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글쓰기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으면서 작은 수첩을 꺼내어 글을 몇 줄 적는다. 첫째 아이가 아버지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 공책을 찾아오더니 저도 끄적일 볼펜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잘 찾지 못하기에 아이가 쓸 볼펜을 한 자루 찾아서 건넨다. 아이는 빨간 머리핀 하나를 앞머리 몇 가닥에 꽂고는 볼펜을 단단히 쥐어 공책에 그림을 그린다. 아이는 무엇을 그릴까. 아이는 무엇을 그리고 싶을까. 볼펜을 단단히 쥔 손으로 그리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깜빡 잊는다. 아이는 아버지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글쓰기를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살며시 들여다보다가 글쓰기를 잊는다. (4344.8.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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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06 23:26   좋아요 0 | URL
볼펜도 바르게 잡고, 그림도 잘 그리네요.
빨간 핀을 꽂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요.

숲노래 2011-08-07 04:20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주렁주렁 핀꽂기를 좋아하더군요... 에고...
 



 삶터와 글쓰기


 네 식구가 살아갈 새 삶터를 찾는다.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내면서 느긋하게 숨을 쉴 만한 터전을 찾는다. 옆지기한테뿐 아니라 두 아이와 나한테 포근할 시골자락을 찾는다. 오늘 살아가는 이곳 또한 시골자락이면서 다른 시골자락을 찾는다. 시골사람이래서 자가용을 타지 말아야 한다거나 기계를 안 써야 하지는 않다만, 자가용을 지나치게 자주 타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마을에서 차소리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기계를 돌리는 소리보다 손으로 연장을 놀리는 소리가 울리는 시골자락을 찾는다.

 새 삶터를 찾기로 하면서 두 달 즈음 책짐을 꾸렸다. 이제 며칠 더 책짐을 꾸리면 도서관 살림은 다 꾸리는 셈이고, 집살림을 꾸리면 된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집일이 부쩍 늘었는데, 부쩍 늘어난 집일을 옳게 건사하기 벅차 하면서 책짐을 꾸리자니 아주 죽을맛이다. 도무지 몸을 쉴 겨를이 없다.

 그런데,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책짐을 두 달 즈음에 걸쳐 죽을맛을 실컷 치르면서 꾸리는 나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삶터를 얼마나 옳게 못 찾았으면 이렇게 애먹어야 하겠나. 나부터 애먹고, 내 살붙이들 모두 애먹는다. 쉽게 얻어 쉽게 옮기는 삶터일 수 없다. 한두 해를 살거나 열 해나 스무 해를 살면 될 터전일 수 없다. 나로서는 뼈를 묻을 만한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고, 내가 뼈를 묻고 나서 내 아이들이 ‘이제 어머니 아버지 다 없으니 우리가 구태여 여기에 있어서 뭐 하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둥지를 찾아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여기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깃들던 곳일 뿐 아니라, 내가 예쁘게 깃들며 즐거울 곳이야.’ 하고 생각할 만한 삶자리를 찾아야 한다.

 우리 집 살림으로 치자면 몇 만 권에 이르는 책과 일흔 개가 넘는 책꽂이에다가, 새터에서 더 들일 책과 책꽂이를 품을 만큼 넉넉한 터를 찾아야 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자락을 찾을 때에 이만 한 데를 좀처럼 찾지 못해 너무 쉽게 너무 쉬운 삶터를 얻었으니까, 이렇게 꼭 한 해를 살다가 다른 삶터를 찾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쉽게 얻기에 쉽게 잃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리 식구가 넷이기 앞서 셋일 때부터 셋이 앞으로 쉰 해이고 백 해이고 이백 해이고, 두고두고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갈 만한가까지는 살피지 못한 채 이곳으로 왔다. 도시에서는 코앞에 닥치는 달삯이 눈덩이와 같아 너무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에,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다.

 곰곰이 생각한다. 허둥지둥 시골로 몸을 옮겼으니까, 이제는 좀 숨을 쉴 만하고, 숨을 쉴 만한 이때에, 더욱이 아직 어깨와 등허리에 힘이 남아 두 달에 걸쳐 책짐을 꾸릴 수 있는 이때에, 바야흐로 우리 살붙이가 서로를 제대로 아끼면서 옳게 사랑할 아름다운 삶터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터가 내 삶터다울 때라야 비로소 나부터 책을 따사롭게 사랑한다. 내 삶터를 내 삶터답게 따사로이 사랑할 때라야 비로소 내 따순 사랑을 담아 글 한 꼭지 길어올린다. 책짐 싸느라 바쁘고 힘겨워 책을 펼치지 못하는 삶은 너무 슬프다. (4344.7.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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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27 15:58   좋아요 0 | URL
몇만권의 책... 여기에만 딱 눈이 꽂히는군요.
부러워라, 저 책들과 저 책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가장 부러운 것은
저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 하는 자유에 대하여........ 그 책들을 놓을 수 있는 장소와 자연과 함께 가족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살고 계시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유에 대하여.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마 저는 부러워만 할거 같습니다.
꼬옥 좋은 집 찾으셔야 할텐데, 비가 이리 오니 걱정입니다.

숲노래 2011-07-27 18:01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청주와 전주와 남원을 거쳐 고흥으로 찾아가요.
아마 즐겁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어요~~ ^^
 



 벌레와 글쓰기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에 일어나서 마당으로 나옵니다. 하얗게 동이 튼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른 잎사귀 나부끼는 숲을 바라봅니다. 깊은 시골이건 얕은 시골이건,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푸른 빛깔을 맞아들입니다.

 텃밭 가장자리에 쉬를 누고 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텃밭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날마다 무당벌레를 잡고 또 잡아도 새 무당벌레가 잔뜩 보입니다. 토마토 잎이나 줄기에 붙어 갉아먹는 녀석, 감자 잎이나 줄기에 붙어 뜯어먹는 녀석을 톡톡 쳐서 흙바닥에 떨군 다음 작은 돌로 뭉갭니다. 우리 살림집 텃밭은 참 조그맣고, 조그마한 텃밭 푸성귀는 몇 가지 안 됩니다. 널따란 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 벌레란 얼마나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할까요.

 영화 〈로빙화〉를 보면 차밭 벌레를 잡으며 애먹는 흙일꾼이 어렵사리 풀약을 얻어 차밭에 좌아악 뿌릴 때에 시원하게 활짝 웃습니다. 흙일꾼뿐 아니라 고아명과 고차매 남내도 활짝 웃습니다. 돈이 없어 여태껏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 죽였는데, 이제 벌레 걱정에서 조금은 시름을 덜었거든요. 새로 온 곽운천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고 차벌레 잡이를 거들기도 했으나, 이렇게 몇 차례 거든대서 잡아 없앨 수 있는 차벌레는 아닙니다. 잡으면 또 있고, 다 잡았다 싶으면 또 기어오르는 차벌레입니다. 풀약 안 쓰는 깨끗한 농사를 이루기란 가난하고 힘겨우며 일손 모자란 집에서는 아득한 꿈입니다.

 흔히들, 풀 먹는 일, 이른바 ‘채식’이란 ‘몸뚱이 큰 목숨을 먹지 않으려 하’면서 ‘목숨을 더 사랑하는 일’이라 여깁니다만, 풀을 먹는대서 목숨을 안 먹는 일이 아닙니다. 고기를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이고, 풀을 먹어도 목숨을 먹는 일입니다. 고기가 되는 짐승을 잡을 때에 고기짐승이 끔찍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든지, 눈물을 흘리는 눈망울을 바라보아야 한다든지,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며 살을 발라야 한다든지, 이러한 모습이 보기 나쁘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푸성귀를 길러 먹을 때에도 풀을 다듬습니다. 풀을 다듬고 씻어서 손질합니다. 목숨이 깃들지 않은 풀은 메말라서 먹을 수 없습니다. 풀이든 고기이든 모두 목숨이요, 모두 다른 목숨이 내 몸으로 스며들며 내 목숨이 어이지는 흐름입니다.

 더욱이, 사람 몸을 더 아끼거나 살린다 하는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저농약이 될 때에는 수많은 벌레를 잡아서 죽어야 합니다. 온갖 목숨을 죽이고 나서야 바야흐로 풀먹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시금치 한 묶음, 감자 한 알, 오이 하나, 배추 한 뿌리를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벌레를 죽여야 하는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목숨을 더 사랑하려는 뜻에서 한다는 풀먹기’가 어떠한 뜻이나 값이 되는가를 모르는 셈입니다.

 좋거나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줄거리를 다루는 글이라 해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지식을 보여주거나 밝히는 글은 부질없습니다. 삶을 깨닫고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즐길 수 있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글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 하나입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랑을 빛내는 책을 살가이 이루는 글입니다. (4344.5.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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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글쓰기


 옆지기는 산을 볼 수 있으며 산에 깃들 수 있는 시골집을 바랐다. 나는 산도 좋고 바다도 좋으며 들도 좋았다. 따로 어떠한 시골이 좋다기보다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면 좋았다. 도시인 인천에서 살던 때에도 언제나 하늘을 가장 먼저 손꼽았다. 옆지기하고 함께 살기 앞서 나 혼자 지내기에 좋을 자리로 찾은 데는 둘레에 높은 건물이 없으면서 옥탑집인 낡은 4층짜리 건물 4층 자리였다. 이곳에서 살다 보니 새벽부터 밤까지 전철 소리로 시끄러울 뿐 아니라, 춥기는 모질게 춥고 덥기도 모질게 더웠다. 어떻게 모기장을 칠 만한 곳이 못 되다 보니 모기 때문에도 무척 애먹으며 살았다. 오로지 한 가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바라기 빨래널이를 하거나 하늘바라기 책읽기를 할 수 있는 대목이 좋은 집이었다.

 곰곰이 돌이키면, 내가 옆지기랑 아이하고 인천에서 살던 때에 골목마실을 하면서 바라본 골목이웃 살림집이란 하나같이 하늘바라기를 하는 골목이웃 살림집이 아니었나 싶다. 하늘바라기 빨래널이를 하는 골목이웃이란, 나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늘바라기를 하기에 텃밭을 일굴 테고, 하늘바라기를 하니까 꽃그릇마다 알뜰히 꽃이나 푸성귀를 돌보았겠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날씨를 헤아린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어떠한가 돌아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오늘 빨래는 얼마나 잘 마를까 헤아린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 옆지기는 오늘 몸이 어떠할까 돌아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헤아린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이한테 낮하늘과 밤하늘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하자고 곰곰이 돌아본다. (4344.4.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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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과 글쓰기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 쓰는 글은 무섭습니다. 거짓이 아니라, 참말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리거나 사람 목숨 몇쯤 쉬 고꾸라뜨립니다. 그런데 권력을 누리는 사람 또한 그예 사람인 나머지 언젠가 찬찬히 늙다가 조용히(또는 시끄러이) 숨을 거둡니다. 숨을 거둔 뒤로는 두 번 다시 ‘날아가는 새 떨어뜨리기’나 ‘산 사람 죽이기’ 같은 글을 쓸 수 없어요. 참말 권력어린 글쓰기는 제 살을 갉아먹을 뿐입니다. (4344.3.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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