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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벽 1 - 거대한 슬픔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은 울타리를 세우지 않아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75] 이시카와 다쓰조, 《인간의 벽 (1)》(양철북,2011)



- 책이름 : 인간의 벽 1
- 글 : 이시카와 다쓰조
- 옮긴이 : 김욱
- 펴낸곳 : 양철북 (2011.3.30.)
- 책값 : 14000원



 (1) 사랑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줄세우지 않습니다. 어버이로서 집에서건 교사로 학교에서건 아이를 줄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에 시험성적이 어떻다고 따지거나 무슨 좋은 재주가 있다거나 얼굴이 어떻게 예쁘다 하면서 줄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따스하면서 보드랍게 손을 내밀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랑하는 손길이기에 따스합니다. 사랑어린 몸짓이기에 보드랍습니다.

 누구나 사랑받을 때에 즐겁습니다. 누구나 사랑받지 못할 때에 괴롭습니다.

 누구라도 사랑할 때에 기쁩니다. 누구라도 사랑하지 못할 때에 갑갑합니다.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삶을 잇도록 이끄는 힘은 사랑입니다. 밥그릇에 사랑을 담고, 말마디에 사랑을 담습니다. 눈빛에 사랑을 싣고, 손길에 사랑을 싣습니다. 때로는 회초리에도 사랑을 깃들일 수 있겠지요. 온몸 가득 사랑인 사람이라면 손에 무얼 쥐거나 놓더라도 사랑이 되겠지요. 온몸 가득 감싸는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면 손에 김 모락모락 나는 밥그릇을 들었어도 차갑거나 메마릅니다. 돈이 없더라도 사랑이 있으면 배부르고, 돈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배고픕니다.


..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워 내려면 먼저 선생 자신이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 시노다 선생의 눈물은 오열로 바뀌었다. 더 따라 부르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아름답게, 밝게 살고 싶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것만이 행복이며 삶의 보람이다 … “선생 본인이 아이들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다면 결국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거든요.” ..  (120, 212∼213, 219쪽)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사람이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나 사랑을 못 나누는 사람이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나눔이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일이란 서로를 꾸밈없이 받아들이며 아낌없이 돌볼 수 있는 매무새입니다. 틀에 가두지 않을 뿐더러 틀에 갇히지 않는 사랑입니다. 좋은 길이니까 어서 오라 부르지만, 좋은 길이니까 억지로 밀어넣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착한 길입니다. 착하지 않으면서 사랑길을 걷지 못합니다. 사랑길을 걷는데 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길은 착하게 일구며 즐기는 어여쁜 내 삶길인 셈입니다.

 사랑하기에 착하고, 착하기에 바릅니다. 바르기에 따뜻하며, 따뜻한 만큼 넉넉합니다. 넉넉한 흐름으로 보드라운 결과 무늬를 아끼고, 보드라이 아낄 줄 알면서 신나게 즐기거나 나눕니다.

 지식을 가르치려는 교과서만 있는 학교라면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사랑은 지식이 아니고, 지식은 사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식을 다스리거나 익혀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채 지식을 다스리거나 익힐 때에는 슬픕니다. 사랑하고 살아갈 동무랑 이웃이랑 살붙이를 헤아리면서 다스리거나 익힐 지식입니다. 내 밥그릇을 키우거나 단단히 거머쥐려고 다스리거나 익힐 지식이 아닙니다.


.. 수신 과목이 사라지고 도덕이라는 독립된 학과도 없지만 선생들은 굳이 그런 과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과서였다 … “요즘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는 오늘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부모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훌륭하게 자란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개성이 부족한 아이일수록 시키는 일은 잘합니다 …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 혼자서는 생각할 줄도 모르는 사람, 개성도 없고 신념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모나 선생이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아이들은 커서 그런 사람이 되고 말 겁니다.” … 이 사람은 월급 때문에 일하는 선생이 아니다.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이 아니다. 교육의 참된 의미를 알기에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안으려고 한다 … 교육을 걱정하는 사와다 선생의 열정은 지금 이 교무실에서는 오히려 고독하게 느껴졌다. 동료 교사들에게서 외떨어져 자기 혼자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였다 ..  (118, 227, 327, 330쪽)


 사랑으로 가득한데 돈이 없어 쪼들린다면 퍽 힘들 만합니다. 그래요, 퍽 힘들 테지요. 그렇지만, 힘든 살림살이를 견디거나 버티거나 이기거나 받아들이는 기운은 사랑입니다. 돈이 더 있거나 돈이 넘치기 때문에 즐거운 삶이 되지 않아요. 돈이 더 있거나 돈이 넘칠 때에는 사랑을 잊습니다. 돈에 따라 흐르는 삶이 될 때에는 사랑이란 하찮거나 보잘것없습니다. 말 그대로 돈이 좋은 나날일 테니까요.

 돈이야 벌면 됩니다. 돈이야 얻으면 됩니다. 돈을 생각하기 앞서 내가 오늘 아침에 일어난 보금자리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새 하루를 보낼까 하는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할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사랑할 사람이 짊어지거나 느끼거나 품에 안은 여러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한테 가장 모자란 곳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가장 힘들거나 가장 바라는 대목이 무엇인가를 돌아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길을 걷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길을 걸어, 내가 걷는 이 길에 무엇이 있고, 내가 걷는 이 길을 따라 어떤 삶이 있는지를 헤아립니다. 찬찬히 찬찬히 등허리를 주무르고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아픈 이한테 도움이가 되고 튼튼한 이한테 길동무가 됩니다.

 믿고 맡길 수 있도록 나부터 믿습니다. 믿고 손을 내밀 수 있게끔 나부터 믿으면서 손을 내밉니다. 믿고 가만히 바라볼 수 있도록 나부터 믿으면서 가만히 바라봅니다. 믿고 이야기할 수 있게끔 나부터 사랑스레 믿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격이 달라진다. 위험하고도 무서운 이야기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이 같은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만큼 학교와 교사를 믿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 현재의 학교 제도에서는 이 아이를 다른 아이들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아이에게 매달리는 것이 선생의 마음이다 … 선생은 사랑이 아이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아이의 변화된 마음이 아이의 행동을 새롭게 이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교육이 아닐까 … “그럴까요?” 시노다 선생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이 사람은 아이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아이들 마음속에 추함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질투심도, 허영심도, 교활함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느냐, 추함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은 교육자와 비교육자를 구분하는 오직 하나뿐인 근거다 ..  (217, 325, 340, 341∼342쪽)


 저쪽에서 내 뒷통수를 후려갈기는데 내가 얌전히 참을 수 있겠느냐 할 만합니다. 저쪽에서 내 발을 밟고는 아무 거리낌이 없는데 내가 뿔이 안 날 수 있겠느냐 할 만합니다. 저쪽에서 자꾸 딴죽을 걸거나 가로막는데 내가 골이 안 나겠느냐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생각을 하자면 내 몸을 움직여 내 삶을 건사할 노릇입니다.

 가는 말이 곱다지만 오는 말은 안 고울 수 있습니다. 가는 말이 곱지 않은데 오는 말만 곱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어찌 되든 가는 말이 고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는 말이 고울 때에만 가는 말을 곱게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안 따라 준대서 아이들한테 윽박지르는 사람이라면 교사라 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어버이 말을 잘 안 듣는대서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손찌검하는 사람이라면 어버이라 하기 힘듭니다.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리거나 작거나 아프거나 다친 가슴을 들여다보아야 교사요 어버이입니다. 사랑을 받아들이며 차츰 단단해지거나 슬기롭게 거듭나거나 아픔이 여물기를 바라는 마음결로 아이들을 보드라이 어루만져야 할 교사요 어버이예요.


.. 이 그림에는 ‘우’를 주고, 저 그림에는 ‘양’을 준다. 과연 이런 평가가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미술 전람회에 출품하는 작품이 아니다 … 담임선생이라면 이 그림에 점수를 매기기 전에 학생이 행복하지 않은 까닭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학생의 마음을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점수를 매기는 것 따위는 교육이 아니다. 58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별하는 것은 교육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시노다 후미코는 50∼60장이 되는 그림을 앞에 두고 어떻게 채점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다. 기계처럼 우열을 정하는 것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채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학교는 교사에게 아이들을 채점하라고 명령한다. 교사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마음을 ‘우’와 ‘양’으로 구별한다. 월급을 받는 ‘피사용인’의 숙명이다 ..  (185, 187, 191∼192쪽)


 누구한테든 따로 교과서로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에는 굳이 교과서나 교재가 없어도 됩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과 흙과 나무와 바람과 햇볕이 교과서이고 교재이며 책입니다.

 봄날 햇볕은 수우미양가로 나뉘지 않습니다. 겨울날 찬바람은 가양미우수로 가르지 않습니다. 입맞춤을 수우미양가로 살필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결과 손길과 눈길은 가도 양도 미도 우도 수도 아닙니다. 그저 사랑스러운 마음결이거나 손길이거나 눈길입니다.

 우리 집 아이는 언제나 우리 집 아이입니다. 우리 학교 아이는 노상 우리 학교 아이입니다. 저마다 고운 아이요, 누구나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하나하나 착한 삶이요, 모두 고마운 목숨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사랑을 즐기고 사랑을 나눌 씩씩한 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거나 도울 어른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제 동무나 이웃이나 살붙이를 숫자나 점수로 따지거나 재지 않도록, 오직 사랑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얼싸안도록 이끌거나 도울 어른으로 지내야 합니다.

 지식을 가르칠 어른이 아니라 사랑을 가르치며 삶을 나눌 어른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며 갖출 지식을 아이들 스스로 깨닫도록 보드라이 알려주거나 물려줄 어른입니다. 가르쳐야 한다면 사랑스러운 삶 한 가지입니다. 배워야 한다면 믿음직한 꿈 한 가지입니다.


 (2) 울타리


 울타리가 높은 곳이라면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울타리가 있어야 하느냐 없어야 하느냐가 아닙니다. 울타리가 높은 곳에서는 숨이 막힙니다.

 멀디먼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멀디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살림을 꾸리며 지냈습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람이 있건 없건 저마다 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제 삶터를 돌보았습니다. 대한민국·조선·고려·신라·백제·고구려·가야라는 이름에 앞서 사람들이 살았고, 저마다 제 살림살이를 조용히 일구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들은 땅바닥에 금을 긋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땅이고 저기부터는 너희 땅이라고 금을 긋습니다. 그러나 풀·나무·짐승·물·햇볕·바람은 금으로 그어 나눌 수 없습니다. 두루미는 한국에만 살지 않고 일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백두산부터 이어졌다는 멧줄기는 휴전선이 있대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남북녘에만 백두산 멧줄기가 아니라, 중국땅으로도 이어지는 백두산 멧줄기입니다.

 햇볕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똑같이 내리쬡니다. 바닷물은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같은 바닷물입니다. 음성군과 진천군 사이, 서울시와 인천시 사이, 제주시와 서귀포시 사이, 길그림책에는 금이 또렷하게 갈린 사이사이에는 무엇이 있으려나요. 벽이나 울타리 하나로 마주한 이웃집하고 우리 집은 사이에 무엇이 있으려나요.


.. 게으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선생이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은 1년 동안 재난을 겪는다. 그 재난이 평생토록 아이들의 인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다 … 교사와 학생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이야말로 지식과 사물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 마음의 교류 없이 초등학교 교육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일본의 군대에 도덕 같은 건 없었습니다. 물론 질서는 있었지요. 강제적이고 계급적인 질서는 있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은 없었습니다.” … “당신은 원래 중학교 선생이잖아요.” “그게 뭐.” “요즘엔 아무리 봐도 선생 같지가 않아요.” … “당신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마음이 없어요. 당신이 말하는 조합은 선생들의 조합 아닌가요? 당신은 이미 선생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위원장이 되겠다고요?” … 이 남자에게는 이기심만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없다. 애정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견뎌 냈을지도 모른다. 겐이치로는 부정한 마음 같은 것이 있다 ..  (107, 183∼184, 231, 315, 316쪽)


 예나 이제나 정부란 부질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이건 어느 살림집이건 돈을 더 많이 벌어들여 집안에 쟁여 놓을 때에 즐거운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집식구가 즐거이 밥을 먹고 즐거이 하루하루 맞이하지 못한다면, 엄청나게 쌓은 돈이건 오십만 원 즈음 쌓은 돈이건 똑같이 덧없습니다. 정부가 정책을 잘 꾸린대서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부는 여느 사람들이 보태는 돈으로 먹고사는 무리이지, 정부가 여느 사람들을 먹여살리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이 이룬 돈으로 길을 닦든 공항을 만들든 군대를 키우든 경찰을 두든 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으로 대통령이 밥을 먹든 군인이 밥을 먹든 공무원이 밥을 먹든 합니다.

 공무원이 없어도 나라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공무원이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없대서 민주주의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느 농사꾼이나 여느 노동자가 없을 때에 나라 또한 없어집니다. 여느 농사꾼이나 여느 노동자가 없다면 민주주의란 싹트지 않습니다.

 투표권이 민주주의이지 않습니다. 다수결이든 만장일치이든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란 나 스스로 일구는 내 살림살이입니다. 내 논밭을 알차게 일구는 삶이 민주주의입니다. 내 보금자리를 깨끗하게 돌보는 삶이 정치입니다.

 지역자치란 마을자치입니다. 지역 스스로 살림을 꾸린다는 얘기는 마을 스스로 살림을 꾸린다는 얘기입니다. 마을 스스로 살림을 꾸린다 할 때에는, 마을 지도자가 있어 슬기롭게 이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집에서 저마다 다 다른 길로 저마다 다 다르게 착하며 사랑스러이 살림을 일군다는 뜻입니다. 지도자이고 공무원이고 정부이고 대통령이고 하나도 대수로울 수 없습니다. 대수로운 한 가지라면, 나 스스로 내 살림을 얼마나 알차고 아름다이 일구면서 내 하루를 사랑하느냐입니다. 내 집이 평화요 평등이요 통일이요 민주요 꿈이면 됩니다.


.. 가난한 집 아이를 위해 나라에서 대신 교과서를 사 주겠다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교과서를 사 줬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 마음 놓고 교과서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국가는 의무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 “초등학교에서는 야간 수업이 허용되지 않아요.” “정식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아이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졸업장은 못 받아요.” 교장이 다시 말했다. “졸업장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배울 기회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어른으로 자라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졸업장은 받지 못해도 그 아이에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사와다 선생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 “방금 이치조 선생님은 장기 결석자는 우리 같은 평교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문부성이 해결해 줄까요.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요. 규칙이나 제도만 만들어 낼 뿐이에요. 예산은 어디에도 없어요.” ..  (172, 331, 334쪽)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하지만, 오늘날 교육이란 교육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육이란 오직 졸업장 따기입니다. 졸업장을 딸 때에 시험성적이 잘 나온 성적표를 받아쥘 졸업장 따기입니다.

 오늘날 한국땅 학교 가운데 ‘사랑이 숨쉬는 어린이’를 ‘착하고 해맑으며 싱그러이’ 이끌어 ‘아름다우면서 올바른 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돕겠다고 하는 데는 없습니다. 허울이야 교육이지, 모두 아이들을 틀에 박힌 기계처럼 다루거나 내몰기만 합니다. 수없이 많은 지식조각을 아이들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에 집어넣기만 하는 학교이고 교육인 오늘날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좋으며 즐거울까요. 어른들은 무엇을 가르쳐야 좋으며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자라야 기쁘며 반가울까요.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야 기쁘며 반가울까요.

 즐거움이나 기쁨은 성적표도 졸업장도 교육도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아닙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은 내 삶입니다. 참다이 교사 노릇을 하겠다는 이라면, 아이들이 하나하나 맑게 생각하고 밝게 뛰놀면서 제 결과 무늬를 찾도록 지켜보거나 거드는 길동무 노릇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옳게 어버이 노릇을 하려는 이라면, 아이가 늘 웃고 떠들면서 작은 몸뚱이에 튼튼한 힘살이 붙도록 따순 밥을 먹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힘쓰는 살림꾼 노릇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제도권학교도 대안학교도 교육이 아닙니다. 모두 울타리입니다. 참다이 배움터 구실을 하자면 참다이 삶터 구실을 해야 합니다.


.. 굳이 말한다면 사회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얻게 되는 걸까 …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학문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쳐 본들 과연 몇 명이나 그 핵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네안데르탈인이라든가, 쥐라기, 숭문토기 같은 고고학적인 전문 용어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외울 뿐이다 … 구체적인 지식을 몰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시험에서는 구체적인 지식만 알아본다.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는지가 당락을 결정한다 … 아이에게 구도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조화로운 색채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것은 예술 교육의 일부다. 그러나 도베 유조가 그린 불이 난 그림이나 와다 고스케가 그린 불길한 자화상은 예술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아이들의 마음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비극이다. 그 비극이 여과 없이 표현된 한 편의 슬픈 시다. 이것은 아이들의 하소연이며 고백이다 ..  (149∼150, 190∼191쪽)


 돈을 벌자면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돈이 되도록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돈을 벌자면서 쓴 글이란 문학이 아닙니다. 돈이 되도록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었으면서 예술이라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돌이킨다면, 돈을 벌자면서 썼기에 문학인지 모릅니다. 돈이 되도록 그리거나 찍었기에 예술인지 모릅니다. 살아가며 내 웃음과 내 눈물을 담아서 쓰는 글과 그리는 그림과 찍는 사진은 ‘문학도 문화도 예술도 아닙’니다. 그예 내 삶입니다.

 삶이 될 때에 비로소 글이라 하고 그림이라 하며 사진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삶이 되지 않고 돈이 되거나 힘(권력)이 되거나 이름값(명예)이 된다면 모조리 ‘문학·문화·예술’이라는 허울(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으랴 싶어요.

 삶이 될 때에 시나브로 배움이거나 가르침입니다. 곧, 삶이 되지 않고 돈이 되거나 힘이 되거나 이름값이 되도록 이끈다면 한낱 ‘교육’이 될 뿐입니다. 어느 교사이고 어버이이고, 아이들이 돈을 더 잘 벌도록 가르칠 수 없습니다. 돈을 더 잘 벌 일자리를 찾도록 아이들을 내모는 사람이라면 교사도 아니요 어버이도 아닙니다. 돈을 잘 벌 만한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성적표를 손에 쥐도록 닦달하는 사람은 교사일 수 없고 어버이일 수 없습니다. 교사나 어버이라 한다면, 교사와 어버이부터 사랑스레 살아가면서 아이들 누구나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돕습니다.


..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단 한 번도 정기 승진이 실시되지 않았다. 교사는 권리마저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치과 의사는 교사가 성직이라고 했다. 성직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고 교사의 권리를 무시한 채 완벽한 교육만 요구한다. 비좁은 교실에 정원 50명을 훨씬 웃도는 60명 가까운 아이들이 어깨를 맞댄 채 앉아 있다. 운동 장비도, 과학 교재도, 시청각교육에 필요한 설비도, 도서관도 제대로 갖춰 놓지 못하고 있다 … 이렇게 모인 교사들의 모습은 박봉에 시달리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더구나 여교사는 더 어둡고 초라해 보였다. 기업이나 관공서의 여직원들과 견주면 복장은 형편없었다. 머리 모습에도, 비옷에도, 신발에도 가난이 흠뻑 배어 있었다. 바로 그 여성들이 도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일본의 의무교육은 가난한 청년과 가난한 여성들이 유지해 왔다 … 교사라는 직업의 성격을 따지기 전에 그들은 분명 노동자였다. 노동자가 아닌 존재로 취급받을 까닭이 없었다. 하지만 선생들은 공장 노동자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부담을 강제로 짊어지고 세상의 비판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  (382, 396∼397쪽)


 착하게 살아가며 착한 마음밭을 함께 나눌 어른과 어린이입니다. 사랑스레 지내며 사랑스러운 마음자리를 서로 나눌 교사와 학생입니다. 믿음직하게 어깨동무하며 믿음직한 마음씨를 같이 맞잡을 어버이와 아이입니다.

 사람이 되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돈이 되거나 이름값이 되거나 힘이 되는 길 또한 하나입니다. 교육입니다.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람답게 이끌고 싶으면 사랑해야 합니다.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을 바란다면 교육을 할 노릇입니다.

 내 삶을 바탕으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바라보며 껴안을 때에는 사랑입니다. 교과서와 교재에 따라 성적표를 마련하고 시험을 치르려 하면 교육입니다.

 콩 세 알을 심어 한 알은 사람이 먹고 한 알은 짐승이 먹으며 또 한 알은 어찌저찌 흙으로 돌아간다면 사랑이고 삶입니다. 콩 세 알 모두 사람만 홀로 차지하며 먹으려 한다면 교육입니다. 종이 한 장을 맞들 때에 삶이고, 종이를 똑바로 들라고 시킬 때에 정치입니다.


 (3) 삶


 교육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야기책 《인간의 벽》 1권을 읽습니다. 《인간의 벽》 1권에는 “거대한 슬픔”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습니다. 큰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몹시 슬프다는 소리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슬프기에 사람들이 울타리를 높직하게 쌓을까요. 아니, 사람들은 어이하여 울타리를 높직하게 쌓고, 이렇게 높직하게 쌓은 울타리는 왜 사람들을 슬프게 할까요.


.. 그 어린 마음을 겪어 보는 기쁨은 저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만이 느낄 수 있다 … 아이들은 애정에 민감하다. 누군가 자신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주 기뻐한다 … 한마디뿐인 선생의 짧은 말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  (12, 154쪽)


 사람이 스스로 쌓은 울타리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며 이루는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아니, 사람으로 태어난 고마운 목숨을 참말 고맙게 여기면서 사랑을 나누어야 그야말로 사람일 텐데요.

 어린이도 어른도 사랑이 가장 반가우며 즐겁습니다. 학생도 교사도 사랑일 때에 가장 힘이 나고 아름답습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사랑으로 마주할 때에 애틋한 꿈결을 누립니다.

 가난한 아이들한테 장학금을 주어도 아이들은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한테 장학금 아닌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자리라면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럼없이 활짝 웃습니다.


.. 힘 앞에는 도리가 없다는 논리가 지난 1000년 동안 일본 사회를 지배해 왔다 … 윗사람이라는 계급의식이 부모들의 마음속에서 쉽사리 사라질 리 없다. 도쿠가와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감정이다 ..  (166, 220쪽)


 교육소설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며 나눌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고이 보듬고자 하는 꿈을 담은 이야기책 《인간의 벽》은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서로서로 어떻게 태어난 목숨이고, 서로서로 어떻게 자라는 목숨이며, 서로서로 어떻게 부대끼는 목숨인가를 살몃살몃 들려줍니다.

 주의주장이나 강요나 교육이나 이론이나 사상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인간의 벽》입니다.

 참배움을 나누려는 교사한테 길잡이가 될 만한 《인간의 벽》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야기를 펼치는 《인간의 벽》입니다.


.. 시노다 선생은 목 언저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으로 모래밭 위에 서 있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바닷가 동굴에 사람이 살고 있다 … 가나야마에게 과연 학교가 필요할까. 학교보다 생활이 먼저가 아닐까. 학교보다 생활이 먼저인 아이를 억지로 학교에 데려가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아버지와 아들을 마주하자 시노다 선생은 가슴이 쓰려 왔다. 이토록 가난이라는 것이 지독할 줄은 몰랐다. 이 가정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것이라고는 건강뿐이다. 오직 건강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다 … 아키오는 아마 학교에 오지 않을 테다. 공부는 배가 고프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다. 가난한 아키오에게 공부는 사치품일 뿐이다 ..  (353, 355, 357쪽)


 모든 교사는 어른입니다. 모든 어버이는 어른입니다. 모든 학생과 어린이(와 푸름이)는 아이입니다. 어른 앞에 선 아이요, 아이 앞에 선 어른입니다.

 물지게를 지면서 배우거나 가르칩니다. 밥숟깔을 뜨면서 가르치거나 배웁니다. 아기를 업고 논둑길을 걸으면서 배우거나 가르칩니다.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배우거나 가르칩니다.

 모진 바람이 그치지 않아 나무가 부러지거나 풀이 뽑히곤 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부러지건 풀이 뽑히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싹이 돋아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지구별에서 숲이 모조리 사라질는지 모릅니다. 지구별에서 숲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사람뿐 아니라 모든 짐승이나 목숨이 나란히 사라지겠지요. 지구별은 숨을 거둘 수 있고, 지구별은 모든 생채기를 천천히 삭이거나 씻으며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비가 오기에 흙땅에 골이 패여 냇물이 흐릅니다. 바람이 불기에 모래바람이 날리고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햇볕이 내리쬐기에 새싹이 기운을 얻어 한결 푸른 빛깔을 뽐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받는 사랑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자랍니다. 사랑과 함께 지식을 받아들이면 사랑과 함께 받아들인 지식을 예쁘게 나누겠지요. 사랑은 없이 지식만 맞아들이면 사랑이 없는 지식으로 홀로 쇠밥그릇을 챙기겠지요.


.. “부모 세대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려고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건 아니잖아요. 부모 세대와 다르게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을 키우려고 고생하는 거잖아요.” … 획일적인 의무교육은 이 아이에게도 영어를 가르치고,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고, 대수와 기하학을 가르칠 것이다. 미술 수업은 일 주일에 한 시간 정도. 아사이 요시오는 자신에게 없는 재능 때문에 절망해야 한다. 자신이 타고난 재능은 아무도 돌봐 주지 않는다. 표현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모든 어린이는 개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되며” 하고 어린이헌장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교육은 모든 아이를 똑같이 교육한다. 아사이 요시오는 의무교육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의무교육을 마쳐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열등의식만 자랄 뿐이다. 사회에 들어서기도 전에 패배자라는 절망을 맛본다 … 결국 아이를 만드는 것은 교과서가 아니다. 교사도 아니다. 친구도 아니다. 가정이다. 교육의 기본은 부모다. 교사는 다만 도와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자녀 교육의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만큼 부모들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  (143, 241, 261쪽)


 모든 고추포기가 똑같은 크기 똑같은 숫자 똑같은 부피로 고추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모든 볍씨가 똑같은 키 똑같은 알맹이 똑같은 굵기로 벼 열매를 맺지 않아요. 봉숭아 씨앗 하나에서 자라는 봉숭아는 모두 다릅니다. 돼지 한 마리가 낳는 새끼이든 고양이 한 마리가 낳는 새끼이든 다 다른 생김새이고 다 다른 모습이며 다 다른 삶이자 목숨입니다.

 스무 아이라 하든 예순 아이라 하든, 줄을 착착 맞추어 책상 앞에 앉았다 하더라도 다 다른 아이자 삶이자 목숨이자 사랑입니다. 다 다른 아이를 다 똑같은 책걸상에 앉히고 다 똑같은 급식을 먹이며 다 똑같은 교과서로 다 똑같은 교대 수업을 받은 교사한테서 다 똑같은 지식을 머리속에 담도록 하는 학교란, 말 그대로 학교가 되어 아이들한테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쥐어 줍니다. 이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도록 하느냐 하고 가르는 잣대가 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고, 열 손가락 모두 다 다른 크기와 생김새로 다 다른 노릇을 합니다. 호미를 쥐든 자판을 두들기든 젓가락을 쥐든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든, 다섯 손가락 더하기 다섯 손가락은 모두 다른 구실을 합니다.

 이야기책 《인간의 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자리에서 모두 다른 삶을 꾸립니다. 누군가는 사랑과 믿음으로 웃음과 눈물을 아끼려 합니다. 누군가는 돈과 이름과 힘으로 더 큰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지식으로 울타리를 쌓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기쁘고, 사랑이 없기에 슬픕니다. 사랑받는 보람을 느끼기에 예쁘며, 사랑받는 고마움을 모르기에 가엾습니다. (4344.4.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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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2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책인가 봅니다, 제게 참 좋은 리뷰고요~
여러가지 말들에 아침부터 가슴 뭉클합니다.

그중 오늘 아침은 '믿고 맡길 수 있도록 나부터 믿습니다.'를 곰곰이 생각해 보려구요~^^

숲노래 2011-04-28 12:09   좋아요 0 | URL
'츠보이 사카에'라는 분이 쓴 교육소설과 함께 이시카와 다쓰조 님 교육소설은 '교육 고전'일 뿐 아니라, 무척 훌륭한 '문학'이기도 해요. 우리 나라에서 교사와 부모들이 이러한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곰곰이 내 삶을 사랑하는 길을 찾아보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나는 닭 생생 푸른 교과서 6
장-클로드 페리케 지음, 얀 르브리 외 그림, 최인령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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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부터 모르는 ‘닭고기’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54] 장 클로드 페리케·얀 르브리·장 올리비에 에롱, 《나는 닭》(청어람주니어,2008)



 꽤 예전부터 어른책보다 어린이책이 더 많이 나옵니다. 어른책만 내던 적잖은 출판사들은 어린이책을 함께 내는 틀로 바꾸곤 했으며,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를 따로 새끼회사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읽힐 마땅한 책이 없다며 아쉽게 여기거나 안타까이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 대단히 많은 나머지 추리거나 가리거나 솎거나 골라야 합니다. 좋다고 할 만한 책을 추려서 책이름과 간기와 겉그림만 단출히 그러모은 ‘권장도서목록’만 하더라도 두툼한 책 하나가 될 만큼 이 나라 책마을은 달라졌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해마다 새로 나오는 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어린이책은 어른책보다 훨씬 많이 나옵니다만,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새로 나오는 책이 퍽 많습니다. 한 해만 지나도 여러 갈래 여러 이야기를 파고드는 여러 가지 책이 새로 태어납니다. 지난날에는 한 권조차 없던 이야기가 이제는 여러 권 되기도 하고, 지난날에는 아무도 다루지 않던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퍽 자주 다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른책에서 깊이 있게 살피거나 돌아보는 책은 차츰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어린이책에서 깊이 있게 살피거나 돌아보는 책을 한결 찬찬히 헤아리거나 곱씹는 어른책이 좀처럼 못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 시대가 바뀌면서 다른 모습의 닭들이 생겨났어. 농부들이 좋은 닭만 골라 키웠기 때문이야. 유럽 사람들은 작은 닭만 보다가, 19세기 중반 아시아에서 건너온 큰 닭을 보고 감탄했어. 곧 유럽의 닭과 아시아의 닭을 교배해서 종자 개량에 들어갔지 … 오늘날에는 알을 얻기 위한 닭과 고기를 얻기 위한 닭을 분리해서 사육해. 알을 더 잘 낳거나, 살이 더 많이 찌도록 품종을 개량했거든 … 고기를 얻기 위한 닭의 사육시설에는 물통, 먹이통, 그리고 배설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해. 하지만 그 수가 하도 많아서 한 마리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이 책을 펼친 크기 정도야. 게다가 닭들이 서로 물어뜯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부리의 끝을 잘라 버려. 야외에서 기르는 닭도 부리를 잘라 버릴 때가 있어. 사육기간은 다양한데, 표준 닭은 35일 내지 40일째에 목표 무게인 2킬로그램에 도달해. 때로는 너무 빨리 성장해서, 약한 발로 몸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  (12, 34, 36쪽)


 《나는 닭》이라는 이야기책을 펼치면서 생각합니다. 어린이책으로 나온 《나는 닭》이라는 이야기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닭 한삶을 헤아리는 데에 길잡이가 될 만큼 잘 빚은 알찬 책’이라 할 만합니다. 어린이들은 이 책 하나로 닭 한삶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책으로 ‘닭 한삶’을 알뜰히 다룬 이야기책으로는 무엇이 있다 할 만할까요. 아니, 어른들은 닭 한삶을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일이 있기나 하는지요. 닭고기를 밥으로도 먹고 술안주로도 먹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닭고기를 사 주는 어른들은, 닭튀김이니 백숙이니 닭곰탕이니 닭꼬치이니 훈제이니 숯불구이니 하면서 즐기는 어른들은, 흔히 값싸게 먹는 닭 한 마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기르며 어떻게 가게에 들어오는지를 알기는 할까요.


.. 병아리는 6개월이면 어른 닭이 돼. 그때부터 수평아리는 수탉, 암평아리는 암탉이 되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 암탉은 하루에 몇 번씩 알을 굴려서 골고루 따뜻하게 해 줘. 하루 종일 끈기 있게 알을 품고 있다가, 한 번씩 둥지에서 나와 먹이나 물을 먹고 배설을 해 … 닭을 비롯한 꿩과의 새들은 날기보다는 땅에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고, 땅바닥에서 먹이를 찾아. 닭은 아직 이런 습성이 남아 있어서 흙만 보면 단단한 발가락으로 땅을 헤치며 먹이를 찾곤 해. 닭은 흙이나 모래 목욕을 즐기는데, 먼저 땅을 파 모래나 흙이 깃털 속으로 들어가게 해. 그런 뒤에 푸다닥 털면 피부와 깃털 속에 있던 기생충이나 불결한 것들이 함께 떨어져서 깨끗하게 돼 ..  (29, 33, 66쪽)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는 ‘달걀이 몇 일이 지나야 깨어나는가’를 배웁니다. 앎조각으로 배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떠올리는 사람이 있으나, 나이가 들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닭》이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달걀이 깨려면 세이레가 걸립니다. 스물하루가 걸려요.

 《나는 닭》이라는 책에는 ‘사람들이 먹는 고기가 되는 닭’을 며칠 만에 길러내는지도 밝힙니다. “표준 닭은 35일 내지 40일째에 목표 무게인 2킬로그램에 도달해” 하고 들려줍니다. 여기에, 병아리가 어른 닭으로 ‘자연스럽게 자라기’까지는 얼마쯤 걸리는 지도 알려줘요. 여섯 달이 걸린다고도 알려줍니다.

 한국사람은 항생제와 촉진제를 써서 서른닷새보다 더 빨리 고기닭을 만들곤 합니다. 한국사람은 고기닭 한 마리를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합니다. 아예 다 익혀서 그냥 돈만 내면 값싸게 사먹을 수 있는 닭을 이름난 큰 회사에서 널리널리 팔곤 합니다. 2011년 3월까지 한국에 있는 ‘닭고기 체인점’이 만육천 곳이 넘는다 하는데, 동네에서 조그맣게 하는 곳까지 치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들 닭고기집에서 다루는 닭고기란 한 가게에서 한 마리만 팔아도 날마다 만육천 마리는 가볍게 넘겠지요.

 나라안에 손꼽히는 닭고기회사는 하루에 삼십만 마리이니 사십만 마리이니를 고기닭으로 다룬다고 합니다. 하루에 삼십만 마리를 다루는 닭고기회사가 세 곳이라면 날마다 백만 마리를 웃도는 닭이 고기가 된다는 소리이고, 날마다 백만 마리가 넘는 병아리가 새로 태어나 닭우리에서 자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닭이란, 사람한테 잡아먹히도록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태어나서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어야 하는 목숨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먹는 달걀은 닭고기보다 훨씬 많겠지요. 한국에서는 하루에 달걀이 몇 알쯤 사람들 입으로 들어갈까요.


.. 시골에서 암탉은 매우 소중해.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달걀을 낳아 주거든. 달걀을 낳지 못하면 닭을 요리해 먹을 수 있어 ..  (13쪽)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집에서 닭을 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닭을 칠 만한 널따란 마당을 마련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파트 툇마루에 닭장을 두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원하며 어여쁜 꽃밭은 마련할 테지만 닭우리를 두거나 닭을 풀밭에 풀어서 키우는 도시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기만 하지 않던 지난날에는, 시골집 어디에서나 닭을 풀어서 키웠고, 달걀을 때때로 고맙게 얻어서 먹었으며, 닭고기는 더욱 고맙게 여기며 잡아서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고부터는 닭을 치는 사람은 더 돈을 벌고자 더 좁은 우리에 더 많은 닭을 집어넣고 더 빨리 길러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닭을 더 맛나게 먹고픈 꿈을 키우며 돈만 치릅니다. 닭 한 마리 어떻게 자라거나 죽는가를 아는 도시사람은 몹시 드물어요.


.. 집약적 사육장에서는 닭의 사료에 항생제를 첨가해. 항생제를 먹인 닭은 많이 먹지 않아도 살이 빨리 찌거든. 그러나 항생제는 세균의 저항력을 키워서,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나게 할 위험이 있어 ..  (40쪽)


 아이들은 《나는 닭》을 읽으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곱씹어 봅니다. 닭은 어떤 짐승이고, 닭과 사람은 서로 어떤 역사를 이었으며, 더 크고 맛있다는 고기닭을 만들려고 사람들이 어떻게 ‘품종 개량’을 했는가를 알 수 있을까요. 고기닭을 만든다며 항생제를 쓴다는 대목이 한 줄 깃들기는 하지만, 정작 닭우리에서 어떤 항생제를 쓰고, 이 항생제 성분이 무엇이며, 이 항생제가 사람몸에 어떻게 파고드는지는 한 줄이건 한 낱말이건 다루지 못합니다. 고기닭한테든 고기소한테든 고기돼지한테든 먹이는 항생제를 알려면 《항생제 중독》(시금치,2005)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기짐승한테 먹인다는 항생제 이야기를 다루는 어린이책은 아직 따로 없구나 싶습니다. 항생제 이야기를 살뜰히 다루는 어른책 또한 몇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너무 바쁜 나머지 항생제를 쓰건 말건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들 또한 어른 못지않게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책 저 책 지식쌓기 하려고 읽기는 하지만, 아이 스스로 제 삶으로 삭이기까지 차근차근 톺아보기란 몹시 힘듭니다.

 이야기책 《나는 닭》은 어른들부터 모르는 닭고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 이러한 이야기책은 어른책으로 읽기보다 어린이책으로 함께 읽어야 ‘어른 스스로 이 나라와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결 쉬운 말과 더 차근차근 풀어낸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책이야말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함께 즐기면서 배울 이야기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이야기책은 이야기책으로 그치는 책일 수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새기는 이야기는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녹이도록 되새길 때에 뜻과 보람이 있습니다. 앎조각만 쌓으려 한다면 앎조각을 더 많이 쌓은 사람이 더 훌륭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겠지요. 삶으로 녹이도록 되새기며 살아가려 한다면, 책을 한 권만 읽었든 백 권을 읽었든 만 권을 읽었든, 나 스스로 착하며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착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테지요.

 책을 읽는다고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는 사람이 똑똑합니다. 집에서 닭을 치는 사람이라면 굳이 《나는 닭》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4344.4.25.달.ㅎㄲㅅㄱ)


― 나는 닭 (장 클로드 페리케 글,얀 르브리·장 올리비에 에롱 그림,최인령 옮김,청어람주니어 펴냄,2008.7.25./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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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기
 [푸른책과 함께 살기 69] 페터 헤르틀링, 《할머니》(비룡소,1999)



- 책이름 : 할머니
- 글 : 페터 헤르틀링
- 옮긴이 : 박양규
- 펴낸곳 : 비룡소 (1999.3.10.)
- 책값 : 6500원



 (1) 집식구로 살아가는 나날


 집에서 둘째를 낳으면 내 나이 마흔이 될 무렵 이 아이가 네 살이 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첫째가 올해에 네 살이니, 첫째는 세 해 뒤에 일곱 살이 되겠지요. 일곱 살이 될 첫째는 집일을 얼마나 도우면서 제 어버이 어깨짐을 덜 수 있을까 어림합니다. 아이가 어버이 몫을 떠맡는 짐꾼이나 심부름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집일을 찬찬히 거들지 못한다면 어버이로서 몹시 고단하거나 힘들밖에 없겠다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는 일, 나이를 먹으며 몸을 쓰는 일, 나이를 먹으며 아이와 부대끼는 일을 새삼스레 뒤돌아봅니다.

 여느 아버지들은 집일을 잘 모릅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앞날까지도 이 나라 여느 아버지들은 집일을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양반이나 사대부나 임금님 같은 사람들 말고, 땅을 일구며 조그맣게 조용히 살아가던 여느 살림집 아버지들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짚을 얹은 작은 흙집에서 온식구 복닥이며 지내던 곳에서 여느 아버지는 집일을 얼마나 돌보거나 알거나 챙겼을는지 궁금합니다. 예나 이제나 아버지들은 모든 집일을 그저 어머니한테만 맡기면서 바깥일만 했을는지 궁금합니다.

 집식구가 걱정없이 지내거나 느긋하게 지내거나 즐겁게 지내자면 집일을 잘 다스리고 집살림을 잘 꾸려야 합니다. 일과 살림을 알뜰히 북돋아야 합니다. 밥은 밥대로 챙기고 옷은 옷대로 건사하며 집은 집대로 돌봐야 합니다. 사람이 집안을 이루며 살아갈 때에는, 무엇보다 밥·옷·집을 옳게 거느려야 합니다.

 돈을 번대서 집일을 하거나 집살림을 하는 삶이 아닙니다. 돈을 버는 일은 그저 돈벌이입니다. 돈을 벌기에 집일이나 집살림을 어느 한 사람한테 떠넘기는 일은 집식구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오로지 돈벌이에만 마음을 쏟는 나머지, 정작 돈을 버는 까닭과 뜻을 잃는 슬픈 모습이에요.

 안타깝게도 참으로 많은 아버지들이 돈벌이에만 매달리며 막상 집일과 집살림에 등돌리거나 잊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날까지 아들을 키운 어버이들 또한 사내아이한테 집일과 집살림을 옳게 물려주거나 가르치지 못한 탓도 있을 테지만, 사내아이 스스로 집일과 집살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받아들이거나 배우려 하지 못한 탓도 큽니다.


.. 할머니는 돈이 없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당신의 몇 푼 안 되는 연금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가끔 불평을 했다. 그러나 사실 할머니는 불평하기보다 언제나 즐겁게 사는 편이다 … (칼레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시자) 할머니만은 그러지 않았다. 금세 눈물을 거둔 할머니는 칼레가 없는 사이 삼촌들과 숙모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어쩔 거냐? 살아 나가야지. 어쨌든 살아야 해. 칼레는 내가 데리고 가겠다. 같이 살면 돼. 삼촌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연세에요! 그러자 할머니가 그 삼촌을 비웃으면서 호통을 쳤다. 그럼 네가 칼레를 키울 거냐? 마음에 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 관심 없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옷값이 그렇게 비싸니 내가 어떻게 테니스를 칠 수 있겠니? ..  (7, 10∼11, 78쪽)


 남자와 여자, 또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이루는 사랑이란 서로를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따사로이 보듬는 일입니다. 보드라운 살결을 쪼물딱쪼물딱한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고 마음을 쓰며 마음을 쏟을 때에 사랑이 피어납니다.

 첫눈에 반하는 일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첫눈에 얼굴이나 겉모습이나 느낌이나 생김새에 반한’ 일일 뿐입니다. 첫눈에 반한 뒤로 사랑이 싹틀 수 있으나, 첫눈에 반했대서 착하거나 참다운 사랑으로 흐르지는 않아요.

 슬픈 노릇이지만, 오늘날 퍽 많은 사람들이 착하거나 참다운 사랑에 따라 짝을 찾거나 사귀지 못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 집안을 이루어 제금나거나 새 보금자리를 꾸린다면서 집일이나 집살림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으냐를 놓치거나 아예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집일만 알거나 집일을 조금 거든대서 집살림이 되지는 않는데, 그나마 집일에조차 손을 놓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스스로 삶을 일구지 못하고, 내 손으로 삶을 가다듬지 못하며, 서로서로 삶을 북돋우지 못하는 셈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지식과 정보를 머리에 쌓는 시험기계로 클 노릇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난 만큼 사람값을 하도록 삶을 깨닫고 살림을 배우며 집일을 거드는 튼튼한 어른으로 클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무나 양파를 썰 줄 모르면서, 김치를 썰 줄 모르면서, 파나 마늘을 다질 줄 모르면서, 감자나 당근을 갈 줄 모르면서, 미역국이나 된장국 하나 끓일 줄 모르면서, 죽이나 밥을 할 줄 모르면서, 볶음이나 조림을 할 줄 모르면서, 학교에서 시험성적 잘 받으면 무슨 보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걸레를 빨아 집안을 치울 때에 일을 거들 뿐 아니라, 제 잠자리는 제 손으로 치우고 깔며, 제 옷가지는 어버이 손에 맡길 노릇이 아니라 저 스스로 빨고 개어 건사할 줄 알아야 씩씩한 푸름이가 되고 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 칼레가 할머니를 도우려고 물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가게 주인들은 화를 냈다. 더러운 손으로 오이를 자꾸 만지지 말아라. 그러면 할머니는 점잖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저 오이를 칼레 손만큼 자주 씻어 주었나요? 할머니는 이렇게 멋진 유머를 할 줄 알았고, 그 점이 칼레 마음에 쏙 들었다 … 칼레는 할머니가 부모님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만약 네 고아 연금을 받게 된다면 형편이 조금 나아질 텐데. 공무원들이 일처리에 늑장을 부리니 말이야. 그 사람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 생각은 통 안 한다니까… (복지과 아동 상담원이)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오고 싶고,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돕고 싶다고도 했다. 할머니는 조금 화가 풀려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가씨, 지금까지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러기엔 이젠 너무 늦었어요. 칼레도 이제 미운 일곱 살이 아니니 괞찮아질 거요 ..  (19, 21, 68∼69쪽)


 아이들은 ‘좋다 하는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부터 ‘좋다 하는 책’을 가까이할 수 있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좋다 하는 책을 읽히려는 어버이라면 어버이부터 좋다 하는 책을 가까이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이가 받아들이거나 받아먹을 좋은 마음밥이라면 어버이 또한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이 나란히 먼저 받아들이거나 함께 받아먹을 일이라고 느껴요.

 좋다 하는 책을 아이한테 쥐어 주거나 읽어 주는 어른이라면, 좋다 하는 책이 왜 좋은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다 하는 책은 ‘이 책에 담긴 알맹이를 쓰거나 그리거나 엮거나 일군 사람’부터 스스로 좋다 할 만한 삶을 일구어야 태어납니다. 좋다 할 만한 삶에서 좋다 할 만한 앎이요, 좋다 할 만한 앎을 좋다 할 만한 넋과 좋다 할 만한 손길로 보듬어 좋다 할 만한 이야기로 빚습니다. 좋다 할 만한 이야기를 좋다 할 만한 땀방울을 들여 좋다 할 만한 책으로 엮어 내놓습니다.

 좋다 할 만한 책이라면, 이러한 책을 장만해서 즐기려는 사람들 또한 좋다 할 만한 삶을 꿈꾸면서 스스로 좋다 할 만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좋다 할 만한 사람으로 살 때에 ‘좋다 할 만한 이야기’를 좋다 할 만한 넋으로 아로새기면서 나부터 좋다 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한편, 내 아이와 이웃 아이한테 좋다 할 만한 사랑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책은 지식으로 머리속에 가둘 수 없어요. 책은 오직 내 삶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 전쟁이 끝나기 직전, (칼레 아버지는) 공군 보조병으로 전선에 불려 갔지. 그러곤 폭탄을 터뜨려야만 했어. 그토록 어린 아이들이 대포를 쏘아야 했다니! 야, 재미있었겠다. 칼레가 불쑥 말했다. 재미라고? 너희들은 장난감 총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기 때문에 진짜 전쟁이 재미있겠다고 하는 거냐? 그래도 진짜 전쟁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을걸. 전쟁이 나면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지니까 ..  (35∼36쪽)


 아이한테는 돈을 더 물려주다고 해서 사랑이 싹트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사랑을 물려주어야 사랑이 싹틉니다.

 고운 옆지기한테도 돈을 더 벌어 준대서 사랑이 싹트지 않습니다. 돈을 더 벌어 주면 돈이 싹틉니다. 사랑이 싹트자면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돈이 없거나 모자란 살림살이라 하지만 알콩달콩 오순도순 복닥복닥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을 못 물려주’지만 ‘사랑을 아낌없이 물려주’는 삶이에요. 돈이 많거나 넉넉한 살림살이라 하지만 따분하고 메마르며 썰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은 실컷 물려주’지만 ‘사랑은 조금도 못 물려주’는 삶이겠지요.

 돈이 넉넉해서 예쁜 옷도 입고 자가용도 몰며 맛나다는 밥을 마음껏 사다 먹는다 해서 아이나 어른이 모두 즐거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돈이 늘 쪼들려 바깥밥은 엄두를 못 내고 밥상 반찬 가짓수 또한 몇 안 된다지만 밥상머리에서 실컷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아이나 어른이나 나란히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서로서로 집식구로 사랑할 노릇이에요. 다 함께 집식구로 집일을 거들어야지요. 나란히 어깨동무하면서 집살림을 알뜰히 꾸리는 나날입니다.


 (2) 할머니와 살아가는 아이


 이야기책 《할머니》(비룡소,1999)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할머니》라는 이야기책에는 할머니 한 사람과 어린이 한 사람이 나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잃은 ‘칼레’라는 어린이는 할머니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다른 피붙이들은 칼레라는 어린이를 건사하려는 마음이라기보다 칼레라는 짐덩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를 놓고 걱정했습니다.

 할머니는 나이도 있고 몸도 있기에, 어린아이 하나를 내내 돌보며 건사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할머니한테는 돈이나 몸(체력·건강)은 없어도 마음(사랑·믿음)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당신한테 없는 돈이나 몸으로 아이를 맡아서 돌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당신한테 알뜰히 있는 마음으로 아이를 아끼며 보살피고 싶습니다.


.. 할머니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칼레를 다시 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우리 둘이 집에서 서로 적응하는 편이 더 낫다. 칼레는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할머니와 함께 하루를 보내노라면 항상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 칼레는 할머니가 옛날얘기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이십 년 전, 혹은 사십 년 전에 겪은 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 기차를 탔을 때나 결혼식 때 어떤 옷을 입었는지, 잔치 음식으로 무엇이 나왔는지도 훤히 알고 있다 … 할머니는 이미 본 옛날 영화들은 꼭 다시 보려고 한다 ..  (17∼18, 34, 104쪽)


 할머니는 아이한테 책을 읽어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아이한테 책을 사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아이한테 자가용을 태워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아이한테 자전거를 사 주지 못합니다.

 할머니는 오로지 이야기꽃만 피울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늘 당신 몸으로 ‘살림하며 꾸리는 삶’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노상 당신 손으로 빚은 밥을 차려서 내놓고, 당신 손으로 아이 옷을 빨아서 입힙니다.

 아이는 이제 처음으로 ‘돈이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진 ‘무언가 다른 날’을 시나브로 맞아들입니다. 영화 〈아이 앰 샘〉에 나오는 계집아이는 ‘돈으로는 채울 수 없는 사랑’을 알기 때문에 ‘몸이 아픈’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어 해요. 지능이 늘 제자리에 머물어 이제 나(딸아이)보다 지능이 낮고 만 아버지인 줄 진작에 알아채지만, 제 아버지가 잠자리마다 읽어 주는 ‘닥터 수스 그림책’을 무척 재미나게 들으면서 좋아합니다. 제 아버지는 저한테 더없이 큰 사랑을 나누는 멋진 집식구이거든요.


.. 칼레는 삼 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학교 생활이 순조롭지 않았다. 할머니가 숙제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가끔은 설명을 못할 때도 있었다. 이런 엉터리 같은 것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프네. 뭣 땜에 이런 것을 배워야 하지. 불쌍한 녀석들. 칼레도 동감이었다. 칼레는 할머니에게 숙제를 도와 달라는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숙제도 반 정도만 하기로 결심했다 … 칼레야, 열 살이면 벌써 생각할 줄 아는 나이지. 나이에 비해 넌 많은 것을 겪기도 했고. 할미가 지금 하는 말을 잘 생각해 봐. 난 이미 일흔이 넘었어. 아무도 내 나이를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지만, 너보다 내가 예순 살이 더 많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겠니? 아니오. 칼레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  (62, 121쪽)


 이야기책 《할머니》에 나오는 할머니는 그야말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한테도 이름이 있을 테지만, 칼레한테든 다른 사람한테든 학교 교사한테든 공무원한테든,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입니다.

 아마 오늘날이나 지난날이나 앞날에 이르기까지, 여느 살림집에서 어머니는 늘 어머니이겠지요. ‘칼레 할머니’이듯 ‘아무개 어머니’일 테지요.

 학교에서 교사는 교사입니다. ‘어른 아무개’가 아닌 ‘교사 아무개’이거나 ‘무슨 과목 교사 아무개’입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이들은 ‘저마다 맡은 교과서로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을 물려주는’ 몫을 맡습니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이 다 다른 아이들 삶에 어떻게 스며들거나 파고들어 다 다른 아이들 삶을 북돋울까를 헤아리는’ 몫은 맡지 않습니다.

 맨 처음부터 학교라는 곳이 사랑보다 지식으로 세워졌는지 알쏭달쏭하고, 맨 처음부터 교사라는 사람이 사랑보다 지식으로 꽁꽁 얽매였는지 아리송합니다. 왜 학교에서는 ‘지도’를 하고 ‘교육’을 하며 ‘학습’을 시키고 ‘평가’를 할까요.

 밥먹기에는 지도나 교육이나 학습이나 평가란 없습니다. 밥을 더 잘 먹거나 맛나게 먹는 길이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어 벼를 거두든 감자를 거두든 꽃을 보든, 더 잘 일구거나 멋지게 일구는 길이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는 일이란 겨루기(실적 경쟁)가 아니니까요.

 다달이 30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250만 원을 버는 일자리보다 더 나은 일자리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다달이 20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150만 원을 버는 일자리보다 더 좋은 일자리인지 아리송합니다. 다달이 10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50만 원을 버는 일자리도 더 아름다운 일자리인지 궁금합니다. 다달이 50만 원을 버는 일자리가 다달이 버는 돈이 없는 집살림보다 더 사랑스러운 일자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돈을 버는 일자리가 되어야 좋은 삶인지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돈을 벌지 않는 삶자리는 좋지 않은 삶이거나 어여쁘지 못한 삶인지 고개를 기우뚱해 봅니다.


.. 칼레는 이제 늙은 사람들이 두렵지 않았다. 비록 답답하기도 하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지만, 양로원도 세상의 한 부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와 칼레는 서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에 모아 놓은 가축처럼 살아야 하다니, 끔찍한 일이야. 모두들 저렇게 늙어서 … 나도 그 노인들과 다를 바 없어. 단지 양로원에 살지 않고 내 집에서 손자와 함께 산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그래서 나이든 것도 달라 보이는 거야. 나이든 사람들끼리만 살면서 삶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나이 먹은 게 끔찍하지 ..  (101, 102쪽)


 이야기책 《할머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삶을 다루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머니를 섬기거나 좋아하자는 이야기라든지, 어버이를 잃었다는 불쌍한 아이 이야기를 담은 《할머니》는 아닙니다. 저마다 다 다른 삶이 있다고 속삭이면서, 저마다 다 다른 삶은 이대로 예쁘고, 기쁜 결대로 사랑하며 꾸리는 길을 즐거이 찾아 돌보자는 이야기를 담는 《할머니》입니다.


 (3)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기


 누구나 한 사람으로 오롯이 우뚝 서야 합니다. 망아지이든 새끼 사슴이든 송아지이든, 갓 태어난 날부터 제 다리로 씩씩하게 일어섭니다. 새끼 짐승은 갓 나는 자리부터 네 다리를 툭툭 털며 비틀비틀 걷습니다.

 ‘새끼 사람’이라 할 아기는 갓 날 적부터 걷지 못합니다. 참 오래도록 돌보고 아끼며 사랑해야 합니다. 겨우 걸음마를 떼었다지만 어른 말을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또 오래도록 말을 가르치고 옹알이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새끼 짐승이든 새끼 사람이든, 제 어미나 어버이가 보여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따릅니다. 새끼를 낳은 짐승이라면 새끼가 찬찬히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어미답게 살아갑니다. 아기를 낳은 어른이라면 아기가 천천히 보며 익힐 수 있게끔 어버이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으로 배우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좋은 책’으로 배우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로 배우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노상 ‘내 어버이 삶’을 바라보며 배우거든요.


.. 할머니는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섰다. 여보슈, 당신은 내 연금이 얼만지 알 거요. 거기 적혀 있을 테니까. 아이 하나가 하루에 얼마나 먹어대는지, 바지나 양말은 얼마나 잘 떨어지는지, 아이 밑에 들어가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시오? 내가 재벌이나 공장 주인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아니면 뭐요! … (텔레비전에) 아이와 함께 사는 연금 생활자의 얘기라든가 고아 연금에 대한 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데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지? ..  (31, 106쪽)


 공무원이 되면 다 똑같아진다고 합니다. 군인이 되어도 다 똑같아집니다. 경찰이 되건 국회의원(정치꾼)이 되건 다 똑같아집니다. ‘보고 배울 웃사람이나 이웃’ 삶자락을 고스란히 따르기 때문에 똑같아집니다.

 집에서 일과 살림을 거뜬히 즐길 뿐더러 아름다이 살아가는 어버이라 한다면, 아이는 제 어버이 결을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꽃을 사랑하는 어버이 곁에서 꽃을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흙을 북돋우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북돋우는 아이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어버이 곁에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살아가는 대로 살아갈 아이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아이예요. 어버이 되는 사람은 더 넓은 집이나 더 높은 이름값이나 더 많은 돈이 아닌, 어버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으로 맺으며 활짝 웃을 만한 보금자리에서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이는 책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아파트나 자가용이나 학력을 물려받을 때에 즐거울 삶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들판과 멧자락에서 지저귀는 새가 무슨 새인지 모르는 어버이 곁에서는 새소리를 모르는 아이가 자라날 뿐입니다. 바람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구름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는 어버이 곁에서는 날씨와 자연을 모르는 아이가 클 뿐입니다.

 아이가 일찍부터 영어를 썩 잘 한다든지, 무슨무슨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들어갔대서 기뻐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착하거나 참답거나 어여쁜 넋과 마음밭이 살찌우지 않는다면, 하나도 기뻐할 수 없습니다.


.. 사람들은 가끔 할머니와 같이 사는 게 어떤지 물었다. 칼레는 이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칼레는 할머니와 같이 사는 생활 말고는 다른 어떤 생활도 알지 못한다. 어쩌다 할머니와 싸우기도 하지만 칼레에게는 할머니가 최고였다 ..  (46쪽)


 어른은 어른대로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우뚝 서야 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한 사람답게 오롯이 우뚝 서야 합니다. 저마다 슬기롭고 아리따운 꿈과 땀을 누려야 합니다. 서로서로 따뜻하며 너그러운 품으로 껴안아야 합니다.

 사랑은 돈으로 이루지 못하고, 돈은 사랑을 꽃피우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굶는다지만, 사랑이 없으면 메마르고 맙니다. 돈이 없으면 동냥을 할 수 있으며, 돈이 없으니까 이웃한테서 밥을 얻을 수 있습니다. (4344.4.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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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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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사람 뼈다귀를 만지작거린대서
 [책읽기 삶읽기 48] 폴 콜린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양철북,2011)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이라는 이야기책은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이 죽고 나서, 이이 뼈다귀가 어떻게 돌고 돌아 이제 어디에 얼마나 흩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우리 나라로 친다면, 다산 정약용 님 무덤을 누군가 파헤쳐서 뼈다귀가 이리저리 흩어졌다는 줄거리를 다루는 셈입니다. 또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무덤을 파헤쳐 뼈다귀를 요모조모 빼돌린다는 이야기를 다루는 셈입니다.

 서양사람도 참 할 일이 없지, 뭣하러 뼈다귀를 파내어 이 뼈다귀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울까 궁금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뼈다귀를 파낸 발자취를 좋는 이야기책까지 쓴다니, 그야말로 한갓진 삶이 아닌가 할 만하기도 합니다. 학문이나 문학이 갈 데까지 가면서, 이렇게까지 부질없다 싶은 대목까지 다루어야 하는가 싶기도 해요.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본다면, 서양사람은 한국땅에 들어와 무덤파기를 꽤나 즐겼습니다. 일본사람은 이들 서양사람한테서 배우며 한국땅 옛무덤 파헤치기를 퍽이나 즐겼습니다. 서양사람은 이집트 옛임금 무덤만 파헤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책에도 또렷이 적히듯이, 서양사람은 한국땅에서 옛나라 옛임금 무덤을 찾아내어 파헤치며 보배를 빼돌리려 했어요.


.. 때로 잊고 지내던 경건함이 이들을 다시 찾아오곤 했다. 페인이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목사들과 좋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끝없이 찾아와 페인을 괴롭혔다. 페인이 이단적 주장을 철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어 찾아왔다 ..  (24쪽)


 영국에 있다는 대영박물관은 무덤파기 따위를 하면서 긁어 모은 다른 나라 보배를 쑤셔넣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무덤파기뿐 아니라 숱한 싸움을 일으켜 이웃나라라든지 먼나라를 무너뜨리거나 짓밟으면서 보배를 빼앗았습니다.

 영국하고 이웃한 프랑스도 영국하고 똑같은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프랑스와 이웃한 독일이라든지 네덜란드도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에스파냐나 포르투갈이래서 다르지 않아요. 이탈리아나 그리스는 어떠했을까요. 스웨덴이나 터키는 어떠했을까요.

 저마다 이름과 힘과 돈이 드높을 때에는 어김없이 이웃나라나 먼나라로 쳐들어갑니다. 일본도 매한가지였으며, 중국 또한 다르지 않아요. 이 나라 한국도 잘 살피면, 지난날 고구려 때에 멀디먼 곳까지 땅을 넓히려고 창과 방패를 앞세워 깊디깊은 마을까지 찾아가서 싸움을 일으켰습니다. 아니, 고구려가 나라밖으로 땅을 넓히기만 했는가요.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도 난 듯이 죽이고 죽는 싸움을 오래도록 벌였습니다.

 군대가 있을 때에 사이좋게 어깨동무한 적이란 없습니다. 군대가 있는 나라가 평화를 사랑한 적이란 없습니다. 군대를 두는 임금이나 권력자가 사람들을 따스히 사랑하거나 어여삐 아낀 적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남녘땅에도 군대가 어마어마합니다. 북녘땅에도 군대가 무시무시합니다. 남북녘 권력자는 저마다 군대를 아주 크게 북돋우면서 막상 이 나라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에는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피땀을 그러모아 더 센 힘과 더 큰 돈과 더 높은 이름을 탄탄한 울타리로 쌓아올립니다.


.. 페인은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부터 시작한다. ‘모든 왕은 불합리하다.’ 페인은 군주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인 고귀한 혈통을 부인하여 이런 주장을 펼친다 … 페인이 쓴 모든 글은 모든 왕, 모든 불합리한 권위, 전 세계의 크고 작은 폭군 모두를 공격하는 글이었다 … 페인은 정중한 토론을 벌이지 않는다. 그런 전통은 필요없으니 합리적인 이유를 대라고 한다 … 페인이 미국에 제시한 것은 완전한 재탄생, 죽은 과거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 《영국 재무 제도의 몰락》은 영국 정부가 국외 탐험에 돈을 대기 위해 마구잡이로 통화를 발행해 빚이 계속 늘어 가고 있음을 비난했다 … 정부는 국내의 지지와 외국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37, 39, 40, 58쪽)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 뼈다귀를 놓고 이런 문학책 하나까지 나온다 한다면, 이이는 여느 수수한 사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역사이든 영국 사회이든 뒤흔들었다고도 하는데, 이이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으면서 이이가 밝히려 했던 빛줄기를 느끼는 일을 대수로이 여겨야 한다는 뜻에서 이 같은 문학을 빚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토머스 페인이 남긴 발자국이나 빛줄기를 찬찬히 살피거나 짚거나 돌아보는 동안, 이 한 사람이 지키려 하던 뜻을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지키거나 돌보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아니,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 뼈다귀도 어디로 흩어졌는지 아리송할 뿐더러, 토머스 페인이라는 한 사람이 외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아로새기는가 또한 아리송합니다. 아니, 민주도 평화도 사랑과 평등도 자유도 어디로 꼬리를 감추는지 아리송합니다.

 미국은 끝없이 새 무기를 만들며 새 전쟁을 크게 터뜨리려 합니다. 미국한테 문화 식민지·경제 식민지·정치 식민지처럼 나뒹구는 한국땅 또한 엄청난 돈과 품을 들여 ‘미국이 만든 새 무기’를 자꾸자꾸 사들일 뿐 아니라, 너무도 많은 전쟁무기를 건사하느라 나라살림이 삐걱댈 만하다 합니다. 그나마 남녘땅 사람들은 자연을 아주 깡그리 무너뜨리며 버티니까 북녘처럼 사회나 정치가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남녘 삶터가 북녘 삶터처럼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남녘땅 자연을 온통 파헤치며 도시살림을 북돋우기 때문이요, 이웃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중남미나 동남아시아 자원을 마구 갖다 쓸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피땀을 울궈먹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며 ‘낮은 자리 여느 수수한 사람’끼리 어깨동무를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서로서로 싸우도록 내몰기 때문입니다.


..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단순한 몸짓,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마감일에 쫓겨 허둥지둥 쓴 글. 이런 것들이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고,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몸짓, 그 말 한 마디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감동받은 사람이 사실은 자기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 줄 무언가를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144쪽)


 미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바른 생각’을 못합니다. 일본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착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중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고운 꿈’을 품지 못합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람은 ‘상식’이 없는 미국사람을 일깨우려고 애썼다는데, 한국땅에서는 ‘상식’이 없는 한국사람을 일깨우거나 이끌거나 어루만지려는 목소리나 움직임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교육운동은 있어요. 그렇지만 ‘상식’은 없습니다. ‘삶’이 없고 ‘살림’이 없습니다.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사람’이 모습을 숨깁니다.


.. 늘 그런 식이지 않은가? 토머스 페인의 유해조차도 수 세기 동안 띄엄띄엄 반쯤은 기억되고 반쯤은 잊힌 채로 있었다. 토머스 페인의 뼈가 어디로 떠돌았는가에 대한 진짜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도 많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페인의 무덤을 파낸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252∼253쪽)


 한국땅에서는 ‘토머스 페인 읽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 사람을 읽기가 어렵기 앞서 ‘상식 읽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래서 ‘토머스 페인 읽기’를 잘 한다고 여기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미국사람 스스로 ‘상식 읽기’를 거의 안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산업이란 ‘군산복합체 산업’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거나 전쟁터 군인으로 일하는 산업이 가장 발돋움한 미국입니다. 그러면 한국은? 한국에는 군인이 몇 사람이나 되지요? 군인하고 얽힌 회사나 가게나 일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한국 정부가 국방비로 쓰는 돈은 얼마나 되나요? 직접 세금으로 쓰는 국방비 말고 여러모로 뒤따르는 국방 예산은 얼마나 되려나요?

 친환경무상급식을 너나없이 외칩니다만, ‘친환경 먹을거리’를 마련하려는 농사꾼은 한국땅에서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친환경 먹을거리는 도시 아닌 시골 논밭에서 일구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땅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얼마나 많이 새로 닦으며, 얼마나 많은 아파트가 쏟아집니까. 도시는 얼마나 커지고, 도시사람은 얼마나 돈에 목말라 돈벌이에 미친 듯이 달겨드는지요.

 온통 돈에 목마른 한국사람들인데, 아니, 돈에 미쳤다 할 만한 한국 어른들인데, 한국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알쏭달쏭할 뿐더러, 친환경무상급식을 한대서 무엇이 나아지거나 좋아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교육이 엉터리인데 급식 하나 한대서 무엇이 거듭나려나요. 무엇보다 교육이 없이 입시지옥만 있는데, 급식 노래를 부른대서 무엇이 달라지려나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토머스 페인 삶’이 아닌 ‘토머스 페인 뼈다귀’만 들여다보는 눈높이와 눈썰미와 눈길에서 이야기가 비롯했다가 이야기가 끝납니다. 죽은 사람 뼈다귀는 끝내 찾을 수 없고, ‘산 사람이 슬기롭게 어루만질’ 알맹이 또한 끝끝내 알아볼 수 없습니다. (4344.4.12.불.ㅎㄲㅅㄱ)


―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사건 (폴 콜린스 글,홍한별 옮김,양철북 펴냄,2011.2.25./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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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파랑새 청소년문학 7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예령 옮김, 박형동 그림 / 파랑새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아이를 왜 학교에 보내는가
 [책읽기 삶읽기 49] 르 클레지오,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파랑새,2003)



 우리 집은 시골마을 멧골자락에 있습니다. 우리 살림집이 깃든 멧골자락 위쪽에는 멧골학교인 이오덕학교가 있습니아. 이 멧골학교 이오덕학교에서는 여섯 살 어린이부터 열네 살 푸름이까지 복닥복닥 어우러지면서 학교살이를 합니다. 올해로 네 살 난 우리 아이는 지난주부터 혼자서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 올라가 언니 오빠하고 놀곤 합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우리 아이를 학교에 넣을 마음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이든, 학교라는 데가 삶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배우거나 나눌 만한 터전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괜찮다 싶은 배움터는 ‘아이를 대학교에 넣을 생각이 없도록 맞춘 틀’에 따라 지식을 가르치는 곳에서 머뭅니다. 한국땅에서 대학교는 대학교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굳이 대학교에 갈 까닭이 없습니다. 한국땅에서 대학교가 대학교 노릇을 안 하는데 이런 곳에 큰돈을 들이면서까지 젊은 나날을 보내야 한다면, 아이들은 누구나 젊은 삶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어여삐 펼칠 수 없습니다.

 ‘88만 원 세대’이니 ‘한 해 등록금 천만 원’이니 하기 때문에 대학교가 말썽거리일 수 없습니다. 대학교는 이름 그대로 ‘큰 배움터’ 몫을 안 하니까 말썽거리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배움터’입니다. ‘배우는(學) 터(校)’인 학교입니다. 애써 토박이말로 풀어서 써야 하는 이름 ‘배움터’가 아니라, 삶을 삶 그대로 또렷하게 바라보며 환하게 살펴야 하니까, 이름 그대로 곱씹는 배움터입니다.

 교과서 지식이든 책 지식이든, 온갖 지식을 머리에 넣는 일이 배움이나 가르침이 되지 않습니다. 밥하기 지식이란 밥하기 지식이지 밥하기 삶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날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교과서로 지식을 외우도록 시켜서 시험문제 풀이를 하는 일이란 배움이나 가르침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그저 ‘시험’입니다. ‘입시’예요. 실과가 실과 노릇을 하자면, 아이들이 수업 때에 손수 밥을 하고 반찬을 하며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받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밥때에 스스로 밥을 해야 합니다. 남이 해 주는 밥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을 아이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주 어린 아이라면 제 어버이나 다른 어른이 밥을 차려 주어야겠지요. 그렇지만 여느 학교에 들 나이라면, 적어도 설거지는 손수 해야 하며, 밥상을 스스로 차릴 줄 알아야 하고, 열 살 무렵이면 스스로 밥을 해야 합니다. 무상급식도 좋고 친환경무상급식도 좋습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건 무슨무슨 급식이건, 급식은 교육, 곧 배움이나 가르침이 되지 않아요. 질서나 통제나 관리는 될 테지만, 배움이나 가르침이 될 수 없는 급식입니다. 아이들은 내가 먹는 밥이 누가 농사짓거나 길러서 내가 얻을 수 있으며, 이 먹을거리를 어떻게 손질하거나 다루어 고맙게 먹는가를 몸으로 부대끼며 깨우쳐야 합니다. 날마다 두세 끼니 먹는 밥을 차리느라 날마다 어느 만큼 품과 땀과 겨를을 들여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밥을 차렸으니, 고맙게 밥을 먹습니다. 고맙게 밥을 먹었으니, 즐겁게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를 마친 다음에는 밥을 먹은 곳을 치워야겠지요. 늘 옷을 입으며 살아가니까 내 옷을 내가 빨아야 합니다. 저녁이면 언제나 잠자리에 드니까 이부자리는 내가 개거나 마련하는 한편, 아침에 이불을 털거나 말리는 몫 또한 나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불빨래 또한 아이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학교버스에 태우는 일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버스가 아닌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스스로 타며 학교에 다녀야 합니다. 배우러 다니는 일이란, 집과 학교 사이를 빠르게 가로질러 다니는 일이 아닙니다. 내 살림집(보금자리)과 배움집(학교) 사이에 놓인 숱한 이웃과 마을과 자연을 두루 맞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학교 둘레나 집 둘레에는 ‘나쁜 가게나 시설이나 공장’이 있어서는 안 돼요. 우리 스스로 ‘나쁜 가게나 시설이나 공장’을 집이나 학교 둘레에 마련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처음부터 나쁜 가게나 시설이나 공장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공장이 없으면 물건을 어떻게 쓰느냐 할 텐데, 끔찍한 환경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쓰레기를 낳으며 물건을 만들기보다는, 물건을 안 쓰거나 적게 쓰면서 수수하고 예쁘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옳고 좋은 우리 터전입니다.


.. 밖을 내다보니 햇빛이 환했다. 몸을 조금 숙이자 한 조각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 륄라비는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바위 틈에는 아무도 없었다. 륄라비는 계속 제 갈 길을 갔다. 바위를 기어오르고, 다시 내려가고, 갈라진 틈새를 뛰어넘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다다른 곶의 끝자락에서 륄라비가 발견한 것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고원과 그리스식 집 한 채였다 ..  (7, 31쪽)


 청소년문학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를 읽습니다. 르 클레지오 님이 쓴 청소년문학이라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청소년 ‘륄라비’는 둘레 어른이나 동무 누구한테도 딱히 말하지 않고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은 륄라비는 학교에서 지냈더라면 느낄 수 없던 ‘눈부신 햇살’을 느낍니다. 학교에 머무는 동안 느낄 수 없는 ‘바다와 자연과 길’을 느낍니다.

 학교를 다니는 거의 모든 아이들은 ‘눈부신 햇살’을 비롯해서 구름이나 달이나 바람이나 흙이나 풀이나 꽃이나 나무나 개구리나 참새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거의 모든 아이들은 교과서와 문제집과 참고서만을 느끼며 맞아들여야 합니다. 교사와 칠판과 교과서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창밖을 바라본다든지, 졸려서 엎드려 잔다든지, 딴생각을 하느라 꿈결을 헤매는 일을 할 수 없는 학교입니다. 시험문제를 잘 풀어 등수가 높은 아이일 때에 사랑받는 학교요, 꿈과 마음씨가 아름답대서 사랑받는 학교가 아닙니다.


.. 차창을 닫은 신형 자동차 속 사람들의 표정이 자못 바빠 보인다 … 륄라비는 자신의 모든 눈으로 모든 곳을 바라보았다 … 륄라비는 먼지 때문에 눈을 반쯤 감고 성큼성큼 거리를 걸었다 ..  (14, 46, 74쪽)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돈을 법니다. 학교를 나와서 돈을 버는 일자리를 얻습니다. 학교를 나오며 돈벌이를 찾습니다.

 고마운 목숨을 얻어 태어난 아이들은 갓난쟁이와 어린이와 푸름이를 거쳐 젊은이로 무럭무럭 크는 동안 아름다움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믿음이라든지 나눔이라든지 꿈이라든지 느끼기 어렵습니다. 손수 흙을 일군다든지 맨발로 흙을 밟는다든지 싱그러운 봄바람과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든지 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날에는 예닐곱 살부터 지식 외우기를 했다면, 오늘날에는 두어 살부터 지식 외우기를 하고, 아이들은 먼 뒷날 ‘돈을 얼마나 잘 많이 크게 벌어 돈을 얼마나 잘 많이 크게 쓰면서 물질문명을 누리는가’에 따라 길들여지기만 합니다.


.. 이곳엔 저 혼자뿐이지만, 전 아주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 이제 학교엔 가지 않을래요. 이미 결심했으니 다 끝난 얘기예요.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 때문에 감오에 가게 된다고 해도요. 따지고 보면 감옥이 학교보다 나쁠 것도 없고요 … 륄라비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륄라비가 말했다. 고함을 지른 것도 아닌데, 교장은 마치 륄라비가 그러기라도 한 듯 매우 강경한 어조로 대응했다. “그 녀석 이름을 대라!” “전 사귀는 남자 친구 같은 거 없어요.” ..  (28, 85쪽)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던 륄라비는 다시 학교에 갑니다. 다시 학교에 간 륄라비는 (아마 예전에도 비슷했으리라 느끼는데) 그닥 사랑받지 못합니다. 주어진 틀에 맞추어 주어진 지식을 얻으려 하지 않은 륄라비이기 때문입니다. 시키는 틀에 스스로를 맞추지 않은 륄라비는 어른들이 시키는 틀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삶도 사랑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제 삶을 일구는 길을 가르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저마다 아끼며 사랑하는 길 또한 가르치지 못합니다. 참사랑이든 짝사랑이든 풋사랑이든 무슨무슨 사랑이든, 사람이 살아가며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나날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동안 어떤 학교를 왜 다녔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과서를 조금 더 훌륭하거나 예쁘거나 멋지거나 좋게 엮으면 학교교육이 나아질까요. 한 반 아이들 숫자를 더 줄여 교사 한 사람이 맡을 아이를 줄이면 학교교육이 좋아질까요. 교사들한테 달삯을 더 주고 자질구레한 행정서류를 줄이면 학교교육이 거듭날까요.

 교육노동자라 하는 교사는 얼마나 ‘교육 + 노동’을 사랑하는 길을 걷는지 궁금합니다. 교사 자리에 선 어른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말하거나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과서에 갇힌 지식을 넘어서며 내 삶을 스스로 일구며 사랑하는 길을 아이들하고 스스럼없이 나누는 어른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문학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다짐했던 아이 륄라비가 한동안 학교 바깥에서 맴돌며 지낸 나날을 짤막하게 들려줍니다. 이러다가 학교로 돌아가 어른들한테서 시달리는 모습을 살짝 곁들입니다. 이러며 끝맺습니다. 더도 덜도 없습니다. 륄라비한테 삶이란 무엇일까요. 륄라비를 둘러싼 어버이와 교사 같은 어른한테 삶이란 무엇인가요.

 무언가 살포시 짚을 듯 말 듯하면서 끝내 아무런 실타래를 건드리지 못하며 마무리지은 청소년문학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부터 그닥 재미나거나 신나게 살아가지 않기에, 아이들한테 재미나거나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어렵습니다. 어른들부터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나날을 북돋우지 않는데, 아이들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나날을 북돋우겠습니까. 지식과 학력에 따라 돈과 계급을 나누는 사회 틀거리에 그저 몸을 맞추는 어른들부터 아주 뻔한 굴레에 길들여졌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굴레를 풀거나 홀가분하게 날아오르기란 몹시 힘듭니다. 갑갑한 사회에 갑갑한 푸름이입니다. 답답한 학교에 답답한 소설입니다. (4344.4.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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