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를 초대합니다 뒹굴며 읽는 책 6
조지프 로 글.그림, 최순희 엮음 / 다산기획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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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3


《생쥐를 초대합니다》

 조지프 로

 최순희 옮김

 다산기획

 2007.12.15.



고양이는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곰곰 궁리했습니다. “메뚜기 마흔일곱 마리는 어떨까? 아니면 귀뚜라미 예순아홉 마리를 먹거나, 통통하게 살찐 참새 한 마리도 괜찮아. 하지만 진짜로 입맛이 당기는 건, 입에서 살살 녹는 연한 생쥐야.” (6쪽)


생쥐야 고양이의 속임수라면 아주 훤했죠. 그래서 물었습니다. “친구 하나 데려가도 돼요?” (13쪽)


고양이도 사자도, 개와 생쥐가 친구인 말벌을 데려온 것은 보지 못했스비다. 눈 깜짝할 새, 말벌은 사자의 코를 쏘았습니다. 그리곤 귀를 쏘았어요. 그 다음엔 붉고 울퉁불퉁한 혀를 쏘았고요. 사자는 미친 듯이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44쪽)


“친구야, 뭐든지 마음껏 먹어.” 생쥐가 말벌에게 말했습니다. (53쪽)



  네가 나한테 동무라면 겉웃음이 아닌 속사랑으로 마주하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너한테 동무라면 겉치레가 아닌 참사랑으로 마주하겠지요.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사랑을 담은 말은 사뭇 다릅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닌 사랑이 샘솟는 말은 참으로 달라요.


  얼핏 듣거나 보기에 높임말이라 해서 높임말이지 않아요. 마음을 담아서 들려주기에 높임말이 됩니다. 이를테면 ‘-시-’를 넣거나 ‘-요’를 붙이기에 높임말일까요? 아닙니다. 겉모습으로는 높임도 안 되고, 사랑도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속에서 흐르는 곱고 참다운 숨결일 적에만 높임이며 사랑이 됩니다.


  《생쥐를 초대합니다》(조지프 로/최순희 옮김, 다산기획, 2007)는 겉치레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를 잘 드러내는 어린이문학이자 그림책입니다. 아끼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이 밥그릇에 눈먼 몸짓으로는 동무를 사귈 수 없다는 대목을 찬찬히 그려내지요.


  동무를 사귀고 싶으면 우리 스스로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마음을 열었으면 이 마음자리에 사랑이라고 하는 고운 숨결을 담아야 해요. 마음만 연대서 동무를 사귀지 않아요. 열어 놓은 자리에 사랑으로 가득할 적에 비로소 동무를 사귑니다.


  배움길도 이와 같습니다. 차곡차곡 채우거나 책을 읽거나 스승을 찾아가서 귀담아듣기에 배움일까요? 아닙니다. 겉모습만으로는 배움길이 될 수 없어요. 마음을 환하게 연 다음에, 이 마음에 기쁜 사랑으로 살림짓는 싱그러운 숨결을 새롭게 담아야 비로소 배움길입니다.


  생쥐를 불러 봐요. 고양이도 불러 봐요. 우리는 누구인가요? 우리 곁에 누구를 동무로 두고 싶나요? 우리는 누구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나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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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일지 - 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처음 만나는 고전
강창훈 지음, 신슬기 그림, 배경식 감수 / 책과함께어린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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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3


《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백범일지》

 강창훈 글

 신슬기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18.12.10.



김구의 마음을 특히 사로잡은 건 동학이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었어. (38쪽)


의병이 되어 왜적을 물리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조선 내부의 적을 뿌리 뽑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81쪽)


사람들은 그것이 뇌물이라는 생각조차 못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김구의 눈에 그것은 청탁을 대가로 한 명백한 뇌물이었어. (105쪽)


가장 먼저 간 곳은 인천이야. 인천은 김구에게 고향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었을 거야. 김구는 인천 감옥에 두 번 수감되었지. 치하포 의거 이후 한 번, 안악 사건으로 또 한 번 감옥에 들어갔어. 김구에게 외국 사정과 신지식에 눈을 뜨게 해 준 곳도 인천이고, 독립운동가로서 단련시켜 준 곳도 인천이야. (155쪽)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이 고장하고 김구 어른이 얽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일도 없어요. 김구 어른이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졌어도, 1990년대가 저물고 2000년대로 넘어서도록 그런 이야기를 펴거나 알리는 물결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여러 달 만에 인천을 찾아가서 배다리에 있는 마을책집을 돌아보다가 편지함마다 꽂힌, 그렇지만 꺼내가는 사람이 없는 홍보종이가 눈에 뜨였습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홍보종이를 문득 집어드니, 인천 어느 국회의원이 집집마다 띄운 ‘자랑글’이에요. 국회의원이라는 그분은 인천이 발돋움하도록 나라에서 돈을 얼마나 많이 끌어들였고 어떤 토목건설을 일구었는가를 굵직하게 박았습니다.


  《독립을 향한 열정의 기록, 백범일지》(강창훈, 책과함께어린이, 2018)를 읽습니다. 김구 어른이 남긴 책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이분이 어떤 삶길을 걸으며 꿈길을 이루고자 했는가를 들려줍니다. 어른은 어버이한테서 ‘김구’란 이름을 물려받았는데, 스스로 배우며 삶을 깨닫는 길에서 ‘백범’이란 이름을 새롭게 지어서 스스로 선물해요.


  한자로 엮은 ‘백범’이란 낱말은 “수수한 사람”을 나타낸다고 해요. 그런데 그냥 수수한 사람만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높낮이가 없고 너나가 없는 수수한 사람입니다. 나를 높이지 않되 나를 낮추지 않아요. 나를 바라보되 너하고 가르지 않아요. 어깨동무하면서 서로 사랑으로 삶을 짓는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바라는 수수한 사람입니다.


  인천이란 고장뿐 아니라, 참 많은 고장에서 국회의원이나 시장·군수란 이름으로 벼슬아치 노릇을 하는 분들이, 토목건설로 나라돈을 끌어들이는 길이 마치 ‘나라사랑·고을사랑’인 듯 여깁니다. 참말 그러할까요? 삽차로 밀어내고 시멘트를 들이부어 올려세워야 뭔가 발돋움할까요?


  아름나라를 바란, 아름누리를 꿈꾼, 사랑나라에 사랑누리를 걸어가려 한 삶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곳에 돈이 있어야 서로 넉넉합니다. 사랑스레 살림하는 곳에 뜻이 있어야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통일도 이룹니다. 이론이 아닌 살림을 익히고 가르칠 때에 아름다운 고을이요 고장이며 나라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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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 장애, 페미니즘, 불평등, 고전 공부, 평화, 남녀로 바라본 인권 이야기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4
김형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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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5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18.11.13.



장애인 인권은 실천의 문제라는 겁니다. 배우기만 해서는 소용없어요. 인권은 지식이 아니에요. (15쪽)


평등은 ‘너 하나? 나도 하나!’가 아니에요. 평등은 너와 내가 처한 다른 조건을 살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사람에게 더 장벽이 높지는 않은지, 나보다는 더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거예요. (46쪽)


2015년엔 다시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되었습니다. 20대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입니다. (120쪽)


톨스토이의 작품이 보내는 메시지와 그의 사회 활동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했던 거예요. 톨스토이는 국가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합니다. 심지어 스스로 대지주였으면서 사적 소유도 부정해요. 여러분이 당시 노벨상 선정 위원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국가도, 종교도, 사적 소유도 모두 부정하는 사람을 세계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노벨상 수장자로 뽑기가 쉬울까요? 너무 ‘불순’ 하지 않나요? (180쪽)



  ‘최저임금’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짚지 못하는 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터가 메마르거나 제길을 잃었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최저임금’이란 적어도 이만큼은 받아야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돈입니다. 이보다 적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일삯이기에, 이 일삯보다 넉넉히 주어야 서로 살림꽃을 필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나라는 일꾼한테 제 일삯을 주기보다는 일삯을 깎아서 길미를 남기는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고이 바라보려는 길이 아닌, 사람값을 낮추거나 깎아서 돈을 남겨야 한다고 여겼어요. 이런 살림이 나아가는 길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1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 푸름이나 어린이한테 인권을 따로 가르치거나 이야기를 해야 할 만큼 우리 삶터는 크게 뒤떨어졌네 싶으면서, 이제 푸름이나 어린이한테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이야기를 하려는 어른이 나타났구나 싶도록 차츰 거듭나는구나 싶어요.


  우리 지난걸음을 돌아보면 좋겠어요. 일꾼한테 제대로 일삯을 치르는 길을 갈 적에는 어느 일터에서나 뜻있고 알차게 일을 해서 서로 길미를 나누는 살림으로 나아갔겠지요? 비록 목돈을 못 번다고 하더라도 함께 땀흘리고 함께 웃는 살림살이로 이었으리라 느껴요.


  함께짓기를 하는 살림이라면 너울이 쳐도 안 흔들립니다. 함께짓기를 하는 삶이라면 어떤 가시밭길이나 고비라도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겨낼 만합니다. 일꾼이 일터에서 제 일삯을 받는 길이라면, 우리가 일군 열매도 사람들이 제값을 치르며 장만해서 알맞게 쓰는 길이 되어요. 넘치도록 만들어서 펑펑 쓰다가 버리는 길이 아닌, 알맞게 만들어서 알맞게 장만하고 두고두고 누리면서 고운 길입니다.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길이라면,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나 자유가 ‘어떤 이론’이라고 들려주지 않는다고 느껴요. 서로 즐거울 길을 짚을 테고, 서로 바꾸면서 손을 맞잡는 길을 다룰 테지요. 어려우니 서로 나눕니다. 넉넉하니 같이 나누어요. 모자라니 조금씩 나누어요. 푸짐하니 기꺼이 나눕니다.


  앞으로 ‘최저임금을 주는 일자리’는 사라지면 좋겠어요. ‘제대로 살림을 꾸릴 만한 돈을 나누는 일자리’로 달라지면 좋겠어요. 고맙게 값을 치르고, 스스럼없이 땀을 나누며, 사랑스레 살림을 세우는 길을 새로 내면 좋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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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 이야기 동화는 내 친구 65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고경숙 그림 / 논장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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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5


《우리 이웃 이야기》

 필리파 피어스 글

 고경숙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1.8.30.



한번은 내가 아저씨한테 왜 남들처럼 두발자전거를 타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세발자전거를 타면 넘어질 걱정 없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달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10쪽)


사람들은 모틀록 할머니에게 느릅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했다. 모틀록 할머니는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느릅나무가 거기에 있었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도 거기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51∼52쪽)


어린 짐은 여름 새벽이 이토록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줄은 몰랐다. 축제날처럼 하늘에 빨간빛, 노란빛이 보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113쪽)


물속에서 헤엄을 치면 재미있게도 바로 위에는 공기도 있고 해도 빛나고 사람들이 첨벙거리며 고함도 치는데, 물 아래는 너무도 잔잔하고 고요하고 어둑어둑하다. (163쪽)



  꿈에서 누가 저를 한창 모질게 괴롭힙니다. 저를 모질게 괴롭히는 이는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괴롭히려 합니다. 참 재미있게도 꿈에서 저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아요. 사람들을 모질게 괴롭히는 그이를 멀쩡한 낯으로 부드러이 마주할 뿐이면서, 참 딱하네 하고 여깁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그이는 참으로 악다구니를 쓰는데, 이런 막짓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저를 비롯한 누구나 말끔한 낯으로 그이를 바라보니 어느 누구도 괴롭거나 들볶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 누구를 아프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가 누구를 기쁘게 하거나 즐겁게 할 수 없구나 싶어요. 스스로 아프거나 다칠 뿐이고, 스스로 기쁘거나 즐거울 뿐이지 싶습니다.


  《우리 이웃 이야기》(필리파 피어스/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1)에 흐르는 따사로운 숨결을 읽습니다. 우리 이웃 이야기는 매우 수수한 이야기입니다. 이 어린이책에서 다루는 이웃이란, 너이면서 나예요. 내 곁에 있는 이웃이 수수하듯, 이웃 곁에 있는 내가 수수해요. 너랑 나는 서로 수수하면서 서로 따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너를 이웃으로 두면서 수수하고 즐겁게 삶을 짓고, 너는 나를 이웃으로 삼으면서 수수하고 즐겁게 삶을 짓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어린이문학이 다 있네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뭔가 톡톡 튀지 않아도 이야기가 사랑스럽습니다. 남다르다 싶은 줄거리를 펴지 않아도 이야기가 아름답습니다. 꾸미려 하면 그저 꾸밈짓이 드러나요. 꾸밀 까닭이 없이 사랑하기에 사랑스러운 바람이 붑니다. 꾸미거나 치레하지 않고 오로지 고운 마음이 되니 말 그대로 아름다이 햇볕이 내리쬡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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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소년의 용기 창비아동문고 89
최승자 외 엮음 / 창비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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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2


《물고기 소년의 용기》
 프란시스 투어
 최승자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5.12.5.


니꼴라는 물고기들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이 사는 푸른 바닷속도 사랑했읍니다. 그리고 그는 바닷속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신기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집으로 달려가 흥분하여 외쳤읍니다. “엄마, 방금 붉은 카네이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낙지떼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어요.” (9쪽)


“아가씨 혼자 있소?” 하고 가만히 소곤거렸읍니다. “집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에요. 난 하느님과 함께 있으니까요.” (21쪽)

봄이 되자 과일나무들은 꽃을 피웠고, 곡식들은 말 탄 사람만큼 높다랗게 자라났고, 곡식이 무르익어 가는 들판은 젊은 부부가 쓰는 황금빛 왕관보다 더 아름다왔읍니다. (38쪽)

“여긴 저의 집이니까 제가 주인이랍니다. 당신은 내게 가장 사랑하는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셨잖아요? 난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가지고 왔어요. 이제 당신은 내 거예요!” (178쪽)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읊는 모든 말은 아이 마음에 씨앗이 되어 깃듭니다. 좋다 싶은 말을 비롯해 궂다 싶은 말까지 모두 씨앗으로 스며듭니다.

  이야기꽃을 펴는 마실을 가려고 고흥을 떠나 순천을 거쳐 아산으로 가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버스일꾼이 아주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라 어쩔 수 없이 듣고 마는데, 어느 어버이가 제 아이한테 끔찍한 말을 술김에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이튿날에도 그 라디오 그 이야기가 마음에서 가시지 않습니다. 하루 지나서 그 이야기를 떠올리니 눈물이 핑 돕니다. 제 일이 아니어도 그 아이들 어버이가 너무 철없이 뱉은 말이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버이 스스로 무너뜨리는 말이니 참으로 아파요.


  《물고기 소년의 용기》(프란시스 투어/최승자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5)를 읽는데 첫 꼭지부터 아이랑 어버이 이야기가 맞물립니다. 이탈리아 옛이야기를 묶은 책인데, 이탈리아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구나 싶어요.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문득 뱉은 말이 고스란히 씨앗이 되어 아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고 해요. 아이는 어버이 말에 오래도록 마음이 다치는데, 나중에 어버이 곁을 떠나 스스로 새살림을 짓는 동안 이 아픈 생채기를 가만히 다스려 아물도록 하고, 이녁 어버이가 보여준 화살 같은 말씨앗을 꽃님 같은 말씨앗으로 바꾸어 낸다고 해요.


  새로 어른이 되는 아이는 한결 듬직하며 사랑스러운 숨결이 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는 모든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면서 배우지 싶어요. 따스한 어버이 모습은 따스한 대로 지켜보면서 배워 더 따스하게 북돋아요. 차가운 어버이 모습은 차가운 대로 지켜보고 배워서 찬기운을 풀어내어 새삼스레 포근히 살찌워요.


  우리 아이들 앞에 서는 어버이란 제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제 입에서 흐르는 말이 어떤 씨앗일는지, 제 손에서 피어나는 글이 어떤 꽃씨일는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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