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8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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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45



사랑을 아끼는 마음

― 토끼 드롭스 8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2.5.11.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파를 샀는데 뿌리가 그대로 있으면, 뿌리를 심을 수 있습니다. 파뿌리는 흙을 만나면 다시금 기운을 내어 흙을 단단히 움켜쥡니다. 뿌리 쪽을 남기고 위쪽을 잘라서 먹더라도, 파뿌리는 흙에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 줄기를 올려요. 차근차근 새 잎이 돋습니다.


  상추이든 부추이든 잎을 톡톡 끊더라도 새 잎이 다시 돋습니다. 씀바귀이든 고들빼기이든 잎은 새로 돋아요. 민들레이든 머위이든 새로운 잎이 꾸준히 자랍니다. 나무도 줄기에서 새 줄기와 잎이 돋습니다.


  뜯기거나 꺾이거나 끊긴 줄기나 잎이 다시 돋지 않는다면, 아마 지구별에서 풀과 나무는 모두 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풀과 나무는 끝없이 다시 돋고 새로 자라기 때문에 지구별을 푸르게 덮습니다.



- “물론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건 마사코도 알아. 하지만 자신이 택한 길을 가면서 린을 위해 해 줄 수 있었던 건 이것밖에 없었을 거야.” (12쪽)

- “어떤 사람이었어?” “에이, 딱 한 번 보고서는 모르지. 하지만 만나 보길 잘했어.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됐으니까.” “린. 엄마랑 같이 살 거야?” “응? 아니야. 그런 거. 그쪽에겐 이미 다른 삶이 있고.” (19쪽)




  손에 무엇을 쥐면 손을 덮은 살이 눌립니다. 손에 쥔 것을 놓으면 손을 덮은 살이 눌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가 살며시 옆으로 퍼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엉덩이가 제자리로 돌아와요.


  다쳐서 살이 찢어지더라도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찢어진 자리는 아뭅니다. 헌 살이 떨어지면 새 살이 돋습니다. 무릎이 까져도 새 살이 돋아 말끔하게 되어요. 머리카락이 빠지면 새 머리카락이 돋고, 손톱을 깎으면 새 손톱이 자랍니다. 우리 몸은 늘 꾸준하게 새로 자랍니다. 돌고 돌면서, 자라고 자라는 세포입니다.


  졸리기에 잠을 잘 테지요. 잠을 푹 자면 개운합니다. 배고프기에 밥을 먹을 테지요. 밥을 넉넉히 먹으면 배가 부르며 새롭게 기운이 솟습니다. 우리 몸은 밥과 물과 볕과 바람을 받아들이면서 움직입니다. 우리 몸이 움직이면서, 이 몸에 깃든 넋은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합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면서 생각을 마음에 하나둘 갈무리합니다. 이 일을 하고 저 일을 하면서 마음에 온갖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 ‘다이키치 냄새. 다이키치의 이불 냄새. 잠이 오게 만드는 냄새.’ (39쪽)

- ‘학교 남자애들을 봐도, 다른 애들이 멋있다고 하는 사람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건 다이키치 때문일까? 연애엔 흥미 없었는데, 이렇게 돼 버리다니.’ (63쪽)

- “다이키치, 저녁밥 뭐 할까?” “아무거나.” “김빠지게.” “린이 만든 건 뭐든 맛있으니까 아무거나 괜찮다, 는 뜻이야. 이제 나보다 더 잘하잖아.” (74∼75쪽)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돌고 도는 흐름으로 살아갑니다. 먹으면 눕니다. 누고 다시 먹습니다. 살고 죽으며, 죽음 뒤에 삶이 찾아옵니다. 늘 함께 움직여요.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는 말이란 오는 말이고, 오는 말은 다시 가는 말입니다. 내 몸에 새로운 목숨이 깃들고, 내 목숨은 새롭게 흙으로 돌아가면서 또 다른 목숨을 낳습니다. 몸은 끝없이 되풀이되면서, 마음은 한결같이 흐른다고 할까요. 몸은 스러진다고 하지만, 몸에 깃든 마음은 다른 몸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빛이 된다고 할까요.


  돌고 도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대수로이 바라볼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돌고 도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아끼거나 보살필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전쟁을 아낄까요? 돈이나 이름값을 아낄까요? 힘이나 경제발전을 아낄까요? 그렇지 않다면, 사랑과 꿈을 아낄까요? 믿음과 노래를 아낄까요? 평화와 민주를 아낄까요?



-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전 코우키랑 사귄 적 없고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거예요. 남매나 같은 사이예요.” “흐음.” “그리고 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85∼86쪽)

- “나 그 사람을 특별히 ‘엄마’로 생각하진 않아. 기억도 안 나니까. 하지만 태어난 아기랑은 형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 자매지 참. ‘엄마’와는 전혀 추억이 없으니 실감도 안 나지만, 그 애와는 이제부터 시작이잖아.” (99쪽)

- “저 그 목소리, 저 알고 있어요. 정말로. 죄송해요. 계속 실감하지 못했는데, 방금 처음으로 진짜 엄마라고 깨달은 것 같아요.” (117쪽)




  우니타 유미 님이 빚은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2) 여덟째 권을 읽으면, 만화책 주인공이 아끼려는 한 가지가 환하게 드러납니다. 주인공 ‘린’은 늘 한 가지를 아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주인공 ‘린’과 한집에서 지내는 ‘다이키치’도 언제나 한 가지를 아껴요. 바로 ‘사랑’이지요.


  아주 어렸던 린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바로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린 린을 돌보는 아저씨 다이키치도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요. 모든 살림과 일과 생각이 어설프거나 낯설던 다이키치였으나, 어린 린을 맡아서 건사하는 나날을 누리면서 차츰차츰 자랍니다. 어린 린한테 사랑을 베풀면서, 어린 린한테 베푼 사랑은 언제나 다이키치한테 베푸는 사랑인 줄 깨닫습니다. 주면 줄수록 받는 사랑이라고 할까요. 아낌없이 주면 줄수록 아낌없이 받는 사랑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샘바른 사랑을 주면 샘바른 사랑을 받습니다. 다라운 사랑을 주면 다라운 사랑을 받아요. 좁쌀만큼 작구나 싶은 사랑을 주면 좁쌀만큼 작구나 싶은 사랑을 받을 테지요. 



- “난 알았어! 확실해졌어!” “린?” “보육원이나 유치원에서 일하고 싶어. 되도록 다이키치 가까이에서 다이키치의 노후를 돌봐 줄까 해. 대학도 그걸 기준으로 지원할 거고.” (153∼154쪽)

- ‘어쩌지. 전혀 안 내켜. 그럴 시간 있으면, 집에서 바느질이나 하는 게 더.’ (188쪽)





  어린 린은 어릴 적부터 다이키치 곁에서 사랑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란 가없는 사랑이면서 오롯한 사랑인 줄 배우며 자랐어요. 스스럼없이 받는 사랑으로 언제나 둘레에 스스럼없는 웃음과 노래를 돌려준 린은 웃음과 노래 또한 베풀고 베풀어도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크게 샘솟는 줄 배웁니다.


  사랑을 아끼는 마음이 흐르는 삶일 때에 즐겁습니다. 어린 린은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제 고등학교를 마칠 나이가 되는데, 그동안 어렴풋하게 느끼던 빛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어렴풋하게 느끼던 빛을 똑바로 바라본 끝에, 이 빛이란 사랑인 줄 알아차립니다. 그러고 나서, 이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해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웃음이 되었고 노래가 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고 싶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셔요.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를 다 같이 바라보셔요. 아이 손을 잡은 내 손을 바라보셔요.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 손을 잡으면서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셔요.


  어떤 느낌인가요. 어떤 마음이 드는가요. 이 아이들과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요. 이 아이들과 이 땅에서 어떤 빛을 누리고 싶은가요. 아이들한테 주고 싶은 빛은 무엇인가요. 아이들 곁에서 내가 나한테 스스로 주고 싶은 빛은 무엇인가요.


  풀과 나무는 우리가 따사로운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맑은 눈빛으로 바라볼 적에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우리가 따사로운 손길로 어깨동무하면서 밝은 눈망울로 마주할 적에 새롭게 기운을 차리면서 사랑을 꽃피웁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일구면서 지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가슴속에서 빛이 터져나올 때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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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6



내가 ‘나’를 가질 때

― 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2.25.



  민들레가 돋습니다. 민들레는 이른봄에 살그마니 잎을 내놓고, 잎이 조금씩 커지면서 꽃대가 오르며, 꽃대가 쏙쏙 기운을 내면서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하얗거나 노란 꽃송이가 벌어지면 벌과 나비를 부르지요. 이른봄에 막 깨어난 벌과 나비는 소담스러운 민들레 꽃송이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민들레는 벌과 나비, 또는 개미와 파리한테까지 꽃가루를 나누어 주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이러고 나서 꽃이 지고 꽃대가 더 높이 오르면서 하얗고 동그란 씨앗꾸러미를 이룹니다.


  어느 풀이든 씨앗이 퍼지면 시듭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풀은 씨앗을 내놓으면서 힘을 잃어요. 씨앗을 맺기까지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요.


  생각해 보면, 사람도 아기를 낳은 뒤 기운이 많이 줄어듭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뼈도 살도 머리카락도 이도 많이 흔들립니다. 그만큼 새 목숨인 아기한테 엄청나게 커다란 기운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 “살기 위해 보여준 그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내 눈엔 가련한 시체밖에 안 보여.” (14쪽)

- “동물이 오직 하나만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주의력’이다. 뇌가 적은 에너지를 갖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런 구조로 되어 있지.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주위를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26쪽)




  여름에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가을에도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새로 올라오는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잎을 톡톡 뜯습니다. 살살 쓰다듬은 뒤 입에 넣습니다. 여름에 먹는 민들레잎은 여름다운 싱그러움이 묻어난 맛입니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가을빛이 서린 고운 맛입니다.


  민들레 옆에서 자라는 쇠비름을 뜯습니다. 질경이를 뜯습니다. 돌나물을 뜯고 고들빼기를 뜯습니다. 까마중도 뜯고 싶지만, 까마중은 잎이 돋기 무섭게 진딧물이 달라붙습니다. 까마중잎이 이렇게 맛있는가 보군요. 참말 까마중잎은 남아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뽕잎도 그래요. 뽕잎도 진딧물과 풀벌레가 아주 좋아해요. 이렇게 맛난 잎은 온갖 풀벌레가 다 좋아합니다.


  어떤 풀을 먹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면, 벌레 먹은 잎을 먹으면 돼요. 무잎이나 배춧잎도 벌레가 잘 먹어요. 왜 그럴까요? 맛있기 때문입니다. 벌레한테도 맛난 잎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돼요. 벌레가 너무 먹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벌레 몫을 남기면서 사람 몫을 함께 누리자고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한 가지 남새만 밭에 심으려 하지 말고 온갖 남새를 골고루 심는 한편, 갖은 풀이 살뜰히 자라도록 돌보면서, 남새와 나물을 함께 누리면 아름답습니다.



- “로빈! 난 네가 좋다! ‘나’를 가져! 제발 힘내!” (32쪽)

- “이번 내 목적은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뭐라고?” “다들, 좀 힘들겠지만, 버텨라. 내 울음소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 (49쪽)

- “하긴. 내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그거라고! 풀이며 열매를 먹어 본 적 없는 육식동물이, 영원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60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둘째 권을 읽습니다. 《동물의 왕국》 열둘째 권에서는 ‘내’가 ‘나’인 줄 잊은 목숨들이 나오고, ‘내’가 ‘나’인 줄 생각하거나 찾는 목숨들이 나옵니다. ‘내’가 ‘나’인 줄 잊기 때문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기계나 노예나 바보’가 됩니다. ‘내’가 ‘나’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목숨은 힘이 세거나 이름이 높거나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걸어가는 목숨은 힘이 여리거나 이름이 낮거나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 “우린 타로우자가 없었다면, 사자의 새끼 죽이기에서 죽었어. 그렇지? 난 새끼 죽이기가 왜 있는 걸까 고민하다 깨달았어. 먹이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살 수 있는 사자 수도 제한되고, 결국 사자끼리 서로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야.” (78∼79쪽)

- “너, 네가 뭔지 모르지? 나도 그래.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났고, 친구라 여겼던 주위 녀석들은 모두 텅 빈 껍데기였고, 마음이 담긴 대화라곤 할 수 없었어. 풀이며 나무, 탑 외의 동물들은 모두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빛나는데.” (118∼119쪽)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살아간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삶’이 있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똑같이 쳇바퀴를 돌기만 할 뿐, 스스로 삶하고 자꾸 동떨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새 하루를 빚거나 가꿀 줄 모르는 한편, 스스로 이녁 삶을 아끼거나 돌보는 길을 잊거나 잃지 싶습니다.


  밥을 먹는다면 내가 스스로 먹습니다. 남이 숟가락에 떠서 먹이더라도 내가 입으로 씹고 목구멍으로 삼키며 뱃속에서 삭혀야 합니다. 밥을 먹어서 얻은 기운으로 내 삶을 스스로 돌보면서 북돋아야 합니다.


  밥뿐 아니라 물과 바람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이 숨을 쉬게 해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남이 나한테 물을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물을 마셔서 내 몸을 ‘물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살며, 스스로 잡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며,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랑하지요. 스스로 노래해요.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요. 언제나 스스로 합니다. 학교에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 “그래. 이건 내 경험이 아니야. 아마 누군가 맛본 유년 시절의 경험을, 적당히 짜 맞춰 만든 추억 프로그램이겠지. 갓 태어나, 무엇을 할지, 나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도 모르는 내겐, 안성맞춤의 억제력이었던 거지. 하지만 이제 난 혼자 일어설 수 있어. 타로우자가 가르쳐 줬거든.” (132쪽)

- “어떤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살피지 않고, 동료를 모욕한 상대에게 화를 낸 녀석이 있다. 난 그 모습에서 ‘강인함’을 느꼈고, 무척이나 흥미로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름다움’과 ‘고귀함’이었어.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생명이 고귀하게 빛나 보였단 말이다.” (134쪽)




  내가 ‘나’를 가질 때에 나는 비로소 ‘참다운 나’인 ‘참나’가 됩니다. 내가 나를 가지지 못할 때에는 아직 ‘참다운 나’가 아닙니다. 어쩌면 ‘거짓스러운 나’라 할 만합니다.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을 마주하면서도 거짓이 거짓인 줄 알아차리지 못해요.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이 거짓인 줄 모를 뿐 아니라 참이 참인 줄 모릅니다. 거짓도 참도 없이, 거짓도 참도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를 굴리는 바보로 지냅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삶이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이웃 누구나 서로서로 ‘나’가 싱그럽게 어깨동무하는 줄 알아봅니다. 나한테는 내가 있고 너한테는 너가 있습니다.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빛이면서 나와 너는 서로 같은 숨결입니다. 나와 너는 우리를 이루는 넋이면서 나와 너는 우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 “함께 살아갈 방법을 많이 많이 가르쳐 줘.” (82쪽)

- “키메라라도 그런 가족을 갖자. 친구를 갖자. 덜 떨어진 목숨이란 말 따위나 듣고 있지 말자. 고귀하게 빛나는 훌륭한 동물이 되자.” (136쪽)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며 아름답기에 훌륭합니다.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에서 1등을 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며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착합니다. 도덕 교과서나 철학책을 달달 외운들 착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시장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먹고살 만하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듯, 밥을 스스로 짓습니다. 삶과 밥을 스스로 지으니, 사랑과 꿈도 스스로 지어요.


  직업교육을 받아야 꿈을 짓지 않습니다. 돈을 크게 벌어야 꿈을 지을 만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아야 사랑을 알지 않습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어야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이 빛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끌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빛이 있기에 사랑이 싹틀 수 있고, 사랑이 싹트는 자리에서 아름다움이 환하게 퍼지며, 아름다움이 퍼지는 곳에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야기가 있어 삶입니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목숨 가운데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언제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날마다 새 이야기를 짓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지구별에 죽음과 잿더미를 만들 수는 있어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이들한테는 명령과 지시와 복종과 계급과 신분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이들한테는 명령도 지시도 복종도 계급도 신분도 없습니다. 자, 오늘 한국에는 무엇이 있나요? 오늘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무엇이 있습니까?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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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2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

―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글·그림

 강동욱 옮김

 미우 펴냄, 2010.8.15.



  오월이 저물고 유월로 접어들면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는 꽃을 모두 떨구고 열매를 맺습니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꽃은 바람에 많이 떨어졌으나, 나무에 달린 열매도 많습니다. 새빨간 꽃차례에 달린 검붉고 동그란 열매는 소담스럽습니다. 후박알은 새가 아주 좋아합니다. 후박알이 맺으니 마을에 있는 온갖 새가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가까운 멧자락에서 지내는 새도 찾아들어 노래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있고, 나무열매가 맺으니, 마당에 놓은 평상에 앉든 마루에 앉든 부엌에서 밥을 짓든 늘 멧새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마당에 나무가 없어도 새는 하늘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갑니다.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를 누립니다. 집 앞에 논이 없어도 마을 가까이에 논이 있으면 개구리 노랫소리를 누립니다. 그리고, 집 안팎이나 둘레에 풀밭이 우거지면 개구리가 살그마니 깃들어 골골 홀로 노래를 베풉니다.



- “야구부원들은 왜 일부러 배팅센터에 오는 걸까?”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아, 생각해 보니 꽤 많네요. 진짜, 이유가 뭘까요?” “봐! 쟤들 어차피 날마다 원숭이처럼 연습만 할 거 아냐? 나 같으면 일부러 돈까지 써 가면서 이런 데 오지는 않을.” (20쪽)

- “여자인데도 사정없이 태웠구나, 자와 씨.” “당연하지. 야구부에서 선탠 로션 바르는 녀석 거의 없잖아.” “어? 그래도 여자 매니저는 꼬박꼬박 챙겨 바르잖아, 선탠 로션.” (34쪽)





  풀숲에 깃들 때에 풀벌레를 만납니다. 풀벌레는 풀밭이나 풀숲에서 살아요. 풀벌레이니까요. 풀벌레는 도시에서 살지 못하고, 풀벌레는 아파트에서 살지 못합니다. 풀벌레는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에서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파트에 꽃밭이 있으면서 흙내음과 풀내음이 감돌면, 이런 곳에도 풀벌레는 살그마니 찾아옵니다. 아파트를 지키는 이들이 농약을 솨솨 뿌려서 풀벌레가 그만 농약을 맞아 죽기도 하지만, 풀벌레는 아파트 꽃밭에서도 살아남고, 도시 한복판에 있는 조그마한 풀섶에서도 살아남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셔요.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똑 끊어진 때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셔요. 건널목에 푸른 빛깔 등불이 켜지면서 자동차가 모두 서야 할 적에 풀밭을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여 보셔요. 어쩌면 아뭇소리가 없을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가늘게 풀벌레 노랫소리가 흐를 수 있습니다. 더 귀를 기울이면 이곳저곳 날면서 먹이를 찾는 참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똑같은 여자라도 우리 같은 매니저를 얕보는 것 같달까.” “그러게! 분위기만 봐서는 쉽게 다가가지 못할 것 같아.” “실제로는 어떤 사람일까?” (63∼64쪽)

- “저건 미야코자와 리사잖아.” “그게 누군데?” “어? 닛센고교의 유일한 여자 야구부원.” “진짜? 여자가 야구를 왜 하는데?” (91쪽)



  빛은 빛을 느끼려 하는 사람한테 찾아갑니다. 바람은 바람을 맞이하려는 사람한테 다가갑니다. 노래는 노래를 들으려는 사람한테 흘러갑니다.


  햇빛이 비추어도 햇빛을 생각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은 햇빛을 몰라요. 햇볕이 내리쬐어도 햇볕을 즐기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따순 볕을 몰라요. 햇살이 눈부셔도 햇살을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면 언제나 지구별을 환하게 보듬는 햇살을 몰라요.


  미시마 에리코 님 만화책 《고교야구선수 자와 씨》(미우,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자와 씨’는 고등학교 야구선수입니다. 다만, ‘여자 선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책에는 ‘여자 야구선수’라고 적지 않습니다. 그냥 ‘야구선수’요 그저 ‘고교야구선수’일 뿐입니다.





- ‘자와 씨는 3㎏이나 체중이 주는 바람에 체간, 특히 복근이 빠져버린 걸 신경 쓰는 것 같다’ (140쪽)

- “썰렁하네. 아무리 익숙해도 막 깎고 나면 썰렁하다니까.” “연습도 없는 날 사내자식 둘이 서로 머리나 깎아 주고 있는 게 더 썰렁하다.” “그만 해, 하나무라.” “겨울이다. 여친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 해, 모리구치.” (163쪽)



  ‘자와 씨’는 누구일까요? ‘여자 야구선수’일까요? 글쎄, 이렇게 보고 싶다면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자와 씨’는 ‘미야코자와’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를 이 아이대로 바라보면 이 이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마주하거나 바라보려는 매무새에 따라 ‘자와 씨’는 우리한테 다 다른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려 하는 매무새에 따라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며 느끼는 빛’이 달라요. 내가 바라보는 나는 이런 모습이라 하더라도, 나를 온 모습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내 이웃은 나를 ‘한 가지 모습’으로 못박습니다. 나 또한 내 이웃을 온 모습으로 마주하지 않고 ‘한 가지 모습’으로만 여기면, 내가 내 이웃한테서 받을 빛은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본대서 서운하거나 아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한 가지’라 하더라도 우리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한 가지’로라도 바라보았습니다. 잘 살펴보셔요. 우리는 우리 둘레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풀벌레가 있으며 꽃과 풀과 나무가 있지만, 거의 모든 이웃과 풀벌레와 꽃과 풀과 나무를 안 느끼거나 안 알아보면서 살아요. 생각 없이 스치기 일쑤입니다.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나 스스로 내 빛줄기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내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 지구별을 오롯이 껴안으면서 가꾸고 싶은 마음입니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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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비 6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164



되는 대로 나아가는 삶이란

― 낮비 6

 후루야 미노루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11.15.



  후루야 미노루 님 만화책 《낮비》(대원씨아이,2010) 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낮비》는 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마지막 권을 덮으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후루야 미노루 님한테 《낮비》라는 작품은 몹시 벅찼구나 싶습니다. 여섯째 권을 이루는 흐름도, 마지막 이야기도,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도, 실마리와 실타래가 없이 뒤섞이다가 톡 끊어집니다.


  어쩌면, 후루야 미노루 님은 실마리와 실타래가 없는 이야기를 뒤섞다가 톡 끊듯이 내려놓을 생각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얼거리도 얼거리일 테니까요.



- ‘죽은 뒤에 정말로 지옥과 같은 세상에 가게 된다면 진짜 싫을 거야.’ (17쪽)

- “뭐,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이 세상에 ‘병’이란 말 자체가 필요없다고 생각해. 솔직히 의미가 없잖아? 걷고 있는 사람한테 ‘걷고 있네요’ 하고 말하는 것 같거든.“ (55쪽)



  ‘계획하지 않은 범행(살인)’이기에 오히려 새로운 범행(살인)으로 자꾸 나아가면서 경찰한테 안 붙들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계획하지 않은 범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짠 범행이라고 해야 옳지 싶어요. 이 만화에 나온 살인자는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거든요. 두려움이 없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가장 빈틈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는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찾으려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쳇바퀴와 굴레를 이제 벗어던지고 새롭게 살아가려 할 적에도 ‘두려움이 없’어야 쳇바퀴를 벗고 굴레를 내려놓습니다. 자꾸 두려움이 치밀면 아름다움으로 가지 못해요. 잇달아 두려움을 스스로 부르는데 사랑스러움으로 가지 못해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며 ‘도시가 싫어!’ 하고 외치지만 정작 시골로 가지는 못합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돈을 못 벌면 어쩌나 하고 두렵습니다. 시골에 뿌리를 못 내리면 어쩌나 하고 두렵습니다. 시골은 텃세가 있다고 여기며 두렵습니다. 시골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는지 두렵습니다. 온통 두려움입니다. 두려움만 있으니 도시가 싫다고 입으로는 외쳐도 마음과 몸이 따르지 못해요.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도시에 있대서 돈을 잘 벌까요. 도시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요. 도시에는 텃세가 없나요. 회사와 가게와 학교마다 텃세가 있지 않나요. 도시에서 지내며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느냐를 놓고 날마다 근심과 걱정이 그득하지 않나요.


  도시에 있을 적부터 늘 두려움투성이인 탓에 시골로 갈 엄두를 못 냅니다. 살아갈 길이 있는 줄 알면서, 살아갈 길로 가지 못하고, 두려움을 짙게 드리우면서 스스로를 달랩니다. 어려운 말로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 “네가 말하는 행복은 뭐지? 구체적으로 말해 봐.” “그, 그건, 매일 건강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예쁜 꽃을 보며, 예쁘다고 느낀다거나, 뭐 그런 거지.” (138쪽)

-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는데도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잡히지 않는 건가?’ (161쪽)



  삶을 이루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노릇입니다. 사랑을 이루는 웃음이란 무엇일까 헤아릴 노릇입니다. 언제 즐거운가요? 언제 사랑이 샘솟는가요?


  핵발전소가 사라지고 전쟁무기가 없어져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들꽃 한 송이를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독재를 휘두르는 대통령이 사라지고 밀양송전탑을 걷어치울 수 있다면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웃음을 마주하거나 이웃이 건넨 떡 한 접시를 받고도 사랑스럽습니다.


  삶을 이루는 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요. 나는 내 삶이 어떠한 빛으로 샘솟도록 이끄는 하루를 누리는가요. 내 넋은 얼마나 환하게 빛나는가요. 내가 걷는 길은 얼마나 즐겁게 걸어갈 길인가요.


  만화를 그리는 후루야 미노루 님 스스로 삶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한결 즐겁게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스스로 삶빛을 키우지 못한다면 ‘삶을 다루는’ 만화를 제대로 그리지 못합니다. 슬쩍 건드리거나 조금 만지작거린다고 해서 ‘삶을 다루는’ 만화가 되지 않습니다. 되는 대로 그린대서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더 가까이에서 껴안고, 더 따스히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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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비 3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4



삶을 되돌리려면

― 낮비 3

 후루야 미노루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7.15.



  삶을 되돌리는 길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삶을 되돌리는 길이 없다고 느끼기에, 우리는 날마다 쳇바퀴처럼 똑같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면서 굴러가지는 않을까요. 삶을 되돌리는 길이 있다고 느낄 뿐 아니라, 스스로 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간다면, 날마다 갇히던 쳇바퀴를 부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쳇바퀴는 누가 만들까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은 누가 만들까요. 남이 만들어 줄까요. 내가 스스로 만들까요.


  너무 마땅하게도, 새롭게 나아가는 삶길은 우리 스스로 만듭니다. 그리고, 쳇바퀴에 갇히는 굴레도 우리 스스로 만듭니다.



- “알겠냐, 오카다! 아무리 근육이 있다 해도 인간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동물이야!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말이며 문자야!” (19쪽)

- “너는 도둑이야! 사기꾼이라구! 남자로서 정말 최악의 쓰레기야!” “멍청이. 그건 내 재능이야. 재능과 노력이지. 너 그거 의외로 쉽지 않다?” (27쪽)




  삶을 되돌리려면, 삶을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거듭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이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삶을 되돌려야겠어’ 하는 다짐을 튼튼히 다진 뒤, 이 다짐을 이룰 수 있도록 새롭게 하루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짐을 했는데 삶을 되돌리지 못했다면? 그러면 생각해 보아야 해요. 참말 새롭게 나아갈 삶을 마음속에 품었는지, 아니면 못미덥다 여겨 티끌이나 먼지를 끌어들였는지 제대로 살펴야 해요. 스스로 ‘아무래도 나는 안 돼’ 하고 여기는 마음이 살짝이라도 있었다면, 참말 ‘아무래도 나는 안 돼’와 같은 길로 가요. 스스로 ‘나는 언제나 새롭게 일구는 삶이야’ 하고 여기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언제나 새롭게 일구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 ‘남을 속이는 바보. 속는 바보. 속는 바보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바보. 어라? 그럼, 내가 제일 바보인가?’ (34∼35쪽)

- ‘매일같이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렇게 돼 버린 녀석은 말이다.’ (47쪽)




  후루야 미노루 님 만화책 《낮비》(대원씨아이,2010)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 가두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여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품는 생각대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가두는 생각으로 나아가면서 웃든 울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스스로 ‘다른 생각’을 품지 않기에 참말 다른 길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나한테는 이 길밖에 없잖아!’ 하고 더 다그치니, 참말 이 길 하나로만 나아가려 해요.


  왜 바꾸지 않을까요. 입으로는 ‘이 길이 참 싫다구!’ 하고 외치면서, 정작 마음과 몸은 왜 새 길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을까요.



- “아직 얘기를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은 열심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부러워요. 어제 점심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함께 있는 게 정말 즐거워요.” (93쪽)

- “나처럼 못난 놈은 1초라도 빨리 죽어 나무의 비료가 되는 게 나아. 내가 공기를 들이마시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나무 몇 그루가 튼튼히 자라는 게 백 배 나아.” (152쪽)



  쳇바퀴에 길드는 동안 쳇바퀴가 좋아졌을까요. 굴레에 갇혀 지내던 어느 날부터 굴레가 익숙해졌을까요. 어두운 곳에 지내다가 어느새 어두움에 눈도 마음도 몸도 익숙해지듯이, 쳇바퀴와 굴레도 얼마든지 익숙하게 지내다가 ‘좋아할 만한 터전’으로 삼고 말까요.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삶’을 좋아할 수 있고, 새로운 삶에 눈과 마음과 몸을 익숙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못미덥고 싫고 달갑지 않으며 고단하다는 삶에도 얼마든지 익숙하게 눈과 마음과 몸을 맞추어서 살아간다면, 새로운 삶에도 얼마든지 익숙하게 모든 힘과 넋을 기울여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바꿉니다.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자유와 평화로 나아갑니다.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사랑과 꿈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마음을 돌릴 때에 비로소 삶을 새롭게 열고, 빛을 온몸으로 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만화책 《낮비》에서는 이 대목까지 건드리거나 짚거나 다루지는 못합니다. 쳇바퀴와 굴레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만 자꾸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맙니다. 4347.6.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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