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글쓰기


 서울에서 이틀을 묵은 뒤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남동 한켠에서 겨우 찾은 3만 원짜리 잠집에서 아침 여덟 시 이십 분에 나온다. 아빠도 아이도 일찍 일어나서 움직인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려 한다. 마을버스는 600원만 받는다. 여느 버스는 900원이던데 참 싸네. 시골에서는 요쯤 되는 거리를 달려도 1600원을 내는데, 꽤 눅네.

 아이도 힘들고 아빠도 힘들기에 걷지 않고 버스를 탔으나, 버스는 손님들을 태울 때부터 엉금엉금 거의 달리지 못하더니 연세대 앞문 쪽으로 가는 동안에도 거의 제자리걸음. 버스를 모는 일꾼은 사이사이 버스 앞길로 끼어들 뿐더러 버스가 서야 할 자리에마저 끼어들어 손님을 못 내리도록 하는 자동차꾼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날선 말마디를 내뱉는다.

 도무지 버스로는 전철역까지 못 가겠구나 싶어 대충 아무 데나 내려서 걷기로 한다. 버스에서 내려 걸으니 후련하다. 조금 걷자니, 한손에는 서류가방을 든 아저씨가 한손에는 담배를 꼬나물면서 잰걸음으로 우리 앞을 가로지른다. 담배 내음은 고스란히 우리한테 훅 끼친다. “벼리야, 저 따위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참 싫구나.”

 담배 피우는 저 사람, 또 요 사람, 또 옆이며 뒤이며 둘레 사람들은 마음과 몸으로 스멀스물 기어드는 짜증스러움과 힘겨움과 갑갑함을 살짝이나마 털어내면서 차분해지려나. 그렇지만 당신들이 담배를 피울 때에 곁이나 둘레에서 캑캑거리면서 숨이 막힐 사람들은 알려나 모르려나 느끼려나 모르쇠이려나. 걸어다니며 담배를 피우든 한 곳에 서서 담배를 태우든, 하나같이 저만 알거나 저만 헤아리는 사람이다. 지식책을 읽든 문학책을 읽든, 책만 읽는 사람은 한결같이 제 밥그릇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논문글을 쓰든 기사글을 쓰든, 글만 쓰는 사람은 형편없이 제 이름값만 밝히는 사람이다. (4343.12.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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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과 글쓰기


 아침부터 보슬보슬 내리던 눈은 낮이 되니 가물가물합니다. 한낮을 지나면서 눈발은 새삼스레 굵어지고, 눈발이 굵어지면서 멧자락 나뭇가지에도 눈이 한 켜 두 켜 쌓입니다. 참말 겨울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고단한 나머지 낮잠을 잡니다. 실컷 잠을 자고 난 뒤 벌떡 일어납니다. ‘오늘 볼일 보러 마실을 떠나야겠어! 인천까지 가서 골목 사진을 찍어 볼까? 그때까지 눈이 안 녹으려나?’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으며 아이한테 물어 봅니다. “아빠하고 이야 갈래?” “아빠하고 갈래.”

 옆지기는 아이한테 옷을 입히고, 아빠는 짐을 꾸립니다. 시골버스 타는 때에 맞추어 일찌감치 집을 나서고, 천천히 아이랑 거닐면서 눈 펄펄 내리는 시골길을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다가는 아이하고 마음에 살포시 담습니다.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아이랑 걸상에 나란히 앉습니다. 눈길 때문에 길이 막히는지 버스는 늦고, 자그마한 버스역은 꽤 춥습니다. 버스는 손님 두 사람을 태우고 들어옵니다. 막역이자 첫역인 광벌 버스역에서 아이를 안고 탑니다. 아이랑 함께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시골버스는 눈 내리는 시골길을 천천히 천천히 달립니다. “이야, 벼리야, 저 눈 좀 봐. 온통 눈나라야. 나무에도 눈이고 하늘에도 눈이야. 산에도 눈이고 구름도 눈이야. 나뭇가지마다 눈이 가득 앉았지?”

 시골버스는 멧자락 사이 조그마한 길을 따라 달리고, 숯고개를 넘어 너른 못물을 지나 읍내로 들어섭니다. 읍내도 멧자락처럼 눈이 소복히 덮였으나 멧자락만큼 하얗지는 않습니다. 16시 30분에 동서울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16시 28분에 읍내 버스역에 닿습니다. 얼른 표를 끊습니다. 버스는 아직 안 들어옵니다. 1분 뒤 16시 29분에 버스가 들어오고, 표를 내고 자리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부릉부릉 하면서 움직이고, 찬찬히 달려 다른 읍내 두 군데를 거쳐 다른 손님을 태우고 나서 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눈발은 더 굵어지고, 서울하고 가까워질수록 바깥은 하얀 눈나라 아닌 잿빛 시커먼 누리입니다.

 눈 때문에 길이 막히는 고속도로를 겨우 벗어나 서울로 들어섭니다. 아이는 버스역에 닿을 때까지 아빠 무릎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들어 줍니다. 가방을 메고 짐을 꾸려 아이를 안고 내리려 하니 비로소 잠에서 깹니다. 아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내내 칭얼거립니다. 아빠는 아이를 안고 어르며 전철을 탑니다. 숱한 사람으로 꽉 들어찬 전철인데 ‘노약자장애인영유아보호자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이 길게 붙은 자리가 비었습니다. 용케 사람들이 이 자리를 비워 주었습니다. 품에 안은 아이를 살짝 내리고 등에서 가방을 풀어 한쪽에 앉은 다음 아이를 무릎에 앉힙니다. 전철이고 버스이고 길이고 어디이고, 서울은 사람들이 몹시 많아 서로가 서로를 따스히 살피거나 보듬거나 아끼지 못합니다. 숨막히고 시끄러우며 골아픈 전철을 한창 달리는데 “물. 물 줘.” 하고 아이가 말합니다. 마침 물 하나는 가방에 안 챙겼습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을지로4가에서 전철을 내려 자판기로 물을 삽니다. 조막만 한 플라스틱병이 600원입니다. “벼리야, 여기 물 되게 조그마한 녀석이 되게 비싸다.”

 다시 전철을 탔다가 신촌역에서 내립니다. 사람들이 복닥복닥 붐비는 뒷간으로 갑니다. 장애인 칸은 비었기에 이리로 들어갑니다. 뒷간에서 장애인 칸은 장애인이랑 ‘아이를 데리고 찾아드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가방이나 짐이 커야 해서 여느 칸에는 들어가기 아주 힘들어요.

 아이 쉬를 누이고 품에 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굵습니다. 눈발은 굵지만 땅으로 떨어지며 쌓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바람에 따라 휘휘 날릴 뿐입니다.

 큰길이든 골목이든 사람이 넘칩니다. 어디에든 사람이 넘치는 서울인 까닭에 어디를 가든 크고작은 가게입니다. 골목 안쪽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들러 책방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책 몇 만 원어치 고릅니다. 다시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습니다. 망원역 쪽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출판사 일꾼을 만나려고 오늘처럼 눈 펑펑 쏟아지는 날 일부러 서울마실을 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먼길 마실을 해 준 두 식구를 오리고기집으로 데려갑니다. 아이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밥을 곧잘 받아먹어 줍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고기집에 들고 나는 손님들을 문득문득 바라보니 한결같이 예쁘고 멋스러운 차림입니다. 그런데 시외버스가 동서울역에 닿아 전철을 타고 망원역으로 오기까지 스친 사람들 가운데 우리 아이처럼 빨간 겉옷을 입는다든지 맑거나 밝은 겉옷을 걸친 사람은 하나도 못 보았습니다. 때마침 못 볼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 옷차림은 모조리 어두컴컴합니다. 도시 빛깔 잿빛마냥 잿빛이거나 까망이기 일쑤입니다. 하얀 겨울에 맞추어 하얀 겉옷인 사람조차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지낼 때에는 하얀 빛깔 옷을 입으면 때가 너무 잘 타 자주 빨아야 해요. 처음 입은 몇 시간은 하얀 빛깔이 고울 테지만 금세 허여멀겋게 바뀔 테지요. 맑은 빛깔이나 밝은 빛깔 옷 또한 어슷비슷하겠지요. 흙이나 자연이나 나무나 풀이 마음껏 자라나면서 자연스러운 빛깔과 내음과 무늬가 있기 어려운 도시일 뿐 아니라, 그나마 공산품 물건으로도 맑거나 밝은 빛깔은 마주하기 힘듭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잎사귀랑 노란 잎사귀조차 마주하지 못하는데, 겨울철에도 하얀 눈송이마저 마주하지 못합니다. 하얀 눈송이를 하얀 눈송이 그대로 마주하며 곱게 쌓이도록 안 하고, 염화칼슘을 길마다 잔뜩 뿌리면서 땀 뻘뻘 흘려야 하는 도시입니다. (4343.12.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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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와 글쓰기


 고등학교 1학년이던 때 시를 깨작거린다든지 ‘읽은 책 나누는’ 느낌을 아로새긴다든지 하면서 글쓰기를 비로소 했다. 내가 글쓰기를 안 하고 살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궁금한데,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오는 내내, 겨울이면 언제나 추위를 뼛속 깊이 느끼면서 지낸다. 여름이면 더위를 물씬 느끼면서 지낸다. 시골집으로 옮겨 지내는 요즈음도 추위를 사무치게 느끼며 지낸다. 손이며 발이 추위에 오그라들지 않으면서 지낸 적이 이제껏 한 차례도 없지 않나 싶다. 모처럼 당신 아들이랑 손녀랑 보러 찾아온 어버이가 방에 들어오지 않고 마당에서만 서성이다 돌아가시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 들어온다 해서 바깥보다 그닥 따뜻하지 않을 수 있으니 몹시 남우세스럽다. 나는 참, 왜 이렇게 스스로 춥게 지내면서 추운 집살림을 조금이나마 따숩게 추스르지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까지 구지레하게 주절주절 늘어놓을까. 설마 자랑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하지는 않을 테지. 손이 오그라들어 호호 입김을 불면서 글을 쓴달지라도 머나먼 옛날, 가난을 벗삼으며 어렵게 글 한 줄 적바림하던 사람들 넋을 헤아릴 만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든지, 더위를 잊으면서 글을 쓴다든지, 배부르거나 배고픈 하루를 살피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든지, 아이와 함께 살며 기쁘며 고된 나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글을 쓴다든지 한다면, 참으로 부질없는 글쓰기라고 여긴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부질없는 글쓰기로 이룬 문학을 읽으면 몹시 재미없을 뿐더러 따분하다고 느끼는데, 나부터 부질없는 글쓰기로 뭔가를 끼적거린다면 얼마나 덧없고 짜증스러우며 밉고 못나 보일까. 추워도 그냥 추운 채 살다가 추운 줄조차 그만 잊으며 지낸다. 사랑하는 짝꿍이 있고, 고운 아이가 있는데, 아빠 멋대로 이렇게 살아가면 제 살붙이 추운 줄 모르는 바보가 되기에, 이제는 나 스스로 추운 줄 잊지 말자며 자꾸자꾸 돌이키고 생각해 내면서 새벽을 맞이하려 한다. 퍽 힘들지만, 이렇게 안 하면 집식구랑 더불어 지내는 뜻이나 보람이 어디 있겠나.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보일러가 몇 분 동안 돌고 몇 분씩 쉬는가 곱씹는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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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와 글쓰기


 옆지기와 어머니를 뺀 사람 가운데 나한테 미역국을 끓여 준 사람이 둘 있었던가 싶다. 살붙이 아닌 사람한테서 미역국을 받아 먹는 일이란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이라고 여긴다. 무엇보다 한 끼니 밥그릇을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을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한 해 가운데 12월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태어난 날이 12월에 있기 때문에 이달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1월부터 한 해를 달리고 보면, 어느 무렵에 12월까지 닿을까 싶어 숨이 찰 뿐더러 빠듯한데, 7월을 지나고 9월을 지나며 11월에 이르면, ‘이야, 드디어 12월도 코앞이네.’ 하면서 온몸과 온마음이 짜릿짜릿하다. 바야흐로 11월 30일 문턱에서 12월 1일로 넘어가면,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보다 훨씬 찌르르하다. 올 한 해, 그예 12월까지 살아냈구나 하면서 크게 숨을 돌린다.

 헌책방이라는 곳에 처음 눈을 뜬 1992년부터 글쓰기에도 조금씩 눈을 뜬 삶이라고 느낀다. 이해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오는 동안 언제나 글을 쓰기는 했으나, 내 삶이 글을 쓰는 나날이 되리라 여기며 아주 못박고 지낸 해는 1998년이 아닌가 싶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도 글을 쓰기는 썼고, 이때 쓴 글은 ‘요즈음 쓰는 내 셈틀에는 넣을 수 없는 작은 디스켓’에 담겼기에 열어 볼 수 없다만, 199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쓴 글을 더듬을 때에, 내 글은 해마다 크게 물갈이를 한다고 느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는 거의 물갈이 없는 글이었다고 느낀다. 아니, 물갈이가 아예 없지는 않다. 해마다 노상 다른 삶이고 나날이었으니 해마다 노상 다르게 거듭나거나 다시 태어나면서 글을 썼다.

 나는 글쓰기를 할 때에 여섯 달치를 똑 끊으며 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셈틀에 ‘내가 쓰는 글을 갈무리하는 방’을 만들면서 여섯 달마다 새로 방을 연다. 날마다 글을 쓰니까 날마다 글이 쌓이고, 날마다 쌓이는 글이 늘면 불러들여 새로 읽거나 자료를 찾을 때에 퍽 힘들다. 예전에는 글을 담은 디스켓이 날아간다든지 갑자기 셈틀이 먹통이 된다든지 하기 일쑤라, 애써 쓴 글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여섯 달치로 끊어 따로 건사해 놓곤 했다. 그래서, 내 글쓰기를 톺아보면, 여섯 달마다 크게 물갈이를 시키는 노릇이라고 느낀다. 이제 올 한 해도 12월이 하루하루 지나는 만큼, 다시금 새해를 맞이한다면, 나는 또 새해에 걸맞게 내 글쓰기를 사뭇 다르게 고치는 길로 접어들겠지.

 예전에는 ‘예전에 쓴 글을 고쳐서 새로 써야 할 때’에, 예전 글을 고스란히 남기고, 파일이름을 새로 붙여 ‘예전 글이랑 새로 고친 글이랑 나란히 남도’록 했다. 이제는 애써 이렇게 두 가지 글을 남기지 않는다. 바쁘다고 할는지, 번거롭다며 대충 지나간다고 할는지, 글 끝에 ‘어느 날 고쳐씀’이라고 토만 달고 그친다. 글을 새로 쓰는 가운데 예전 글을 끝없이 고쳐쓰는 내 글쓰기이기에, 예전 글이랑 고친 글을 통째로 남기면, 글쓰기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한결 남달리 엿볼 만하리라 본다. 그러나, 워낙 써 둔 글이 많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두 갈래 글, 또는 서너 갈래 글을 모두 남겨 놓기가 벅차다. 나부터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을 다 돌이키지 못한다고 느끼니까.

 옆지기하고 글쓰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전 글을 고치는 뜻’을 곰곰이 되새긴다. 예전 글은 예전 글대로 값이 있을 뿐 아니라, 예전에 그 글을 쓰던 느낌과 삶이 있으니 섣불리 건드린다든지 손질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런데 나는 예전 글을 자꾸 고친다. 지난 내 삶을 부끄러워 하기 때문일까. 오늘 내 삶 또한 앞으로는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인가. 오늘은 오늘대로 내 삶을 꾸리면서 어제는 어제대로 내 어설프거나 모자라거나 어리숙한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야 할 텐데, 나는 자꾸자꾸 오늘 내 모습과 넋에 따라 어제 내 모습과 넋을 지우려 드는 노릇이구나 싶다.

 앞으로 마흔여섯을 맞이하면 내 글쓰기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앞으로 쉰여섯을 맞이할 수 있으면, 예순여섯이나 일흔여섯까지 고맙게 맞아들일 수 있으면, 이때에는 내 글쓰기 삶이 어떠하려나. 열여섯부터 이어온 글쓰기를 서른여섯까지 이은 삶만 돌아보아도 더없이 고마운 셈이라고 느낀다. 참말, 하느님 고맙습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에 내가 밥을 하고 미역국 끓여 식구들 밥상을 차린다고 딱히 무슨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옆지기가 말을 해 주기까지 한 가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태어난 날에 늘 당신 손으로 당신 미역국을 끓이셨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곰곰이 떠올린다. 잘 떠오르지 않지만, 떠올려 보려고 한다. 그러나, 끝끝내 우리 어머니는 당신 태어난 날에 당신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셨는지, 아니면 형이나 내가 끓여 준 적이 있는지 안 떠오른다. 틀림없이 형이든 나든 안 끓여 주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못 떠올리지 않나 싶다. 나는 바보스러웠으나 형은 나처럼 바보스럽지 않으니 형은 끓여 드렸는지 모른다. 참 우스꽝스럽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태어난 날이든 아버지 태어난 날이든, 내가 선뜻 나서서 미역국 끓여 드려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아예 없지 싶다. 이러니, 나 태어난 날에 내가 손수 미역국을 끓이면서 거의 아무 느낌이 없지 않나 싶다. 히유, 딸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데, 딸아이가 네 살 나이에 맞이할 제 할머니랑 할아버지 난날에는, 아침 일찍 제 아버지가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함께 찾아가서 미역국을 끓여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시골버스 첫차 때에 맞추어 집식구 모두 부모님 댁에 찾아가서 아들 된 사람이 미역국을 끓여서 올리든지.

 2011년 달력에는 옆지기 어버이 난날하고, 음력으로 태어난 날을 헤아리는 어머니 난날을 동그라미 그려서 잘 보이도록 적바림해야겠다(아버지 난날은 양력이라 안 잊는데, 어머니 난날은 음력이라 거의 언제나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4343.1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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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금과 글쓰기


 하루 내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칭얼거리는 아이한테 주려고 능금 두 알 껍질을 깎아 작은 접시에 담는다. 부디 차분해지기를 바라면서 아이한테 들고 가 보니, 아이는 어느새 엄마 무릎에 누워 잠이 들었다. 칭얼거릴 때에는 그토록 끔찍히 얄밉더니, 잠들고 나서는 참으로 아늑하며 고요하구나.

 생각해 보면, 아이는 제 어버이가 저랑 제대로 놀아 주지 않으니 칭얼거린다. 아비 된 몸으로서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가 칭얼거린다 할 때에는 아비가 아비 노릇을 못했으니 칭얼거리지 않겠는가. 아비는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푹 숙이다가도 살며시 웃는데, 아이는 제 아비를 바라보며 어느 때에 방그레 하고 웃을까.

 어깻죽지를 꾹 잡고는 얍 하고 들어올릴 때? 온몸으로 꼬옥 껴안아 줄 때? 맛난 밥을 차려 줄 때?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을 때? 팔베개를 해 주며 함께 잠들 때? 자전거 수레에 태워 함께 마실을 다닐 때? 엄마랑 아빠랑 함께 손을 한쪽씩 잡고 멧길을 거닐 때? 얼음과자나 사탕을 사 줄 때? 씻는방에서 함께 씻을 때? 텃밭에서 맨발로 함께 뒹굴며 흙을 만질 때? (4343.1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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