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희 3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서야 <설희> 셋째 권 느낌글을 쓴다. 앞으로 여섯 권이 남았다. 다른 여섯 권 느낌글을 쓰는 동안 10권이 나오려나. 10권이 나오면 10권 느낌글부터 쓸까. 아니면, 다음에는 9권 느낌글부터 쓸까. 흠...

 

..

 

만화책 즐겨읽기 310

 


사랑이 있는 자리에
― 설희 3
 강경옥 글·그림
 팝툰 펴냄, 2009.4.23.

 


  가장 큰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 앞에서는 어떤 것도 힘을 내지 못합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사랑을 힘이나 돈이나 이름으로 누를 수 있는 듯 여깁니다. 그뿐 아니라 참말 힘이나 돈이나 이름으로 사랑을 누르곤 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힘도 돈도 이름도 사랑을 누를 수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누군가는 서른 해나 쉰 해쯤 뒤에 깨닫고,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못 깨달으며, 누군가는 이내 깨닫습니다.


- ‘세이도 설희 만나기 전에 이미 포기했고, 각자의 인생이 다를 뿐인 거야. 응.’ (26쪽)
- “뭐 이해는 하지만, 본인이 이 일을 좋아하면 그런 것쯤 문제도 아니잖아.” (33쪽)
- “넌 뭐 되고 싶은 거 없어? 꿈이라든지 어떤 일을 하고 싶다든지. 돈 많은 건 알겠는데, 그럴 돈이 있으면 무슨 공부나 뭐든 다 할 수 있잖아.” “꿈? 뭐, 꿈은 하나 있지만, 말할 만한 건 아냐.” (40쪽)

 


  가장 큰 힘은 사랑인데, 가장 작은 힘도 사랑입니다. 사랑으로는 어느 것도 못 이룰 듯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랑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 여기기도 합니다. 사랑만으로는 전쟁을 못 막고 독재정권을 쫓아낼 수 없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먹고살 수 없는 까닭은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스스로 먹고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먹고살지 못해요. 스스로 전쟁을 못 막는다고 여기니 그예 전쟁을 못 막습니다. 스스로 독재정권을 쫓아낼 마음이 없기에 독재정권을 못 쫓아냅니다. 힘이 있기에 전쟁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힘이 있어서 독재정권을 몰아내지 않습니다. 힘이 아닌 사람들 마음으로 전쟁을 몰아냅니다. 힘이 아닌 사람들 넋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먹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헤아려 봐요.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면 쌀이 잘 되거나 배추와 무가 잘 될까요. 볍씨 한 톨에 사랑을 담고, 배추씨와 무씨 한 톨에 사랑을 실을 때에, 쌀과 배추와 무가 잘 될까요.


  우리가 돌보는 꽃나무를 헤아려 봐요. 쳐다보지 않고 아끼지 않으면 잘 자랄까요. 늘 바라보면서 어루만지고 아낄 적에 잘 자랄까요.


-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것도 선택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선택이지. 적당히 살아가는 것도 선택. 올바르다든가 올바르지 않다든가 그런 거 알아도 자신은 어쩔 수 없어. 폐인처럼 살다 뒈져도 자기 안에 바꿀 힘이 없으면 끝인 거야. 그저 자기 방식대로 주어진 결과대로 끝을 맺겠지.” (43쪽)
- ‘보면 볼수록 큰 집. 만약 이 큰 집에 내가 없다면 설희 혼자 산다는 걸까? 뭔가 되게 비현실적인 느낌. 하긴, 20년이나 외딴 섬에서 홀로 자랐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57쪽)

 


  제아무리 전쟁을 벌여도, 먹지 않으면 전쟁을 못 합니다.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전쟁터라 하더라도 잠을 안 자면 싸우지 못 합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싸움꾼이라 하더라도 옷을 입고 집에서 지내며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나무와 풀이 베푸는 푸른 숨결을 마셔야 대통령이고 군인이고 할 수 있습니다. 빗물과 냇물을 마셔야 소설가이고 운전기사이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도시사람이 99요 시골사람은 1밖에 안 되는데, 도시사람이 99.9가 되고 시골사람이 0.1이 되더라도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이 없으면 모조리 굶어죽을 뿐 아니라, 푸른 숨결과 맑은 물을 누리지 못합니다. 더욱이, 시골 논밭과 숲과 들을 푸르고 아름다우며 맑고 싱그럽게 돌보는 따사로운 손길이 없으면 아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농약이나 농기계가 흙을 일구어 주지 않습니다. 따순 손길이 흙을 일굽니다. 비료가 흙을 살리지 않습니다. 나뭇잎과 풀잎과 벌레와 새와 비와 바람과 햇볕이 흙을 살립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에 삶이 있습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자리에 삶이 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자리에 삶이 있습니다.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09) 셋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지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마음으로 품으며 살아가는지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삶이 즐거울까요. 돈이 없으면 삶이 힘들까요. 이름이 있으면 삶이 대단할까요. 이름이 없으면 삶이 따분할까요.


- ‘나 지금 불행한가? 자신의 처지에 조금의 자긍심도 못 느낄 만큼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59쪽)
- “가격표는 보지 마. 그게 약속이야. 원하는 것만 골라 봐.” (94쪽)
- ‘하지만 가격표를 보지 말라는 제의는, 그거 끌리네. 단지 원하는 것만을 본다는 거.’ (96쪽)

 


  마음에 드는 옷은 비깐 값을 치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님은 얼굴이 이쁘장하거나 몸매가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집은 부동산 값어치가 높기 때문이 아닙니다.


  백 살을 살기에 더 즐거울는지 궁금합니다. 아흔아홉 살을 살거나 여든아홉 살을 살면 덜 즐거울는지 궁금합니다. ㄱ대학교를 나왔거나 ㄴ대학교를 다니니 보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ㄷ고등학교만 마쳤거나 ㄹ중학교만 마쳤으면 보람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일곱 살 어린이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할까요. 다섯 살 어린이는 한글을 떼어야 할까요. 열네 살 푸름이는 영어를 뛰어나게 해야 할까요. 스물다섯 살 젊은이는 큰회사 사무직으로 뽑혀야 할까요.


- “그런 선물을 받는다면 사랑을 해 보고 싶어.” (106쪽)
- “하지만 뭔가를 원하는 욕구가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최대의 증거가 아닐까. 그것 때문에 힘내서 살 수도 있잖아.” “그 욕구 때문에 힘들거든요, 님하.” “그렇겠지. 그럼 모든 게 이루어져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싶어?” (194∼195쪽)

 


  지팡이는 가게에서 살 수 있고,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천천히 깎아 만들 수 있습니다. 푸성귀는 가게에서 살 수 있고, 텃밭에서 거둘 수 있으며,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작은 꽃그릇에서 키울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라면을 사다 먹을 수 있고, 밀가루를 사서 반죽하여 손수 끓일 수 있으며, 밭에 밀씨를 심고 거두고 절구질까지 해서 밀가루를 얻은 뒤, 이렇게 얻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천천히 끓일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입니다. 다 다른 삶에는 다 다른 사랑이 피어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 길로 가야 참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착하고 너그러우며 따사롭고 맑을 때에 즐거운 사랑이 됩니다. 만화책 《설희》 셋째 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사랑뿐 아니라 스스로 나를 아끼는 사랑은 무엇인지 넌지시 들려줍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는 저 먼 곳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는 바로 내가 선 이곳입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를 다른 데에서 찾으려 하면 찾지 못합니다. 사랑이 있는 자리는 바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느끼고 깨달으며 아낄 때에 곱게 빛납니다. 4347.1.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빛 1
와타나베 다에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7

 


나뭇잎이 흔들린다
― 바람의 빛 1
 와타나베 타에코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1.11.25.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 적마다 나뭇잎이 한들한들 흔들립니다. 풀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 때에도 풀잎이 흔들리고, 누군가 풀밭을 지나갈 때에도 풀잎이 사그락사그락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흔들립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크다면 크지만, 작다면 작습니다. 자동차가 한 대 휭 지나가기만 하더라도 나뭇잎 소리를 못 듣습니다. 마을방송을 한다며 쩌렁쩌렁 울릴 때에도 나뭇잎 소리를 못 듣습니다. 전화기가 울려도 풀잎 소리를 못 들어요.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본다면 이때에도 풀잎 소리를 못 듣지요.


  도시에서는 풀잎이 눕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도 풀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도시에서 살며 풀잎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도시에서도 봄과 여름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에도 바람이 불 텐데, 도시에서 일하며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요.


- 도읍 교토는 시대의 바람에 나뭇잎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3쪽)
- ‘이제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직도 형님이 그리워 참을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힘든 연습과 대무에 지쳐 있을 때가 아니라, 이렇게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꼈을 때입니다.’ (127쪽)

 


  예부터 새를 떨어뜨리는 무시무시한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에 이 말을 들으면서 피식 웃었어요. 얼마나 잘났기에 새를 떨어뜨린담? 한편, 우는 아기 울음을 멈춘다는 무서운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와 살아가며 이 말에 피식 웃습니다. 너희가 아무리 대단한 권력이라 하더라도 뭔 권리로 우는 아기를 잠재우느냐 하고. 권력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더라도 우는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권력이 눈알 부라리면서 노려보더라도 차분하고 따사로운 목소리를 뽑아 아기한테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어디서 권력 따위가 아기 옆에서 얼쩡거리나요. 어디서 총칼 앞세운 권력 주제에 아기 둘레에서 저지레를 하겠어요.


  사냥꾼이 총을 쏘면 새를 떨굴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갖가지 매연과 배기가스를 내뿜을 뿐 아니라, 온갖 쓰레기를 버리면, 새는 살아남을 길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요. 새 또한 사람처럼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걸요. 새도 다른 목숨들과 똑같이 배가 고프면 살아가지 못하는걸요. 그러니, 새를 떨구는 권력이란 사람을 하찮게 보는 권력입니다. 사람을 하찮게 보는 권력이란, 권력을 거머쥔 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셈입니다.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이란 늘 스스로 깎아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란 언제나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 “유난히 무사, 무사하고 떠드는 사람 중엔, 희한하게도 원래 무사가 아닌 사람이 많거든. 그건 대체 왜일까?” (24쪽)
- “세이자부로! 널, 장난 삼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리 남장을 해도 넌 여자다, 세이. 사람을 죽이기보다, 낳고 살리는 것이 더 잘 어울려.” (56∼57쪽)

 


  와타나베 타에코 님 만화책 《바람의 빛》(학산문화사,200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1800년대가 무르익으면서 1900년대로 넘어서기 앞선 어느 한때 일본 사회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책인 《바람의 빛》이에요. 싸울아비가 나오는 만화책입니다. 칼부림이 흐르고, 손목이나 머리가 뎅겅 하고 잘리는 그림이 가끔 춤을 추는 만화책입니다. 순정만화라 하는데, 일본에서는 순정만화로도 이렇게 목아지를 스윽 베는 그림이 나오기도 하는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칼이란 그렇지요. 사람을 베어 죽이는 데에 쓰는 칼이란 그렇지요. 목을 베라고 만든 칼이니 목을 베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사람을 찔러 죽이는 데에 쓰는 칼이니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이야기가 나와요.


  나는 너를 왜 죽여야 할까요. 너는 나한테 왜 죽어야 할까요. 서로서로 왜 눈알을 부라리면서 앙갚음을 하려 하나요. 내가 앙갚음을 하면 모든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나요. 내가 앙갚음을 하더라도 이녁은 나한테 앙갚음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지 않을까요.


- “부디 제 정체를 잊고 저를 동지로 받아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안됐지만, 대무는 여자를 고용할 정도로 만만한 데가 아니야.” “아뇨! 할 수 있습니다! 해 보일 겁니다! 어지간한 남자들한테는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네가 사람을 벨 수 있을까?” (68∼69쪽)
- “절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저는 무사입니다! 봉록을 탐하여 세운 뜻이 아닙니다!” (81쪽)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일렁이며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칼을 손에 쥔 싸울아비는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서 나를 베려고 하는구나 하고 알아챕니다. 칼을 손에 쥔 싸울아비는 누군가한테 조용히 다가서면서 재빨리 누군가를 베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일렁이면서, 비가 내리면서, 햇볕이 내리쬐면서, 나뭇잎이 찬찬히 흔들립니다. 사랑을 담아 천천히 다가서는 이가 있어 나뭇잎이 흔들려요.


  나뭇잎은 조용히 지켜봅니다. 마음속에 미움을 품은 사람을 지켜봅니다. 가슴속에 사랑을 담은 사람을 지켜봅니다. 냇물도 구름도 사람을 지켜봅니다. 새도 짐승도 풀벌레도 사람을 지켜봅니다. 딱정벌레와 무당벌레도, 잠자리와 개구리도, 다 같이 사람을 지켜봅니다.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가만히 지켜봅니다.


  따사로운 빛이 흐르면 나뭇잎은 춤을 춥니다. 차가운 빛이 감돌면 나뭇잎이 파르르 떱니다. 너그러운 빛이 서리면 나뭇잎은 노래를 불러요. 매몰찬 빛이 깃들면 나뭇잎은 부르르 떨어요.


- “무사에게는 먹는 것을 참아서라도 망가뜨리면 안 되는 ‘꼴’이 있다!” “그거 허례허식 아닌가요?” “듣기 싫어! 소우지! 웃지만 말고 이 녀석을 빨리 연습장으로 데려가!” (123∼124쪽)
- “제발, 제가 원래 그렇게 몹쓸 놈은 아닙니다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사도 아니야.” (185쪽)


  칼로 물을 벤다고 했어요. 칼로 아무리 물을 베어도 물은 잘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칼로 수많은 사람을 베고 또 베어도 사람은 자꾸자꾸 있습니다. 칼로 수많은 나무를 베고 풀을 베어도 나무와 풀은 새로새로 자랍니다.


  곧, 죽음은 아무것도 낳지 않아요. 죽임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죽음으로는 삶도 사랑도 꿈도 빛내지 못해요. 죽임으로는 평화나 평등이나 민주를 펼치지 못해요.


  칼을 쓰기에 ‘무사’일까요. 우리가 쓸 칼이라면, 무를 베고 배추를 썰며 마늘을 다질 적에 써야 하지 않을까요. 칼을 솜씨 좋게 다루기에 ‘싸울아비’인가요. 우리가 사람답게 나아갈 길이란, 낫으로 풀과 나락을 베고, 호미로 땅을 쪼며 나물을 캐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싸움 잘 하는 사람이 아닌 사랑 따사로운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자동차와 기계 소리에 길드는 사람이 아닌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살가이 들으면서 마음을 활짝 여는 사람이 늘기를 빌어요. 4347.1.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랑 네컷 만화
이랑 지음 / 유어마인드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8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화로
― 이랑 네컷 만화
 이랑 글·그림
 유어마인드 펴냄, 2013.11.15.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즐겁습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즐겁지 못합니다. 참말, 그렇지요. 돈이 있기에 즐겁지 않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 하기에 즐겁습니다. 이름을 널리 떨쳤으니 즐겁지 않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는 마음일 적에 즐겁습니다.


  책을 한 권 썼는데 많이 팔아야 즐겁지 않습니다. 책을 즐겁게 썼으면 즐겁고, 즐겁게 쓴 책을 이웃들한테 즐겁게 읽히면 즐겁습니다. 노래를 한 가락 부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들어야 즐겁지 않아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 마음이 즐거우면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한테 즐겁게 웃음과 눈물과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비로소 즐겁습니다.


- “이랑 감독, 만화책 그리고 있다며?” “네.” “점점 여자들이 싫어하는 아이콘이 되어 가네. 음악에 영화에 만화에.” “헐.” “그것만 잘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나갈 수 있겠네.” “헐.” “자, 회의 시작하죠.” (96쪽)


  즐거움은 스스로 빚습니다. 즐거움은 내 마음속에서 샘솟습니다. 남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즐겁게 합니다. 내가 차려서 먹는 밥이 내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내 입으로 읊는 노래가 내 귀와 넋을 즐겁게 합니다. 내가 손을 뻗어 아이들 볼을 부비고 몸을 번쩍 들어 품에 따사롭게 안을 적에 즐겁습니다. 남들더러 안아 주라고 해야 즐겁지 않습니다. 아이를 남더러 돌봐 달라고 맡겨야 즐겁지 않습니다.


  나무는 스스로 푸릅니다. 나무는 스스로 푸르고 싶기에 푸른 잎사귀를 내놓아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웁니다. 겨울에는 잎을 모두 떨구기도 합니다. 겨울이 되어도 짙푸른 잎사귀를 그대로 매달기도 합니다. 나무는 저마다 꽃을 곱게 피웁니다. 푸른 잎사귀와 똑같은 빛깔로 꽃을 피우기도 하고, 잎사귀와는 달리 발갛거나 노랗거나 하얀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나무는 스스로 곱게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구어요. 스스로 즐겁게 자라면서 우리들한테 맑은 바람을 베풉니다.


  새들도 이와 같아요. 새들은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풀벌레도 이와 같아요. 풀벌레도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개구리도 맹꽁이도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를 불러요.


- “오, 오, 오. 드디어! 이창동 선생님께 (1집 앨범) 드릴 수 있겠어!” … “선생님 이거 제 앨범. 버리지 마시고 꼭 들어 주세요.” “그래 축하한다.” “‘졸업영화제’라는 곡에 선생님 이름도 나와요. 헤헤.” “허허 그런 짓을 왜 했니.” (118쪽)


  노래도 부르고 영화도 찍는 이랑 님이 만화도 그리면서 선보인 《이랑 네컷 만화》(유어마인드,2013)를 읽습니다. 이랑 님은 그저 스스로 즐겁고 싶기에 노래와 영화에 이어 만화를 즐깁니다. 노래는 다른 사람이 듣고, 영화는 다른 사람이 봐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듣기 앞서 스스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이 보기 앞서 스스로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보고 즐기는 영화입니다.


  사랑을 담아 부르는 노래일 적에,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사랑을 누립니다. 꿈을 실어 찍은 영화일 적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꿈을 누려요.


  값진 요리를 차린 밥상이라서 더 맛있지 않습니다. 값지지 않더라도 따사롭게 사랑을 담아 차린 밥상이면 맛있어요. 값비싼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라서 더 멋있지 않습니다. 값비싼 사진기가 아니더라도 사랑을 고이 담아서 찍은 사진이면 멋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사랑스럽지요.


  대단한 그림 솜씨를 뽐내어 그리는 만화여야 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그림 재주를 부려서 그리는 만화여야 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을 때에 만화입니다. 이야기를 선보일 때에 영화입니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노래입니다.


- “오빠.” “응.” “내가 음악도 안 하고 영화도 안 하고 그림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아할 거야?” “응, 근데 안 할 수 있을까?” “안 할 수 있지. 안 하고 싶으면!” “그래?” “나 주부도 하고 싶은데, 나 청소 좋아하니까. 음식물쓰레기는 빼고.” “응응, 주부도 좋아.” (128쪽)


  알베르 라모리스 님이 찍은 영화 〈빨강 풍선〉이란, 페데리코 펠리니 님이 찍은 영화 〈길〉이란, 우리한테 무엇이라 할 만할까요. 멋진 영화요 대단한 영화일까요. 사랑스러운 영화요 아름다운 영화일까요.


  이진주 님이 그린 〈하니〉나 김수정 님이 그린 〈둘리〉는 어떤 만화일까요. 이 만화는 우리한테 무엇이 될까요. 어떤 넋으로 그린 만화요, 어떤 꿈과 사랑이 깃든 만화일까요. 아이들이 이 만화를 좋아하는 까닭이란,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아이를 낳은 뒤에도 〈하니〉와 〈둘리〉를 한결같이 사랑하는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이랑 님 첫 만화책 《이랑 네컷 만화》란 이랑 님이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오며 누린 즐거움과 사랑과 꿈을 담은 이야기책이라고 느낍니다. 이제 막 첫 만화책을 내놓은 만큼, 앞으로도 이랑 님 즐거움과 사랑과 꿈을 차근차근 이어서 예쁘게 선보일 수 있기를 빕니다. 남한테 보여준다거나 누구한테 드러내려는 만화가 아닌, 언제나 스스로 곱게 웃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멋진 작품이 되거나 대단한 상을 받을 작품이 아닌,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시나브로 그릴 수 있는 삶빛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4-01-2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었던 만화였는데 계속 미루고만 있네요.ㅠㅠ
나중에 꼭~ 봐야겠어요.ㅎㅎ

숲노래 2014-01-25 18:12   좋아요 0 | URL
머잖아 즐겁게 보실 날 있으리라 생각해요 ^^
 
하나다 소년사 2
이시키 마코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95

 


마음을 읽고 나누는 벗님
― 하나다 소년사 2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문준식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04.10.13.

 


  별을 볼 일이 없으면 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별을 볼 일이 없으면 별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별을 볼 일이 없으면 별빛이 어떠하든 느끼거나 살피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꽃을 볼 일이 없으면 꽃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꽃이 어떤 빛이나 무늬인지 살피지 않습니다. 꽃이 피든 지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꽃을 볼 일이 없으니, 꽃밭을 가꿀 마음이 없고, 꽃씨가 맺혀도 받아서 널리 뿌릴 생각을 품지 않습니다.


  냇물을 볼 일이 없으면 냇물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냇물에 쓰레기가 있거나 없거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냇물이 맑거나 지저분하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냇바닥에 시멘트를 들이붓든 냇가를 시멘트로 다지든 마음이 아플 일이 없습니다.


- “으웩! 그런 선머슴 같은 애가 여동생이 된다고?” “이치로! 선머슴 같다고 하지 마! 케이가 불쌍하잖아.” “싫어.” “이치로! 케이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았대.” (12∼13쪽)
- “저런 애를 낳은 여자랑 우리 아빠가 결혼할 리가 없잖아! 엄마인 척하려는 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소름 끼쳐!” “닥쳐, 선머슴!” “이치로!” “소타를 뭐라고 하는 건 괜찮지만 소타네 엄마는 욕하지 마!” “입은 너나 닥쳐! 대머리 이치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뭐가 나빠?” “모자지간이 어찌 그리 입이 싼지! 그런 아줌마가 우리 엄마가 되는 꼴은 내가 죽어도 못 봐!” “뭐라고? 그러는 너네 엄마는 병원 환자랑 도망쳤잖아!”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18∼19쪽)

 


  하늘 올려다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드문 곳에서는 하늘빛이 뿌옇거나 어둡더라도 딱히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하늘빛이 새파란 빛깔을 되찾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우리 목숨인 줄 느끼지 않습니다.


  풀을 쓰다듬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드문 곳에서는 풀잎에 먼지가 소복히 내려앉거나 말거나 그리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풀밭이 있든 말든 자동차를 대려 할 뿐이요, 풀이 자라는 빈터에 아이들이 놀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쌀밥이란 풀씨요, 소가 풀잎을 뜯으며 살아온 목숨인 줄 알아채지 않습니다. 소고기를 먹더라도 풀잎을 뜯은 소를 잡아서 얻는 고기 아닌, 사료를 먹인 소를 잡아서 얻는 고기인 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사람이란 어떤 목숨일까요. 사랑이란 어떤 빛일까요.


  어떻게 살아가는 하루가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떤 눈빛으로 마주하는 사람이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어떤 사랑을 속삭이며 어깨동무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사람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삶이 아니라면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궁금해요.


- “엄만 소타가 싫다면.” “난 싫은 게 아녜요. 정말이에요. 그런 게 아니라.” “알았어. 하지만 이번 일은 좀 천천히 생각해 보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33쪽)
- “소타는 우리 아빠의 어디가 맘에 안 들어?” (49쪽)
- “소타는 우리 아빠의 어디가 맘에 안 드는거야, 라고 물었어.” “응? 케이가 우리 엄마를 싫어했잖아. 왜냐면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면서!” “넌 바보니? 내가 싫어하는 건 아줌마가 아니라 너야!” “뭐? 나?” “네가 맞선 본 얘기를 여기저기 다 떠벌리는 바람에 다들 알게 됐잖아! 그 말은 내 본심이 아니었다고. 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냐.” “케이.” “아빠가 생기든 엄마가 생기든 둘 다 중요한 일인데 남자 주제에 입이 싸서는. 게다가 자기는 혼자서 반대하는 주제에. 네 덕분에 엄마가 생기려다 말았잖아.” (61∼62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하나다 소년사》(삼양출판사,2004)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작은 만화책에 흐르는 작은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만화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한낱 만화일 뿐일까요.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저 만화에만 있을 법한 이야기일까요.


  마음을 읽고 나누는 벗님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얼마나 다를는지요. 마음을 안 읽으면서 벗님이 될 수 있을는지요. 마음을 나누는 벗님이 없이 하루를 즐겁게 누리거나 웃을 만한지요.


- “아빠, 전 항상 아빠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엄마가 다른 남자랑 재혼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면.” “소타.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네?” “나는 너와 네 엄마가 행복해지길 바란단다. 널 낳아 준 아빠는 그렇게 속 좁은 남자가 아니야.” (68쪽)
- “아줌마! 그간 도시락 고마웠어요.” “좀더 솜씨를 부려 케이가 좋아할 만한 햄까스를.” “아뇨, 이제 햄까스는 됐어요.” “하지만 케이는 마츠토미 정육점 햄까스가 없으면.” “학교 오는 길에 아침부터 여는 가게는 거기뿐이라서요. 실은 햄까스는 예전에 질렸거든요.” (73∼74쪽)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이웃사람하고도 마음을 나누는 한편, 나무 한 그루하고도 마음을 나눕니다. 나무 한 그루와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풀 한 포기하고도 마음을 나눕니다. 풀 한 포기하고도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구름과 무지개하고 마음을 나눕니다. 구름과 무지개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바다와 섬하고도 마음을 나눕니다.


  모두 푸르게 숨쉬는 넋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멧토끼와 두더쥐도 푸르게 숨쉬는 넋입니다. 개미와 지렁이도, 뱀과 너구리도, 솔개와 소쩍새도, 꾀꼬리와 뜸북새도, 다 함께 이 땅에서 푸르게 숨쉬어요.


  흙을 한 줌 쥐면서 흙내음을 맡아 보셔요. 흙알갱이 하나도 우리와 똑같은 숨결입니다. 가랑잎을 한 움큼 쥐어 잎내음을 맡아 보셔요. 잎사귀 하나도 우리와 똑같은 숨소리입니다.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어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사랑을 속삭여요. 지구별은 온 우주에 있는 뭇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나라는 지구별 온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마을은 이 나라 온 마을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 “엄마, 지금 햄버거를 만들어서 뭐하게요?” “아빠가 이치로를 찾으러 간 동안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서. 그 애가 얼마나 배가 고플까.” (164쪽)
- “귀신들은 왜 나한테만 오는 거야!” “귀신이 되면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아. 나도 그래서 여기로 곧장 올 수 있었던 거교.” (215쪽)


  마음을 나누어 사랑을 해요. 마음을 닫을 때에는 자꾸 전쟁이 터져요. 마음을 열지 않으니 서로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고 말아요. 마음을 안 열려 하니 이웃을 밟고 올라서려 하고, 마음을 꽁꽁 닫아걸기 때문에 혼자 1등을 거머쥐려고 할 뿐이에요.


  운동 경기를 왜 하겠어요. 나 혼자 1등을 하려고? 나 혼자 금메달을 차지하려고? 아니에요. 서로 땀흘리며 즐거운 삶을 나누려고 운동 경기를 해요. 이기고 지는 숫자는 덧없어요. 이기려는 운동 경기 아닌, 사랑과 꿈을 즐기려는 운동 경기예요.


  구슬치기도 고무줄놀이도 돌치기도 자치기도 모두 등수나 순위는 따지지 않아요. 즐겁게 노니까 놀이예요. 즐겁게 놀지 않으면 놀이가 아니에요. 장작을 패거나 절구질을 하는데 등수나 순위란 없어요. 바느질을 하고 길쌈을 하는데 등수나 순위란 없습니다. 전복을 따고 김을 말릴 적에 등수나 순위가 있을 턱이 없어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나누고, 생각을 열어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4347.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4-01-2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참 귀엽습니다!!
재밌어 보이는 만화인 것 같은데 절판이네요..ㅠㅠ

숲노래 2014-01-24 08:53   좋아요 0 | URL
아주 재미있을 뿐 아니라,
뜻도 무척 깊어요.

<피아노의 숲>이 널리 사랑받는 만큼
머잖아 애장판이 새롭게 나오리라
굳게 믿고 기다립니다 ㅠ.ㅜ

애장판 나오면 애장판도 갖추려고요~

페크pek0501 2014-01-2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에도 좋은 글이 많다는 것. 님이 잘 소개해 주시네요.
어떤 만화는 사유가 깊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았어요.
동화도 그래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33쪽)
- 참 좋은 말입니다. 이것이 최선이겠죠.

숲노래 2014-01-24 19:55   좋아요 0 | URL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모두 시인이라고 느껴요.
만화책에 흐르는 말은 모두 시로구나 싶어요.

어설픈 만화책이라면 어설픈 시일 테고,
아름다운 만화책이라면 아름다운 시라고 느껴요.
 
은수저 Silver Spoon 8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306

 


누가 우리를 키우나
― 은수저 8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습니다. 아름드리로 큰 나무는 기나긴 해 뿌리를 내린 숨결입니다. 오백 해, 천 해, 이천 해, 오천 해를 살아가는 나무는 차근차근 자라면서 줄기와 가지를 굵게 뻗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툭하면 허물어서 다시 짓느라 바쁜데, 나무는 아무렇게나 베어 없앴다가 다시 심어서 키울 수 없어요. 모든 나무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에서 비롯합니다. 천천히 자라고, 단단히 뿌리를 내립니다.


  가만히 살피면, 백 해쯤 이어가는 건물조차 드뭅니다. 이백 해나 오백 해를 잇는 집이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집을 짓는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돈이 될 집을 지어서, 돈을 모으는 동안 머물다가, 돈이 안 될 듯싶으면 허물어요. 돈으로 다시 짓고, 돈으로 다시 허문 뒤, 또 돈으로 새로 짓습니다. 앞으로 쉰 해가 지난 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과 아파트와 다리가 그대로 있을까요. 앞으로 백 해가 흐른 뒤 서울에 있는 어느 건물과 아파트와 다리가 그대로 있겠습니까.


  나무는 쉰 해나 백 해 뒤에도 그대로 있을 만합니다. 사람들이 재개발을 한다면서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으면, 나무는 백 해 뒤뿐 아니라 오백 해 뒤에도 그대로 있을 만합니다. 이런 집과 저런 건물로는 어떤 자취도 못 남기지만, 나무가 크는 모습은 오래도록 새로운 이야기가 될 만합니다.


- “아아, 치즈는 송아지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거구나. 죄 많은 식품이여.” “곰팡이로 추출하는 레닛도 있지만.” “요즘은 유전자조작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지요?” (15쪽)
- “우유 수매가는 가공용이 리터당 80엔 정도라며? 치즈는 엄청 남는 거네! 다들 치즈 만들면 되겠다!” “참고로, 앞으로 5회, 압력을 바꿔 가며 하나하나 뒤집어 다시 압착. 그 후 10℃ 이하의 찬물에 하룻밤 담가 놓고, 손으로 소금을 비벼, 1주일 간 건조. 표면의 균을 안정시키기 위해 숙성 초기에는 주 3회, 안정되기 시작하면 주 2회, 브러시로 닦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죠.” (21∼22쪽)


  종이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옷장이나 책꽂이가 되어야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는 늘 그대로 나무입니다. 죽은 목숨이 아닌 산 목숨인 나무입니다. 재료나 자원이 아닌 고운 숨결 깃든 나무입니다.


  아파트나 건물이나 공장이 없어도 사람은 안 죽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없으면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나무가 베푸는 푸른 숨결이 있기에 사람이 살아갑니다. 건물이나 공장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숨결을 베풀 수 없어요. 건물이나 공장으로는 사람이 살아갈 빛이나 밥을 내놓지 못해요.


  손전화기를 쥐지 말고 나뭇줄기를 쓰다듬어요. 셈틀을 끄고 숲으로 가거나 동네에 있는 나무한테 찾아가서 가만히 귀를 대요. 나뭇줄기를 흐르는 숨소리를 들어요. 나무가 읊는 노래를 들어요.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가 짓는 웃음과 눈물을 찬찬히 살펴요. 겨울눈을 들여다보고,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를 만지며, 어떤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고치를 만드는가 헤아려요.


- “뭐, 간단히 말하면 ‘농학은 즐겁고 맛있다.’” “하긴 농사짓다 보면 굶어죽을 일은 없지.” “그야말로 ‘은수저’구나.” “은수저?” “서양에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평생 밥을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 (30쪽)
- “그래도 모르겠어요. 친구를 위해 뭘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 그래도 알려 하는 노력은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113쪽)
- “고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다들 순순히 차에 오르는구나.” “코마바 목장의 소들은 송아지 때부터 한 마리 한 마리를 아끼며 돌봐 와서 사람을 믿거든.” (119쪽)


  이 겨울에도 온갖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잎사귀가 알게 모르게 사라집니다. 갑자기 왜 잎사귀가 사라지나 하고 들여다보니, 나비로 깨어나려고 애쓰는 애벌레가 갉아먹었습니다. 바지런히 잎을 갉아먹고는 용케 눈에 덜 띌 만한 자리에 고치를 틉니다.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드는 멧새가 꽤 많은데 참말 이 애벌레는 안 잡아먹히고 나뭇잎을 제법 갉아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새들이 나비를 꽤 많이 잡아먹을 텐데, 나비는 새들이 잡아먹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새로 깨어납니다. 애벌레는 다시금 나뭇잎을 갉아먹으면서 새롭게 고치를 맺고 나비꿈을 꿉니다. 풀벌레와 새와 나비와 개구리 모두 저마다 먹이사슬 이루면서 풀밭과 숲에서 푸른 숨결을 주고받습니다. 작은 목숨들이 얼크러지면서 흙이 새롭게 살아납니다. 흙은 비료나 농약으로 살아나지 않습니다. 비료나 농약을 쓰는 흙은 나날이 허연 빛으로 바뀝니다. 도무지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만한 흙이 됩니다.


  흙이 싱그러이 숨쉬려면 지렁이가 있어야 한다 말하는데, 지렁이만으로는 흙이 싱그러이 숨쉬지 못합니다. 지렁이뿐 아니라 두더쥐가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들쥐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뱀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개구리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무당벌레도 살고 개미도 살아야 해요. 개미집이 없는 흙이라면 이런 흙에 무엇을 심어서 키울 수 있을까요. 메뚜기가 날지 않고 방아깨비가 춤추지 않는 흙이라면, 이런 흙에서 어떤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요.


  빗물이 드리우고 햇볕이 내리쬐며 바람이 살그마니 흐르는 흙이 천천히 살아납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우거지는 흙이 차근차근 기름집니다. 흙이 있어 문화가 태어나고, 흙이 있어 삶을 일굽니다. 흙이 있기에 마을이 생기며, 흙이 있기에 아이들이 자랍니다.


- “어떻게 말해? 코마바 목장이라는 한 회사의 도산인데. 정식 절차를 밟을 때까지는 함부로 입밖에 내선 안 된다고. 게다가, 말한들 네가 어쩔 건데? 빚을 갚아 줄 수 있어?” (37∼38쪽)
- “무슨 방법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니?” “하치켄은 정말 마음도 좋아. 정말,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으니까. 하치켄까지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돼.” (41쪽)
- “동생들은 대학까지 보내 주고 싶으니까. 학교 그만두고 일할 거야.” “꿈은 어쩌고! 포기할 거야?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래. 야구도 가업도, 모두 없어졌어. 하는 수 없어.” (55∼56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3) 여덟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여덟째 권에서는 꿈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와 꿈을 새롭게 품는 아이가 나옵니다. 어느 아이는 집안이 폭삭 주저앉아서 시골 농장을 남한테 넘기고는 품팔이 일을 나갑니다. 어느 아이는 아직 집안이 주저앉지는 않았으나, 시골일을 잇기보다는 대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한테는 무엇이 꿈이 될까요. 이 아이들은 어떻게 꿈을 꿀까요. 이 아이들은 어떤 마음밭 되어 어떤 생각을 곱게 품을까요.


- “사실은 억울하고 분해 미칠 것 같으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란 말이야!” (59쪽)
-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돈도 들고, 안 그래도 돈 때문에 회의 중인데.” “돈 얘길 하는 게 아니야! 네 장래 이야기를 하는 거다.” (153쪽)
- “아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단단히 공부하거라. 말이 너를 길러 주지 않았니? 어설픈 마음 먹고 덤비면 말에게 도리가 아니지.” (154쪽)


  고등학교를 꼭 마쳐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꼭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꼭 다닐 일이란 없습니다.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지 않을 뿐더러, 지식을 여러모로 갖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논밭을 일구려는 사람은 논밭을 일굴 노릇이지, 책으로 흙일을 배울 수 없습니다. 몸으로 흙을 만지고 몸으로 흙을 느낄 때에 흙을 돌봅니다. 짐승을 키울 적에도 짐승과 함께 살아가야 짐승을 키우지, 책으로는 배울 수 없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어요. 밥짓기를 책으로 못 배웁니다. 옷짓기와 집짓기도 책으로 못 배웁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느 누구도 밥과 옷과 집을 책으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어요.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익혔어요. 삶으로 온통 누리던 밥과 옷과 집입니다.


  꿈이란 무엇인가요. 대통령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길이 꿈인가요. 소설을 쓰거나 학자가 되는 길이 꿈인가요. 운동선수가 되거나 가수가 되는 길이라면 꿈인가요. 꿈이라기보다 직업이요, 꿈하고는 다른 일자리 아닐는지요. 꿈하고는 먼 돈벌이요, 꿈이라 하기 어려운 겉치레 아닐까 싶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학비를 대주는 것뿐이야. 네 꿈이 진심이라면 해 봐라.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네 진심을 믿고 의지가 되어 준 친구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161쪽)


  누가 우리를 키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내 어버이가 나를 키웠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나 스스로 이렇게 자랐을까 하고 되뇌어 봅니다. 아무래도, 어버이가 낳아서 돌보았고, 학교나 동네나 이웃이 이모저모 가르쳐 주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밑힘이란, 무엇보다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과 나무와 풀입니다. 햇볕이 드리워 내 몸을 덥힙니다. 바람이 불어 내 숨결이 됩니다. 비가 내려 몸을 맑고 싱그럽게 채웁니다. 흙이 곱고 구수해 피와 살이 됩니다. 나무가 우거져 활짝 웃습니다. 풀빛이 환하면서 정갈하니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만화책 《은수저》는 여덟째 권에 이르러 책이름이 왜 ‘은수저’인가를 얼핏 보여줍니다. 흙을 일구고 살아가면 ‘굶어죽을’ 일이 없다는 얘기를 살짝 지나가듯이 들려주는데, 첫째 권부터 여덟째 권으로 오는 동안 내내 ‘먹는’ 이야기만 했어요. 무엇을 먹는지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다루어서 먹을거리로 삼는지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먹을 밥이란 무엇이요, 이 밥을 어떻게 얻고, 이 밥이 나오는 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흙은 누구한테나 밥을 베풉니다. 흙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한테 밥을 베풉니다. 흙은 내 어버이를 낳았고, 흙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해 줍니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