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만든 소시지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19
오드랑 지음, 스테파니 블레이크 그림, 이주영 옮김 / 책속물고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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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3

《꽃으로 만든 소시지》
 오드랑 글
 스테파니 블레이크 그림
 이주영 옮김
 책속물고기
 2012.12.15.


리종에게 내 꿈을 이야기하고, 혹시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리고 리종이 ‘그래!’라고 대답해 주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알았다. 리종이 고기를 안 먹는다니! 그토록 바랐던 꿈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11쪽)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고기를 싫어한다는 걸 엄마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평생 햄, 소시지, 베이컨과 함께 살아왔다. 고기를 만들고 고기를 팔고 고기를 좋아하는 부모님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29쪽)

테오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우리 부모님은 치과 의사이시지만 내가 어금니를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사랑 이야기에 소시지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 (47쪽)

리종의 생각은 정말 멋졌다. 이래서 내가 리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꽃으로 만든 소시지!” 나도 좋은 생각이 떠올라 소리쳤다. 리종이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58쪽)


  저는 고무신을 뀁니다. 다만 이름은 고무신인데 요새는 고무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척척 찍습니다. 날고무로 나온 고무신은 사라졌어도 이름은 그대로 고무신인데요, 이 고무신은 바닥이 얇고 두께도 얇지요. 고무신을 꿰고 걸어다니면 숲에서는 숲흙이며 가랑잎을 한결 짙게 느낍니다. 바위를 척척 타고 멧골을 오르면 바윗결이 발바닥을 거쳐 바로바로 온몸으로 퍼집니다. 고무신을 꿴 채 서울처럼 커다란 고장을 마실할라치면 아스팔트나 시멘트나 돌로 깐 바닥이 매우 딱딱해서 발이 참 고단해 하는 줄 느낍니다.

  시골에서 고무신을 꿰고 풀밭이나 흙길을 거닐 적에는 부딪치는 사람도 스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참말로 시골이나 들이나 숲에서는 호젓하게 다니지요. 이러다가 서울처럼 커다란 고장에 볼일을 보러 나오면 숱한 사람을 스쳐야 하는데, 하나같이 멀쩡한 사람을 툭툭 치고 지나갈 뿐 아니라, 구둣발로 고무신을 밟고서도 말없이 홱홱 지나갑니다.

  우리는 어쩜 이렇게 옆사람 발을 밟고도 거리끼지 않는, 그런 차가운 마음이 될까요? 이 나라 큰고장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얌전히 있거나 한켠에 가만히 선 사람을 자꾸 툭툭 치거나 밀치면서 가야 할까요?

  어린이문학 《꽃으로 만든 소시지》(오드랑·스테파니 블레이크/이주영 옮김, 책속물고기, 2012)를 읽으며 우리 살림자리를 곱씹습니다. 소시지를 즐기건 고기를 즐기건 좋아요. 풀밥을 즐기건 나물밥을 누리건 좋지요. 저마다 스스로 몸에 맞거나 반가운 밥을 누리면 됩니다. 많이 먹어야 즐거운 사람이 있고, 적게 먹으며 배부른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밥을 누립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밥차림으로 하루를 즐깁니다. 다 다른 사람은 옷차림도 다르겠지요. 생각해 봐요. 가시내이면서 바지를 즐겨입을 만해요. 사내이면서 치마를 즐겨입을 만하지요.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어울리며 아름다워요. 《꽃으로 만든 소시지》에 나오는 아이는 소시지하고 동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이쪽 아이는 ‘소시지’라는 이름인 꿈을 어릴 적부터 키웠어요. 이러면서 저쪽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느낍니다. 이쪽 아이로서는 꿈하고 사랑 두 가지를 함께 짓고 싶어요.

  저쪽 아이도 매한가지입니다. 저쪽 아이는 저쪽 아이 나름대로 꿈하고 사랑이 있지요. 그런데 이쪽 아이가 혼자 끙끙 앓아요. 저쪽 아이는 모두 털어놓고서 둘이 같이 새길을 슬기롭게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이쪽 아이는 오래오래 끙끙 앓다가 더는 견딜 수 없어 마음앓이를 밝혀요. 저쪽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그 마음앓이를 상냥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면서 부드럽게 말하지요. 다음에는 그렇게 혼자 걱정하지 말고 같이 생각하자고 말이에요. 왜냐하면 두 아이 모두 꿈으로 가는 길을 외곬 아닌 ‘사랑으로 짓고’ 싶기에, 서로서로 다른 살림결을 고이 아끼면서 나아갈 뜻이랍니다.

  소시지를 꽃으로 마련하면 얼마나 놀라운 맛일까요? 그러나 누구는 꽃소시지가 안 내키겠지요. 그러면 여느 소시지를 즐기면 돼요. 누구는 그냥 꽃이 좋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그냥 꽃을 즐기면 되어요. 그리고 새롭게 살림빛을 짓고 싶은 또 다른 누구는 꽃소시지를 신나게 지어서 기쁘게 즐기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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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 쪽빛문고 8
가도노 에이코 지음, 시모다 도모미 그림, 서혜영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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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00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

 가도노 에이코 글

 시모다 도모미 그림

 서혜영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11.26.



“그래서 건강한 숲의 나무와 풀에게 빌었어. ‘겨울 동안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들은 봄이 되면 되살아나잖아요. 그 힘을 나눠 주세요’라고. 그리고 숲의 나무를 부드럽고 따뜻한 눈길로 조용히 바라봤어.” (16쪽)


“숲 속의 나무와 풀과 동물들이 좋은 향기가 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풀이랑 잎사귀랑 열매를 가르쳐 줬어. 먹어 보라고. 여자들이 온화한 마음을 보여주니 숲도 따라서 온화한 표정을 지어 준 거지. 이렇게 해서 여자들은 건강해지는 먹을거리를 숲에서 배웠어.” (17쪽)


“여자끼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통하는 거 아니겠어? 여잔 늘 행복을 빌거든. 언제 어디서나 말이야 … 옛날에는 걱정거리가 많았으니 마녀도 바빴을 거야. 빗자루라도 타고 날지 않으면 시간 맞춰 갈 수도 없었을걸. 히히히, 우후후, 우히히.” (26쪽)


“마녀는 여러 가지 것들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거든. 예를 들어 나무 속이나 꽃 속에도 신이 있다고 말이지. 그런데 신은 단 하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52쪽)



  어릴 적부터 매우 아리송하게 생각한 여러 가지 가운데 ‘마녀사냥’이 있어요. 왜 숱한 사내랑 교회랑 정치권력은 ‘마녀’란 이름으로 ‘똑똑하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상냥하거나 뛰어난 가시내’를 골라서 불로 활활 태워 죽였을까 하고요.


  바로 그 똑똑한 가시내가, 슬기로운 가시내가, 아름다운 가시내가, 상냥한 가시내가, 뛰어난 가시내가, 이 땅을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터전으로 바꾸어 내는 새로운 길을 가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똑똑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이웃을 틀에 가두려 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상냥한 사람은 돈이나 주먹이나 이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뛰어날 뿐 아니라 착한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노래하는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마녀란 이름을 얻거나 듣는 이라면 으레 마음눈을 틔운 사람이지 싶습니다. 풀벌레하고 속삭일 줄 알기에 마녀일 테지요. 바람을 타고다닐 줄 아니 마녀일 테지요. 별을 읽고 흙을 읽으며 나무를 돌보고 숲을 사랑할 줄 알기에 마녀일 테고요.


  어린이책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가도노 에이코·시모다 도모미/서혜영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는 어느 날 문득 ‘마녀란 뭘까?’ 하고 궁금한 아이가 얼결에 마녀나라로 ‘몸을 옮겨 찾아가’고는 마녀 할머니한테서 마녀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루를 짓는가 하는 여러 이야기를 듣는 줄거리로 마녀 삶자취를 다룹니다.


  그래요, 마녀란 놀랍고 아름다우며 상냥하고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마녀(魔女)’를 찾아보면 “1. 유럽 등지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요녀(妖女). 주문(呪文)과 마술을 써서 사람에게 불행이나 해악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2.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처럼 풀이합니다. 참으로 얼빠진 뜻풀이입니다. 사전 뜻풀이부터 마녀를 그저 나쁘게만 다루니 몹시 얄궂습니다.


  바람을 타고 바람을 읽으며 바람을 다룰 줄 안다면 ‘바람아씨’입니다. ‘바람순이’일 테지요. 사내로서 바람을 알고 읽고 다룬다면 ‘바람사내·바람돌이’가 되겠지요. 바람아씨나 바람돌이는 서울이나 저잣판에서 살지 않아요. 숲에 깃들지요. 왜냐하면 숲이야말로 모든 목숨을 깨우고 살리며 돌보는 빛이 흐르는 터전이거든요. 바람아씨는 숲아씨이자 숲순이입니다. 바람사내란 숲사내이면서 숲돌이예요.


  ‘魔’라는 한자를 억지로 붙일 사람이 아닌 ‘바람·숲·빛’ 같은 이름을 새롭게 붙일 사람이라고 느껴요. 이러한 얼거리를 진작부터 읽은 가도노 에이코 님은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뿐 아니라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이야기를 엮어내었습니다.


  바람아씨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숲아씨는 모든 목숨을 보살핍니다. 빛아씨는 이 별에 새롭고 따스한 기운이 흘러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꿈꿉니다. 우리 모두 바람하고 숲하고 빛이 하나로 모으는 눈길하고 손길을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나 곱다시 흐르는 노래하고 춤으로 즐거운 살림터를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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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 작다! 알쏭달쏭 이분법 세상 3
장성익 지음, 이윤미 그림 / 분홍고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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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19


《크다! 작다!》

 장성익 글

 이윤미 그림

 분홍고래

 2018.11.16.



곡물 기업과 농약 기업과 종자 기업 등이 서로 힘을 모으는 식이지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종자에서 식탁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의 모든 과정을 더욱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함입니다. (43쪽)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지표에는 전체 생산 활동에서 자연이 담당하는 몫이 빠져 있습니다. 또 청소·빨래 등과 같은 가사 노동,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이른바 돌봄 노동, 농업이나 수공업 등에서 더러 보듯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자급 노동 ……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69쪽)


엘살바도르는 가난합니다. 성장주의 경제 논리에 따르자면 외국 자본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투자는 필요없다고 선언했습니다. (73쪽)


한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주류 집단일수록 소수자와 약자들을 뭔가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사람, 잠재적으로 위험하거나 불순한 집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쌓아 놓은 기득권 체제에 위협이나 걸림돌이 되리라고 판단해서지요. 하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변화는 소수자나 약자들이 기존의 주류 질서와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08쪽)



  온누리에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좋은 길도 나쁜 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누리는 모두 다르면서 하나인 빛이거든요.


  곰곰이 보면 옳은 길이나 그른 길이란 없습니다. 무엇이든 배우는 길입니다. 이 길로 가면서 이 삶을 배우고, 저 길을 가면서 저 삶을 배워요. 다만, 어느 길을 가든 그 길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되어요. 어느 한켠으로만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넋으로 저마다 다른 삶을 짓기에 어깨동무를 하는 슬기로운 마음을 찾을 노릇입니다.


  키가 크대서 힘이 더 세야 할까요? 나이가 많대서 말을 더 많이 해야 할까요? 《크다! 작다!》(장성익, 분홍고래, 2018)는 우리 삶터에 감도는 틀에 박힌 눈길이 무엇인가를 짚으려 합니다. 그래요, 틀에 박힌 눈길이지요. 틀에 박혀서는 배우지 못합니다. 틀에 박히니 쳇바퀴는 돌 줄 알지만 새로운 일이나 놀이로는 다가서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만해요. 쳇바퀴로도 달삯을 받고, 쳇바퀴로도 먹을거리를 얻어요. 그러나 쳇바퀴를 돌면서 스스로 짓는 삶은 없어요. 늘 똑같지요. 이러다 보니 쳇바퀴질을 끝내야 하는 때인 정년퇴직을 앞두고 다들 돈을 그러모으려고 용쓰더군요. 쳇바퀴질 말고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재주가 없으니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으려고 하면서 꿍셈을 키우고 뒷돈을 주고받는구나 싶어요.


  왜 서울이든 시골이든 막삽질이 안 끊어질까요? 쳇바퀴질 벼슬아치가 조금이라도 더 뒷돈을 챙기려는 뜻이잖아요. 왜 거님돌을 끝없이 갈아치울까요? 그런 짓을 해서 나라돈을 써야 벼슬아치 주머니에 뒷돈을 챙기니까요.


  모든 자리에서 틀을 깨지 않고서야 즐거울 수 없습니다.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여느 어버이도 어린이도, 그리고 이러한 책을 쓰는 분도 틀을 깨야지요. 《크다! 작다!》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딱딱하고 어려운 말씨가 너무 많아요. 한결 부드럽게, 쉬운 말씨로, 스스로 어린이 자리에 서면서 이야기를 여미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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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잖아요? 함께하는이야기 2
김혜온 지음, 홍기한 그림 / 마음이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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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1


《학교잖아요?》

 김혜온 글

 홍기한 그림

 마음이음

 2019.1.5.



“할아버지, 왜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거예요?” “왜라니?” “학교잖아요?” (29쪽)


“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넌 장애를 가진 동생이 없잖아.” (52쪽)


“어른들이 알아서 할 거야.” 엄마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어른들이라고 잘 아는 건 아니던데 뭐.” (70쪽)


“엄마는 맨날 나한테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 생각해야 된다고 그랬으면서! 특수학교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교육 받을 권리래. 선생님이 그랬어.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거랑 똑같은 권리라고.” (86쪽)


“또 아파트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위험하대요. 제 동생은 위험하지 않아요. 가끔 떼도 쓰고 화나면 울고 소리도 지르지만 그건 누구나 그렇잖아요?” (94쪽)



  날이 갈수록 학교가 작아집니다. 한때 커다란 학교가 바람처럼 일었으나, 서울이건 시골이건 작은 학교로 달라집니다. 학급이 줄고, 학급마다 받는 사람도 줄어듭니다. 학교를 들여다보면 교과서도 예전하고 다릅니다. 예전 교과서는 작으면서 두꺼웠다면, 요즘 교과서는 크고 얇습니다. 그런데 예전 교과서는 흙종이(만화종이)였다면, 요즘 교과서는 형광물질하고 표백제를 넣어 새하얗고 무거운 종이입니다.


  그림이며 사진이 많이 담긴 요즘 교과서인데, 얼핏 보자면 교과서 안 같구나 싶으나, 곰곰이 보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썰미는 흐르지 않는구나 싶어 교과서는 아직 교과서로구나 싶어요. 무엇보다도 건물이나 교과서가 껍데기는 바뀌되 속살이 바뀌지는 않아요. 네모난 틀에 갇힌 학교이면서, 이곳을 다닐 사람도 네모난 틀에 맞추어야 하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그런 네모난 틀인 학교조차 다니기 어려운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이른바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학교잖아요?》(김혜온, 마음이음, 2019)는 서울 한켠에 세우려고 하는 장애인 학교를 둘러싸고 ‘집값이 떨어진다’느니 ‘장애 어린이가 거칠거나 사납다’느니 ‘장애인 학교 말고 대형마트를 세우라’느니 하는 목소리가 불거지는 오늘날 모습을 그립니다.


  머리띠를 질끈 두르고서 장애인 학교는 안 된다고 외치는 할아버지 앞에 선 아이가 묻습니다. “학교잖아요?” 할아버지는 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학교인걸요.


  재산으로 삼는 땅하고 집이 있는 어른들은 장애인 학교이건 다른 학교이건 그리 내키지 않는 눈치입니다. 이 학교이건 저 학교이건 집값이나 땅값에 이바지한다고 여기지 않거든요. 대형마트가 들어서야 껑충껑충 올라 그 땅이나 집을 팔고 나가기에 좋다고 여기지요.


  배우려 하지 않으니 배움자리를 마련하지 않아요. 배울 뜻이 없으니 껍데기는 바꾸어도 속살을 바꾸지 않아요. 배울 마음이 없으니 큰돈을 들여 건물이며 교과서 틀을 살짝 손보기는 하지만, 어린이하고 푸름이사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슬기롭게 배우는 판은 아직 마련하지 않아요. 이제는 새로운 학교가 들어서야지 싶어요. 일반 학교도 장애인 학교도 아닌, 모든 사람이 늘 드나드는 배움터가 있어야지 싶어요. 여섯 해나 세 해만 다니고 그치는 학교가 아닌, 늘 오가면서 누구나 배우는 터전으로 열린판을 닦아야지 싶어요. 스스로 배우지 않을 적에는 스스로 바보가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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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동물 권리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8
이유미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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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0


《선생님, 동물 권리가 뭐예요?》

 이유미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9.11.9.



무엇보다 동물에게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 사랑받으며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요. (28쪽)


여러분이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더 싫어질지도 몰라요. 여러분이 싫다고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또 해를 입힌다면 어떻게 될까요? (68쪽)


우리가 강아지를 사고 선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강아지를 강제로 태어나게 하는 사람들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79쪽)


우리가 동물을 대할 때 헤아려야 할 점은 단 한 가지면 충분해요. 바로 동물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점이에요. (98쪽)


우리가 직접적으로 동물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다만 팜유 농장만 넓히고 싶었다고, 플라스틱은 다 재활용하는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29쪽)



  풀꽃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곁에 풀꽃을 놓습니다. 풀꽃이 들려주는 말을 알아듣고, 풀꽃한테 즐겁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뭇짐승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곁에 짐승을 둡니다. 짐승이 들려주는 말을 알아차리고, 짐승한테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해요.


  곁에 두는 꽃이니 ‘곁꽃’입니다. 곁에 두는 짐승이니 ‘곁짐승’이에요. 이런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곁에 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은 ‘곁님’이에요.


  우리를 둘러싼 터전에서 곁에 두는 숨결이라면 더없이 사랑으로 마주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한테나 ‘곁’을 두지 않습니다. 오롯이 사랑으로 어우러질 숨결한테 곁을 두고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요.


  어린이인문 《선생님, 동물 권리가 뭐예요?》(이유미, 철수와영희, 2019)를 읽으며 곁짐승을 헤아려 봅니다. 예전에는 ‘집짐승’이었고, 어느 때부터인가 ‘애완동물’이었으며, 이제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이 생깁니다. 이처럼 달라지는 이름에는 조금씩 거듭나는 우리 마음이며 생각이 스민다고 느껴요.


  그저 집에만 머무는 짐승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반려)’ 짐승으로 여기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싶어요. ‘한집짐승’처럼 ‘한-’을 붙일 수 있고, ‘곁-’을 붙인 ‘곁짐승’이라 할 수 있으며 ‘짐승’이란 말을 바꾸어 ‘곁짝’이나 ‘곁벗’이라 할 만해요. 왜냐하면 마음으로 만나고 아끼며 어우러지는 사이라면, 풀이건 짐승이건 나무이건 벌레이건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사람만 으뜸이라는 생각을 넘어서, 푸나무이며 짐승이며 벌레이며 새이며 모두 우리 곁에서 아름드리 숨결로 맞아들여서 ‘곁동무’나 ‘곁지기’로 바라볼 만합니다.


  어린이한테 동물 권리를 들려주려는 작은 책은 이 대목을 짚습니다. 《선생님, 동물 권리가 뭐예요?》라는 책은 ‘사람도 살기 팍팍해서 권리를 못 누리는데 무슨 동물 권리?’라는 틀을 넘자고 밝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권리를 누리는 길이란, 사람을 비롯한 모든 숨결이 저마다 즐겁게 살아가면서 어깨동무를 하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봐요. 사람으로서 이웃이며 동무를 아낀다면 풀 한 포기를 함부로 다루지 않아요. 사람답게 이웃이며 동무를 돌볼 줄 알면 작은 짐승도 커다란 짐승도 모두 빛나는 숨결로 맞아들여서 아끼는 포근한 터전이며 마을이 됩니다.


  우리 삶터가 메마르거나 팍팍하다면 사람됨이며 사람다움을 잊거나 잃은 탓일 수 있어요. 곁에 꽃 한 송이를 두면서, 곁에 여러 짐승이 아늑하게 지내는 보금자리로 가꾸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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