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병호 - 최우근 이야기책 북극곰 이야기꽃 시리즈 5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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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7


《아! 병호》

 최우근

 북극곰

 2018.10.30.



애들을 먼저 보내고 병호한테 달려갔다. 병호는 손톱만 한 꽃을 보고 있었다. “너 학교 안 가?” 내가 물었더니 병호가 “아차.” 하고 소리쳤다. (66쪽)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은 완전히 다르다. 남자애들은 놀 때 꽥꽥 고함을 치는데, 여자애들은 노래를 부른다. (72쪽)


“이거 38선이야! 여기 넘어오면 다 내 거!” 그렇게 전쟁이 시작됐다. 처음엔 전쟁을 우습게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으니까. 전쟁은 어렵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제일 어려운 건 연필을 지키는 일이다. (120쪽)


나는 마루로 뛰어가서 편지 봉투를 뜯었다.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거기엔 그림이 잔뜩 그려 있었다. 꽃도 있고, 개미도 있고, 수염 달린 복숭아와 술 취한 물고기도 있었다. 글자는 하나도 없었다. 병호다웠다. (215쪽)



  다 다른 아이가 똑같은 교실에 앉아서 똑같은 교과서를 펴고서 얌전히 앉습니다. 다 다른 아이는 여태 다르게 살아왔지만, 모두 같은 틀로 움직이고 말하고 듣도록 길듭니다.


  ‘교육’하고 ‘수업’이라는 이름이지만, 다 다른 아이들이 똑같은 시험점수를 받지 못하면 뒷줄에 서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저 살림을 잘하는 아이라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똑같은 지식을 똑같이 외지 못할 적에는 곧바로 찍혀서 뒤로 밀려요.


  《아! 병호》(최우근, 북극곰, 2018)라는 책에 지난날 어린이 살림하고 놀이가 찬찬히 흐릅니다. 교사 눈으로 보자면 틀림없이 ‘문제 아이’가 되었을 병호라는 아이하고 놀이동무로 지낸 글쓴이 이야기가 수더분합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수더분하지는 않고, 때때로 창피하게 여겨요. 글쓴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병호를 ‘아리송한 녀석’으로 보고 싶기도 합니다. 다른 아이들하고 달라도 참 다르기에 병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는지 헷갈리기도 해요.


  그렇지만 하루하루 사귀고 만나고 어우러지는 동안, 동무란 누구인가를,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놀이란 무엇인가를, 집하고 학교하고 마을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시나브로 헤아립니다. 예전 어린이는 긴 책상을 둘이 나누어 쓰면서 ‘38선 긋기 싸움질’을 일삼았어요. 학교에서 툭하면 ‘때려잡자!’를 외치도록 내몰았으니 아이들도 덩달아 싸움질이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학교폭력은 아주 쉽게 생각할 만해요. 학교가 싸움터예요. ‘입시전쟁’을 벌이는 곳이잖아요. 싸움터에 뭐가 있을까요? 총칼이나 주먹다짐이 있겠지요. 학교가 배움터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시험점수로 줄세우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 교사하고 학생 사이에, 또래 아이들이 서로서로, 상냥한 손길로 마주하는 길을 열 수 없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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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헌법이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3
배성호.주수원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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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4


《선생님, 헌법이 뭐예요?》

 배성호·주수원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9.2.19.



진정한 준법정신이란 정당한 법 집행을 전제로 한 것이지, 악법도 법이라며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과거 독재 정권 때 이야기라는 말이죠. (24쪽)


꿈을 꾸어야 바꿀 수 있어요. 인간은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하는 힘을 가졌기에 다른 동물과 달리 변화를 이뤄 냈어요 (50쪽)


헌법은 우리 편이랍니다. 우리 국민에게 하지 말라는 얘기는 극히 일부이고, 국가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해라, 국가는 우리 국민에게 이런 것을 보장하라는 얘기가 대부분이에요. (81족)


대개는 이런 경우 불편을 그저 운이 없다면서 지나쳐 버리지요. 하지만 수송 초등학교 학생들은 박물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요. (100쪽)


하지만 대통령은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 국민이 뽑은 거예요. 국민이 고용주인 셈이죠. (133쪽)



  한자 ‘법(法)’은 여러모로 씁니다. “그러는 법이 어디 있니”라든지 “법을 지킨다”라든지 “밥을 짓는 법”처럼 쓰는데, 쓰임새를 가만히 살피면 “그러기가 어디 있니”나 “틀을 지킨다”나 “밥을 짓는 길”로 풀어낼 수 있어요.


  아이들하고 삶을 이야기하면서 ‘법’이란 말을 꺼내면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잘 와닿지 않는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이 한자를 안 쓸 수 없을 텐데, 이 한자를 쓰더라도 찬찬히 새기면서 마음에 생각이 흐르도록 해야겠다고 여깁니다. 아득한 옛날, 한자 없이 살던 사람은 어떻게 말했을까 하고 돌아보니 무엇보다도 ‘세운 틀’이나 ‘가는 길’이 떠올라요.


  우리 곁에 있는 법이란, 다 같이 세운 틀이요, 서로 즐겁게 가는 길이지 싶습니다. 다 같이 세워서 지키려는 살림새요, 서로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려는 길이라고 느껴요.


  《선생님, 헌법이 뭐예요?》(배성호·주수원·김규정, 철수와영희, 2019)는 어린이가 헌법을 헤아리면서 스스로 삶을 새로 바라보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인문책입니다. 헌법이라고 하면 자칫 어렵거나 너무 먼 나라 얘기로 여길는지 몰라요. 그러나 헌법을 외우자는 뜻이 아니에요. 헌법에 담은 마음을 읽자는 뜻입니다.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나라를 바라면서 걸어온 길을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우리 스스로 힘을 모으고 슬기를 엮어서 새롭게 세운 틀을 헤아리자는 뜻입니다. 너랑 나를 가르는 높다란 울타리가 아닌, 보금자리를 정갈하면서 튼튼히 가꿀 틀거리를 돌아보자는 뜻입니다. 기쁨을 나누고 어려운 동무한테 손을 내밀며 꿈길을 사뿐사뿐 걷는 하루를 짓자는 뜻이에요.


  우리 손은 삶을 짓고, 길을 짓습니다. 우리 손은 꿈을 짓고, 사랑을 짓습니다. 우리 손은 하루를 짓고, 노래를 짓습니다. 다만 아직 헌법에 적힌 글이 매우 까다롭고 딱딱해요. 어린이가 읽기에는 무척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헌법을 어린이도 쉽게 읽고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바꾸는 새길을 다 함께 열면 좋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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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로 떠난 놀이터 여행 행복사회 시리즈
이소영 지음, 이유진 사진 / 오마이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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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65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

 이소영 글

 이유진 사진

 오마이북

 2017.3.28.



“들어가도 돼?”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말은 아니었다. 일종의 통보랄까. 이미 한 명은 물에 들어가서 바지 밑단이 젖어 있었고, 양말을 신은 아이는 벗느라 바쁠 뿐이었다. (27쪽)


“오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처음이야.” 교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곧 다시 나왔다. “오리가 다 가버렸어. 오리 다시 불러줘.” 그리고 다시 들어갔다. (60쪽)


“동물원 가는 길에 변변한 표지판 하나 없다는 게 더 놀라웠지.” 그 동물원, 참 없는 것 천지다. 사자도 호랑이도 코끼리도 없다. 그런데도 충분했다. 볼 게 없다는 투정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곳은 동물을 구경하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냥 동물들의 보금자리였으니까. (101쪽)


2013년 9월 한 달 동안 수원 행궁동 일원을 차 없는 도시로 만든 행사가 열렸다. 시에서는 그 시기 방문객 수로 이 생태교통 축제의 성공을 홍보했는데, 실상 축제의 효과는 부동산 쪽에서 확인되었다. 지역의 부동산 매물이 동난 것이다. 차가 없는 골목길의 해방감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이사를 오겠다며 앞다퉈 부동산을 방문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축제는 축제일 뿐 …… (227쪽)



  잘 놀며 자란 아이가 슬기롭거나 아름다운 어른으로 우뚝 선다고 하는 말을 다들 으레 하지만, 정작 노는 아이를 만나기가 어려운 오늘날 이 나라입니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아이들이 놀 만한 빈터가 모자랍니다. 한때는 자동차를 댈 터가 모자라다면서 아이들 놀이터를 빼앗은 어른이요, 이제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뭔가 뚝딱 올려세워서 장사를 하는 일에 바쁜 어른이에요.


  자동차가 늘어 먼길을 수월히 다녀올 수 있어 좋다고 여기는 어른입니다만, 아이들은 굳이 먼길을 다녀올 마음이 없습니다. 제 보금자리에서 마음껏 놀고 싶을 뿐입니다. 자, 생각해 봐요. 먼길을 다닐 적에만 쓰는 자동차가 이 땅을 얼마나 넓게 차지하나요? 차를 대는 터뿐 아니라, 차가 다니는 길이 모두 자동차, 바로 어른들 쓰임새대로 닦은 자리입니다. 자동차가 다닐 일이 없을 적에는 텅텅 비는 그곳은, 바로 아이한테서 빼앗아 어른끼리 노닥거리는 슬픈 자리입니다.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이소영·이유진, 오마이북, 2017)는 아이들을 거느리는 어버이로서 놀이터다운 놀이터를 누리려는 뜻으로 나들이를 다닌 발걸음을 들려줍니다. 다만, 지은이가 아이들하고 다닌 놀이터는 한국에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날아가는 독일에 있어요.


  지은이는 왜 독일까지 놀이터를 누리려 갔을까요? 아무래도 한국에는 그만 한 놀이터가 없으니까요. 지자체에서 관광시설을 세우는 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지만, 막상 아이들이 저희끼리 홀가분하게 뛰어놀 빈터를 두는 데에는 아무 돈을 안 써요.


  우리는 이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이 놀이터는 돈으로 올려세우지 않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에는 어른이 아무것도 안 세워 줘도 됩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놀잇감을 마련하기 마련이요, 온갖 놀이도 어린이 스스로 머리를 짜내어 누립니다. 튼튼한 그네를 어른이 세워 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이 널을 알맞게 켜고, 나무를 타고 올라서 굵은 나뭇가지에 동앗줄을 드리워서 손수 그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즐거운 놀이터는, 어른한테도 즐거운 놀이터요 쉼터입니다. 아이가 놀이터를 누리는 곳은, 어른도 보금자리를 지어 기쁘게 누리는 아름다운 삶자리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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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그림으로 보는 실크로드 세계사 - 10대를 위한 세계사 첫걸음
피터 프랭코판 지음, 닐 패커 그림,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어린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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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8


《지도와 그림으로 보는 실크로드 세계사》

 피터 프랭코판 글

 닐 패커 그림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어린이

 2018.10.15.



종교는 언제나 믿음 이상의 것이었어. 정치와 출세 같은 것과 얽혀 있었으니까. (28쪽)


노예 무역의 규모는 매우 컸어. 스칸디나비아에서 잡혀 온 많은 노예들은 이슬람 세계에 공급되어 비싼값에 팔렸어. 아일랜드 더블린과 네덜란드 위트레흐르, 이탈리아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도 덩달아 노예를 수출하는 중심지로 성장했어. (55쪽)


오랫동안 유럽 문학과 미술은 싸움과 폭력, 살육을 미화했어. 전쟁을 벌일 때면 신이 계획하셨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어. 콜럼버스가 거느린 배 돛에도 어김없이 십자가가 찍혀 있었지. (86쪽)


독일이 그곳을 차지한다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처럼 독일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지 않을 거라고 히틀러는 말했어. 이 시기 독일은 어떻게든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했어. 유럽 곳곳에서 전투를 치르는 동안 식량과 물자가 점점 바닥나고 있었고, 식료품 파는 가게 선반도 텅텅 비어 있었지. 농사지어야 할 사람들이 군대로 불려 가는 바람에 먹을 것이 부족해진 거야. (109쪽)



  우리는 이 지구라는 별이 걸어온 길을 아이들한테 어느 만큼 얼마나 들려줄 적에 아름다울까요. 어른들이 지은 터전을 얼마나 보여줄 만하고, 어른들이 세운 나라를 얼마나 알려줄 만할까요.


  어른들은 종교를 세우고 군대를 거느립니다. 어른들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고, 제 나라에서 틀을 세워 위아래를 가릅니다. 어른들은 어머니하고 아버지 사이에도 굴레를 채워 서로 아끼기보다는 힘으로 한쪽을 억누르는 길을 오랫동안 걸었습니다. 이러면서 이런 모습을 글로 그림으로 잔뜩 남겼고, 나중에는 사진하고 영화로도 남겨요. 이 모두를 아이들한테 남기거나 들려주어도 좋을까요?


  《지도와 그림으로 보는 실크로드 세계사》(피터 프랭코판·닐 패커/이재황 옮김, 책과함께어린이, 2018)는 중앙아시아하고 유럽을 바탕으로 펼쳐진 중세 발자취를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어떤 줄기로 삶이 흘렀는가를 지도하고 그림으로 찬찬히 들려줍니다. 무척 잘 빚은 책이에요. 지구라는 터전에서 숱한 어른들이 걸어온 길을 한눈으로 짚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자꾸 궁금합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줄 세계사나 역사는 치고받는 싸움 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을는지요. 오늘날 발자취를 갈무리할 적에도 어떤 다툼이 있었나를 적어야 할는지요. 사람으로서 슬기롭게 가꾸거나 나누거나 짓거나 펼친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이를 바탕으로 아주 새롭게 세계사를 적거나 펴는 길을 물려줄 때에 비로소 이 지구라는 별은 어깨동무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역사나 세계사를 갈무리해서 들려주는 뜻이라면, 이제는 다른 길을 가려는 마음을 밝히고 싶기 때문이지 싶어요. 어리석거나 어이없던 짓은 이제부터 멈추고, 따스하며 넉넉한 숨결로 거듭나려는 어른으로서 앞길을 밝히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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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 생각하는 숲 7
타카도노 호오코 지음, 이이노 카즈요시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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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1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

 다카도노 호오코 글

 이이노 카즈요시 그림

 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2003.7.15.



유령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그야 물론 둥둥 떠다니지요. 나는 유령이니까요. 그러면서 집안에 쌓인 공기를 휘젓는답니다.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집에는 진지한 공기가 금방금방 쌓이거든요. 진지한 공기는 날마다 적당히 풀어 주지 않으면 점점 굳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진지한 성격이 자꾸만 뒤틀리고 비꼬여, 결국에는 뒤틀린 화석 같은 고집불통이 되어 버리죠.” (13쪽)


“함께 봐 드리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밤중에 유령과 나란히 앉아 무서운 영화를 보는 상상을 하자, 이번에는 등골이 오싹했다. 어쨌거나 유령은 무서운 악당 정도가 아니라 진짜 유령이었으니까. (34쪽)


둘은 때때로 회사 이야기를 했다. 세상 밖으로 나간 덕분에 유령의 세계가 넓어지기도 했지만,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 크게 줄어든 진지한 씨도 예전보다 더 세상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75쪽)



  설날을 앞둔 저녁 여덟 시 즈음, 시골 밤하늘을 가르는 폭죽이 있습니다. 시끌벅적하게 터지는 소리에, 화약 냄새하고 연기에, 또 번쩍거리는 불빛에 어수선하고 귀가 아픕니다. 해마다 한가위하고 설이면, 서울에서 시골로 온 사람들이 아이들하고 폭죽질을 하기 일쑤입니다.


  저녁 여덟 시라는 때라면 시골에서는 잠자리에 들며 고요합니다. 서울사람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놀랄 테지만, 시골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저녁 여덟아홉 시에 잠자리에 든다면, 새벽 서너 시나 너덧 시라면 하루를 열어요.


  그나저나 서울에서는 마을 한복판에서 폭죽질을 하는지요? 서울에서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폭죽질을 해도 되는지요? 서울에 있는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놀아도 되는지요?


  《진지한 씨와 유령 선생》(다카도노 호오코/이선아, 시공주니어, 2003)은 얌전하거나 반듯한 길만 걸어왔다는 ‘진지한’이란 아저씨가 어느 날 도깨비를 맞닥뜨리면서 달라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놀 줄을 모르고, 우스개를 말할 줄도 모르는 진지한 아저씨는 언제나 빈틈없는 모습일 뿐 아니라, 모든 일을 딱딱 맞추어 제때에 마치고, 누구하고도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도깨비를 만나는데, 도깨비는 진지한 아저씨가 너무 재미없습니다.


  바라지도 않는데 불쑥 찾아온 도깨비일 수 있습니다. 바라지도 않는데 밤이면 밤마다 찾아와서 말벗이나 놀이벗이 되기를 바라는 도깨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아저씨 마음 한켠에는 시원스레 터놓는 말이나 활짝 웃음꽃 터뜨리는 놀이를 하고픈 뜻이 있었는지 몰라요. 이 마음이 도깨비 모습으로 나타났을 수 있어요.


  고요한 시골 밤을 어지럽히는 서울내기 폭죽질이란, 놀이가 아닙니다. 놀 줄 모르니 하는 짓이지요. 놀 줄 안다면, 맨눈으로도 미리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골에 망원경을 들고 찾아왔겠지요. 망원경으로 미리내를 더 환하게 바라보면서 별잔치를 누리고 고요잔치를 맛보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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