기저귀천만 엉덩이 쪽에 깔아 놓는다. 아이는 색색거리며 잘 잔다. 아빠는 이때다 싶어 셈틀을 켜고 글 좀 끄적이고자 복닥인다. 그러나 아빠 또한 졸음이 쏟아진다. 억지로 졸음을 참아 본다. 그러나 졸린 머리로는 아무 글을 쓸 수 없다. 책은 읽을 수 있으려나. 글쎄, 아마 책을 손에 쥐면 한두 쪽 읽다가 그대로 폭 고꾸라지겠지. (4343.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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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i 2010-12-03 10:20   좋아요 0 | URL
좋다라고 하는건 너무 경박한 표현이겠죠? 그냥 마음 한구석이 졸리운 듯 차분해 집니다...

숲노래 2010-12-04 07:16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하루 내내 늘 졸립듯이 고단하니 늘 이렇습니다 ㅠ.ㅜ
 


 아빠와 글쓰기


 아이가 새벽부터 밤까지 아빠를 찾는다. 밤에 자면서도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아빠를 찾으며 “쫀(손)!” 하고 외친다. 아빠가 한손을 주어 제 손을 잡아 달라는 뜻이다. 바야흐로 잠이 들 무렵 퍼뜩 잠이 깨고, 잠이 얼핏 들다가도 번쩍 깬다. 밤새 도무지 잠이 들 수 없어 조용히 일어나 셈틀을 켜고 글조각 건사하려 하면 아이는 어느새 깨어났는지 다시금 “아빠! 아빠!” 하면서, 옆자리에 누운 아빠가 어디에 갔느냐고 찾으며 운다. 새벽 세 시이든 네 시이든 가리지 않는다. 저도 아빠랑 일어나 있겠다면서 기저귀 풀어 달라 말하며 엄마를 깨운다. 옷 주섬주섬 챙겨 입고 큰방으로 나온다.

 밥을 하든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아빠 둘레에 달라붙는다. 책 갈무리를 하든 텃밭을 돌보든 우체통에 갔다오든 아빠 곁에 바싹 붙는다. 불가에서 떨어져 있으라 하든, 빨래하는데 뒤에서 밀지 말라 하든 아이는 듣지 않는다. 아빠가 바삐 써서 보내야 하는 글이 있다 하든, 책 좀 읽자며 이불을 무릎에 덮으며 방구석에 앉아 있든 아이는 찰싹달싹 들러붙는다.

 앞으로 너덧 살이 되고 예닐곱 살이 되면 아빠는 모르는 척하려나. 아직 어린 나이이니까 이렇게 아빠를 찾으며 끝없이 달라붙으려나. 아무리 길어도 스무 해를 안 갈 테니까, 이렇게 아이가 달라붙는 나날을 즐거우며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려나.

 하기는, 아이가 열대여섯 나이가 되어 젖가슴까지 튀어나온 때에 아빠한테 찰싹달싹 들러붙겠는가. 제 짝꿍을 만나 팔짱을 끼며 걸어다닐 무렵에 아빠를 쳐다보겠는가. 아이가 예순 살만 산달지라도 고작 열 해, 1/5만 아빠한테 들러붙는 셈이다. 아이가 여든 살을 산다면 1/8쯤, 아니 1/10쯤만 아빠한테 엉겨붙겠지. 어느덧 아침밥을 해야 할 때이다. (4343.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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